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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뭐꼬'라고 경상도 방언식으로 이야기하기도하고 '이 뭣고'라고 하기도 합니다. 곧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뜻이죠.
이 화두는 한자로는 '시심마'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엇인가의 뜻이며 고려시대 혜심국사가 당시 내려오던 선가의 화두를 총정리한 선문염송에 1,700여개의 화두(공안)가 있는데 시심마화두는 無字화두, 庭前栢樹字화두(뜰 앞의 잣나무화두) 등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화두입니다.
이 화두는 현대의 성인으로 잘 알려진 인도의 故 라마나 마하리쉬가 가르친 자아탐구법인 '나는 누구인가'와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계속 '나는 누구인가'라고 의심해가면 궁극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그 의심마저 사라지고 자신의 본체가 드러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뭣고'화두에 대한 유래에 관한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 선종의 6조 혜능대사가 중국 조계산에서 주석하고 계실 때 남악회양선사가 멀리서 고명을 듣고 道를 묻고 참례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6조 혜능대사 이르시길 "어떠한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하고 물으니 남악회양선사가 순간 꽉 막혀 그 의심을 풀지 못해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서 8년간 지극정성으로 참구해서 마침내 화두를 타파해서 다시 6조대사를 만나 뵙고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옳지 못합니다."라고 했다는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화두의 의미는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나 '산송장 끌고 다니는 이 물건이 무엇인고'나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이 몸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고의 뜻입니다. '이 뭣고'는 무엇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해 크고 굳건하고 면면하면서도 무리 없이 의심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시체에게도 오관이 다 있는데 오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겉껍데기는 다 있는데 산 사람과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래서 산 송장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화두일념이 계속되어서 나중에는 깊은 잠속에서도 화두가 하나같이 이어져야(熟眠一如숙면일여) 내외명철이 되어 확철대오하게 된다고 성철스님께서는 당신의 禪門正路(선문정로)에서 이야기하십니다.
화두를 드는데는 세가지가 반드시 필수적인 요소라고합니다. 대의심, 대분심, 대신심인데 화두에 크게 의심을 일으켜야하며 이 화두를 나라고 타파 못할 것 인가하는 크게 분한 마음과 크게 믿고 정진하는 마음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화두선에는 의심이 생명이며 화두가 없으면 이는 간화선이 아니라 관법일 뿐입니다.
화두는 망념을 묶는 도구로서 화두에 관한 큰의심 하나로서 모든 망념을 묶어서 큰의심으로 화두일념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큰스님들 이야기하시길 화두선은 어렵다면 무척 어렵고 쉽다면 무척 쉬운게 ,생사대사를 해결할 지극한 발심만 있으면 화두선 만큼 쉬운 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화두가 안 잡히면 이 뭣고 이 뭣고하면서 송화두라고해서 자꾸 염불하듯 외다가 나중에 제대로 된 의심을 잡아가는 방법도 있으나 화두선에서 의심이 생명이라 고육지책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외는 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크게 의심을 일으켜 그 의심하나가 계속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주좌와 어묵동정(動靜一如동정일여)에 하나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 꿈에도 화두가 하나로 이어지며(夢中一如몽중일여) 나중에는 깊은 잠 속에서도 화두가 하나로 이어지면(熟眠一如숙면일여) 안팎으로 아주 밝아져서(內外明徹내외명철) 마침내 확철대오 하게 된다고 성철스님께서는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깨달아야 頓悟頓修(돈오돈수)라고해서 문득 깨달아(돈오) 더 이상 닦을 것도 없는 경지(돈수)가 되는 것이지 이러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중간에서 깨달은 것은 단지 知解(지해)로서만 아는 解悟(해오)라고 이야기하십니다. 확철대오하여 깨닫는 것이 證悟(증오)라는 이야기합니다.
잠자면서 화두를 든다는 것은 화두수행이 깊어지면 깨어있을 때뿐아니라 자고 있을 때도 화두가 계속 이어져서 나중에는 의식적으로 화두를 들려고 하지않아도 들려져있고 그것이 꿈속에서도 이어진다는 것이고 나중에는 깊은 잠속에서도 화두 한 생각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두꿈을 꾼다는 것이 아니라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면서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느냐고 하시는데 아주 고도의 정신작업은 하기 힘들지만 단순히 대화를 하거나 듣거나 간단한 일하는 것은 할 수 있으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해야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화하면서도 화두를 들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그것이 묵언하는 한가지 이유이기도하며 대화하면서까지 화두를 들 수 있으면 수행이 이미 대단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간화선에 대한 여러 큰스님들의 법문을 읽어보시면 화두선에 대해서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의 여러 선원장 스님들이 간화선의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간화선'이란 책을 내셨으니 바른 길을 가시기 위해서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화선은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하에 실참실구해야하는 것이지 마음대로 간화선을 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사도에 빠질 가능성이 아주 많으며 수행의 진전을 이루기도 힘든 것이니 간화선을 수행하시고 싶으시면 반드시 명안종사의 지도하에 수행하시길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