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피안에로,
고뇌는 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면 된다.
인내와 노력,
극단적으로 내달리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중도를 가는 중에,
마음의 조화가 생겨나고,
바른 판단이 생겨나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깨달음에의 길은, 자기 자신의 마음 이외에 결정하는 것은 없다.
그것이 신불의 자식, 만물의 영장다운 사람의 엄격한 법칙인 것이다.
신리를 깨달은 스승으로부터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길은 열려 간다.
그것을 모르면 안 된다.
마음 (2)
육체의 지배자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영구히 전생 윤회를 계속하고 있는 의식이며, 혼(魂)인 것이다.
이 혼이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이며,
잠재의식 속에는,
과거세에서 배운 일체의 경험이 기억되어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희망하여 부모로부터 육체인 배를 받아,
혼의 부조화한 업을 수정함과 함께,
이 현상계에, 인류의 마음과 마음의 조화에 의한
평화로운 평온이 있는 불국토를 건설하는 목적을 갖고,
인생 항로를 건너가는 수행자임을 알아야 한다.
즉 우리의 인생은, 전생 윤회의 과정으로,
언젠가 실재계, 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의 의지 아래에 있다.
좋든 싫든 상관없이, 누구나 이 법칙을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신불의 법칙이다.
하지만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버리면,
과거세에서 배운 체험의 일체가,
우리의 잠재의식의 보고(寶庫) 안에 매장되어 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을 자기 자신의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에 의해 닫고 있다.
이 문을 열려고, 과거의 사람들의 대다수는,
육체적인 고행에 의해 번뇌를 멸하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했다.
또한 육체의 형식적 규칙에 중점을 둔 수행에 의해,
깨달음에의 도달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법에 적합한 평온한 마음을 얻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것은 신리에 적합하지 않은 부조화한 상념과 행위에 의한,
어두운 상념의 저항이,
불지(佛智)인 위대한 보고(寶庫)를 닫고 있음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 드문 산중에서 폭포를 맞거나, 단식을 하거나,
명상에 빠져 육체적인 수행을 해도 번뇌를 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육체에의 집착을 벗어나지 못한 행위이며,
강한 집착심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지배자인 의식(意識). 의식의 중심인 마음을 잊어서는 깨달음은 없다.
우리의 마음은, 또 예를 들면,
정확히 전자가 핵(核)의 주위를 날고 있는 것처럼,
혹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 공전하고 있는 것처럼,
모두 중심이 있어, 이 중심과 외부가 조화되어 있다.
앞에서도 서술한 것처럼,
우리의 의식의 중심이 마음이고,
몸 전체가 의식(魂)인 마음은
그 모든 것의 중심이다.
마음은, 정확히 유연한 소용돌이 모양의 공 같은 느낌으로,
감정, 이성, 본능, 지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음의 중심은 무한대의 우주 생명에 통하고 있음과 동시에,
우리의 의식에 무한의 상념을 작동하고 있다.
인생의 항로에 있어서
모든 현상에 대해 판단하는 이성,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감정,
신불로부터 주어져 있는 본능,
인생 경험과 지성,
이것들이 상호 조화를 유지하면서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조화되어 있어야 할 마음속이,
감정만 표면으로 나와 부풀어진 것이라면,
정서 불안정, 자기 보존적으로 되어,
마음의 평온함을 얻을 수 없다.
상대방에게서 결점을 지적당하거나 하면, 금방 화가 나는 사람들이 많다.
"자존심을 상처받았다."
라고 하며 감정적이 되어.
충고자의 결점을 역으로 찾아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자기보존이 강한 성격으로
부조화한 감정적인 언동에 의해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내버린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부조화한 말이나 행위는,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
자기보존을 위한 부조화한 감정적인 상념 행위를 하면,
상대의 마음은 신불의 빛에 의해 뒤덮여 있으므로 역 반사되어,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 강한 반작용을 일으켜
더욱더 부조화한 어두운 상념에 뒤덮이기 때문이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 이다.
상대방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신불에게 상대의 불행을 비는 것 등도,
그 불행의 현상은 자기 자신에게 튕겨져 되돌아온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나쁜 상념 행위의 원인은,
스스로를 고난으로 몰아넣어, 어떻게 할 수도 없게 된다.
올바른 자기 판단은,
솔직한 마음으로 타인의 충고를 듣는 것에 있다.
자기보존을 위한 감정은, 자신을 상처 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또한 상처를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본능만이 표면으로 나오면,
자기 방어, 자기 본위가 되어,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본성을 잊고, 동물적 욕정의 포로가 되기 쉽다.
사랑을 잊은 육체적 본능은, 인간사회를 혼란으로 이끌고,
자기의 마음에 고통의 원인을 만들어 낸다.
그 때문에 깨달음의 길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우리는 현상계의 영화(榮華)를 동경하여, 세상을 즐기는 것과,
도를 즐기는 것과는 스스로 별개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과거에 번영했던 나라들이 왜 멸망한 것일까.
약자들을 희생시켜 권력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부귀영화에 전념해,
동물적 본능이 통째로 드러남의 육욕적 행위에 정신이 팔려,
불성을 잃은 자아아욕의 화신으로 변한 것에 원인이 있다.
수행을 게을리하여 영화만을 즐길 뿐인 인생을 반성하고,
정법의 길을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구한 것이 주어졌을 때의 기쁨은,
어떤 것에도 바꾸기 힘든 것이다.
마음의 길은 심원하며, 깨달으면 이것에 이길 기쁨은 없다.
이 기쁨을 얻으려면,
모든 제 현상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하는 이성,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감정,
신불로부터 주어져 있는 본능,
인생 경험과 지성,
이러한 것들이 상호 조화를 유지하여,
마음에 사로잡힘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