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 / 정호승 (구미향 낭송)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님의 침묵 / 한용운 (윤윤분 낭송)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 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휴화산이라예 / 정숙 (이인숙 낭송)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사화산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꺽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자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해당화 / 한용운 (김희태 낭송)
당신은 해당화가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 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이 되고 셋도 됩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홍명순 낭송)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볼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