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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팔아 남아] 대전고등학교의 교가 후렴에 '남팔아 남아' 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 남팔아 남아(南八아 男兒)의 뜻
註 : [사전] 남팔남아종불굴(南八男兒終不屈) : 당의 남제운(南霽雲)과 장순(張巡)이 함께 절개를 지켜 적에게 굴복하지 아니하였다는 데서, 절개 있는 대장부를 이르는 말. ‘南八’은 南氏 가문의 여덟번째 사내란 뜻. 그래서 남제운을 南八이라 稱하였다. <동아 백년옥편 p.343.1998년> .
※. 누가 南八兒를 아시나요? <==검색어
남팔(南八 남제운(南霽雲)) 남팔(南八) : 당 나라 때의 충신인 남제운(南霽雲)을 가리킨다. 남제운은, “공께서 절 알아주었으니, 어찌 감히 죽지 않겠습니까.” 하고, 함께 순절(殉節)하였다. ※. 대전고등학교 교가(校歌) 창제(創製) 당시의 시대적배경(時代的背景)을 살펴봅니다. 필자(筆者)는 대전중학교 4회(1954년 졸), 대전고등학교 36회(1957년 졸).
☆. 대전고교 교가 창제 당시의 시대적 배경(大田高校 校歌創製當時의 時代的背景 ) : 1950.06.25 한국전쟁 발발 1951.08.31 초등학교 졸업식. 제1회 연합고사 1951년 3월 대전중학교, 대전고등학교와 분리. 대전중 1회 졸업 1951년 8월 대전공고,한밭중학교 분리 1951.09.20~1954.03.31 제1회 연합고사 입학자 중학교 과정 이수. 졸업 (대중4회, 한밭3회) 1951년 대고 교가 새로 제작. 대전중 교가 그대로 두고-. 교훈: 진실, 용기, 순결은 중.고 같이 사용함. 6.25동란으로 어수선한 전쟁 중에 대전고등학교의 교가(校歌)가 새로 지어졌다.
註 : 벼리= 책의 첫 머리에 책의 내용을 추려 차례로 벌여 놓은 줄거리: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줄거리/ 벼리-다 = 날이 무디어진 쇠붙이 연장을 불에 달구어 두두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 벼리로 삼아 = (우리가 나아갈 길의 목표를 간명하게 나타낸 표어) 훈(訓)으로 삼아 . 순결 = 아주 깨끗함 남팔아 남아= 절개 있는 대장부 대전고 교가 가사 내용은 "장백산 정기가 계룡에 모이고, 유유천년 백마강이 흐르는 한밭 동산에 "남팔아 남아"의 기백(氣魄)은 날뛰고, 선열의 불굴(不屈)의 발길 익혀. 조국(祖國)을 향한 단심(丹心)의 수련(修練)을 멈출 줄 모른다" 이다. 태평양 품안에 대전중학 교가와 같은 맥락(脈絡)이다. (왜 하필이면 장백이냐? = 만주는 우리땅이다. 장백산 밑자락에 간도 땅이 있다./ 왜 태평양부터 나오느냐? 계룡산,보문산도 있는데? = 지구의(地球儀)를 거꾸로 돌려 보라! 태평양이 눈 위에 보인다. 넓은 세계를 향한 누리에 빛날 그윽한 별들아...)
대전중학교 교가는 교가창제 이후 1960년대 초부터 가사는 그대로 둔 채, 곡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 가사도 한줄 바뀌고 ... 이 것은 주인이 없는 틈에 생긴 일로 대단한 유감이다. 생각 없는 校長과 音樂선생이 있었다.
[얼굴도 인자하신 이관영 선생님께서 직접 작곡하셨다고 알고 있다. [<각주 : 52회 김훈의 웹문서: 누가 남팔아 남아를 아시나요? 에서>]
이관영 선생은 필자가 졸업한 후 한참 뒤 에 근무한 분으로 곡을 변곡 한 분이시지, 작곡, 작사자가 아니다. 필자가 재학당시 대전중학교의 교지(校誌) : 청람(靑藍)이 초간(初刊)되었다. 대전중학교 교장실이나 도서관에서 “청람” 교지를 확인하면 밝혀진다. ☆. 이상 교가와 그 가사에 대한 윤곽(outline)을 서술하고, 용어(用語) : “남팔아 남아”에 대하여 살핀다. ※ 위에서 그 전래(傳來)를 언급(言及)하였지만, 이씨조선에 이르러 이 성어(成語) “남팔아남아“는 인조 때 불굴(不屈)의 시조(時調)에 인용(引用)하였다. ※ <韓國의 旅行(1-8권) 李啓恩 中央書館 1983.6.10 초판발행 P.P 210~215 > 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병자호란과 남한산성(丙子胡亂과 南漢山城) : 척화파(斥和派) 김상헌(金尙憲)이 청나라의 출병 요청에 반대하였다 하여 , 인조 18년(1640년) 12월에 조한영(曺漢英), 채이흥(蔡以興)과 함께 심양으로 잡혀가는 몸이 되었다 잡혀 가면서, 김상헌은 다음과 같은 단장(斷腸)의 시조(時調)를 읊었다.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그는 1642년에 석방되었는데, 당시 청나라와 밀무역(密貿易)을 일삼던 선천부사(宣川府使) 이규(李袿)의 무고로 심양에 다시 잡혀 갔다가 1645년에야 풀려 귀국하였다. 그는 심양에 끌려가서도 시종일관 불굴(不屈)의 저항(抵抗)과 꿋꿋한 기개(氣槪)를 오랑캐들에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의 철저(徹底)한 저항정신(抵抗精神)은 다음의 시조(時調)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남팔(南八=(절개 있는 자)아 남아(男兒)이 사(死)이언정 불가이불의굴의(不可以不義屈矣)여다 웃고 대답하되 공(公)이 유언 감불사(有言敢不死)아 천고(千古)에 눈물진 영웅이 몇몇인 줄 알리오 ※. 結語 : 남팔(南八)은 “절개 있는 자”를 뜻하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다.
남팔아 남아 = 南八아 男兒 = 南八아의 “아”는 “이여” 호격조사(呼格助詞)이면서 감탄(感歎)의 의미가 있다. 보통 부르는 호격조사 이면서 강한 감탄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그냥 부르는 호격조사도 있지만 반갑고 기쁘고 잊을 수 없는 정(情)을 지닌 자에 대한 부름이다. 그 뒤의 男兒는 대장부(大丈夫)란 의미이다. 南八이란 사람의 그 기개(氣槪)와 정의(正義)와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精神)을 감탄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南八은 “절개 있는 사람”으로 고사(古事)로 성어(成語)되었다. " 남팔아 남아" 는 "南八아 南兒"이고, "절개있는 사나이(大丈夫)". "殺身成仁하는 대장부" 이다 조선 인조(李朝 仁祖)때 김상헌(金尙憲)은 “南八아 男兒이 死이언정”이라 시조(時調)에 인용 " 천고(千古)에 눈물진 영웅이 몇몇인 줄 알리오 라 읊었다. 대고 동문(同門) 중 4.19때 부정에 항거하여 순절(殉節)한 36회 이기태(李基泰), 손중근(孫重槿.중학교 때 孫星五), 37회 고병래(高炳來)가 남팔남아(南八男兒) 이다. 시대(時代)마다 어느 나라의 성어(成語)이든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인용(引用)할 수 있다. 시조(時調)는 고려 말엽부터 우리나라 고유(固有)의 정형시(定型詩)이다. 우리나라의 고사성어에 불굴(不屈)의 기백(氣魄)과 관련된 성어(成語)가 없으련만은,고사성어의 교훈(敎訓)이 되는 말은 중국뿐이 아니라 全 世界를 向한 對象이 되는 것이다. 시조(時調)에는 사믓 고사성어를 인용하였다. 요즘 교수(敎授)님들이 정치(政治)에 관련하여 매년 사자성어(四字成語)를 끄집어 내어 대상(對象)에 붙여 풍자(諷刺)하듯 말이다. 필자(筆者)도 중국대륙 당(唐)나라 때 남씨(南氏)의 古事에 나오는 남제운(南霽雲)의 절개(節槪)를 인용(引用)한 대고 교가 가사(歌詞)가 싫었었다. 그런데, 南八이 절개(節槪) 있는 자(者)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후세(後世)에 들어 유교사상(儒敎思想)의 영향을 받은 특히 우리나라는 조선(朝鮮)에 들어와 절개(節槪)있는 충신(忠臣)들이 시어(詩語)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대전중학교의 교가(校歌)가 가사(歌詞) 일부가 바뀌고, 완전 변곡(變曲), 변조(變調)된 것은 크게 잘 못 된 일이다. 대전고(大田高)의 교가(校歌)악보가 수년전 동창회에서 퍼온 악보(樂譜)는 조금 변음(變音)되어 있었는데 다시 검색해보니. 정정하여 깨끗하게 잘 되어 있는데, 아직도 5번째줄 후렴 "젊은희망"은 좀 어색한데 잘 모르지만 내 기억으로는 잘 못돼 있다. 학교에 교장이 새로 부임(赴任)해오면 교정(校庭)의나무가 수란(受難)을 겪는다. 이리 저리 옮겨심기 때문이다. 교장실 책상 위치부터 바꾼다. 자기 흔적을 남기려는 개같은 습성이 있다. 대고교가 창제(創製)당시는 6.25 전쟁 중 이었다. 애국심(愛國心)이 극히 필요한 시기이었다. 작사(作詞)하신 지헌영 선생님께서도 김상헌의 충절 글귀가 떠올랐으리라. 후배(後輩)에게 애국심을 고취(鼓吹)하고 싶었으리라. 선배 은사님 정계환(鄭啓煥)선생님께서도 남달리 애교심(愛校心)이 강하셨다. 교가의 의미와 가창(歌唱)방법을 일러주시고, 응원가(應援歌),구호(口號)를 만들어 지도해 주셨기 지금 잊지 않는다. 철도 야구장(野球場)에서의 우리 선수 응원(應援)에 대전사범학교 여학생들이 氣가 푹 죽었었다. 응원구호에 "암캐구리 숫캐구리 꽉꽉꽉 !" 은 응원단장 작품이다. 재미 있었다. "싸워서 이겨랏 싸워 이겨라 장하도다 우리우리 오늘도 또 만 만세! " 영국인가?미국인가? 군인행진곡에 가사를 붙였다. 그런데 대고 동창회 모교 홈에 그 때 응원가는 없어지고 요새 새로 만들어 붙여 있어 그 때가 더 그리웁고 씁쓸하다.
지금 대고 교가 가사(歌詞)를 바꾸자는 여론(輿論)이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다. 혹여 그런 짓일랑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총독부였던 중앙청도 保存하였으면 하는 것이 筆者의 心情이다. 후대들에게 과거의 쓰라림을 보이면서 교훈(敎訓)삼게 하고 싶었다. 옛 것은 보전(保全)하고 새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옳다. 우리 대전고의 교가(校歌)는 남들 것과 비교하여 웅장(雄壯)한 곡이고(마에스트로 maestro), 가사(歌詞 ) 자체가 심금(心琴)을 울려 애국심(愛國心)을 고취(鼓吹)하는 애국적 교가이다. 시조(時調)한수를 음미(吟味)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오늘날의 南漢山城> (韓國의 旅行(1-8권) 李啓恩 中央書館 1983.6.10 초판발행 P.215) 굴욕의 산성! 비애의 산성인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의 단장(斷腸)의 슬픔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겨레의 수난의 역사를 호소하는 듯, 고색창연한 옛 모습 그대로 산등성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 말의 어느 은사(隱士)가 읊었다는 시조(時調)가 머리에 떠올라 감개가 더욱 새롭고 옛 성터 초목에 새싹이 돋아 오니 그 향기가 성중에 가득하며, 한 송이의 꽃에도 한 마리의 새소리에도 눈시울이 뜨겁고 마음이 끝없이 설레 임을 느낀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이로다 오백년 왕업(王業)이 목적(牧笛)에 부쳤으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마침.
愛國心을 기르자! 祖上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리자 ! 眞實, 勇氣, 純潔한 우리가 아닌가? 南八아 男兒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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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제공 및 교정 : 36회 이계상, 김용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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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04.01 관립경성중학교 대전분교설치
1918.04.01 관립대전중학교 설립인가 및 개교
1921.04.01 대전공립중학교 교명변경
1947.04.01 대전중학교 교명변경
1950.06.25 한국전쟁 발발
1951.08. 제1회 연합고사
1951.08.31 국민학교 졸업식
1951.09.24 학제개편으로 대전고등학교와 분리. (대전중 1회 졸업)
1951.09.20~1954.03.31 제1회 연합고사로 입학. 중학교 과정 이수. 졸업
<2년6개월 과정> (대중4회, 한밭3회)
1951년 대고 교가 새로 제작. 대전중 교가 그대로 두고-.
교훈: 진실, 용기, 순결은 중,고 같이 사용함.
첫댓글 오류가 있어 다시 정리하여 붙였습니다. 게시글 올린자
대전의 대고의 36회는 태어나서부터 온갖수난을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겪지 않은 것이 없다
일제로 8.15해방 62.5남침전쟁과 9.28수복 1.4후퇴 4.19의거 5.16 .6.29 12.12 등 근 현대사에 수난의 고통을 다 겪었다
4.19 이후 주역의 희생적인 활동을 하였다 헐벗고 배고프고 못살고 초근목피의 생활속에 학업열중, 높은 경재률속에 살아야 했다
대고 백년을 앞두고 우리의 역사는 묻혀지지 않는다
열사 민주화투사 국가에 이바지한 인재들의 모임은 대고역사상 36장학회란 최초의 정식장학회를 만들었다 (총동창회에 귀속)
이런 역사의 흐름속에 위의 교가는 일맥상통한다 교가를 부를 때마다 감개무량한 뜨거운 눈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정요청한 단어는 모두 고쳤으니 계속 살펴보시고 메일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고 두고~ ㅎㅎㅎ
교가가 틀린 부분이 많았었는데, (누가 일부러 그런 것 같다. 얼마전에는~) 대고싸이트에 다시 가니 옳게 잘 고쳐져 있었습니다.
퍼다가 바꿔치기 하였습니다. 계상님이 가사를 정확하게 보셨군요. "대전에"입니다. 악보 음높이가 틀린 곳 4곳이 바로 잡혔습니다.
그런데도 다섯번째줄 7곱째 마디 "젊은 희망" 에서 "망" 의 음이 "도"가 아니라 "미" 같아요. 내가 늙어서 잊어 버렸나?
늙은 내 뇌 속에는 7째 마디가 아직도 3/4 1/4 2/4 2/4 "따안따 딴딴"박자 같은데 그 것도 그렇고-이상하다 인생이여! 친구들이여 교가를 불러 보세요! 그럼확인되겠지요. 알려 주세여!
교가가 악보가 어느 누군가의 교사에 의해 틀린 부분이 많았었는데, 오래 지나서 대고싸이트에 다시 가니 옳게 잘 고쳐져 있었습니다.(본 카페 홍보게시판 참조)
그런데도 다섯번째줄 7곱째 마디 "젊은 희망" 에서 "망" 의 음이 "도"가 아니라 "미" 같아요. 내가 늙어서 잊어 버렸나?
2013년3월23일부터 시작한(50회분) 주말연속극 TJBC "꽃들의 전쟁" 저녘 08:50 (3~4회)에 김상헌이 등장합니다.
어느 학자는 世界歷史를 바꾼 20人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20위 다윈,19위 당태종, 진시황이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면 당태종은 제2의 중국을 만들어 놓은 사람입니다. 18위 히틀러 로 부터 차례로 ,마르크스,스탈린,율리우스카이사르,나폴레온,살라딘,시황제,바울,아리스토텔레스,알렉산더,징기스칸,콜럼버스,채륜,플라톤,석가모니, 3위 공자,2위 마호메트, 1위 그리스도"라고...
당나라때 古事 "南八아 男兒"는 동양에서 부터 널리 퍼진 인류의 故事成語일 뿐으로 오늘날의 상황에서 중국으로 보내야 할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교가를 지켜서 이제 영원한 교가를 힘차게 부를 수 있다
교가에 대한 더 이상의 다른 말이 아니나오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