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
하나님을 모르는데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이토록 정확하게 하나님의 일을 이룰수 있나.
하나님의 음성은 단 한마디도 듣지 않았는데 마치 들은 것처럼 완벽하게 준행한다.
시드기야 왕의 두눈을 뽑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우며 유다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성경을 손에 들고도 예수를 말하지 않는 자들이 수 없이 많은데...
더 놀라운 것은 동시대의 선지자이다.
이 일이 일어나기 바로 전의 에스겔
일어나는 현장의 예레미아 일어난 후의 느헤미야...
이들은 왜 이런 인간을 죽여달라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그의 인생을 저주하고 그에 관한 전부를 미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유대를 짓밟은 것처럼 멸망시켜 달라 부르짖어야 하지 않나.
시드기야 왕처럼 두눈 뿐 아니라 머리털까지 다 뽑아 달라 간구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특수 훈련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나.
어떻게 느부갓네살의 망함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인가.
특히 에스겔의 기도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선지자인데 느부갓네살을 죽여달라 하지 않고 민족과 자신의 영혼을 위해 가슴을 찢고 눈물의 강을 건넌다.
그는 느부갓네살이 온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투기의 우상으로 가득차고 모든 종교 지도자가 어두운 곳에서 가증한 일을 행하기에 온다 한다.
또한 백성들의 기도는 담무스를 향해 부르짖고 예배드리는 자들이 동방 태양을 향해 경배하기 때문이라 한다.
몇일도 아니고 이스라엘을 위해 390일 유다를 위해 40일을 기도한다.
그런데도 결과는 해골의 무리만 보이신다.
이정도 되면 하나님 원망하고 기도를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그발 강 가에서 또 다른 눈물의 강을 건넌다.
그 눈물이 강을 넘어 창일한 바다를 이루도록 기도한다.
그때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느부갓네살에 대해 크고 비밀한 한가지를 보게 된다.
유대를 바벨론에서 70년간 보호하여 유대가 이 땅에서 없어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 심정이다.
느부갓네살이 그때 유대를 포로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북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없어진 것처럼 유대도 땅에서 사라질 시점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자를 통해 유대 민족을 바벨론에서 씨가 마르지 않게 보호하신다.
남아 있는 유대민족 그루터기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대의 선지자들은 느부갓네살을 죽여달라 기도하지 않는다.
눈물의 강을 건너며 민족의 영혼의 정결함과 자신의 영혼의 정결을 위하여 기도한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받으시고 새 이스라엘을 세우신다.
성전에서 강처럼 흐르는 그 눈물에 적셔진 사람들은 새 이스라엘로 등장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입어 구원 받을 백성을 보여주신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가 잘못 살면 하나님은 수만가지 신종 느부갓네살을 보내신다.
이때 자기 영혼을 돌아보며 기도하기 보다 느부갓네살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자들이 많아지는 세대다.
잘못 산 내 영혼은 보려하지 않고 왜 느부갓네살만 괴롭히는 것일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만난적 없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이다.
느부갓네살은 잘못 사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값이다.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고 죽여달라 외칠것 없다.
그를 망하게 해달라 저주할 필요없고 전쟁하려고 사람 모을 이유도 없다.
에스겔처럼 눈물의 강을 건너면된다.
390일 못하면 39일이라도 눈물의 강을 건너자.
그것도 안되면 39시간이라도 민족과 자기 영혼을 위하여 눈물의 강을 건너자.
우리는 이 시대의 누구일까.
느브갓네살인가 아니면 투기를 격발시키는 말 잘하는 사람인가.
어두운데서 가증한 일을 행하는 거듭나지 못한 지도자인가 아니면 기도라는 이름으로 주문을 외우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예배 시간에 이시대 동방 태양인 휴대폰을 보는 변화없는 예배자인가.
아니면 이 시대 에스겔인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이시대 에스겔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생의 남은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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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정 그리고 눈물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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