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8회.
2000년 밀레니엄 행사: 프랑스 파리.
홍 성 암
* 드디어 2000년.
드디어 2000년이다. 2천년을 앞두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예수님이 말세라고 진단한 것이 다가온 것이다. 특정 종파에서 휴거소동이 일기도 했다. 사람이 산 채로 하늘로 올라가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혹성들의 일직선 현상이 거론되기도 했다. 혹성이 일직선으로 늘어 설 때 그 인력이 한 방향으로 쏠려서 혹성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무튼 2000년이란 특별한 때에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들이 만연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라마다 2000년 밀레니엄 행사 준비로 떠들썩했다. 우리나라는 풍선 띄우기를 한다는 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도 제각기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 2000년 새해에 세상을 놀래키기 위해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나라마다 극비리에 대단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단한 행사를 보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다. 파리는 밀레니엄 행사를 보기 위해 백만 인파가 군집했다는 소문이다. 거리마다 사람으로 넘쳤다. 밀레니엄의 중심행사는 에펠탑에 마련되었다. 에필탑의 시계는 2천년 새해 0시를 향하여 매초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형광판에 설치된 시계추를 보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에펠탑 행사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십만 인파가 움직였다. 우리도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을 골라 자리를 이동했다.
자리를 옮기는 군중들의 물결은 대단했다. 십여 명씩 짝을 이룬 젊은이들은 자기 나라의 깃발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밀레니엄의 순간 터뜨리기 위한 샴페인 병과 포도주잔을 챙긴 군중들은 축제의 열기에 들떠 있었다. 그 와중에서 몇 팀의 한국인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합창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은 너무나 가슴 뿌듯했다. 한국의 국력이 이만큼이나 성장한 것이다.
*에필탑의 불꽃
우리 일행은 에필탑이 잘 바라보이는 장소에 진을 치고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빵조각 하나씩으로 저녁 허기를 채우고 에펠탑 형광판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열, 아홉, 여덜---셋, 둘,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형광판의 시계가 멈추어 버린 것이다. 고장이다. 더 이상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다. 폭죽도 터지지 않았다. 수십만 군중이 어이없어 하며 서 있다. 혹은 앉아서 기다린다. 몇 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기계가 고장난 것이다. 둘러선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많은 군중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더 이상 발을 떼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자리를 뜨기로 했다. 개선문 쪽에서도 밀레니엄 특별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걸음 옮겼을 때였다. 에펠탑쪽에 번쩍하는 섬광과 더불어 요란한 굉음이 들렸다. 에필탑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이다. 폭죽 장치의 잘못으로 에펠탑 전체가 날아가는 줄 알았다. 계속 이어지는 섬광과 굉음, 찬란한 불꽃 잔치는 그것 자체가 밀레니엄 축제임을 한참 만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관중들은 잠시 얼을 빼앗겼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전대미문, 전무후무의 폭죽 장치였다. 후일 알려진 것이지만 이날 에펠탑의 폭죽 광경이 세계의 밀레니엄 행사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고 평가되었다.
얼을 빼앗겼던 우리는 푹죽의 기세가 한층 가라앉기 시작하자 관중들을 따라 행렬을 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벽 0시, 매우 추운 날씨였다. 그러나 축제의 열기가 추위를 녹였다. 행렬은 개선문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도 그 행렬의 거센 물결에서 비켜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발길에 채이는 대로 모두 같은 방향으로 파도처럼 흘러가야 했다.
얼마를 가다보니 반대쪽에서도 거대한 사람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개선문에서 축제를 바라본 사람들이 에펠탑쪽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두 물결이 서로 엇갈렸다. 길에는 깨어진 샴페인 병과 술잔의 유리더미로 산더미가 되었다. 0시를 기해 샴페인을 터뜨리고 축배를 든 사람들이 그 술병과 술잔을 모두 아스팔트에 내려쳐 깨뜨렸던 것이다. 그것이 새해를 축하하는 하나의 축제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한 군중의 물결은 파도처럼 한 쪽은 밀려가고 다른 쪽은 밀려오며 깨어진 유리조각의 더미를 밟으며 움직여야 했다.
*아, 대한민국
거대한 물결에 밀리면서 “아,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대견했다. 자랑스러웠다. 멀리 유럽의 중심부 프랑스 파리에서 밀레니엄 행사를 즐기는 한국인들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우리의 국력을 유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디에서 왔지요? 서울에서요. 인천에서요. 부산에서요. 광주에서요. 대구에서요. 이웃들이네요. 반갑습니다.
그런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 악수했다. 먼 이국땅 세계문화의 중심지라는 프랑스의 파리. 새벽 0시.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노래하는 젊은이들, 또는 흥분되고 상기된 얼굴의 한국인들. 물어보지 않아도 얼굴 생김생김에서 또는 분위기에서 같은 민족임을 깨닫게 되던 그날의 흥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정한 숙소가 파리의 중심지에서 40여리나 떨어진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힘들게 걸어야 했다. 전철도 멈추고 버스도 멈추고, 택시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 술집도 문닫고 음식점도 문 닫아서 들어가 쉴 곳도 없었다. 약간의 까페가 문을 열고 있었지만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서 발들여 놓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밤날씨의 추위를 무릅쓰고 숙소까지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축제의 열기 때문이었던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걷는 사람들의 무리가 우리만이 아니다. 수만 군중이 모두 떼를 지어 자신의 숙소로 묵묵히 돌아가는 것이다. 파리 교외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새벽 5시가 다 되어서였다. 이 때의 인상깊은 체험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