Symphonie "Arirang"
최성환 / 관현악 '아리랑'
최성환, 1936 ~1681
현악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불려지는 민요 아리랑을 환상곡 풍으로 만든 것으로, 북한의 공훈예술가 최성환(1936-1981)이 1976년에 작곡한 곡이다. 서양악기와 개량국악기를 포함한 ‘배합관현악곡’으로 작곡되어 북한에서 가장 널리 연주되고 내세우는 관현악곡의 대표작이다. 아리랑의 음조가 어딘가 슬픈 인상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람들 생활 속에 있는 애달픔이 배경에 있기 때문인데 비애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 속에는 사람들의 생활 지향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잘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부분은 우리 민족의 영광의 미래를 표현하듯 서정적이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리듬으로 마무리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市立交響樂團
1957년에 창단된 서울특별시 산하의 교향악단. 서울시향이라고도 한다. 1945년 계정식(桂貞植)·현제명(玄濟明)·김생려(金生麗)를 중심으로 고려교향악단이 설립되었다가 재정난으로 해체되었는데, 이것이 그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후 김생려가 고려교향악단의 일부 단원을 포섭해 서울교향악단을 발족, 1947년 10월 시공관에서 김성태(金聖泰)의 지휘로 제1회 정기공연을 가졌다. 1950년 6·25전쟁으로 잠시 해체되었다가 해군정훈음악대를 창단해 연주회를 가졌다.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하고, 그 역사는 1945년 계정식, 현제명, 김성태를 중심으로 설립된 고려교향악단에서 연원한다.
1945년 10월 계정식의 지휘로 창단연주회를 가진 고려교향악단은 1948년 10월 제26회 정기공연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한편, 1948년 1월 김생려를 중심으로 창단된 서울교향악단은 김성태의 지휘로 창단 공연을 가진 후 롤푸 자코비와 김생려가 지휘봉을 들었다. 1949년 <필하모니>라는 음악잡지까지 만들었던 이 교향악단이 사라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다. 그러나, 1950년 11월 해군은 해군정훈음악대를 조직하여 이 명맥은 이어졌고 시공관에서 제1회 연주회를 개최하게 된다. 이 오케스트라는 1954년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되었고, 결국 1957년 8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창단되기에 이른다.
김생려가 초대 상임지휘자로 재직한 1957년부터 1961년까지의 시기의 서울시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레퍼토리와 훌륭한 연주를 통해 한국 교향악단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2대 지휘자 김만복(1961-69)은 미국에서 지휘를 전공하고 돌아온 전문 지휘자로서 수많은 작품을 한국 초연하는 한편, 국내 창작곡도 공연하는 등 많은 공로를 남겼다. 3대 지휘자 원경수 이후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정재동은 1974년부터 1990년까지 오랜 기간동안 서울시향과 호흡하면서 안정된 앙상블을 선보였으며, 이후 박은성(1991-92), 원경수(1994-96) 등의 지휘자가 서울시향과 함께 하였다. 마르크 에름레르(2000-2002)는 러시아 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서울시민의 따뜻한 사랑을 받았으나 임기를 1년 앞둔 2002년 4월 한국에서 타계하였다.
서울시향은 넓은 레퍼토리와 세련된 앙상블을 자랑한 정기연주회 이외에도 많은 공연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사랑받았다. <범세대음악회>를 통해 국내작곡가에게 곡을 위촉, 초연함으로써 국내 창작곡의 기반을 넓히는 한편 세대를 뛰어넘어 호흡할 수 있는 음악을 관객들에게 제공하였고, 서울시향이 한국에 정착시킨 <팝스 콘서트>는 여름의 무더위에 지친 시민들에게 시원한 청량제를 제공하였다. 56년부터 시작된 <소년소녀 협주회>는 정경화, 백건우, 정명화, 이경숙, 강동석부터 최희연과 양성원, 장한나에 이르기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들 대부분을 배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서울시향은 많은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의 교향악 수준을 널리 알렸는데, 특히 1982년과 1986년 미국 순회연주, 1988년 유럽 16개 도시 순회연주 등을 통해 음악의 본고장에서 인정받았다.
최성환, 1936 ~ 1981
북한의 공훈예술가, 작곡(북한에서는 편곡을 독립된 작품 형상화의 성과로 인정하여 '작곡'으로 표기한다)되어 가장 널리 연주되는 관현악곡의 대표작이다. 여러 차례 다듬어져 개량 국악기를 포함한 '배합관현악곡'으로 알려진 곡인데, 우리에게는 1970년대말에 알려졌고, 1990년 북측이 남북단일팀 단가 합의 때 판문점 회담장에서 녹음된 것을 들려주어 유명한 곡이 되기도 했다. 그 후 일본에서 김홍재 지휘로 NHK교향악단을 비롯해 100여개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었고 미국의 카네기홀, 헝가리, 폴란드,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도 연주되었다. 현악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불려지는 민요 아리랑을 환상곡 풍으로 만든 것으로, 북한의 공훈예술가 최성환(1936-1981)이 1976년에 작곡한 곡이다. 서양악기와 개량국악기를 포함한 ‘배합관현악곡’으로 작곡되어 북한에서 가장 널리 연주되고 내세우는 관현악곡의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