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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興君控于錄
원서명: 文興君控于錄 저자: 柳思瑗(朝鮮) 著 간행년대: 1597년 後寫: 九代孫 會豊 1860年(哲宗 11) 책권수 : 1冊(56張) 책크기: 28.2×18cm
柳思瑗(1541-1608)이 1596年(宣祖 29) 明軍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奏聞使 書狀官으로 갔다와서 쓴 朝天錄으로‚ 1冊 56張의 筆寫本이다. 사행 기간은 1596년 12월 6일부터 1597년 3월 13일까지이다. 본책은 유사원이 명나라에서 돌아와 啓聞한 것을 9대손 會豊이 1860年(哲宗 11)에 後寫한 것이다. 유사원은 初名이 應龍‚ 字가 雲甫·景晤‚ 본관은 文化로 1604年(宣祖 37) 文興君에 봉해졌다. 권말에 <別錄>과 柳會豊의 跋이 부기되어 있다.卷首에 일정별로 명 관원들과 明軍의 조선 출병에 관하여 의론한 일을 적고 使行의 과정과 성과를 기술한다는 저자의 설명이 적혀 있다. 출발할 때의 여정과 北京에 도착한 뒤 명 관원들을 만나 조선의 출병 여부에 대하여 의론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1597년 2월 4일까지는 명군의 추가 출병을 요청하는 조선측의 요구에 대하여 명나라 조정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2월 5일부터 2월 14일까지 加藤淸正이 선박에 군사를 싣고 長崎에 도착하였다는 보고가 전해지면서 명 조정에서는 조선에의 파병을 승인하는 發兵咨文이 발표되었다. 명나라는 압록강 주변에 주둔하는 군사 3‚000여명을 먼저 동원하고‚ 浙江省의 은화 38‚000냥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듯 명군의 조선 출병과 관련된 조선의 요청‚ 명 조정 내부의 논란과 파병 결정 등에 대하여 조목조목 적었다. <別錄>에는 벽돌로 성벽을 쌓는 방법‚ 명나라의 군사 시설과 군사 훈련 방법 등이 적혀 있다. 정유재란 직전 명군의 추가 파병 문제와 관련된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군사 관계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김남기)
소장: 서울대학규장각한국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