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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남 녹우당>
장경욱
수려한 자연과 더불어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담장 안팎에는 화창한 봄을 색칠하듯 꽃 너울이 울긋불긋 불타오른다.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자리한 해남은 크고 작은 섬이 펼쳐지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4km 가량 떨어진 고산 윤선도 유적지에는 해남 윤씨 종가인 녹우당이 현존하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와 별로 꾸미지 않은 듯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의 고택으로 호남지방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됐으며 민가 가운데 규모가 상당하다.
산굽이 우거진 비자숲이 소슬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비가 내리는 듯 하다해서 녹우당(綠雨堂)이라 일컫는다. 녹우당 입구에는 거의 500여년 된 아름드리 오랜 은행나무가 있으며 뒤쪽 덕음산에는 천연기념물 제241호인 비자나무숲이 자리해 있다. 어김없이 나무를 가운데로 두고 넓은 정자를 만들어 편한 쉼터로 시가를 읊고픈 마음이 절로 샘솟는다.
산기슭 비자나무 숲에 금세 바람이 일기라도 하면 하늘 가득 봄비가 올 듯하다. 자애로운 처마 끝 아래로 실눈을 뜨고 살짝 쳐다보는 모양은 꼭 날아가는 여래상 같다. 멋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지붕 전체가 아름다운 곡선 자체이다. 고택의 입구에는 여름철 은행나무 잎이 초록의 꽃처럼 떨어지며 돌담길을 따라 새파란 차밭이며 집 뒤에는 오래 빛바랜 비자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아담한 연못 위 흰 연꽃이 빛을 발하듯 한때 옛 문학의 거봉의 혼이 스민 이곳은 고산 윤선도의 선비정신과 예술혼이 깃들어 있다. 남도의 소나무 숲이 잘 가꾸어져 있는 추원당에서 어초은사당 가는 오솔길에는 심장 뛰는 소리와 같이 오가는 이들이 노송의 매력에 흠뻑 젖는다. 벽지에 머문 세월만큼 이나 시조에 깃든 노래가 바람소리에 들리는 듯 아련하다. 자연이 주는 원색적 감동이 더 한층 삶에 여유를 안겨주는 절묘한 순간이다.
산 능선 걸려있던 흰 구름이 한바탕 비를 뿌리고 가듯 해남 녹우당의 경치에 둘러싸여 예쁜 연못가에 갓 핀 백련(白蓮)으로 인해 눈이 멀게끔 한다. 수국, 목련, 옥잠화를 끼고 꼿꼿이 서 있는 향나무 그늘이 청명하고 기가 좋은 곳이라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녹우당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그 향이 하늘에까지 가 닿기를 바라는 진심어린 소망이 있다고 한다. 향국이라는 말이 전하는 신선한 뜻처럼 누구나 이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어느 때나 저녁노을 가운데 녹차 밭 사이로 불어오는 가슴 시원한 바람을 맞기에는 여기가 일품이다.
기억에 잠시 스쳐가듯 어렴풋이 현판에 빗긴 녹우당에 걸린 어초은공(漁樵)의 덕(德)을 사랑한 옛 발자취(古蹟)에 고스란히 빠져든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이어지는 진실한 선(善)과 의(義)는 이곳에서 하나의 뿌리로 이어지고(一根連) 어진 인덕(春風仁德)은 거친 세상(草)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花樹)”는 훌륭한 글귀 앞에 저절로 숙연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만치 빠져든다. 이는 임자 년 꽃피는 날을 만나 나산이 초고 하였다 한다. 어떤 난관에도 심지 굳은 송백지조(松柏志操)처럼 쉬이 세상의 사리사욕이나 명리에 굴하지 않고 사철 푸르른 선비의 후덕을 잘 표현한 시조가 아닐까 본다.
발아래 신비로운 풍경을 굽어보듯 사자봉 정상에서는 수평선 끝없이 다도해 절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시원하고 맑은 날엔 제주도 한라산까지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저 멀리 갈매기 소리와 함께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해안으로 내려와 땅끝비가 자리한 곳에 이르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일출,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아무 곳이나 경험할 수 없는 기이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변화무쌍한 기후 속에 장마와 태풍이 강타하는 시련의 고초에도 아름다운 삶의 터를 마련하고 우리 문학의 꽃을 활짝 피운 곳, 우리의 뿌리를 찾음과 동시에 삶이 보다 겸손해지는 지혜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얼룩진 국토의 끝인 ‘해남 녹우단’은 당대를 살았던 선인의 교훈과 정신의 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한번쯤, 우리의 선조의 얼을 알고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생명의 활력소를 품어내는 그곳을 기행할 일이다.
2.
<시인의 별>
장경욱
어느 날 그녀가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내게로 왔다. 이른 아침 맑은 새소리가 귓가에 지저귀며 신선한 자연(自然)의 선물을 안겨주듯 하이얀 드레스가 너무 눈부신 그녀가 내게로 왔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 내내 있는 그 자체가 삶의 행운이었는지 우연같은 운명이었는지 아직도 모른다. 늘 그녀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다녔다.
계절이 한두번 바뀌면서 후암동에서 노량진으로 노량진에서 신림동으로 이사를 갔다.
이 와중에 그녀가 날 위해 자주 읽어주던 시가 생각난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이다. 내가 외롭고 힘들때 기도처럼 사랑처럼 애절한 모습인 그녀는 나의 상사화(相思花)였다. 신림동에서 생활은 단조롭고 톱바퀴 돌듯이 지루한 나날이었다.
가끔 등산하는 관악산 연주대 코스는 그나마 일상의 조그만 활력소가 되었다.
산정상에 이를 쯤 햇살에 비쳐 떼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의 비상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삼삼오오 등산객 중엔 얼큰하게 막걸리로 쉬어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한번은 연주대(戀主臺) 근처의 바위 위에서 저녁 타종소리에 빠져 으슥한 해거름을 끼고 급히, 내려온 때도 있었다. 어디를 가나 어김없이 산의 메아리처럼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계속되는 고시공부와 시인으로써 더이상 무력해지는 현실 앞에서 신림동의 생활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기로 짐을 챙겼다. 그쯤에 참 눈이 많이 왔다. 하늘도 왠지 나의 길을 막아서는 듯 서글펐다. 사실, 청춘의 10년을 서울에 머물면서 별다른 성취도없이 고향으로 간다는게 마음이 무척 답답했다. 그저 빛바랜 기억들이 하나 둘 스쳐갈 뿐이었다.
집으로 도착해 나를 환영한 것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순간 돌이 되었다.
수많은 방황과 시행착오만 있었지 뚜렷이 뭐라 할 나의 존재가치를 알릴 것이 어디에도 없었다. 깊은 절망(切望)과 회한(悔恨)만이 엄습했다.
1년의 짧지 않은 공백을 접고 서울로 상경했다.
다시, 도착한 곳은 남산타워 아래 후암동이었다. 오래 전에도 그랬지만 남산식물원과 남산도서관을 끼고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지금 있는 동네의 길 이름은 ‘산유화길’인데 조금 더 가면 ‘개나리길’, ‘소월길’ 등 길 이름도 정말 서정적이고 특이하다.
지난날 잃어버린 청춘을 이내 만회(挽回)하기 위해 열과 성(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이다. 오늘 아침은 우연히 그녀가 바람이 되어 구름이 되어 나에게 와 무엇인가 속삭이고 간다.
<돌꽃>
장경욱
가슴에 하나의 돌꽃이 되어버린 사람아
끝없이 닿는 내 영혼의 향수를 담아
하늘 저 멀리 그리움을 띄운다.
능 굽이굽이 소리 쳐 불러보는
짙은 자운이 도는 천정아래 홀로 앉아
긴 장삼 고깔을 한껏 풀어헤쳐
아름드리 핀 돌꽃에 옛 사연을 읊는다.
가랑비 젖은 달빛도 밤 깊어 처량하다.
- 장경욱 시 「돌꽃」 전문
남산을 올라오는 길엔 양주동의 ⌈산 넘어 물 건너⌋, 천상병의 ⌈귀천⌋ 등 각각의 돌로 만든 책과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줄지어 서있다. 부족하나 이 ⌈돌꽃⌋을 하늘 저 멀리 먼저 오신 시인들을 기리는 뜻으로 부친다.
다름아닌, 그녀는 항상 어둠 속에서 나의 영혼을 인도하는 시인의 별이었다.
3.
<쌍향수>
장경욱
향나무라는 원래 향기가 나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아주 선호하는 극양수(極陽樹) 답게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해안가에 밀집해 있다. 강하고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를 지내는 의식 및 향료로 쓰거나 오래 살므로 흔히 정원수로 심는다. 윤이 나고 결이 좋을 뿐 아니라 목재를 향(香)으로 사용해 왔어 향나무라고 하는데, 잎의 일부가 빛나는 금색처럼 보이는 것을 금반향나무라고 한다. 원줄기 없이 쭉 자라지 않고 많은 대가 동시에 성장해 둥글게 되는 것을 옥향이라고 부른다.
이 중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송광사 천자암(天子庵) 쌍향수(雙香樹)는 하늘에 휘영청 떠 있는 달빛처럼 솔 향이 온누리를 휘감는다. 이 향나무의 생김새는 꼭 두 마리의 학이 하늘로 승천하듯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묘연함이 감도는 향나무를 유심히 보면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오르게 한다. 세심히 잘 보면 빼어난 그림이 지닌 살아 숨 쉬는 절세의 예술품이다. 오래 기다려 온 일처럼 옛 일을 회상하며 기억 하나하나를 되짚어 고려 중기의 고승 지눌(知訥, 1158~1210)스님을 떠올려 본다.
유래를 보면 보조국사 지눌이 금나라를 다녀올 시 당시 그곳의 태자였던 담당국사와 함께 국내에 들어와 수행처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 전남 순천(順天)의 조계산 자락에 이르렀다. 자신들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법당 앞에 나란히 꽂은 것이 후일 푸르고 큰 나무가 되어 “송광사 쌍향수(雙香樹)”가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 천자암을 세웠는데, 어느새 약 800백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의 전설로 남은 것이다. 두 그루가 바로 곁에 붙어 있다 해서 특히 스승과 제자의 극진한 예를 바탕으로 숱한 이야기까지 전하는 아름답고 상서로운 향나무이다. 이 쌍향수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명한 사찰 송광사의 보물 중의 으뜸인 쌍향수(雙香樹)는 일반 향나무보다 줄기가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더욱이 잎이 짧고 더 곱게 생긴 ‘곱향나무’이며 불가의 믿음으로 전하고 있지만 쌍향수를 조금이라도 만지면 틀림없이 극락세계로 갈 수 있다 하여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웅장한 천자암을 찾았다고 한다. 향기는 하늘 멀리 자꾸 올라간다. 진정 나무의 향기처럼 사람이 가진 인품과 덕만큼 극락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본다. 사철 변함없는 푸른 계절과 같이 짙은 쌍향수 내음이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고귀한 형상을 뽐내는 향나무의 향은 청향(淸香)이라 하여 심신을 깨끗하고 맑게 부정을 제거한다. 더불어 향나무와 연관해 고려 말부터 불교에서 전하는 매향의식(埋香儀式)이 있는데 계곡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는 의식이다. 이를 인하여 미륵여래에게 공양함으로 자신의 후일과 다가올 미륵 세계를 기원하는 것이다. 또한 땅속에 묻었던 향나무는 오랜 기간이 가면 침향이 된다. 침향(沈香)은 향중에서 제일로 여기며 목재가 단단하므로 불상조각 재료로 사용하거나 피부병에 좋은 약재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향나무는 어떤 곳에서도 적응력이 강한 만큼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아낌없이 제 몸의 향을 골고루 허공에 날린다. 갖은 세파에 흔들림 없이 초연한 삶의 자세란 근본적인 자신의 지혜와 수양 못지않게 송림사 ‘쌍향수’ 처럼 보이지 않게 무엇인가 베푸는 자비심이 중요하다. 사실, 쌍향수는 천년동안 아무 말 없지만 향기만으로 주위를 정화하고 불심을 잃지 않게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연 속의 한그루 나무로서 ‘천혜의 혜택’ 그 자체이다. 우리도 기본 토양 안에서 지혜를 뿌리 깊이 내리고 스스로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
4.
<적멸보궁>
장경욱
처음 시야가 트인 곳에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풍광을 누군가가 조금 더 가면 제대로 경치를 볼 수 있다. 푸른색의 물빛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듯 한마디로 가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단절되지 않고 하나의 지경으로 오묘한 행복감에 가히 묘사할 수도 없는 자연만의 위대함 속에 적멸보궁의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나라엔 5대 적멸보궁이 존재하는데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놓은 전각을 이르는 말이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전 중인도에서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하였던 적멸도량을 의미하는 전각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은 불가에 있어 성지 중의 성지다.
적멸보궁이란 공한자리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오대산 월정사, 양산시 영취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의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에 적멸보궁이 있다. 자장율사가 현몽한 문수보살의 지혜를 받아 태백산맥 자락에 정암사를 창건하여 보궁과 함께 칠보 중 하나인 마노석으로 쌓은 "수마노탑"이 천의봉 중턱에 있다. 이와 같이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와 정골을 나눠서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을 좀 더 살펴보면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문수진성의 주처'라는 생각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성지로, 4방불 신앙의 중심인 비로자나 법신불로 상징되고 있다. 이 보궁의 불사리는 어디에 안치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상을 모시지 않는데, 부처님의 사리가 있어서 부처님을 따라 모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한 중인도의 적멸도량(寂滅道場)을 뜻하는 전각으로, 부처사리를 모심으로써 법신불(法身佛)로서의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전각에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적멸보궁 바깥쪽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무언가에 의지하려는 그런 마음이 완전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불자들은 무상법을 바르게 이해해서 바른 수행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몸과 마음과 눈을 통해 깨우침을 주고 심신의 의지처를 찾게 되니 여러 가지 형태의 불상과 불교 용품이 등장하여 진리로 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그야말로 최고의 신앙대상일 수밖에 없다. 부처님 생전에는 별도의 경전이나 법당도 필요 없었을 거다. 부처님이 머물고 설법을 하는 그 자리가 곳 법당이고 경전일 테니 말이다. 불교는 "스스로 깨우침"을 지향하는 종교다.
우리나라에 사리신앙을 전파한 이는 자장율사다. 중국에 유학한 자장율사는 종남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세존의 의발(衣鉢)과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 귀국해 모셔 온 진신사리를 여러 곳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전한다. 적멸보궁엔 불상이 모시지 않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적멸보궁을 들렸다가 조금 당황해 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적멸보궁 바깥쪽 어딘가에 사리탑을 세우거나 계단(戒壇)을 만들어 봉안한 경우가 많으니 창이 나 있는 경우 그곳을 통하여 사리탑을 볼 수도 있다. 경전에 나오는 훌륭한 어록을 되뇌며 심신을 각성하고 순화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찾아도 기쁘고 행복한 곳이 적멸보궁이리라
<적멸보궁>
장경욱
햇살 머금은 잎 새 소리
적멸보궁 자취를 쫒는다.
향기로운 봉련에 취한 극락조
송백 그늘에 숨어 울고
구척 맑은 연화 폭포수
하늘빛 담은 천수가 요란하다.
금수강산 드넓은 산 구비마다
신이 내린 아우라인 듯
절세의 신비로운 기운이
천의무봉 수마노에 감돈다.
-장경욱 시 「적멸보궁」 전문-
5.
<운명 같은 사랑>
장경욱
파란 하늘빛 그리움이 좋아 가끔 봉은사를 찾으면 작은 연못가의 수련이 무척이나 어여쁘고 화사하다. 며칠 새 꽃비가 내려서인지 기와 끝 여러 문양마다 일렁이는 햇살이 더욱 빛난다. 그러한 법당 안팎에서 맑은 기운은 언제나 세파 속에서 시달렸던 나의 번뇌의 무게와 아픈 상처들을 치유해 주곤 한다. 바른 좌선에서 오는 기쁨과 황홀경은 이곳에 발길을 끊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 때문인지 항상 나를 이끈다. 바람소리에 간간이 들려오는 청아한 풍경소리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진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고요한 침묵을 깨듯 훨훨 나풀거리며 약하게 사뿐 사뿐거리는 한 소녀의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타종소리에 흠뻑 취해 그 곱고 둥근 종에 새겨진 하늘을 나는 비천상 천녀의 전신을 보듯 하였다. 내심 나도 모르게 기도와 신앙의 대상이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유유상종일까 그녀 또한 나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았다. 서로 첫눈에 무엇인가 홀린 듯 멀리서 서로 눈여겨 심중만 헤아리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법당은 꼭 둘만이 무언의 인사를 주고받듯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난 매일 같이 직장의 퇴근 시간에 맞춰 봉은사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 역시 어김없이 그 시간이면 그 자리에 있곤 했다. 그렇게 3~4개월이 지났을까 어여쁘게만 보이던 그녀가 ‘어느 날 내게로 다가와 기도하는 모습이 마냥 괜찮아 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점점 알게 모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번은 그녀가 핸드폰 고리를 내게 선물로 건네어 주며 속삭였다. ‘아직, 미혼인가요.’ 난, 이미 그녀에게 내 마음을 빼앗긴지라 왠지 결혼 사실을 알리고 싶진 않았다. 사실, 지금 아내와는 별거 중인지라 뒤늦게 만났지만 나의 상상 속의 그녀의 기대감과 호감을 저버리고 싶진 않았다. 우린 하루가 멀다 하고 봉은사에서 불심에 대한 초심은 어느새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었다.
바람과 구름은 나를 데리고
하늘 어디든 연연함이 없으나
나 아닌 그녀의 기억이
내 속에서 미치도록 뜨거워
나 자신을 모두 사르도록
그녀에게 다 주지 못하는 것은
애잔한 사랑의 노래인가
잔혹한 인과의 업인가
늘 가까이 있어도 그녀로 인해
더 그립고 외로운 것은
그 언제부터 그녀가 내 안에 들어와
숱한 세월을 지나쳐 왔던 것일까
- 장경욱 시 「인연서설」전문
만남이 계속 되던 어느 밤 갑자기 그녀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힘든 일이 있으니 잠시 와 달라는 것이었다. 밤늦게 유부남이란 신분으로 처녀의 열린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 않아 처음엔 핑계거리를 만들어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녀의 전화가 또다시 나를 호출하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깊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본능적으로 이것이 알 수 없는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여태껏 사랑의 싹이 움텄던 것이었을 것이다. 저만치 나의 자동차로 다가오고 있는 그녀의 육체를 물씬 훔치며 순간 난 키스를 작정하고 있었다. 차에 오른 그녀를 보며 누가 먼저란 것 없이 우린 키스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녀 역시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잠시,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깊어 가는 밤이 아쉬워 우린 젊은 열기를 식히기 위해 호텔로 향해 가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서로의 체취와 영혼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짧은 밤을 새우고 일상 속으로 돌아가는 순간 난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꿈에 그리던 한 여자를 만나 새롭게 모든 것을 출발한다는 신선함과 너무 늦게 만난 아쉬움에 슬픔이 밀려왔다. 아니, 자식까지 딸린 유부남으로써 미안함과 씁쓸한 기분이 밀려왔다.
본처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가고 삶이 고달픈 가운데 어쩌면 이 처녀가 나의 생의 한 가닥 소망인지 모를 일이었다. 수많은 생각과 희비가 엇갈리는 이 순간조차 지고지순함과 현실의 무시할 수 없는 규제와 통제 속에서 약한 중생의 본 모습이 나를 통해 비쳐졌다.
강남의 휘황찬란한 불빛마저 젊은 혈기를 태우니
이젠 처자식이 딸린 자금의 운도 어쩔 수 없으니
늘 꿈에 그리던 처자와 더욱 마음을 통하였으니
어디에 흘러가는 순리를 둬야 할지 모를 일이다.
- 장경욱 시「무제」
매일 똑같은 생활 속에서 우리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 같이 달콤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사랑은 천사마저 시기한다.’했던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사소한 오해가 그 틈을 갈라놓기 시작했다.
상쾌한 아침 무렵 우린 주말을 이용해 지방에 있는 사찰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잠시 뒤 그녀로부터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름 아닌, 오래전부터 폐부종이란 병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 앞에선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바로 경동시장으로 가 여러 한약재를 사들고 그녀가 살고 있는 원룸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도착해 문 앞에서 노크하기를 수차례 그녀의 인기척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들리지 않았다. 폰으로 아무리 연락을 해도 그녀와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혹시, 병원으로 실려 간 것일까 이상한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다음날 우린 봉은사에서 만났다. 법당에서 짧은 기도를 마치고 그 전날의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한 번씩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너무 커 꺼 두었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기어이 그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 아닌 혹시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는 건 아닌지 무심코 던진 말이 그녀에겐 큰 충격과 이별의 시작이 될 줄 전혀 몰랐다. 신앙과 신성한 곳에서 만난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한 남자가 어떻게 이런 속되고 책임 없는 언행을 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도중 그녀는 중도에 내려주기를 요구했다. 더 심각해지길 꺼려 일단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저녁 무렵 어김없이 우린 같은 장소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상해 있었다. 이렇게 사나흘 지났을까 대뜸 그녀가 이별을 원하는 것이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고 한숨만 밀려왔다. 최근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여느 때와 같이 회사를 마치고 봉은사에 갔지만 이젠 그녀가 예전 같지 않게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알았다. 서로 마주쳐도 가벼운 눈인사 뿐 우연찮게 만나도 별 말이 없었다.
내가 결혼한 기혼이란 사실을 눈치 챈 것일까 시간만 아주 더디게 날 혼란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일주일가량 지났을까 그녀는 더 이상 봉은사에 보이지 않았다. 궁금한 나머지 평소 알던 보살님께 여쭈어 보니 온 가족이 다 이민해 살고 있는 호주로 갔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덩그러니 봉은사의 하늘만 홀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오길 기도하며...
6.
<가을추억>
장경욱
아침 가로수 주변의 꽃집들이 여러 색의 국화를 갖춰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따뜻한 봄이나 여름에 피지 않고,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피어나는 국화의 모습에서 군자의 고고한 기품을 찾아내곤 했다. 한편의 가을 동화처럼 개화하는 “국화꽃”을 따라 꽃잎에 취한다. 아열대 지방에선 계절에 따른 환경 변화가 거의 없어 그곳의 식물들은 사철 내내 아무 때나 꽃을 피운다. 하지만 온대 식물은 번식 시기를 잘 정해야 자손을 많이 퍼트릴 수 있다. 사실 개화는 식물이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생식기관을 만드는 행위로, 식물에게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작은 꽃잎들이 모인 꽃봉오리인 국화와 함께하는 추억 여행은 국화를 다양하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국화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린다. 아련히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가 연인들에게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서정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수수하면서도 애틋한 모양의 국화는 다른 식물과 달리 가을에 꽃을 피우고 왕성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또한 사군자에서 볼 수 있듯 옛 선연들은 국화를 극찬해 왔다.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역사가 가장 오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국화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식물이라 자연 상태에서는 자생하지 않는다. 벚나무처럼 봄철에 개화하는 식물들은 주로 일정 기간의 추위를 겪은 후 따뜻한 온도가 계속돼야 꽃을 피운다. 가을철에 꽃을 피우는 국화과 식물들은 낮이 짧아지는 것을 느끼고 꽃봉오리를 만든다.
‘들국화’ 한 송이가 여울 사이로 수줍게 미소 짓는 자태는 화려하진 않지만, 그윽한 향기와 은은한 맵시는 그야말로 꾸미지 않은 시골각시를 보는 듯하다. 오늘의 국화는 한국 또는 중국에 본디 자생하던 식물이 오래전 자연교잡이나 인위적인 교잡을 거친 후 육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교잡 이전의 원종, 즉 국화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식물들이 바로 우리가 흔히 보는 ‘들국화’다. 수많은 어린 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국화꽃은 한 송이 자체가 바로 꽃다발(두상화서·頭狀花序)이다. 국화꽃 한 송이는 가운데 노른자 모양에 몰려있는 통꽃(통상화·筒狀花)과 그 가장자리의 혀꽃(설상화·舌狀花)으로 이뤄진다. 보통 사람들이 꽃잎이라 여기는 것은 혀꽃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나와 있는 부분이지만 진짜 꽃잎은 통꽃을 둘러싸고 있는 별 모양의 꽃잎 5장이다. 국화 품종 중에는 가운데 노란색 부분의 통꽃이 혀꽃으로 바뀌어 진정한 의미의 꽃잎을 찾을 수 없는 겹꽃을 가진 것들이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산정(山井)호수가 주는 선물 국화는 온대지방에 사는 우리에게 가을철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시월쯤 되면 중부지방을 기점으로 국화 축제가 여기저기 풍성하게 열린다. 찬란히 빛을 발하다 사라져가는 단풍을 보는 것도 좋지만, 향기 가득한 국화를 보러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운치 있지 않을까 본다. 특히, 가을에 들국화축제를 즐기기 좋은 곳은 ‘평강 식물원’이 잘 알려져 있는데 관광지 주변으로 산중에 묻혀있는 우물 같은 호수라고 해서 붙여진 ‘산정(山井)호수’에서 늦가을까지 국화향기를 만끽하고 겨울에는 얼음 썰매 장을 이용할 수 있어 여유로운 삶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명성산’은 단풍과 어울려 빚어지는 억새풀이 아름답게 수놓아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다. 또한 삼부연폭포와 백운계곡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아름다운 산정호수 자락에 조성된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들국화’를 마음껏 즐겨 보길 바란다.
7.
<김 치>
장경욱
우리나라의 김치는 대표적인 건강식품 이다. 찬바람이 불고 추워지면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 김장을 담근다. 물론 강한 마늘 냄새와 매운 맛 등이 발효 과정을 거치면 여러 가지 맛과 향으로 오묘하게 혼합되는 김치에 빠져든다. 겨울철 집안과 밖의 온도차가 많이 커 허리 지지며 겨울을 나던 우리에게 겨울은 시련의 계절이다. 싸늘하고 축축한 겨울 날씨에 폭설과 한파까지 겹쳐 몸과 마음의 냉한기운이 떠날 겨를이 없어도 김치 한 조각에 가끔 행복을 느낀다. 채소를 신선한 상태로 먹거나 절임으로만 먹었던 서양인들도 요즘 김치에 맛을 들이고 있다.
젊은 여성 중 김치를 담글 수 있는 학생은 얼마나 될까. 한 자료에 따르면 미혼 여성의 절반 이상이 김치를 담글 줄 모르고 80% 이상은 ‘직접 담가 먹기보다는 구입해 먹겠다’고 했다. 약 3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과 독일 외국인들이 자신 있게 만들어 먹은 한식은 불고기·잡채·갈비 등이다. 먹자마자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당시 김치는 상 위에 꺼내지도 못하고 맛과 냄새, 담그는 방법 등을 먼저 설명을 해도 그들은 정중히 먹기를 거절할 뿐이었다. 김치가 숙성함에 따라 증가하는 유산균은 요구르트와 같이 장내의 산도를 낮춰 유해균의 생육을 억제 또는 사멸시키는 정장작용을 가지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쉽게 변화를 실천하려 하지 않는다. 특별히 자기 자신에게 배어 있는 구습을 벗기는 쉽지 않다. 우린 때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며 상대방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바람직한 인간관계의 첫 시작은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것이며 특별히 존중할 때 보다 풍성해지고 완만해 진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김장을 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이 김치의 종주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젊은 세대들이 김치를 직접 담그지 않고 상품화된 김치를 구입하더라도 꾸준히 많이 섭취를 해주길 기대한다. 식생활이 서구화돼 김치 소비가 감소하고 있지만 우리의 식생활에서 김치는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식생활의 세계적 트렌드는 발효 식품을 섭취하고 다양한 음식문화를 즐기며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이다. 점차 많은 외국인이 한국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국가브랜드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의 30.4%가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김치와 불고기를 골랐다.
하지만, 일본에서 ‘기무치’가 생산되고 있는데 물론 기무치는 김치는 아니다. 기무치는 김치를 일본인의 입맛과 일본의 기후특색에 맞게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세계 시장을 넘보려 한다.
문화는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오랜 기간에 거쳐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음식문화도 사회적·경제적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으며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아침에 바꾸려면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수천 년 세월을 거쳐서 이루어진 문화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의 것을 외국인들에게 알리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식의 세계화 전략으로 김치·비빔밥·떡볶이·전통주 등이 선정됐다. 사회적인 제도정비 등도 필요하지만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치의 매운 맛에 길들여져서 그것을 잘 못 느끼지만 외국 사람들은 그 매운맛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조상들은 밥상 하나를 차려도 자연의 원리에 맞게 하였으며, 심지어 계절과 온도의 변화에 따른 인체의 상태에 맞추어 음식을 먹기도 했다. 한국인의 밥상은 약상이란 이름까지 붙을 정도로 완벽한 건강식이다. 이제는 세계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유학생과 우리 교포뿐 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우리 음식을 알리고 거부감이 없이 다가가게끔 애써야 한다. 호기심으로 한식을 한번쯤 먹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겨 가까이 하고픈 외국인이 늘어나는 것이 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다.
8.
<청남대>
장경욱
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행락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가운데 청남대는 금년에도 가을 국화 및 야생화 전시를 열기로 했다. 이번 국화 및 야생화 전시는 “단풍에 묻어나는 국향과 야생화”라는 테마로 청남대에서 직접 재배한 국화 3,000본과 야생화 150여점, 초화류 34,000여점이 전시장과 주변에 어우러져 단풍과 국화의 향, 야생화각종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오래 전 부터 꺾꽂이하고 다듬어 기른 각종 야생화 이다. 온정과 사랑이 넘치는 다정한 전시의 모습인 형형색색의 '대국'과 '소국'은 물론 야생화인 구절초와 '세 잎 꿩의 비름' 등 다양하다.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는 1983년부터 대통령 휴양지로 이용되었다. 아름다운 풍경 등을 엿볼 수 있는 사진을 곁들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청남대는 "이번 전시는 권위적이고 딱딱한 인상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다정한 전시의 모습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청남대에 조성된 산책로는 다섯 곳인데 총 길이가 8km에 달하는 산책로에는 5명의 전직 대통령 이름이 붙어있다. 전직 대통령들이 청남대에 묵으면서 즐겨 찾던 곳을 재정비하고 의미를 부여해 이정표를 설치했다.
현재까지 550만 명 이상이 다녀갔으며 대통령 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는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이승만∼노무현 전 대통령 등 9명의 전직 대통령의 웃음 띤 영상 90여 편과 사진 3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전두환 대통령길'은 본관에서 오각정을 거쳐 양어장으로 호안을 끼고 도는 1.5km구간으로 30분 정도 걸린다. 양어장은 청남대를 건설한 전 전대통령이 겨울철 스케이트를 즐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길은 양어장부터 다시 2km의 '노태우 대통령길'로 이어진다.
청남대에서는 청정한 자연환경을 가진 청남대의 가을 숲 단풍은 그 어느 곳 보다도 붉고 아름다워 매년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금년에는 전시 거리를 확대하였으므로 많은 관광객의 방문이 기대된다고 한다. 오솔길을 거닐며 대통령의 자취를 느껴보려는 관광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주말 방문객 중 절반 넘게 대통령길을 밝고 있다. 청남대는 내년에 본관정문, 역사교육관 예정지 뒷길을 거쳐 노태우 대통령길과 접하는 약1km의 '이명박 대통령길'을 추가로 만들 생각이다. 또 마사토로 포장된 김영삼 대통령길을 맨발걷기 산책 장소로 제공을 준비하고 있다.
9.
<불우한 다문화가정 위해>
장경욱
경제적 사정으로 결혼식을 하지 못했던 다문화가정 부부 4쌍이 주변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치렀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다문화가정 부부를 위한 무료 합동결혼식‘Hand in Hand 희망 웨딩’을 열었다.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다문화 부부 4쌍을 대상으로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부부 4쌍을 대상 중 작은 택배회사에서 배달을 하는 베트남 출신 신부를 비롯해 한국으로 시집 온지 11년 된 필리핀 신부, 집안을 위해 자신의 공부를 포기한 신부 등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다문화부부들이다. 참석한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화촉점화, 혼인서약 등으로 예식이 진행됐다.
다문화가정 부부의 결혼식을 위해 공간을 결혼식장으로 꾸몄으며 꽃 장식, 무대설치 등 전반적인 연출은 매우 중요했다. “타국에 와 제대로 된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다문화 가정을 위한 무료 합동결혼식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 밖에도 어려운 다문화가정 아동들을 위해 무료로 문화행사에 초청하는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은 사회 전반적으로 이어졌냐 한다. 다문화가정 아동을 대상으로 문화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다문화 가정 아동 120명을 대상으로 참여 기회를 많이 제공하여 사회와 교감할 수 있는 계기는 꾸준히 마련되어야 한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시간과 더불어 환경적으로 문화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적은 다문화계층을 위해 지속적으로 소외된 이웃과 함께 가는 사회를 만들어야겠다.
10.
<미(美)의 열망>
장경욱
인간의 욕망 중 빼어난 미를 열망하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균형 잡힌 몸매로 새롭게 창조되는 나는 누구나 한번쯤 꿈꾼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아름다움으로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 그 모습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사라져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미용성형은 의학이란 과학에 심미적인 예술적 안목과 섬세한 기술,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조화롭고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이상은 높은데 완벽하지 못하다. 사람의 머리와 가슴, 손으로 다른 사람의 모양과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마음과 마음의 일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움을 추구함에 있어 얼굴 중 눈 부위는 너무나 소중하다. 이 가운데 쌍꺼풀은 사람의 매력을 좌지 하는 포인트다. 쌍꺼풀 수술은 눈꺼풀이 얇고, 지방이 적으며, 피부가 처져 있지 않은 10대 후반에서 20대에 하는 것이 좋다. 눈꺼풀에 절개를 하지 않고 바늘 구멍만한 작은 절개로 눈꺼풀 안팎으로 실을 꿰어 쌍꺼풀을 만들어주는 수술로 자국이 나지 않고 바로 자연스러워 지는 장점이 있다. 애교주름 수술은 요즘 유행되고 있는 수술 중 하나로 연예인들을 보면 웃을 때 눈 밑이 볼록해 보여 귀엽고, 생기발랄한 젊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눈 밑 애교 수술은 눈 밑의 살이 도톰하게 튀어나와 보이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미소를 지을 때 눈 밑의 살들이 도톰하게 튀어나와 귀엽고 발랄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눈 밑의 지방은 흔히 심술단지라고 불리는데, 눈 밑이 불룩하게 나오면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심술 맞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눈 밑 지방은 또한 다크서클의 원인이 되어 얼굴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어둡게 만들고 그 사람의 분위기마저 가라앉게 만든다. 눈 밑 지방은 대개 나이가 들어갈수록 피부가 처지고 안륜 근이 약해지며 지방을 막아주는 막이 늘어지면서 생기는 것이지만 스트레스나 컨디션 악화로 인한 피부 처짐이나 기타 여러 원인에 의해 잠깐 생겼던 것이 그대로 굳어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눈 밑 지방은 대개 주름을 동반하는데 특히 스트레스나 컨디션 악화로 생긴 경우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생긴 주름이어서 굉장히 신경이 쓰이게 된다. 최근에는 20~30대의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분들도 눈 밑 지방과 주름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다.
코는 얼굴 중앙에 위치, 얼굴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코가 너무 오뚝하고 코뼈가 튀어나와 있으면 고집이 아주 센 인상을 풍긴다고 한다. 반면에 코가 너무 낮아 아예 없는 듯하다. 콧구멍만 보일 정도면 대가 약해 보인다는 평판을 듣는다. 또 코가 휘어 있으면 될 일도 안 되고 모든 일이 뒤틀려 버린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코는 얼굴의 한복판에 있어 인상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위다. 따라서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얼굴 모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코성형의 미학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매력적인 예쁜 코는 일단 콧대가 오뚝해야 한다. 콧날이 단정해야 하고 콧구멍도 밖에서 안쪽으로 아몬드 같은 모양을 갖춰야 하며 코끝이 콧대 선보다 2∼3㎜ 솟아올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아하게 내려오던 선이 코에서 끊어지면서 납작하고 뭉툭한 모습이 된다.
어차피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왕이면 손을 대서라도 남보다 예뻐지기를 원하게 되는 것 같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성형수술을 하다보면 참 재미있기도 하지만 하면 할수록 더 어렵지 않나 본다. 특히 코 성형수술은 이물질을 삽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이물질의 성질에 따라 결과도 천차만별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사람은 콧대를 높여주기만 해도 평생소원을 이룬 듯이 기뻐하지만 얼마 안가서 본인이 또 다른 코의 결점을 찾아내 불만을 갖게 된다. 따라서 성형외과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결점을 미리 알아두어야 교정 후 불만족을 최소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