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송역에서 출발하는 '의주길 제1길' 걷기에서 숫돌고개를 넘어 지금 한창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신원지구를 내려다보는 산자락에 역관 김지남의 묘가 있다. 묘역 뒤편의 산등성이가 이렇게 까뭉개지고 있는 것은 택지개발이란다. 머잖아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인가. 그렇다면 요 아래 우봉김씨 묘역 풍경은 또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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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남 묘역 참배는 의주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다른 곳에서도 얘기했지만 '숯돌고개'는 '숫돌고개'라 고쳐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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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김씨(牛峰金氏) 종중묘역에서 역관 김지남의 묘는 안내판이 곁에 있어 금방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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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은 단순한 통역담당이 아니었다. 외교전문직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무역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신분은 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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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쌍분으로 모셨다.
1654년(효종 5): 호조 산사(算士: 호조에 딸린 산학청의 종7품 잡직 벼슬)인 아버지 김여의(金汝義)와 전의감 정(정3품당하관) 함평 이씨 이몽룡(李夢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남.
1672년(현종 13): 역과 시험에 18세로 합격. 그 후 10년 만에 사역원 정(정3품 당하관)까지 승진.
1682년(숙종 8): 일본과 청나라에 다녀옴. 귀국 후 압물통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1682년 5월 11월까지 7개월간의 기록을 적은 《동사일록(東槎日錄)》을 편찬함.
1688년(숙종 14): 9월 4일 제주에 표류한 중국 사람을 심문함.
1690년(숙종 16): 큰아들 김경문 역과 시험 합격.
1692년(숙종 18): 중국 북경에 가는 민취도(閔就道)를 역관으로 수행했는데, 그의 권유로 자초법(煮硝法 : 화약을 만드는 흙을 달이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요양(遼陽)의 어느 시골집에 찾아가 사례금을 주고 방법을 배우던 중 갑자기 주인이 죽어 뜻을 이루지 못함.
1693년(숙종 19): 진하사(進賀使) 일행으로 청나라 다녀옴. 역관으로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되풀이해 물어 결국 그 방법을 알아냄. 이듬해 실험에 성공했으나, 김지남을 지원하던 민취도가 평안도관찰사로 전근되어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함.
1698년(숙종 24): 군자감 제조 남구만(南九萬)의 지시에 따라 자초법에 따라 화약을 제조, 성과가 매우 컸다. 이에 제조법을 수록한 ≪신전자초방 新傳煮硝方≫을 저술해 군기시에서 간행, 반포함. 이 책은 1796년(정조 20) 정조에 의해 ‘금석(金石)과 같은 성헌(成憲)’이라고 높이 평가받음. 그 공로로 외직인 문성첨사(文城僉使)에 임명.
1699년(숙종 25): 셋째 아들 김순문 역과 시험 합격.
1702년(숙종 28): 둘째 아들 김현문과 넷째 아들 김유문 역과 시험 합격.
1710년(숙종 36): 다섯째 아들 김찬문 역과 시험 합격
1712년(숙종 38): 청나라와 국경선을 확정짓기 위해 양국 대표가 회동하였을 때, 능숙한 중국어 화술과 평소 알고 지내던 청나라 대표 목극등(穆克登)을 상대로 백두산 위에 물이 나오는 곳을 국경으로 삼도록 설득해냈다. 백두산이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 백두산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1714년(숙종 40): 아들 김경문(金慶門)과 함께 역관 제도의 연혁, 사대와 교린에 관한 제도 등을 체계화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 당시 청나라와 일본에까지 유포되어 조선에 관한 지침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귀중한 역관에 관한 일차 자료집.
1718년(숙종 44):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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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돌 비석 좌우와 후면에 한문기록이 촘촘하다. 삶과 공적에 대한 칭송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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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섯 아들 모두 역과시험에 합격했단다. 외국어에 능통한 핏줄내력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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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 가까운 소나무 아래 약간 높이 마련되어 있다. 앉아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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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북한산 연봉이 장쾌하다.
공적비는 아래에 있다. 오늘 내 걸음은 위에서 내려왔지만 사실 묘역 참배는 여기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게 보편적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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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비는 아래에 있다. 오늘 내 걸음은 위에서 내려왔지만 사실 묘역 참배는 여기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게 보편적일 터이다.
달하 노피곰 도드샤니 블로그에서 펌글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sonjson/14020885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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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언급한 공적비 시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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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역에서 출발하는 '의주길 제1길' 걷기에서 숫돌고개를 넘어 지금 한창 새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는 신원지구를 내려다보는 산자락에 역관 김지남의 묘가 있다. 묘역 뒤편의 산등성이가 이렇게 까뭉개지고 있는 것은 택지개발이란다. 머잖아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인가. 그렇다면 요 아래 우봉김씨 묘역 풍경은 또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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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남 묘역 참배는 의주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다른 곳에서도 얘기했지만 '숯돌고개'는 '숫돌고개'라 고쳐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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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김씨(牛峰金氏) 종중묘역에서 역관 김지남의 묘는 안내판이 곁에 있어 금방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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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관은 단순한 통역담당이 아니었다. 외교전문직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무역에도 관여했다. 그러나 신분은 중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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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를 쌍분으로 모셨다.
1654년(효종 5): 호조 산사(算士: 호조에 딸린 산학청의 종7품 잡직 벼슬)인 아버지 김여의(金汝義)와 전의감 정(정3품당하관) 함평 이씨 이몽룡(李夢龍)의 딸 사이에서 태어남.
1672년(현종 13): 역과 시험에 18세로 합격. 그 후 10년 만에 사역원 정(정3품 당하관)까지 승진.
1682년(숙종 8): 일본과 청나라에 다녀옴. 귀국 후 압물통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1682년 5월 11월까지 7개월간의 기록을 적은 《동사일록(東槎日錄)》을 편찬함.
1688년(숙종 14): 9월 4일 제주에 표류한 중국 사람을 심문함.
1690년(숙종 16): 큰아들 김경문 역과 시험 합격.
1692년(숙종 18): 중국 북경에 가는 민취도(閔就道)를 역관으로 수행했는데, 그의 권유로 자초법(煮硝法 : 화약을 만드는 흙을 달이는 법)을 알아내기 위해 요양(遼陽)의 어느 시골집에 찾아가 사례금을 주고 방법을 배우던 중 갑자기 주인이 죽어 뜻을 이루지 못함.
1693년(숙종 19): 진하사(進賀使) 일행으로 청나라 다녀옴. 역관으로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되풀이해 물어 결국 그 방법을 알아냄. 이듬해 실험에 성공했으나, 김지남을 지원하던 민취도가 평안도관찰사로 전근되어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함.
1698년(숙종 24): 군자감 제조 남구만(南九萬)의 지시에 따라 자초법에 따라 화약을 제조, 성과가 매우 컸다. 이에 제조법을 수록한 ≪신전자초방 新傳煮硝方≫을 저술해 군기시에서 간행, 반포함. 이 책은 1796년(정조 20) 정조에 의해 ‘금석(金石)과 같은 성헌(成憲)’이라고 높이 평가받음. 그 공로로 외직인 문성첨사(文城僉使)에 임명.
1699년(숙종 25): 셋째 아들 김순문 역과 시험 합격.
1702년(숙종 28): 둘째 아들 김현문과 넷째 아들 김유문 역과 시험 합격.
1710년(숙종 36): 다섯째 아들 김찬문 역과 시험 합격
1712년(숙종 38): 청나라와 국경선을 확정짓기 위해 양국 대표가 회동하였을 때, 능숙한 중국어 화술과 평소 알고 지내던 청나라 대표 목극등(穆克登)을 상대로 백두산 위에 물이 나오는 곳을 국경으로 삼도록 설득해냈다. 백두산이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인, 백두산 정계비(定界碑)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1714년(숙종 40): 아들 김경문(金慶門)과 함께 역관 제도의 연혁, 사대와 교린에 관한 제도 등을 체계화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 당시 청나라와 일본에까지 유포되어 조선에 관한 지침서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귀중한 역관에 관한 일차 자료집.
1718년(숙종 44):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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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돌 비석 좌우와 후면에 한문기록이 촘촘하다. 삶과 공적에 대한 칭송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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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다섯 아들 모두 역과시험에 합격했단다. 외국어에 능통한 핏줄내력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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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를 올리는 제단이 가까운 소나무 아래 약간 높이 마련되어 있다. 앉아쉬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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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북한산 연봉이 장쾌하다.
공적비는 아래에 있다. 오늘 내 걸음은 위에서 내려왔지만 사실 묘역 참배는 여기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게 보편적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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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비는 아래에 있다. 오늘 내 걸음은 위에서 내려왔지만 사실 묘역 참배는 여기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게 보편적일 터이다.
달하 노피곰 도드샤니 블로그에서 펌글 <바로가기 http://blog.naver.com/sonjson/14020885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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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언급한 공적비 시공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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