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아무리 부와 권력과 명예가 우리를 지배한다고 해도 외로워 하는 존재입니다 이유는 우리는 보이는 불질과 권력과 부로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존재이며 우리의 태생으로부터 죽음까지 사랑없는 껍데기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거나 체감하지 못한 채 아쉬움으로 생을 마감하는 많은 세상 속의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필요한 부분에 만족과 풍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홀의 수단으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목적을 존재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적이 달라진다는 것에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리일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 사랑하라 "는 것을 강조하고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도 세상속에서 빛과 소금과 같이 초와 같이 희생을 하고 살아 가는 것에 기쁨과 보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질이 무엇이기에 그런가 살펴 보겠습니다 많은 양의 부분이지만 요약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성경 고린도 전서 13장은 우리는 사랑의 장이기도 하지만 신앙인의 교과서 이기도 한 부분의 성경의 의미를 갖습니다
1.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가치가 없습니다 ( 고전 1-3 )
분명 하나님의 역사는 이세상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일어나지만 (이루어 가지만 : 그로 인해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리의 무능의 자체를 나타내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세상의 조금의 지식이나 가진것으로 얼마나 자랑하고 교만하고 거만하다가 넘어지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까 ? 이유야 환경과 주변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의 거만과 교만과 자랑으로 인해 넘어진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달변가들이 왜 재미는 있지만 기억에 남지 않음이 이 에 근거합니다
2. 사랑이 없으면 어떤 지식도 가치가 없습니다 (2절 ) 지식은 많으나 배려 없는 이기심의 사람이 성공한들 희생없고 봉사함이 없는 그 성공의 가치가 얼마나 있겠는가 ?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필요를 채워주며 편의를 제공을 하였다고 하여도 행위만으로 사랑의 실천이라고 할 수 없음은 사랑이 없는 행위는 지식이나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앞서서 행한 것이라면 더군다나 가치는 없다고 하고 우리는 " 자랑" 혹은 " 자랑만 되게( 되지 않게 ,도비바라지게 , 역겨웁게 ) 한다" 라고 표현합니다 겉으로는 옹호 할 수 있으나 속으로는 니미 인간관계의 실패를 한것입니다 관계의 실패는 모든 것의 실패를 말합니다 인간의 관계는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
3. 사랑이 없으면 어떤 능력 위대함도 가치가 없습니다 ( 2절 )
여러분은 우리의 구원이 무언가 해서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행위에는 한계가 있고 거짓과 가증일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의 구원은 오직 에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은혜의 베프심을 인정하고 그를 위해서 순복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 그대로 행하는 것이 우리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 거듭난자, 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 우리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을 존재입니다 누구를 용서를 하기 위한 권력과 부의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용서하여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인류의 죄를 과거로 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용서하시고 구원으로 유리의 삶을 새로이 확증하심으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은 시기와 질투와 경쟁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본질적 자존심입니다 본질적 자존심 위에 우리에게 주어진 허락된 능력과 권세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후 5:16-18)
4.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 고전 13;4 )
참는다는 것은 1) 고난을 당해도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이며 2 ) 농부의 심정으로 씨를 뿌리고 추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살면서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 연속적인 환란을 당하며 사는 우리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죄를 범하여도 된다는 세속적 주의자들과 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 눈은 눈으로 "식의 과거 유대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함을 더디하라고 합니다 노함을 더디하고 절제함은 자신을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지혜롭고 은혜스럽다고 함은 하나님을 본받아 (출 34;6) 기다리고 믿음과 신앙이 성숙할때까지 기다리는 훈련하고 절제하며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5. 사랑은 온유한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란 , 겸손함으로(헬라어) 혹은 비천함 의 의미를 갖지만 의미는 자신의 할수 있고 주권도 있지만 그것을 내세워 파벌이나 분열과 분쟁을 조장하는 것으로 하는 이 아니라 화해와 덕과 화합의 것으로 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비천과 비하와의 내용과는 다른 것입니다 빌2:6-7에 "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 라고 성경은 기록하셨습니다 무엇이드지 하실 수 있고 그런 능력의 창조주 하나님 과 동일한 사역하신 예수님도 자신의 권능을 자신을 위해서 단 한 번도 쓰신적이 없으신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능력자라고 해서 남을 비하하저나 상처주신 에수님의 모습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속의 인물중 사람만이 상처주고 비냥거리고 모략과 중상을 일삼은 기록들이 많은 것입니다 스스로 무엇인가 된냥 살았던 자들의 비극적인 말로 (예: 사울의 왕으로 쓰임받다 스스로 자살로 새을 마침 / 사무엘 하- 열왕기상 전반장 ) 를 우리는 너무나 잘알고 사울을 비난하고 손가락질과 저주를 한 우리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 우리도 사울과 다룰 바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
6. 사랑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 인간에게 능력과 비전과 소유를 주었습니다 이미 "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기 전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그것을 잘 지키고 온전하게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탐욕과 탐심으로 남의 것을 바라고 소유하고 싶은 순간 우리의 노력과 근면성은 사리집니다 인간의 타락은 여기서 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계명을 어길 때 그라고 바벨탑을 쌓을 때 노아의 홍수가 오기전 의 인류는 " 하나님과 동등하다" 는 사고의식에서 모든 재앙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 남의 소유나 재능이나 물건에대해서 탐욕과 탐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할 만큼 이미 주어진 것이 오늘 우리는 여전히 주어진 것을 보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고 " 주시옵소서 "를 간구하지 않나요 이제는 "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고 간구함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7.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인류의 실패의 원인이 된 "자랑 " " 자랑함" 이 가문의 영광( 영화) 에서 " 그게 내 욕심이니 ? " 하는 대사에서 처럼 자신을 위한 욕심이 비교와 열등의식과 함께 자신만 유익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했습니다 이웃고 비교하여 자신의 것을 열등하다고 판단 채워서 우월하려고 하는 판단이 들때 좌절과 상처가 발생하게 합니다 또 타인과의 관계의 담을 높이 쌓음으로 인해서 자신까지 흠을 내며 스스로 상처를 안고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는 늘 부족하고 연약함이 영광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 분명 " 그때 ........ 그럴 걸 " 하고 후회하는 유언을 남길 것입나다 지금 내가 아니 우리가 자랑을 하기를 좋아하거니 그로 인해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기를 권면합니다 오히려 겸손과 낮아짐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기억하십시다 사실 알면 얼마나 알겠고 모르면 얼마나 모르겠는가 ?
8.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자랑과 비숫한 교만은 자아의식면에서 타인을 무시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반발과 실족의 연속을 행하면서 다툼과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소중함과 절대적 가치를 모른채 생명을 소홀히 경시하고 외면함도 불사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고 가치있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며 서로가 서로를 향해서 사랑을 할 대상입니다 외면함이나 경솔함으로 대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화'노리개' 나 많은 영화속에서 그런 장면을 내보내고 보면서 우리는 적지 않은 아픔을 겪는 것은 누군가는 이순간도 그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보는 자로 그렇게 살라고 은근의 권면을 하기도 합니다 마치 그것이 바른 삶인냥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길거리에 다니다가 애완견을 판매하는 가게 앞에 서면 그 주인을 다시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있는 개체가 그속에서 진열 상품같이 사는 것입니다 사랑도 투기도 아니지만 이미 강아지 고양이란 개체성은 사라지고 오진 상품으로서의 존재가 재롱을 떠는 것이 마치 귀여운 냥 생각하지만 그 속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당신이 그 속에서 하루 종일 진열 상품과 같이 살아간다면 당신은 그렇게 재롱을 떨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는 순간 그 마음속에 이미 타인을 무시함의 악성이 들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본인들은 동물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을 합니다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 당신이 그 유리 칸속에서 살아가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을 보고 귀엽다고 하고 들어와서 원치 않는 만짐과 고통을 통해서 피곤한 삶을 살아야 한다면 당신은 행복한가 ? " 라고 말입니다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고 누구든지 막론하고 천하보다 귀하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늘 겸손하고 정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벌레같고 냄새나는 우리를 친절히 대하셨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8 덕목에 대해서 서로간의 은혜받고 사랑 받기 위해서 축복 가운데 나누엇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알맹이와 내용의 중심 보다 외형과 형식과 격식과 겉치례와 무가치한 껍데기에 집착해서 살았습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에 말입니다 이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을 하고 감단을 하고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어떤 희생도 봉사도 구제도 교제도 아무 의미 없는 것에 치우침이 없없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축복된 사람으로 딛는 자든 아니든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의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