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라운드로 진행되는 게임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상징이자 국기인 태권도도 3라운드고
아마츄어 복싱경기도 3라운드. 세계적인 메이저(Major) 경기를 빼면 일반적으로 골프 경기도 3라운드. 어느 이상한 경기가 있어 이러한 상식적인 3라운드 경기를 2라운드라고 현혹하여 모든 관중이 정말 그런 줄 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상제님 9년 천지공사와 태모님 10년 천지공사의 결론도 태모님의 낙종물 사명부터 차경석
성도의 이종물 사명까지 갔다가 마지막으로 안내성 성도에게 부치신 경만장 세 살림 추수 사명으로 매듭을 짓읍니다. 상제님은 이 3변성도의 도운 공사를 또 다른 다양한 공사 룰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게 천지에 못 박으셨읍니다.
그런데 태모님 낙종물 사명 자체가 대흥리로부터 출발해 조종골 두 번째 살림을 이어 과도
기인 용화동 통합교단을 거친 오성산 등 세 살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 살림 자체도 차 경석 성도와 이 상호 이 정립 형제의 교권탈취와 고립정책으로 얼룩져 있읍니다. 해방이후 숙구지 문왕의 도수를 받으신 안 운산 태사부님에 의한 보천교 2변 교운을 거쳐 74년부터 10년간의 과도기를 거쳐 84년부터 실질적인 세 살림 도수가 궤도에 오릅니다.
시종일치. 처음과 끝인 낙종물 도수와 추수도수는 각기 똑같이 대흥리 살림-조종골 살림
-(용화동)오성산 살림과 초복, 중복, 말복 살림 등 운암강수 만경래의 만경강 세 살림 도수로 이루어져 있읍니다. 또한 낙종물 도수가 이종물 도수 책임자인 차 경석 성도와 동거형태로 이뤄져 있다면 추수도수 또한 문왕의 도수를 일으킨 안운산 태사부님과 장남이 환생했다는 칠살 파군성 옹고집쟁이 이시며, 형제들과 신도들을 소송으로 압살내려는 므띈 주왕의 운명을 가진 중복지도자(털보님)와 동거형태로 이뤄져 있는것입니다.
태모님 세 살림 중 대흥리 첫 살림과 두 번째 조종골 살림은 파행속에서도 무난하게 이어진 형태라면 사실상 세 번째 살림인 오성산 살림은 파란을 겪으며 이뤄졌읍니다. 이상호 이정립 형제의 태모님 모시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결과는 경제난국에 처한 태모님 조종골 교단과 용화동 동화교 합동 교단을 가져왔지만, 이상호 이정립 형제의 조종골 신도의 갖가지 핍박과 연이은 태모님 고립정책으로 태모님은 조강맥식이라도 이상호 동화교 교단신도를 제외한 오성산 교단 신도 데리고 천하사 하겠노라 선언하십니다.
세 번째 살림을 용화동 동화교 교단으로 삼은 게 아니고 오성산 교단으로 삼겠다는 선언이
신것입니다. 태모님 오성산 교단이 동화교의 이상호 이정립의 그릇된 욕심으로 파행을 겪으며 태모님은 치명적인 병을 얻으신 채 오성산으로 들어가십니다. 아마 이상호 이정립 형제는 후일 해방이후 2변 때 시도했던 용화동 금산도득 신앙촌화를 태모님이 예상보다 일찍 떠나서 못했을 뿐 그들이 신도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로 고립화된 태모님을 떠 매고 시도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추수도수에서의 첫 살림과 두 번째 살림도 태모님 대흥리 첫 살림과 조종골 둘째 살림처럼 무난하게 동거형태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행되어왔읍니다. 그러나 세 번째 오성산 살림이 욕심으로 가득 찬 이상호 이정립 형제에 의해 파행을 초래하고 태모님 건강에 심한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추수도수의 세 번째 살림의 태동 역시 낙종물 도수의 세 번째 오성산 살림 태동과정과 같은 심각한 내홍과 파행을 겪고 있음은 과연 천지공사와 상관없는 우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안 내성 성도에게 부치신 경만장 세 살림 추수 사명을 두 살림으로 끝내는 교리로 설명하는
지금의 도정운영과 이에 철옹성 같은 믿음으로 응답하는 신도들 사이에서 도운의 전개가 도수 돌아닿는 대로 어떠한 새 기틀이 열릴지는 상식적인 상제님 진리가 말해 줄 것입니다.
상제님 천지공사의 큰틀의 그릇을 망각하고 엉뚱한 곳에서 잘못 판단하고 잠깐 마음 붙일
곳이 없이 헤매는 성도님들이 여러분 있는것으로 압니다. 다들 환고향 하시기를 희망합니다. 혁명군에는 상제님과 태모님이 함께 하십니다. 천하사를 반드시 이루어야 하지 않겟읍니까요~~~
대인의 행차에 삼초가 있나니~~
글쓴이 : 향수
.『대인의 행차에 삼초가 있으니 갑오(甲午)에 일초가 되고 갑진에 이초가 되었으며 삼초를 손병희가 맡았나니 삼초 끝에 대인이 나오리라.』하시고 그의 만사를 다음과 같이 지어서 불사르시니
지충지의군사군 (知忠知義君事君) 일마무장사해민 (一魔無藏四海民) 맹평춘신배명성 (孟平春信倍名聲) 선생대우진일신 (先生大羽振一新)」 「손병희가 영웅이라. 장차 난리를 꾸미리니~~~선진주(先眞主)라 박절하게 성돌 밑에서 턱을 괴고 앉아서 거의(擧義)하므로 성사치 못하리라.
손병희는 (1861~1922년 5월) 는 상제님보다 십년전에 태어나신분입니다. 손병희는 조카인 손천민의 권유로 동학에 들어가 최시형과 만나고 천도교의 종령인가 됩니다.
그는 인물이 너무 뛰어났다고 전하며 친일하는듯 하면서도 일본을 이용하여 누천년의 묵은 나라를 개혁하려고 합니다. 일본을 돌아보고 세계정세를 꿰뚫고 잇엇으며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길것을 알았다고도 합니다.
갑오는 갑오동학으로 우리나라가 크게 깨어나는것을 말하며 갑진년은 일진회가 일어난것을 말하는 분이 있읍니다. 일진회는 손병희가 만든 진보회가 변형된것입니다.
일진회 이용구는 손병희 부하엿는데 아주 친일로 붙어버려 손병희는 동학에서 출교시켜버립니다. 차경석도 일진회 였읍니다.그외 많은 성도들이 일진회 에 관여하고 있었읍니다.
차경석은 농바위 대장군으로 만날사람 만낫으니 의관을 정제한다 하신 크나큰 인물입니다. 상제님이 우리나라를 일본에 의탁하신것은 일본과는 같은 종족인데 서양은 종족이 다르고 중국은 무지막지한 인간들이고 또 도술신명들사이의 원한을 해원하시기 위하여 일본에 잠깐 맡기게 됩니다.
모두 우리나라를 개혁하여 상제님일을 이루시려는 계획이신것입니다.
손병희는 기국과 도량이 장대한분으로 고종이 독살되고 전세계적으로 자주적 민족운동이 일어나자 삼일운동을 일으키는 주역이 됩니다. 만세소리가 전국을 뒤덮은것은 손병희의 작품입니다. 그것이 성사되엇다면 그는 나라의 왕이 되엇을겁니다. 당시의 기독교는 친일하는 부류라서 별로 선두에 끼이지 못하엿읍니다.
요즘의 대통령도 천도교 종령밑의 조직으로 손병희가 언어를 만든것이라고 합니다. 상제님이 구상하는 세계는 왕정복고가 아니고 민주주의이고 손병희는 상제님진리의 국외의 인물인지라 선진주라고 하셧읍니다. 선진주라는것은 그가 당시의 국내외정세를 잡아돌리는 주인공의 역할을 신계에서는 맡앗다는 의미일것입니다.
손병희 죽기 십년전에 이미 만사를 지으시고 그의 운명을 획정하십니다.
그는 1922년 5월에 돌아가시고 태사부님이 1922년 6월 16일에 태어나십니다. 삼초끝에는 대인이 나오리라 ~바로 상제님 진리를 이루기 위한 경만장 세살림을 이르키는 문왕을 불러내시는 것입니다. 모든상제님 공사는 대부분이 경만장 세살림 도수를 일으키는데 집중이 되어잇읍니다. 안내성 경만장에게는 오성산 사명당 도수의 3개의 사명기를 내립니다. 청 황 홍~ 오성산 3번의 쇠말뚝공사 밤 세번 까는 공사 등 모두가 경만장 만경강 천하사 세살림도수입니다.
삼초를 이해하면 당시의 국내외정세와 상제님 공사의대경대법이 드러납니다.
지금의 털보대왕도 어쨋든 상제님 만경강 세살림중 한축을 맡앗던 분입니다. 그분은 옹고집이고 독선적이고 편협하여 시기질투에 눈이 멀고 물러설수 없는 천지일월교리에 자가당착되어 혁명의 대상이 되어잇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크나큰 상제님 만경강 세살림 도수를 이해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에서 헤메게 됩니다. 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뭐가 뭔지 모르고~ 도대체 대학생이 되었으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이 하는말을 교정해줄 생각을 안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얻은 쪼가리를 가지고 무슨 새로운 것인 양 받아들여 누구는 안된다던지 공사도수를 자의로 해석하고 그동안 쌓아온 신앙의 공력을 스스로 허무는 사람들이 되서는 바보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혁명의 판을 벌려놓으니 번지수가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여행길에서 길을 잊으면 엉뚱한 곳으로 가지 말고 반드시 헤어진 곳이 어디엿던가를 찾아서 되돌아 외야만 하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 살림의 서막 문왕 숙구지 공사
지금까지 안운산 태사부님 생전 숙구지 도수가 의통목을 앞두고 도운을 크게 여는 마무리 도수로 여겨왔지만 태사부님께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선화하심으로써 숙구지 공사가 실은 의통목을 집행하는 마무리 도수가 아니라 해방이후 불과 2-3년 남짓에 壬戌生 안운산 태사부님께서 잠에서 깨어나 보천교 해체이후 영락해진 수십만 신도의 영성을 성성히 깨워 추수도수 세살림의 서막을 알리는 문왕의 도수임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무진년인 1928년 태모님께서 집행하신 잠든개를 깨우는 숙구지 공사는 안운산 태사부님 7세때로 이후 영적으로 잠에서 깨어난 태사부님은 곧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하시어 초등학교 3학년을 그만두시고 초통하신 기운으로 수행과 천하사하는 쪽으로 뜻을 두게 되십니다.
안 운산 태사부님께서는 실제로 상제님 탄신 120주년(1990) 개벽대성회 모 월간지 황보태수 기자와 인터뷰에서 7세때(이때가 1928무진년) 문득 배고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깨닫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는 수행을 했으며 그러다가 어머니의 만류로 5일만에 그만두고, 다시 불없는 방에 밀대방석을 깔고 콩, 곡식가루만 먹는 생식을 하며 8개월동안 참선을 했다고 하시엇읍니다. 이 인터뷰에서 14세때 쯤(1936) 일제의 모진탄압으로 증산도(보천교)가 침체에 빠지고 상제님의 사업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리라 마음먹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와 조선 팔도와 만주를 주유천하하며 인간의 세상살이를 직접 체득하신 후 43년에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결혼식 이튿날 일제에 비협조적이었던 부친이 기왕의 독립운동 자금 전달 탄로로 구금되는 등의 미운털이 박힌지라 조기 징병통지서를 받았으며 징병 입대중에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한 후 2년 여 세상을 떠돌다 해방을 맞이해 고향에 온 후 상제님 천하사만을 하기로 굳게 마음먹었다고 하십니다.
<선정원경(仙政圓經)>
*건존증산(乾尊甑山) 께서 예언(豫言)하사대 “태인(泰仁) 숙구지(宿狗地) 자는 개가 일어나면 산호랑이를 잡는다“는 말씀하셨는데, 고씨(高氏)께서 무진(戊辰:1928) 구월도(九月度)에 말씀하시되 “시대(時代)가 불원(不遠) 하니 자는 개를 깨워야겠다”
하시고 신도(信徒) 수십인(數十人)을 영솔(領率)하시고 숙구지(宿狗地)에 행차(行次) 하시와 공사(公事)를 설행(設行) 중 고기국에 밥을 교화(交和)하야 일통(一桶)을 정전(庭前)에 놓으시며 많이 먹으라 하시고 “인제는 잠든개를 깨웠으니 염려(念慮)는 없다” 하시니라.
경만장 안 내성 세 床 폐백받는 공사
<정영규 천지개벽경 6:8>*상제(上帝)께서 안내성(安乃成)의 집(家)에 임어(臨御)하시어 내성(乃成)에게 가라사대(曰) 네(汝)가 오늘(今日)은 나(吾)에게 백냥(百兩)의 폐백(幣帛)을 바치라 하시거늘
내성(乃成)의 형편(形便)이 심(甚)히 궁핍(窮乏)하여 일푼(一分)도 없는(無)바라 하릴없어 마을(里)에 나가 모친(母親)를 찾아뵙고 사실(事實)을 고(告)하니 모친(母親)이 한탄(恨歎)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형편(形便)에 백냥(百兩)의 거금(巨金)이 어디에 있으리오.
내가 푼푼(分分)이 모아둔(聚) 엽전(葉錢) 몇 잎이 쌀항(米缸)에 있을 뿐이라. 그러니 그라도 필요(必要)하면 쓰라(用之) 하거늘 내성(乃成)이 집(家)으로 돌아와(歸來) 항아리 속(裡)에 엽전(葉錢)을 세어보니(算則) 한냥(一兩)이더라.
그리하여(然而) 한 냥(一兩)을 올리며(上) 사정(事情)을 고(告)하니 들으시고(聞之) 가라사대(曰) 「내(吾) 이(是) 한 냥(一兩)으로써(而) 백배(百倍)로 느려(大) 쓰리라(用) 하시며 그 돈(其金)으로 술(酒)을 사오라 하시거늘 명(命)하신대로 술(酒)을 사오니
상(床)을 세(三) 개 놓고(置) 술(酒)을 삼등분(三等分)하여 세(三) 상(床)에 차려놓고 절(拜)하라 하시기에 그대로 차려놓고 내성(乃成)이 절(拜)하며 보니(觀則) 상제님께서 세(三) 상(床)에 동시(同時)에 같은 모습(模襲)으로 잡수시고 계시더라 전(傳)하니라.
*참고<증산도 道典 5:263>에는 -태을주 내려주는 공사-타이틀로 백냥이 삼백냥으로, 한 냥이 삼백닢으로, “세(三) 상(床)에 동시(同時)에 같은 모습(模襲)으로 잡수시고”가 “가운데 상에 앉으시어 진지드신다”로 바뀌어져 전혀 다르게 묘사되어있읍니다.
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렇지. 아따 저놈 ‘무식영웅’이라!” 하시고 손을 떼시니 과연 ‘경만(敬萬)’이란 글자가 쓰여 있더라. 이어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운암강수(雲岩江水)가 만경래(萬頃來)라. 김만경(金萬頃) 뜰을 가지고 천하사 세 번 못하겠느냐.” 하시고 “너희들 내성이한테 ‘경만장, 경만장’ 하면서 세 번씩 외우라.” 하시니 성도들이 모두 명하신 대로 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너를 우러러 존경할 것이다.” 하시니라.*<증산도 道典>(운산리 신경수의 집에 가시어) “이곳이 운산(雲山)이 아니냐. 운암(雲岩) 물줄기를 금만경으로 돌리더라도 하류에서 원망은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가 대한불갈(大旱不竭)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강태공은 제(齊)나라 한 고을의 흉년을 없게 하였다 하나 나는 전북 일곱 고을의 큰 흉년을 없게 하리니 운암은 장차 만인간의 젖줄이 되리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다가 일꾼이 없음을 한탄하시며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 하시더니 내성을 보시고 “갈보야, 칠보야! 짧달막한 네가 있구나!”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소나 돼지를 잡아도 내성에게는 “저놈은 뼈다귀만 줘라.” 하시며 고기 맛을 못 보게 하시고 국물만 큰 그릇에 하나 가득 주시며 “너는 국량이나 키워라.” 하시더니 하루는 한 성도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저 장 닭 큰 놈 한 마리 잡아 푹 삶아서 내성에게 주고 깃털과 뼈다귀 하나 남기지 말고~~~
<정영규 천지개벽경>*어느 날 문공신(文公信)에게 가라사대(曰) 잠든 개(宿狗)가 일어나(起)면 산 호랑이(生虎)를 잡는다(捕殺)는 말이 있나니 태인(泰仁) 숙구지(宿狗地) 공사(公事)로 일을 돌린다(返) 하시며 공사(公事)를 계속(繼續)하시였다 전(傳)하니라
상제님 진리는 다 들 아시다 시피 삼세판입니다.
경만장 경만장 하면서 세번 부르시게 한것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상제님과 태모님께서 숙구지공사로 문왕을 일으킨 공사는 바로 마지막
삼변의 경만장 세살림 공사를 일으키시는공사입니다. 이제는 염려없다고 하시었지요
혁명군이 일어나는것이 마지막 세번째 살림의 공사인 것입니다.
초복 중복 말복공사도 그렇고 오성산 쇠말뚝 세번 박으신 공사도 그렇고
밤을 세번 까시는 공사도 삼세판입니다.
이렇게 알지 못하면 무슨 말인지 오리무중이 됩니다. 초복 중복은 이어져 잇지만 말복은 건너 뛰어있읍니다.
혁명군이 일어나는 공사가 바로 이윤의 도수, 경만장 三상을 같이 똑 같이 받으시는 마지막 공사인 것입니다.
운암강수~ 경만장 세 살림 도수를 천지에 못박으심~~~~
글쓴이 : 향수 조회 : 684
<정영규 천지개벽경 1:27> 임피 오성산에 큰 말뚝 세 개 박는 공사*임피(臨陂) 강장한(康壯翰)의 집을 종종(種種) 왕래(往來)하시더니 어느 날 임어(臨御)하사 계실세 밤(夜)중에 출행(出行)하시려 하거늘 장한(壯翰)이 놀래며 만류(挽留)하여 가로대 어찌하여 밤중(夜中)에 출행(出行)을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가라사대(曰) 내가 볼일(管事)이 있노라. 곧 돌아오리니(歸) 그리 알라(知) 하시며 가시더라. 장한(壯翰)이 자지않고 기다리더니 자정(子正)쯤 되여 오시거늘(來) 장한(壯翰)이 물어 가로대 야심(夜深)한 밤중에 어데(何處)를 다녀 오시나이까 하고 여쭈니 대답(對答)하여 가라사대 응 오성산(五聖山)에 다녀오느니라. 장한(壯翰)이 놀래며 다시 묻기를(問) 밤중에 오성산(五聖山)은 무슨 일로 다녀 오시나이까. 가라사대(曰) 큰 말뚝을(大橛) 박고(揷) 오는(來) 길이니라 하시였으며 그 후(後)에도 이와 같은(如此) 공사(公事)를 세(三) 차례(次例)나 보시였다 하니라.
(참고:<증산도 도전 6:20>에는 말뚝 하나만 박는 것으로 생략되어있으며 <증산도 도전 5:163>에 남조선 배말뚝 공사라는 소타이틀에 김보현 집에서 오성산 배말뚝 공사를 세 차례 박으러 다녀오신다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되어 있음)
<선정원경(仙政圓經)>*증산(甑山)께옵서 임피읍(臨陂邑) 강장한(康壯翰) 집에 종종(種種) 내왕(來往) 하신 중 한번은 모야(暮夜) 중(中) 어디를 갔다 자정후(子正後) 당도(當到) 하신지라. 야중(夜中)에 어디를 갔다오시니까 주인(主人)이 문(問) 한 즉(則), “오성산(五聖山)에 가서 큰 말뚝을 박고 온다” 하시더라. 차(此) 공사(公事)를 삼차(三次)를 행하시니라.*<선정원경(仙政圓經)>
(운산리 신경수의 집에 가시어) “이곳이 운산(雲山)이 아니냐. 운암(雲岩) 물줄기를 금만경(金萬頃:천하사 세 번 세 살림 하는 원천)으로 돌리더라도 하류에서 원망은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가 대한불갈(大旱不竭)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강태공은 제(齊)나라 한 고을의 흉년을 없게 하였다 하나 나는 전북 일곱 고을의 큰 흉년을 없게 하리니 운암은 장차 만인간의 젖줄이 되리라.”
하루는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옥구 앞을 흐르는 만경강이 막혀서 농토로 바뀔 것이다.” 하시고 또 만경 쪽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옥구 일부와 김제 만경은 덮평이 공사가 있어 저쪽은 앞으로 다 육지가 된다.” 하시니라.
<선도신정경>*기사년(己巳年) 정월(正月) 초삼일(初三日) 치성(致誠)을 드릴 새 고후비님(高后妃任)께서 헌작(獻酌)을 드리고 나서 모든 도중(道衆)들이 반천무지사배(攀天撫地四拜)를 드린 후(後) 고후비(高后妃)께서 도중(道衆)에게 가라사대 이제부터 세 번(三番)을 천지정리(天地整理) 무기토(戊己土)라고 읽도록 하라 지시(指示) 하시거늘 말씀에 따라서
천지정리(天地整理) 무기토(戊己土)라
천지정리(天地整理) 무기토(戊己土)라
천지정리(天地整理) 무기토(戊己土)라 읽으니라
이 때에 태을단(太乙壇) 천정(天井) 위에서 큰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와 매달려 있거늘 이를 보시고 강재숙(姜在淑)에게 가라사대 그대는 거미의 이치(理致)를 아느냐 만약(萬若) 안다면 그 이치(理致)를 말해 보라 하시니 강재숙(姜
첫댓글 이런 이런..... 다른 곳에서 읽다가 이곳에서 읽으니 감회가 새롭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