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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의 나무들〉은 《굴렁쇠 어린이》1990년 1월호부터 8월호까지 연재된 권정생 소년소설입니다.
8회에서 연재는 중단되었습니다.
이번에 발굴한 권정생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은 《시와 동화》 2021년 봄호와 여름호에 두 번에 나뉘어 실렸습니다.
아래 글은 《시와 동화》에 쓴 [발굴해설]입니다.
[연재 시작에 앞서]는 이 글을 줄여서 다시 쓴 글입니다.
내용이 중복되어서 둘 중 하나만 실을 줄 알았는데
《시와 동화》 2021년 여름호에 이 글이 실렸기에 여기에도 올립니다.
미완의 장편
– 권정생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 발굴에 붙여
이기영
1.
사람들은 흔히 아프던 몸이 회복되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한다. 몸이 가벼워지면 훌훌 털고 일어난다. 그러나 권정생은 한 번도 날아갈 것 같이 몸이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한 짐 지고 있던 짐을 반 내려놓은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만큼만 되어도 못 할 게 없다. 짐을 반은 내려놓은 것 같던 그 날,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편지를 쓴다. 1989년 8월 7일이었다.
선생님, 저는 요즘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한 짐 지고 있던 짐을 반은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쉬워졌고, 앉아있기도 수월해졌습니다. 책을 보면 글자가 제자리에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을 만큼 눈도 좋아졌고, 몸에 열도 많이 내렸습니다.(『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양철북, 2015, 338쪽)
그리고 편지 말미에 이렇게 쓴다.
이번 가을부터 여태 구상해 온 장편소설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이만큼의 건강이라도 유지된다면 한 1년 아니면 2, 3년이 걸리더라도 꼭 써야겠지요.
이번 가을부터 연재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는 장편소설이 바로 「응달의 나무들」이다. 이때 권정생은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를 연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가을부터 여태 구상해 온 장편소설”을 시작하겠다고 한 말은 연재를 하나 더 하겠다는 말이다. 권정생은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연재를 하며 「응달의 나무들」 연재를 또 시작한다.
「응달의 나무들」은 그해 가을 1회분 원고를 완성하고 1990년 1월에 창간된 『굴렁쇠어린이』에 연재를 시작한다. 8회까지 연재를 이어가다 중단되었다. 불교잡지에 왜 기독교신자가 쓴 동화를 싣느냐는 독자들의 항의 때문이었다. 연재는 원고지 204장에서 멈추었다.
「몽실 언니」(1982.1~1984.3)는 기독교 월간 생활지 『새가정』에 연재하였고, 「점득이네」(1987.3~1989.1)는 해인사에서 펴내는 불교 잡지 『해인』에 연재하였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1978.1~1980.7)은 가톨릭출판사에서 펴내는 어린이잡지 『소년』에, 「밥데기 죽데기」(1998.2~1999.4)는 성바오로딸수도회에서 펴내는 월간잡지 『야곱의 우물』에 연재하였다. 권정생은 기독교, 불교, 가톨릭에서 펴내는 모든 잡지에 장편을 연재하였지만 작가의 종교가 문제된 경우는 없었다. 그는 기독교 냄새 안 나게 썼는데 연재가 중단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응달의 나무들」에서 은실이는 다리를 다친 엄마노루를 헛간에 데려다 치료해준다. 그곳에서 엄마노루가 새끼를 낳았다. 순재, 영분, 은실이는 정성으로 돌보아주고 엄마노루와 새끼노루를 다시 산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헤어진 듯 외로운 마음에 은실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분이는 “어머닌 심청이네 어머니처럼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에 가셨으니 울지 말어. 연꽃이 이쁘게 피고 사철 봄바람이 분 댔어.”라고 말하며 은실이를 위로해준다. 『굴렁쇠어린이』가 불교잡지임을 염두에 두고 쓴 말일 것이다.
순재 어머니는 순재를 낳고 첫돌도 안 돼 돌아가셨고, 은실이 어머니는 전쟁 때문에 원자탄을 맞고 서른세 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다. 이때에도 순재네 할머니는 “순재 에미도 은실이 에미도 불쌍한 중생들이었지.”라고 말한다. 권정생은 기독교 냄새 안 나게 썼을 뿐 아니라 불교용어까지 사용하였으나 연재는 마치지 못한다.
2.
「응달의 나무들」 연재가 중단되고 2년 뒤, 권정생은 『복음과 상황』 1992년 9월호에 「우리들의 하나님」이란 글을 발표한다. 잘 알려진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에 실린 그 글이다. 이 글은 잡지에 발표되고 나서 후폭풍이 있었다. 잡지를 후원해주는 신자들이 왜 그런 글을 싣느냐며 항의를 했다. 결국 글을 청탁한 기자가 쫓겨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된다.
「응달의 나무들」에서 순재네 할머니는 밤이면 옷매무새를 고치고 샘가로 가서 세수를 한다. 하얀 사기그릇에 정화수를 떠서 뒤뜰 석류나무 밑에 도리소반을 놓고 물그릇을 올려놓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칠원성군, 어지시고 밝으신 명천 하늘님이시여, 이 나라 백성, 골골마다 눈물 많은 불쌍한 백성,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루 속히 거두어 주소서. 설움을 거두시고 아픔을 거두시고 밝은 세상 열어 주소서. 우리 손자 우리 아들, 몸 성하게 보살피시고 이 목숨 다할 때까지 우리 순재 키우고 일하도록 힘을 주소서…….”(1회)
순재네 할머니의 기도는 “우리 손자, 우리 아들”을 위한 기도로 시작하지만 끝내는 은실이네, 영분이네, 쪼깐네를 위한 기도가 되고 설움과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한 기도가 된다.
교회에서는 이런 할머니의 기도를 미신이라고 우상이라고 매도하고 파괴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하느님」에서 권정생은 이런 기도야말로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이라고 말한다. 잡지를 후원해주는 신자들은 이런 권정생이 못마땅하였다. 글을 쓴 권정생을 어쩌지는 못하고 원고를 청탁한 기자의 밥줄만 끊어놓았다. 『굴렁쇠어린이』에 연재를 중단시켜 권정생이 글을 못 쓰게 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종교나 사람이나 외양과 형식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다고 해서 내용까지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종교나 사람이나 서로 보듬고 존중하고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응달의 아이들」과 「우리들의 하느님」의 일을 겪고 나서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기독교고 불교고 세계 어느 나라 신자들보다 유별나게 속이 좁고 남을 배척하면서 자기주장만 한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3.
1983년 권정생은 빌뱅이 언덕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사한 집에서 쓴 첫 장편은 『점득이네』다. 1987년에는 「점득이네」, 1988년에는 「팔푼돌이네 삼형제」, 1989년에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연재를 시작한다. 1991년 12월에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를 마칠 때까지 4년 10개월 동안 쉼 없이 썼다. 그리고 이 기간에 연재한 또 하나의 장편이 「응달의 나무들」이다.
- 「점득이네」 : 『해인』 1987년 3월호~1989년 1월호 연재
- 「팔푼돌이네 삼형제」 : 『평화신문』 19호(1988년 9월 18일~24일)~62호(1989년 7월 30일~8월 5일) 연재 / 『평화신문』 휴간으로 연재 중단. 미발표부분 단행본 출판 때 추가함
-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 『새가정』 1989년 7·8월호~1991년 12월호 연재
- 「응달의 나무들」 : 『굴렁쇠어린이』 1990년 1월호~8월호 연재 / 연재 중단
앞서 말했듯이 권정생은 장편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을 오랫동안 구상했다. 다행히 건강도 좋아져서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연재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또 새로 시작했다. 위에 정리한 연재 기간을 살펴 계산해보면 「점득이네」 「팔푼돌이네 삼형제」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와 「응달의 나무들」은 작품구상과 집필기간이 겹치는 때가 많다. 4편의 장편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전쟁, 분단, 통일, 가난 등의 주제를 각기 다른 구성, 다른 인물로 그려내었다.
「응달의 나무들」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산다. 순재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집을 나갔다. 은실이는 아버지와 둘이 산다. 어머니는 원자병 때문에 돌아가셨고 병을 이어받은 은실이는 힘겹게 살아간다. 영분이는 어머니와 둘이 산다. 오빠는 돈 벌러 나갔고 아버지는 농약 때문에 돌아가셨다. 쪼깐네 아주머니는 아저씨와 둘이 산다. 둘이 똑같이 모자라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순재네 할머니는 아픈 은실이를 돌보고, 은실이 아버지는 영분이 아버지를 돕고, 영분이 어머니는 또 누군가 힘들 때 손을 보탤 것이다. 서로 돕고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은실이네는 외딴집에 산다. 외딴집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응달 같은 곳이다. 외롭고 차갑고 쓸쓸하다. 그러나 응달에서도 나무는 자란다. 푸른 소나무들이 힘차고 튼튼하게 자란다. 서로 의지하며 자란다. 은실이네는 원자병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마을을 떠나 외딴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은실이네 외딴 집은 따뜻했다. 순재와 영분이가 들락거리며 놀고, 노루도 치유 받고 가는 곳이다.
은실이를 떠올리면 『밥데기 죽데기』(바오로딸, 1999)에서 원자폭탄 때문에 다락방에서 50년이나 숨어 살아온 인숙이가 생각난다. 인숙이는 원자폭탄 피해를 직접 입었고, 은실이는 태어나기도 전이지만 모두 원자병의 고통을 안고 산다. 전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응달의 나무들」에서 은실이 이야기를 다 끝냈더라면 『밥데기 죽데기』에서 인숙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순재를 떠올리면 단편 「할매하고 손잡고」(『할매하고 손잡고』 올바름, 1990)에서 할매가 손자의 손을 잡고 철조망을 넘어 할배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생각난다. 할매는 할배 때문에 손자까지 빨갱이 자식이라고 돌팔매를 맞는 일을 이제는 끊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응달의 나무들」에서도 공비라고 불린 순재네 할아버지 때문에 순재네 할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을지 짐작이 간다. 순재네 할머니는 순재를 데리고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려 한다. 「할매하고 손잡고」의 할매와 「응달의 나무들」의 순재네 할머니가 손자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은 똑같다. 「할매하고 손잡고」도 4년 10개월 그 기간에 구상하고 발표한 동화다.
권정생 동화에는 톳제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응달의 나무들」에서는 순재의 친한 동무로 나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동무라고 한다. 이제 10살 아이인데 세상에서 가장 친한 동무가 톳제비란다. 순재는 밤이면 톳제비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슬픈 마음을 달랜다. 어린 순재의 외로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순재는 톳제비에게 꾸구리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지금까지 권정생 동화에서 톳제비에게 이름을 붙여 준 건 『팔푼돌이네 삼형제』가 처음이었지 싶다. 경상도 골짜기에 사는 팔푼돌이, 칠푼돌이, 육푼돌이와 북쪽에 사는 날개돌이, 번개돌이, 안개돌이 그리고 광주 무등산에 사는 개똥돌이, 쇠똥돌이, 말똥돌이다. 이 연재를 끝내고 「응달의 나무들」에서 등장한 톳제비 이름이 꾸구리다. ‘꾸구리’는 권정생이 키우던 개 이름이다.
우리 집 꾸구리 눈빛깔이 너무 예쁘다. 강아지 주제에 항시 눈동자가 젖어 있는 듯 애처롭게 하늘을 쳐다본단다. 여섯 달 전에 장에서 사올 때, 제일 작고 빼빼마른 걸 골랐던 것이 너무 무던하고 착해서 오히려 걱정이다. 처음엔 강아지 사려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꾸구리 보는 순간 가엾어서 사온 것이란다. 꾸구리는 된장에 비빈 밥을 제일 잘 먹는다. 싱싱한 무잎과 배추잎도 잘 먹는다.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 종로서적, 1986, 259쪽)
1983년 10월 5일 이현주에게 보낸 편지다. 빌뱅이 언덕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 권정생은 사방이 어두워지고 외로운 밤이면 순재처럼 꾸구리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동무 했을까. 순재가 아버지를 만나고 나면 꾸구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응달의 나무들」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시작했는데 멈춰지니 그저 뒷이야기가 궁금하니까 해보는 생각일 뿐이다.
폭풍처럼 장편 연재를 쏟아내고 나서 2년쯤 휴식을 취한 권정생은 『민들레교회이야기』에 「한티재 하늘」 연재를 시작한다. 1994년 3월 11일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는 이렇게 쓴다.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들의 살아오신 이야기라 여기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미안하지만 이 일만은 꼭 해놓고 죽고 싶습니다.(『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2008개정판, 300쪽)
『한티재 하늘』은 권정생의 어머니 이야기를 쓴 자전소설이다. “미안하지만 이 일만은 꼭 해놓고 죽고 싶습니다.” 이 말이 지금까지는 『한티재 하늘』에만 해당하는 특별한 말처럼 생각되었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권정생의 건강이 견디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이 말은 모든 장편 연재를 시작할 때 권정생의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2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40년을 더 살았던 권정생은 아마도 늘 “미안하지만 이 일만은 꼭 해놓고 죽고 싶습니다.” 이런 다짐으로 연재를 시작했을 것 같다. 모처럼 건강이 좋아져서 의욕을 갖고 시작한 연재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이 건강이 아닌 다른 이유 때문에 중단된 것이 그래서 더 많이 안타깝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