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나의 속내까지 털어놓고 살아오던 내 친구 고 신동남님은 식도암으로 2년 여 투병 끝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친구야!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자네씨가 영면한 지금 나는 몹시 견디기 힘든 슬픔에 젖으면서, 한 편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꾸 흥얼거림의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 고장 출신으로 국악계의 거목으로 살다 가신 동초 김연수 선생께서 말년에 지어 부르셨다는 단가 「이산 저산」이란 노래가 튀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 한 번 읊어볼까?
이산저산 꽃이 피면/산림풍경 너룬 곳/만자천흥 그림병풍/
앵가접무 좋은 풍류/세월간 줄을 모르게 되니/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만은/세상사 쓸쓸하구나/
나도 어제는 청춘일러니/오늘 백발 한심허다/
내 청춘도 날 버리고/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갈 줄 아는 봄을/반겨헌들 쓸데 있나/
봄아 왔다/가랴거든 가거라/
네가 가도 여름이 되면/녹음방초 승화시라/
옛부터 일러 있고/여름이 가고 가을이 된들/
또한 경개 없을손가/한로상풍 요란해도/
제절개를 굽이잖는/황국단풍은 어떠하며/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면/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이 펄펄 휘날리어/월백설백 천지백허니/
모도 백발의 벗일레라/그렁저렁 겨울이 가면/
어느덧 연세는/또 하나 더하건만/
봄은 찾아 왔다고/즐기더라/
봄은 갔다가/연년이 오건마는/
이내 청춘은 한 번 가고/다시 올 줄을 모르네 그려/
어화세상 벗님네들/인생이 비록 백 년을 산대도/
인수순약격석화요 공수래공수거를/짐작허시는 이가 몇 몇인고/
노세 젊어 놀아/늙어지며는 못 노느니라/
놀아도 너무 허망히 허면/늦어지면서 후회되리니/
바쁠 때 일허고/한가할 때 틈타서 이렇듯/
친구 벗님 모아 앉어/한 잔 더 먹소 덜 먹소 허여가며/
헐 일을 허면서 놀아보자/ 라고 하였는데/
백세를 다 채워 살아도 끝없이 돌아가는 자연 앞엔 속수무책 허망한 인생일진데 어짜자고 팔순은 놔두고라도 백세정명에 쉰아홉이라 예순 환갑의 세월도 다 채우지 못하시고 원통하게 떠나신단 말인가!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하늘에서 주신 자네씨의 명이 진정 그 뿐이시란 말인가?
동기들 다 사무관으로 올라간 고된 직장생활에서 오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병이 되셨단 말인가?
아니면 가족도 몰래 나한테도 말 못하시고 혼자 가슴으로 모듬고 썪혀야 할 괴로운 일이라도 있었단 말씀이신가?
허무하고 허무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말문이 막히며 눈물이 앞을 가리네.
봄은 가면 또다시 봄이 온다.라고 하였건만 한 번 가신 자네씨는 무엇이 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어 찾아오려는가!
새가 되어 넋으로 오시련가? 버들이 되어 잎으로 오시련가?
지금 온 산에는 작년에 피었던 그 진달래꽃이 붉게 피었는데
저 꽃이 보입니까?
흐드러지게 늘어져 활짝 피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 사람과 함께 작년에 보았던 저 화사한 꽃도 못보고 먼저 가셨나요.
참으로 기가 막히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걱정 그리 많아 편치 않은 곳으로 먼저 가셨나요.
그렇게 오래도록 건강하게 산다고 말씀해 놓으시고
팔순이 지나고 백세까지 사신다고 오기까지 띠어가며 말씀해 놓으시고, 어쩌다 그 모진 병마를 만나 여러 날을 싸우면서 그대의 아내와 두 아들과 형제 . 자매와 수많은 지인들의 사랑과, 살을 깎는 기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결국은 그 모진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시고 이제 눈에 보이지도 않게 멀리 가시고 말았군요.
지금으로부터 두 해 전 어느 날 그대께서는 나에게음식을 먹으면 넘어올 것 같다.라고 간혹 호소하시면서 병원을 찾아 알아보니 수술을 해야 한다.라는 병원 측의 결과를 좇아 수술을 마치고 나서 결과가 좋다.라고 흐뭇해하시면서 얼마동안 병원에 입원치료를 하시다가 외래진료 지시를 받고 가정으로 돌아와 주기적으로 집과 그 먼 천리 길 서울대병원을 오가면서 통근 치료를 하시면서도 항상 밝은 표정으로 호전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지난해 2월. 그러니까 뽀짝 요맘때쯤엔 자네씨의 서울대 병원 내방일자와 이 사람의 차남 대학교 졸업일자와 맞아 떨어져 똑같이 당일 서울 일정을 마치고,
물론 당신께서는 당일 아침 차로 서울에 올라오신 처지로 힘든 일정임에도 불구하시고,
바로 그날 오후 귀가하는 나와 함께 하고 싶어,
우리 부부를 좇아,
우리 두 집 부부는 내 승용차로 서울에서 고흥으로 내려오는 귀가 길에 대전 유성 온천에 들려 온천욕으로 즐겁게 일박하며 몸을 풀고,
다음날 대전 유성온천에서 고흥으로 내려오는 길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끌어안으며 전라북도 부안군을 지나다가는 변산반도에 들려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변산 해수욕장, 불멸의 이순신 장군 영화촬영 세트장을 비롯하여 왕의 남자 영화 촬영 세트장 등 테마 여행을 즐기면서,
또 전남 무안에 있는 전남도청 신 도심지와 목포시내 한 복판의 눈부신 불빛의 야경에 취해 감탄과 감동을 쏟아내며 두루 거쳐 돌아다니면서
카셋트 음악에 맞추어 평소 건강할 때와 같이 늘 그랬듯이 이 사람과 함께 가수 이미자씨의 노래 동백아가씨를 따라 부르고, 기러기 아빠를 따라 부르며 재잘거리면서 희망으로 가득 찬 즐거운 시간 속에, 동행한 우리 두 집 아내들에게도 깜짝 놀랄 정도의 건강과시로 희망과 믿음을 보여주었고,
또 작년 가을날엔 두원면 갑계에서 전라북도 진안에 있는 마이산 등반을 비롯한 갑생 부부동반 여행 시에도 함께하여 동행한 갑생들 부부들에게도 반갑고 즐거운 마음으로 매우 희망적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무슨 변덕스런 병마가 이다지도 가혹하여 냉정하게 당신과 갈라놓게 만든단 말입니까?
그대 사랑함에, 그대와의 영원한 우정을 지탱하기 위해 의학은 문외한이기에 투병 정서의 변화로라도 그대를 꼭 일으켜보려고 틈이 나는 대로 그대와 만남의 시간을 만들어 차타기 좋아하는 그대를 내차에 태워 근거리 드라이브를 즐기며 숲이 좋은 산속으로 들어가 삼림욕을 권면했던 것이 오히려 해가 되어 이 사람과 쓰라린 이별의 아픔을 재촉했단 말입니까?
당신의 아내와 30년의 세월을 살아오시면서 사랑으로 뒷바라지해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인용이, 충용이 낳으셔 알뜰살뜰 키우고 다 가르쳐 놓고도 병원생활로 인해 두 아들 모두 대학교 졸업식장에 한 번 못가보시고, 또 취직한 것도 못 보시고, 더구나 두 아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는 날 혼주 석의 아버지 자리를 비워놓고 아내 혼자 앉힐 것을 생각하면 어찌 눈을 감으실 것이며, 또 형제자매를 비롯하여 그대와 정분을 쌓아왔던 그 모든 사랑하는 지인들을 두고 어찌 눈을 감으시려고 지금 떠나신단 말입니까?
남정네 나이 쉰 살의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제 그 고된 직장생활도 마무리하고, 또 2년 후에 맞이하는 예순 환갑을 전후로 자녀들의 뒷바라지까지 모두 해주고 나면 두 아들들에게 보은과 효심으로 가득 찬 사랑을 마음껏 받아 가시며 좀 더 나은 길을 친구들과 여럿이 함께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길을 갈 수 있는데 왜 다른 길로 가셨나요.
가족과 가정생활을 통해 친인척지간은 물론이요, 학창시절의 선 . 후배 동료지간에서부터 30 여 성상을 직장과 사회생활 통해 이웃을 보고 아파하던 당신께서 또 다른 세상으로 떠나시니 더욱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의 그 따뜻한 기억들을 낱낱이 주워 모아 추억의 그릇에 소롯이 담아 떠올리고 또 떠 올리겠습니다
세상에 대해 많은 그리움을 안고 가시니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그대의 부재로 인하여 우리 남은 친구들은 늘 그대를 그리워하며 그대의 몫만큼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늘 그대를 그리워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8. 3. 31
갑생친구 김 종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