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세 지방의원
하염 없이 시간은 마냥 흘러가고 반복되는 일상은 희망이 없어만 보이고 권태를 느끼 던 중
이제 슬슬 기지개를 켜고 싶은 청운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지방화시대의 개막이 본격화되고 1995년도엔 민선 지방자차제가 실시된다고 한다.
그런데 신문에 보도 된 지방의회 기사를 보면 대략 이런 글을 접하게 된다.
'지방토호들의 잔치','함량미달' 등 그래서 필자가 어느 날 그들의 학,경력을 살펴 본다.
살펴 본 결과 그랬더니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이해와 동시에 결심한다
말로 가타부타 하지 말고 직접 ' 행동으로 나서자구 ! '
지방자치제에 후보로 진출한다는 것은 경쟁구도 상 정당구조로 돼 있어서 부득히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여나 야로 가느냐의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당시의 대통렬은 노태우 정당은 민자당과 야당인 민주당 !
그런데 필자는 직접적으로 두 정당 모두 모른다.
그래서 장인어른의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데 선택의 결정은 내 몫이 었다.
심정적으론 야당인 민주당인데 당시의 야당사정은 이기택총재와 김대중 총재의 파워게임이 예상되어
혼란스러을 것이며 처음 정당에 발을 들여 놓아 혼란스러운 나로서는 그 쪽은 더욱 더 불확실한 상황이 전개될것 같았다.
그래서 학자출신이며 경제부총리를 하신 이승윤의원의 조직 중 일부(담무협의회장)를 맡게 된다.
정치를 제대로 큰 인물 지도하에 정통적으로 학문적 접근의 관점에서 배워보고 싶었다.
아, 그런데 그 분께서 내가 입당한지 3개월만에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
난 졸지에 고아가 된다,정치적 고아 ~~~
2개월 후 치러지는 지방의회선거에서 애비 없는 출전이지만 많은 분들
협의회 회원, 성당,대우,동네분들의 적극적인 격려로 최연소 최다득표률로 당선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민의의 전당이라는 곳에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거시기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결심하는것으로 결기를 세웠다.
저 분들은 목적을 달성했지면 난 이제 부터 인생출발이니 기초부터 시작하여 행정을 통하여 사회를 배워야 한다 !
대학강사
석사논문 발표 이후 사내강사로서 대우그룹 연수원에서 강의를 몇 번 하였지만
교재를 토대로 한 학기동안 대학강단에서의 강의를 진행하기엔 여러모로 부담이 아니 될 수가 없었다.
학과목은 '중소기업 창업경영론'으로 기억하는데 우선 2개월이 시간이 있었고 바로 강의 준비를 하였더니 실리적 안정이 된다.
또한 박사과젇 중에 있고 회사원으로서 실무를 접목하겠다혹 생각하니 나름 긴장감도 해소 되는 느낌이었다.
야간수업도 진행하는데 직장인들의 주로 공부하는데 필자의 주경야독시절도 교차되고 늦게 나마 공부의
중요성과 배우려고 하는 그 들의 진지한 모습에서 인생의 또 다른 감명을 받는다.
대우증권에 근무하는 여학생은 곧 결혼을 한다고 하면서 필자에게 주례를 부탁한다.
깜짝 놀랐던 기억을 추억으로 회상해 본다.
그 당시 나이가 34세인데 감히 그 자리에 선다는 것은 지금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해를 구했더니 그 학생이 이렇게 애기한 걸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젊은신거 알아요,그리고 시댁어른께서도 허락하셨어요 ! '
정말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순간이다.
강단에 서면 에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총총한 눈 망울 보면서 강의하는 것이 큰 보람이다.
그 눈망울 앞에서 거짓을 어뗳게 얘기 할 수 있겠는가 !
강단에서의 모습이 필자의 인격도야에 담글질로도 반추하곤 하여 일상에 큰 힘이 되어 준다.
늘 생각했다 !
그 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표리부동하거나 이율배반적이질 않기를 ~~~
가르킨다는 건 곧 자신이 배운다는 걸 언제나 절감한다.
산업교육 현장과 한국경제신문사 주관으로 강의를 반복하고 이를 위하여 실시간으로 정보를 입수하고
교육생들에게 전달하는 과정들이 필자의 내면에서 곰삭아 지혜로 발전될 땐 참 경이롭다.
논어에 이런 구절이 떠오른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呼) !
배우는 학(學)보다 자주 반복하는 습(習)이 더 중요하다고 강의 시 교육생들에게 주장한다.
뇌신경의학계에선 새로운 길이 열리려면 21번의 반복이 새로운 습관을 형성한다고 한다.
관련하여 이런 얘기가 생각난다.
생각의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의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인격이 되고,인격이 운명이 된다 !.
교육을 반복으로 배우고 익혀 실무적으로 적용한다면 ,그게 성공한 직장인 아닌가 !
필자는 작년 부터 '무지개 원리'를 21번의 목표로 11번 째 읽고 있는데
정말 읽을 때 마다 그 의미가 다르고 이해도의 깊이가 더 함을 느껴 본다.
실무행정
1995년 의회 상임위원회에서 첫 업무보고를 받는데 용어조차도 생소한 것이 많았다.
이왕지사 기초부터 학교공부하듯이 확실히 배워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누구한테 어디에서 무엇부터 배워야 할까 ?
선생님도 교과서도 교실도 없다 !
필자가 속한 상임위원화가 총무위원회였는데 우선은 위원회 전문위원에게
해당위원회의 소관업무만을 우선 배워가면서 체계적으로 개념을 정립하고 용어 등은 사전을 활용하면서 병행하기로 하였다.
의회는 그 당시 평균 월 5~7회 정도 연말에는 에산 심의와 행정사무감사로 연일 가야만 한다.
갈때는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운적도 많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일부 동료들의 볼썽 사나운 모습과 그로 인한 담당공무원들의 수모를 지켜 봐야만 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대신 내가 피해자인 담당공무원을 위로하면서 나도 자위한다.
대신 사과하여 조금이라도 상처를 감싸주고 싶었다.
그 들 대부부이 사무관이 되어 동사무소에선 동장으로 구청에선 팀장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행정의 기본 속성은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집행하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사안의 경중,완급,에산 등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인식하여 적기에 실행햐야한다는 것을 그 때 배우기 시작했다.
복지정책 관련 된 포퓰리즘은 자칫 하다가는 유럽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사안을 국가의 관점에서 먼저 잘 파악하고 국민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정치인들의 인기영합주의는 국가와 후대에까지 미치는 매우 심각한 전형적 폐해 !
환경운동
지방의회 출마 때 어린이 환경감시단을 만든다는 것이 공약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의원이 되자 마자 공약실천을 하려하였는데 제동이 걸렸다.
집행부의 답변에 의하면 초등학교에 해양소년단,보이스카우트 등 유사한 단체가 있어 행정의 중복내지 낭비가 우려된다고 한다.
일면 일리도 있고 또 무엇 보다 합리성을 누구 보다도 추구해야 한다고 견지하는 입장에서 겸허히 수용하였다.
그러나 주민과의 약속은 지켜야지 그 이유로 변명하고 파기할 수는 스스로 허락할 수가 없었다.
해서 그 시절에 국내에 대표적인 환경단체가 두 개가 있었는데 녹색연합에서 그 약속을 실천하기로 하였다.
1995년, 당시에 환경의 중요성과 의미 그리고 지구촌의 영향 뭐 생태계 등
낮설었지면 새로뭄을 두려워하지 않는 필자는 유실장의 지도아래 묵묵히 환경관련의 봉사활동을 실행하였다.
단체에서는 3개월 동안 인천시로부터 10개 구군에 대한 환경평가를 위임맡아 그야 말로
쓰레기통도 둬져야 하고 대기오염도 살펴야 하는 환경감시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이런다고 인천의 환경이 얼마나 깨끗해 질까 ?
하는 회의감도 들었지만 그 것이 주민과 사회에 대한 약속이라고 생각하고 칼국수를 주식삼아 묵묵히 하였다.
그 때 먹었던 재래시장의 2500원 칼국수는 왜 그리 맛이 있던지,
지금도 가끔씩 먹고 싶은 생각이 난다.
단체에서 최우수,우수기관으로 선정하여 시에 상정하면 그 자치단체는 포상금 2억인가를 수령한 것이 기억난다.
나중에 고생했다고 환경부문 표창장을 수여할 때는 왠지 지역사회의 약속을 실천했다는 뭔가의 뿌듯함이 있었다.
필자는 생각한다
시민사회가 발전하고 성숙하게 되려면 NGO는 순수성을 잃으면 절대 안된다구 !
인간이 너무 물질만을 추구하면 타락하고 ,정신만을 추구한다면 위선이라던가 ?
첫댓글 마음이 훌륭하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