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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중략……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창23:29-30.개역개정) |
창조주 야훼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민족들을 의식하기 보다는 그 땅의 들짐승들을 더 크게 의식함으로써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고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짐승들을 상대로 살아야 하는데,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에 훈련하는 상대로서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 놓는다는 뜻으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셨는지 살펴보면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삿3:1-2.개역개정) |
이방민족을 가나안 땅에서 모두 쫓아내고 나면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들짐승들 만이 남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기에 들짐승들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전쟁에 대해서 알아야만 했고, 이를 위한 시험상대로서 이방민족은 여전히 가나안 땅에 남게 된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이렇듯 야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래서 그들의 불순종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정죄해선 안 된다. 그 불순종까지도 야훼 하나님의 계획이셨기 때문이다. 고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정죄한다는 사실은 불순종을 계획하신 야훼 하나님을 정죄하는 행위가 된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대해서 잘 아는 백성이 되면, 이웃 나라들로부터 그 땅을 잘 지켜 나가게 된다. 그러면 그 땅은 결코 훼손되거나 황폐하게 되지 않는다.
즉 땅에 먹거리가 있게 됨으로써 야생 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민가를 습격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대하는 들짐승들의 마음이 강퍅하지 않고, 그저 온순하여 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땅에 먹거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위험한 순간은 바로 이런 상황이지 않을까 싶다.
땅은 황폐하고 그저 온순하던 들짐승들이 이제는 민가를 넘본다. 심지어 사람들의 생명까지도 넘본다. 그 땅에 거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웃 국가들과의 잦은 전쟁은 물론이고 설상가상으로 들짐승에게까지 내 몰림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땅에 사는 자체가 너무나 힘들고 저주 받은 삶 그 자체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것은 우리 인체 내의 환경과도 너무나 유사하다.
인체 내에는 2,000 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 중에 100여 종 만이 유해한 균이고 나머지 1,900여 종은 유익균에 속한다.
그런데 미생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에 “먹거리”를 먹어야만 하는 존재다.
우리가 식단을 통해 섭취하는 음식물 가운데에는 1,900여 종의 미생물들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이들 1,900여 종의 미생물들이 잘 분해되지 않는 식이섬유들을 분해한다거나 함으로써 자신들의 먹거리를 충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식단이 서구식으로 변화되고 더더구나 인스턴트와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는 식습관으로 바뀌면서 섭취해야 할 것들을 먹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식습관의 변화가 현대인의 병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라 인지되는 것처럼, 그 과정을 들여다 본다면 아마도 1,900여 종의 유익균들에게도 치명적인 변화를 안겨다 주었지 않을까 싶다.
정상적인 식습관을 통해 필요한 양식을 공급 받음았다면 유익균들( 가운데 얼마의 종류들)은 배고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인체에 유익한 활동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만일 양식을 공급받지 못하여 배가 고파지면그 1,900여 종의 미생물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신의와 믿음을 지키는 행동을 할까? 아니면 단순하게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을 할까?
필자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유익균으로서만 활동하던 미생물들 가운데 몇 종류 혹은 몇 십 종류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인체를 공격하는 유해균으로 바뀌어 버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그 유해균들이 가져올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은 어떤 형태가 될까?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희귀한 질병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바이러스는 몸을 차갑게도 또는 뜨겁게도 할 수 있다. 그 의미는 인체 내의 전기회로적인 신호전달체계를 충분히 교란시킬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콜레라라는 질병에
관여하는 미생물에는 비브리오 콜레라(Vibrio cholerae), 비브리오 패혈증균(Vibrio vulnificus), 장염비브리오균(Vibrio
parahaemolyticus) 등이 있다. 그런데 각자 각자가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라는 미생물 종은 우리나라 전체를 두려워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가 일으키는 질병은 MERS(메르스)였기 때문이다.
역시 사스-코로나 바이러스(SARS coronavirus, SARS-CoV)는 SARS(사스)라는 질병으로 온 세상을 두려움 속에서 떨게 하였다.
이렇게 무서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들은 각 질병 당 과연 몇 종류나 필요할까? 한 종류? 아니면 10 종류?
그렇다면 인체 내에 존재하고 있는 1,900여 종의 유익균들 가운데 “배고픔으로 인해 배반하는 미생물들”이 있다면, 그들이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은 얼마나 두려운 질병들이 될까?
이 글은 두려움을 조성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해결책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어서 나누고자 한다.
배고픈 들 개들을 얌전하게 만들려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된다. 내 주머니 속에서 약간의 여유(배려)를 찾아 보자. 나도 배가 고플 수 있겠으나, 나의 배부른 상황을 조금은 포기한다면 배고픈 들 개들을 충분히 배부르게 하고 온순하게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다. 편리한 생활은 현대인들에게 순간의 쾌락과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장기간으로 가면 달콤한 쾌락은 우리 자신을 상하게 한다.
편리 만을 찾던 삶에서
벗어나라.
귀찮고 약간의 수고와 노력조차도 하기 싫어하던 기존의 생활 방식을 이제는 떠나야 한다.
그리고 외식은 차차 줄여가면서 집 안에서 (비록 조촐할지언정)손수 식사를 마련하는 식습관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종전에는 식재료를 다듬거나 손질하기가 귀찮아서 화학 약품으로 처리되고 방부제로 보관되어 오던 식재료를 사용하였다면, 이제는 흙이 묻어 있더라도 방부제나 화학 약품이 처리되지 않은 원자재격 식재료를 구입하여 스스로 다듬는 방식으로 바꿔 보는 것이 좋다.
일주일에 7번의 외식을 했다면 차츰 차츰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도 좋겠고, 일순간에 과감한 결단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유익균이었던) 성난 유해균들에게 적절한 먹거리를 공급받게 할 수만 있다면, 그 미생물들은 더 이상 해를 끼치는 활동은 하지 않고 이로운 활동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될 것이다.
식물이 건강과 탐스러운 최상급의 열매를 결실 맺고자 할 경우, 오직 자신의 뿌리가 지닌 능력 만으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말자. 식물의 뿌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식물의 뿌리인 척 행동하면서 대신 영양분을 흡수해 주는 미생물, 곧 균근균들이 있기 때문에 식물의 성장과 건강한 결실 맺음은 가능하게 된다.
식물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시사한다.
신체에서 스스로 분비하는 효소 때문에 양분들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효소가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양분을)분해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미생물들에 의해서 분해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파랑새가 어디에 있었는지 잘 기억해 보라.
진정한 파랑새는 자신의 삶 속에 숨어 있다.
그럴 때 자신에게 엄습한 희귀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첫댓글 귀한정보 감사합니다.^^
생활 속에서 진정한 건강을 얻고자 하시는데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