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문학심층탐구
새 밀레니엄 시대의 어촌·어민문학
- 조헌용・김지현・한창훈의 단편소설을 다시 보며
임 영 천
새 밀레니엄 시대인 2000년대가 개막되면서 여러 훌륭한 문학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좋은 어촌・어민문학 작품들이 신진 급의 작가들에 의해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조헌용의 「전국노래자랑」(2000), 김지현의「금줄이 사라진 자리」(2002), 그리고 한창훈의 「해는 뜨고 해는 지고」(2002) 등이다. 새 밀레니엄 시대의 벽두(2000)~(2002)를 장식한 상기 세(3) 어촌・어민문학 작품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먼저 조헌용의「전국노래자랑」에 대해서이다. 이는 이 작가의 소설답게 ‘바다’와 ‘파도 소리’가 그 배경으로 되어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바다와 파도 소리는 무슨 낭만적인 분위기에 둘러싸인 그런 것들은 결코 아니다. 작가의 데뷔작(중편소설)인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1998) 이래 그 후속작「뿌리 없는 나무」(1999) 등에서도 보여주었던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관심을 작가는 이 작품(「전국노래자랑」)에 와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끈질긴 집념의 소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 작품들은 작가의 이 문제(‘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집념을 표현해 준 ‘새만금 간척사업 연작’의 의미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간척사업에 따른 보상금 문제가 대두된 후 그 인심 좋던 마을이 사분오열되면서 마을 인심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고 하는 보고는 이 작품 속에서도 다시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시청에서 쓰레기 매립장을 건립하려고 계획하다가 후보지로 선택된 곳이 이 마을(까침박)이었다. 이곳 까침박(까침바우 마을)은 방파제 안쪽 마을과 가까운 작은 바다로서 평소에 조개가 많이 생산돼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제법 솔솔한 벌이를 안겨주던 삶의 터전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지 건립의 여론과 함께 떠오른 보상금 제의로 약간 솔깃해진 이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합의 날인을 하기 시작해 결국 매립지로 되어버린 곳이었다.
그러나 정작 보상금은 그들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보상금을 관리할 책임을 맡은 어촌계장이 보상금을 챙겨 줄행랑을 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 뒤 그들은 매립지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는 형편인데, 시청 관리들은 그것마저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하게 자꾸 방해를 놓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까치 바우 마을 사람들과 시청 관리들과의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또 똥물 퍼붓기 사건까지 일어나곤 했던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서울댁(까침박 명가수? 최금희)은 한 많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달픈 삶을 살아왔다. 도망치듯 이곳으로 도피해 바다와 싸우며 살아왔건만 그 삶의 터전인 바다를 빼앗기고 이제는 포장마차 운영마저 하기 힘든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시청 직원들은 방파제와 바다(매립지) 사이를 철조망으로 막아버려, 제일 늦게 포장마차를 차려 요지가 아닌 후진 데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서울댁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이었다. 남편 장 씨가 어느 때 철조망을 잘라 버린 뒤 관청에서는 이를 원상 복귀해 놓지 않으면 법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는 팻말까지 붙여 놓은 것이다.
이런 때에 개그맨 송해 씨가 사회를 보는 전국노래자랑 예심이 있다고 이웃 촐랑이 아주머니가 신청서 용지까지 얻어다 주는 바람에 평소 제법 노래를 불러오던 서울댁이 예심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녀는 예심을 무난히 통과해 본심만을 기다리게 된 것이었다. 스무 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 가운데 예심을 통과한 이는 서울댁 혼자였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그녀는 노래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처지였지만, 정작 본선대회 날 그녀는 의외로 노래가 잘 풀리지 않아 ‘땡(실격)’―즉 ‘딩동댕(합격)’이 아닌―을 먹고 그 자리를 물러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 이유의 일단은 마을의 응원단이 자기 개인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포장마차를 응원하는 것이라는 그녀(서울댁 최금희)의 자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송해 씨의 사회 때 날쌔게 자기들―까침박 마을 사람들―의 생업 문제를 호소하여 여론을 불러일으키자는 목적에 마을 주민들이 그녀의 노래 솜씨를 이용하려 한다고 하는 자각이 그녀로 하여금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어떤 정신통일의 여건을 흩으러 놓았지 않았나 싶다. 어떻든 변명의 여지없이 그녀는 평소의 노래 실력과는 무관하게 낙선자가 되고 만 것이다.
노래방엘 찾아가 낙선을 달래기라도 하듯이 노래를 부르다가, 더 놀다가 돌아가자고 하는 일행의 요구를 뿌리치고 자기 포장마차로 돌아온 뒤, 서울댁은 ‘법적 책임’ 운운의 그 경고 푯말을 뽑아서 바다 쪽을 향해 냅다 던져 버렸다. 그러나 책임을 묻겠다던 날이 바로 모레였다. 실로 코앞에 닥친 것이다. 무력한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앞서 이미 뜯어냈던 철조망을 질질 끌면서 원래의 자리로 옮기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관에 굴복하는 듯한 마을 사람들의 패배감 같은 것을 엿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의 구절은 그들이 굴복한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지혜 같은 것을 터득해 가지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구나 하는 느낌을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안겨 준다고 하겠다. “아무래도 다시 철조망을 가져다 놓아야 할 것 같았다. 책임을 묻겠다면 어설프게라도 철조망을 세웠다 다시 걷어내면 그만일 터였다.” 그들은 어쩌면 강인한 잡초 같은 근성을 체질적으로 지녀야만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서울댁을 대표로 한 까침박 마을 사람들―지금의 생업이 겨우 포장마차 운영 위주(爲主)인―의 불행과, 송해를 사회자로 하는 전국노래자랑의 흥겨운 분위기가 서로 화합을 이루지 못한 채 진행되는 어떤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마을 주민들의 강인한 삶의 자세와 의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생동감 있는 농어민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김지현의「금줄이 사라진 자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소설은 일종의 어촌문학의 성격을 지니는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어촌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그리는 전통적인 어촌문학과는 다소의 차이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 그런 판단이 가능한가? 이 작품이 어촌 주민들의 현실적인 삶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민속적이고 풍속적인 면의 생활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소설 속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바다와 싸우는 어민들의 모습 그 자체라기보다는 바다와 싸워보기도 전에 이미 바다의 신에 굴복을 당해 동요하는 모습의 어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해신(海神) 달래기에만 여념이 없는, 또는 고기 잡는 일보다는 고기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십사고 바다의 신에 매달리는 일(해신제)로 분주한 어민 상(像)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겠다. 이른바 흉어기는 그들의 그러한 삶을 합리화시켜 주는 시간적 공백기가 되는 셈이다. 의당 풍어기에야 그들이 그런 일로 세월을 보낼 수만은 없지 않겠는가.
이렇게 표현해 보기는 해 보았지만,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다루어지는 이런 어민 상이 어느 특정 지역에 국한된 특유의 어민 상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어느 어촌이든 이런 풍습은 으레 있기 마련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우리나라 어민들의 보편적인 어민 상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 소설 속의 어민들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자들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오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다루었다는 것과, 그런 작업이 성공을 거두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전혀 별개일 수도 있겠는데, 작가는 문단 경력이 길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그런 어촌 풍속의 소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에 있어 득의(得意)하였다고 보겠다. 그런데, 필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소 엉뚱하게도 김동리의「무녀도」를 떠올리게 되었다.「무녀도」가 어촌 관련 소재의 작품이 아닌데도 이를 연상하게 된 것은「금줄이 사라진 자리」와 「무녀도」 사이에 엿보이는 주제 면의 유사성 때문이리라.
「금줄이 사라진 자리」란 소설 제목에 나타난 ‘금줄’은 우리가 통상 쓰는 말로는 ‘금기(터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이상 들어가지 마시오.” 또는 “이 줄을 넘어와서는 안 됩니다.“ 혹은 ”부정한 사람은 절대 출입 금지“란 의미가 이 금줄이란 말속에는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컴컴한 밤중에 금수(禽獸)가 뭣도 모르고 그 줄을 침범하는 일까지야 사람이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느냐는 뜻에서인지, 이 말은 달리 ‘인줄’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즉 그 금기는 (부정한)사람(人)에 관련된 금지 명령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래서 금줄과 관련해서는 인간 상호간의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이는 ‘법’의 원리와 사실상 유사한 것이다. 법을 제정하는 것은 인간인데 그 법을 범하는 것도 바로 인간이라는 사실과 원리상 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인간 상호간에 갈등이 조성되는 것이 아닌가?
어촌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계약에 의해 만들어 놓은 규약[금줄]이 그 규약을 만들었을 당시와 그 규제를 전통적으로 답습하는 후손이 살아야 하는 시대와는 사정이 퍽 다를 수도 있겠고, 또 그 전통적 규약을 강제 수행하려는 공동체 우두머리나 그 측근 세력과 그것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 힘없는 평민들의 처지가 많이 다를 수도 있겠으며, 또한 그 관행을 아예 미신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그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혁신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서 거기에 도전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서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어촌의 이 금줄 문제와 관련해 벌어지는 어민의 삶의 이야기가 결코 한 어촌에 국한된 어민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는, 인간이 사는 어떤 곳의 이야기로든지 그 의미가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정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범섬 마을의 어촌계장 박씨(와 아들 호식이), 평범한 위치의 마을 주민 정씨(와 딸 해숙이), 그리고 금줄에 얽힌 실제적인 피해자 송씨와(와 아들 현수), 이렇게 세 가정이 중심이 되어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서 금줄의 위력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 마을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일종의 권력자는 박씨(일가)로 보인다. 그 관습의 희생자는 종내 이 마을에서 추방되고만 송씨(가족)이다. 정씨는 이 중 어느 편에 속하지 않으면서 종국에는 박씨 편을 택하고 마는 평범한 인물이다. 이런 유형의 인물은 누구의 편이 된다든가 하는 식의 편당이나 작당 같은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편이지만, 처신을 위한 삶의 지혜가 그로 하여금 약자 아닌 강자 편에 서게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화자 ‘나’는 금줄 제도[관행]의 피해자인 송씨의 아들 현수이다. 어느 해 흉어기가 되어 해신제를 드리던 시기에 송현수는 태어난다. 그 사실을 감추어 보려고 현수의 부모가 애를 썼으나 허사였다. 결국 부정한 집으로 규정되고, 어촌계장 박씨는 현수의 집에 금줄을 두르고 송씨에게 얼러대었다. “섬을 떠나든 범산의 머리 쪽으로 이사하든 양단의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범섬 안 범산의 ‘꼬리’ 쪽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므로 그 산의 ‘머리’ 쪽으로 가라는 것은 곧 무인(無人) 지역으로 유배를 보내겠다는 뜻이었다. 범섬 자체를 떠날 수는 없었던 송씨는 결국 유배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배지라 할 수 있는 무인 지역에서조차 제대로 살 수 없었던 송씨는 끝내 서울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으며, 서울살이에도 점차 지쳐가던 송씨는 끝내 노점 행상의 현장인 도로에서 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그의 아들 송현수는 아버지의 화장 유골함을 들고 고향땅 범섬으로 찾아와 한 많은 아버지의 불행한 삶의 시원(始原)이라 할 그 금줄 제도에 반기를 듦으로써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어 드리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아예 숭어 떼가 다니는 바다의 길목에다 아버지의 뼛가루를 뿌리겠다고 벼르는 것이다. 그러나 박씨의 아들 호식이 형이 나타나 현수에게 섬을 떠나라고 협박을 한다. 옛날의 박씨와 송씨의 대결이 이제는 그 아들들인 박호식과 송현수의 대결 국면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옛날 박씨와 송씨의 대결 때는 박씨 편에 섰던 정씨의 오늘의 분신이라고 할, 현재도 섬을 지키고 있는 딸 정해숙은 그러나 박씨 편이 아닌 송씨 편, 곧 오늘의 강자 호식이 편이 아닌 약자 현수의 편을 결정적으로 들고 있다. 본심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살아야 하다 보니까 불가피하게 강자 편을 들어야만 했던 정씨가 이제 와서 그의 딸 해숙의 대에 이르러서는 그럴 수 없다고 ‘반기(反旗)의 대물림’ 선언이라도 하는 형국이다. 바로 그의 딸 해숙이가 그 일을 해 내는 셈이다.
송현수는 박호식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배에 태워져 육지 행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정해숙의 행동까지 동시에 통제할 처지는 못 되었던(그녀의 본심을 호식인들 눈치챌 수 없었으니까) 그는 해숙으로부터 결정적인 대미지(damage)를 입고 만 것이다. 그녀는 아예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송씨 아저씨의 유골함을 안고 자신의 몸을 그녀가 방화했음직한 불길 속에 집어던졌던 것이다. 그 불길은 옛날 송씨네가 살던 외딴집에서 번졌으나 그것의 더 큰 의의는 그 불길이 곧 인근 해신당 ―해신제를 드리는 처소인―으로 번질 수밖에 없었다는 데 있었다.
수적으로 3 : 2, 결국 박씨네 한 가정만 남고 나머지 가정들이 모두 파괴된 마을(폐촌)에서 박씨네가 계속 옛날처럼 구제도에 의한 보호 아래 잘 살아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하겠다. 필자가 앞서「무녀도」를 연상했다고 한 것은 신・구 세력의 대결에서 구 세력이 물러가고 신 세력이 새로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테마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만일 신 세력의 승리가 어폐가 있다고 한다면, 최소한 구 세력의 패퇴라는 표현만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신 세력의 승리 또는 등장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있으리란 것이다. 「금줄이 사라진 자리」란 이 소설의 제목은 바로 그 점을 암시했다고 보아진다.)
마지막으로, 한창훈의「해는 뜨고 해는 지고」에 관해서이다. 이는 그의 전작(前作)「숭어」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두 작품 모두 같은 어민문학 작품이라는 공통점과, 동시에 섬 마을[漁村] 사람들의 ‘결혼의 어려움’ 또는 ‘이혼의 두려움’ 등, 다분히 혼인 관련 문제를 취급하는 유사점이 지적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즉 섬 총각은 결혼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우며, 반면 기혼의 중년 남성은 이혼의 위협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자의 문제를 주로 제시한 작품이 「숭어」라고 한다면, 후자의 문제는 바로 지금 보게 될 「해는 뜨고 해는 지고」에서 다뤄지고 있는 셈이다.
50대 중반 나이의, 섬사람인 성근은 네 식구(본인・아내・아들・딸)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신세이다. 스물한 살인 딸 은례는 항구의 어느 고등학교를 졸업해 취직자리를 알아보느라고 집엘 별로 들르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회사 다니는 아들 은석이는 요즘 주식 투자로 손해를 크게 보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뿐이다. 그리고 아내는 지금 그와 갓 이혼한 상태이며, 어느 항구 도시에서 60대의 어떤 노인과 살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는 집에서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이다.
그가 아내와 이혼하게 된 과정도 그저 회고 형식의 과거사로만 나타난다. 아들에 관한 이야기[소식]도 그냥 풍문에 들려오는 정도의 것에 불과하다. 그가 그래도 얼굴이라도 한 번 맞댈 수 있는 가족 식구라곤 오직 딸애 은례뿐이다. 아내와 이혼한 뒤 더 미안해져 신경이 쓰이는 딸애이지만 지금은 그 자신의 재혼 문제 때문에 은례는 다른 면으로 신경이 더 쓰이기도 하는 존재이다. 딸애는 지금 취직자리를 알아보느라고 동분서주하며 어쩌다가 한번 집엘 들르는 때에도 아버지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 가지고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나 슬그머니 스쳐가는 정도이다. 얼마 전엔 패밀리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왔었고, 이번엔 취직을 위한 준비 기간에 쓰일 돈 5백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아버지가 땅 팔아 돈 얼마를 갖고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서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금 새장가를 들기 위해 일종의 역(逆)지참금 천2백만 원이 필요한 때여서 딸애의 요구를 들어주다간 그 돈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없다. 그는 딸애의 요구를 묵살해 버린다.
겨우 딸애 하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그 딸애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게 돼 가는 것이 안타깝다. 둘은 결국 ‘돈’ 문제 때문에 서로 결별해야만 할 것 같다. 딸은 아버지의 통장에서 5백만 원만 빼 쓰겠다고 하고, 아비는 그러면 안 되니 어서 카드를 내놓으라 하고, 옥신각신하다가 성근이 딸애의 뺨을 한 대 때린 뒤 강제로 지갑을 빼앗아 끝내 패밀리카드를 회수하고야 만다. 그리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었다. 은례는 항구 도시로 다시 떠나려고 선착장으로 향하고, 이 사실을 늦게야 깨달은 성근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객선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은례야, 은례야. 그가 딸아이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 보았으나 딸애의 응답은 없었고, 되돌아보려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이 섬에서 완전히 혼자(!)가 돼버린 것이다.
이 소설은 변화하는 섬 마을의 세태 풍속을 마치 눈으로 보듯이 묘사하고 있다. 오늘의 어촌의 세태 풍속은 완전히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는 그 시기를 카드회사 영업사원이 그 섬에 들어온 다음부터라고 하였다. 그것의 심각성을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그는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딸려 나온 것은 담배가 아니라 사각 진 패밀리카드였다.”라고 표현하였다.
또 어떤 사람의 입을 통해서는 이렇게 말하게 하기도 했다. “은석이 아빠도 알다시피 카드 아니라 카드 할애비를 들고 있어도 아무 소용없는 데가 섬이잖아요.” 자연히 섬 여자들이 섬을 빠져나가 항구 도시로 몰려가는 이유를 알 만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섬 마을에는 일하는 아낙들이 없게 되었고, 아니 가정을 지키는 아내들도 없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이혼과 재혼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화하는 황폐한 곳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구절들은 좀더 분명하게 그런 흐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아래의 것은 카드 사용의 편의가 어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화자가 지문을 통해 직접적으로 설명한 내용이다.
새로운 유행에는 확실히 아낙네들이 빨랐다. 그들은 카드를 한두 개씩 쥐고부터 밭일을 하지 않게 된 거였다. 뭐 하나 필요하다 싶으면 우, 항구로 몰려갔다가 예닐곱 개씩 사가지고 왔다. 아내도 그중 하나였다.
또 다음의 것은 마을의 단란주점 여주인이 이혼 위기에 처한 주인공 성근을 깨우치기 위해 참고로 해 준 말이다.
다 돈이 좋고 도시가 좋고 해서 그러는 거예요. 나부터도 솔직히 말하면 종일 뙤약볕 아래 힘들게 밭일 갯일 하는 것보다도 여기서 장사하는 게 훨씬 좋은데요 뭐.……거기서 고생하느니 아싸리 말해 편하게 사는 게 좋죠 뭐. 하여튼 잘달래봐요.
이처럼 오늘의 섬 마을[어촌]은 실리를 따라 움직이는 현세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그 세태 풍속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며 일종의 무녀도(無女島)로 화(化)하고 있는 셈이다. (*)
⃞ 한국문학심층탐구
중천(中泉), 김차영(金次榮), 실존주의와 현실주의, 그의 시세계
하 병 우
1. 머리말
말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색깔이 있다. 또 아름다움과 추한 것이 있고 강하고 약한 것이 있어서 나름의 온도가 있다. 따뜻한 말은 우리들의 슬픔을 감싸 안아주기도 하며 차가운 말은 우리들에게 외롭게 하고 화가 나게 한다. 또 색깔이 고울 때에는 예쁜 꽃을 보는 것처럼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추한 것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슬퍼지고 침을 뱉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말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갖고 있지만 그 표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우리들이 세상살이에 지칠 때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수다스럽게 말을 나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에 숨겨놓은 것을 때로는 글로 표현하기도 한다. 항상 내 글이 독자에게 외로움을 잊게 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한다.
니체가 ‘말의 향기’를 “그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기분 좋은 향기가 있는 반면 그저 겉돌기만 하는 악취가 있다. 우리가 쓰는 말에도 각자의 독특한 향기가 배어 있다.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말이 있고 그렇지 못한 말이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말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좋은 향기를 풍기는지 혹은 악취를 내뿜지는 않는지 유심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아무리 마음속에 좋은 뜻이 있더라도 표현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 반대로 우리의 입에서 쉽게 나온 말은 실언이 되고 만다. 최고의 지도자는 조언을 하기 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이를 들으며 판단한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사람들은 당신을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남의 말허리를 가로채어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상대방이 한마디 할 때 자신은 백 마디를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정신적 풍요로움을 느낀다.
금전적으로 인간관계가 풍요로워져서 성취감은 물론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는 경청은 상대방을 즐겁게 한다. 참을성 있게 경청함으로써 당신의 말은 주의 깊게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상대방에게 심어 주는 것이다. 유능한 사람은 듣는 데에 열중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말하는 것에 치중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최고의 지도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조언을 하는 것보다 조언을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들은 어떤 의사를 결정하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 신중하게 결정한다.
인간관계의 대가인 엘마 호이는 “거꾸로 가는 롤(role)”을 제창했다. 이것은 흔히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훨씬 좋게 한다는 원리이다. 첫째는 얘기하고 싶을 때에는 침묵을 지키고 둘째는 상대방에게 얻고 싶은 것이 있을 때에는 먼저 주며 셋째는 의견을 말하고 싶을 대에는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들으라는 것이다. 이 원칙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유용한 원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미국 전역을 돌며 효과적인 말하기 방법(대화술)을 강연한 데일 카네기 역시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제일 선호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어떤 인간관계의 기술보다도 중요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래상으로나 사교적으로나 책략을 쓰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상대방은 결코 호감을 갖지 않으며 오히려 뒤에 쓴 맛을 남기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에는 어디까지나 공손하고 정중하여야 한다. 상대방과 자신의 생각이 어긋날 때에는 조용히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무방하다. 참다운 행위로 볼 수가 있다. 사실 우리들의 쉬운 일은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질문이나 너그러운 말솜씨로 상대방에게 미소를 띠면서 대화를 하면 훨씬 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셈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충분히 자존심을 세울 수 있어 만족할 것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자아를 위축하는 것으로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다. 사람은 주목받는 것을 좋아한다. 이 세상에서 발생되는 대부분의 분쟁은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은 것이 최대의 원인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가를 그의 입장에서 듣고 이해해 준다면 인간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 간단한 원칙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에 옮기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유능한 사람은 상대방이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한 뒤 자신은 그 이야기를 경청하는 데 비해 그렇지 못한 사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논리만 펴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엿 볼 수가 있다.
필자는 출세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보기 싫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훌륭한 사람이란 말을 듣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또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듣고 싶다. 또 그 분의 글을 보면 진실성이 있고 아주 매력적이야, 요즘 능력 있는 사람이 웃기기도 잘하고 유머로써 주변을 사로잡는다. 어차피 사람이란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이미 나와 있는 답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아이슈타인은 “나에게 최대의 학교는 유머였다.”라고 했다. 유머는 독설이나 비웃음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어떤 부조리를 보고서 옆에서 웃는 것이 아니라 칼라인이 말한 것과 같이 함께 웃는 해학이다. 자기가 자신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유머감각은 나오지도 않고 상대방의 유머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좋은 것은 용기이다. 용기만이 모든 가치를 창조한다.”고 니체는 말했다. 책 한권을 읽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과 읽을 만한 책을 기다리다가 지친 사람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체스터턴)
2. 김차영의 시선
걸러 낸 시간들은
시간의 찌꺼기로 버짐 먹었다
버짐은 오징어 뼈로 굳어 갔었고
곰팡이 술은
어느 생활 한복판에서
비바람이 다지는 세월에
돌로 변하는 깻묵이
켜져 있었다
이렇게 시간들은
시간의 찌꺼기로 버짐 먹었다
짓푸른 도시가
떡고물같은 군중들의 현재가
버짐 먹고 있었다
그 현재의 어딘가에 묻혔을지도 모를
지남철에 묻어 오르는 녹쓴 쇠붙이
나의 얼굴이 거기 합계되어
함께 버짐 먹고 있었다
- 「버짐」
어느 하늘이던가
엇갈리는 기억들로 하여
자기 제한에의
의미가
꼭 필요했었을 것인데
그것은 현재로
놓여진
원근 그 어중간일뿐
당초의 현재로서는 결코
아니었었다
위대한 공백 그 미래에로
불문된 채 너와 내가
오늘로 묻히고
삶을 재미는 공포의미 만을
아픔의 생애로 살고 있다
상아의 꿈 너는
어느 빙하의 미학이던가
기억에의 거리는
헤일 수 없는 각질의 년령을
허구하게 쌓고
우리는 또 허구하게 그것을
쫍고 있다
- 「기억에의 거리」
한여름 엉겅퀴는
창백한 세월의 축대로
무섭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현재의 다혈로도
거스를 길 없어
시간에 역류하며 무엇인가
해발기는 형국이었다
그것은
불면의 까칠한 환상이었다
모두가 멈춰길 껏 고랑의
이쪽과 저쪽에 마주한
공간의 이랑 너머로
너는 물론 나도 아무것도 모른다
사실 모두가 낯서러움에
오뚝 서서 있을뿐
엉겅퀴 해발기고 간
창백한 세월의 축대를 돌아
한여름은 도시의 골목으로 젖어들었다
너와 나와 저 무수한
밤들과의 함수 그것처럼
다육식물의 생리로 탈북하다가
거꾸러진 죽음들과 더불어
우리들이 빨갛게
가을이 육체가 물들고 있었다
- 「밤들과의 함수」
옛날의 현재를 파해치고 있다
적석층 목방에 담긴 죽음의 썩은 부활
가로지른 대호활자의 왕기뿐인가
시대의 영혼들은 온대간대 없었는데
한상 금환 귀고리 빈 하늘서
입화식 금관을 마다하는 고양이는
한여름 가믐날씨를 사납게 할퀴고 있다
누군가의 검은 살갖, 그 껍데기가 찢기고
람만한 자국이 심줄이 돌아난다
청명한 날씨의 탓이던가
신라 고분기는 눈부서 따가워 했다
- 「신라 고분기」
세월은 십년쯤을 에누리했다
또 십년쯤을 덤으로 살아왔다
기억의 살점들이 모조리 문드리진 채
시간의 의미들은 전연 상관 않았다
비린내 나는 목구멍 나의 가슴팍으로
과거의 현재는 결핵의 뿌리가 되었다
그 가지사이에 얽힌 거미줄로는
풍덩이의 죽음이 쬐고맣게 매달려 있다
가슴속 깊은 동국서 클럭거리는
세월의 앓음은 그대로 내버려두자
죽음의 연유가 빨간 혈담에 있지를 않고
시커먼 결영의 응고인 것인지라
장차는 모두가 풍화될 그 뿐인것인데------
- 「풍덩이의 죽음」
한여름 되약볕 아래를
자갈밭길은 내일로 뻗어 갔다
턱에 받친 초조함은 헉헉
단내를 불어대었다
누구네 블록담을 끼고 돌은
골목안 이쪽과 저쪽의 두 그림자
너의 도주가 나에게 있었고
나의 추격이 너에게 있었고
나의 추격이 너에 미치지 못하는
그러한 함수가
벽사이의 절벽이 되었다
누군가가 몰아쉬는 숨결이었다
가슴팍에 메아리쳐 오는 파도소리
애매한 삶의 의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의 전부라 우겨본다
그 전부를 야구 공만큼으로
만축시켜
손아귀에 불어쥐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안의 너는 누구냐
끝없이 쫓고 쫒기고 또
------ 쫓고 쫓기는 허깨비가
분명하다
나는 누구가의 좁혀지지 않는
그만큼의
상거된 시간의 거리를
자꾸 댕겨보러하는 그대는
누군가의 허깨비가 분명하였다
- 「허깨비의 두 그림자」
바람의 날개, 동결
되어간 별의
항구
바람과 나와 별과 그
거리가
삶을 의미하였고
아니 어쩌면 그것이
부정되었고
내가 나의
편향에로
쫒기고, 그
압력으로 경멸을
받고 있는 주검에 대한
잠월한 생각은
나와 별과 바람의
추억하는, 그
풍습의
---부분처럼
나의 격리하여간
현실의 저쪽
<우리는 시보다 약정서를 써야했다>
포을 발레리가
나를 위해서 남긴
이러한 기억
그 기억은
바람의 날개, 동결
되어간 별의
항구
- 「별의 항구」
3. 실존주의와 현실주의
<실존주의>
아네스 푸아리에작가는 독일점령기만큼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나치의 맹독이 우리의 사고를 해치고 있었기에 자유로운 사고 하나 하나가 전부 승리였다. 우리의 투쟁 상태는 끔찍할 때가 많았어도 이 피폐하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 이른 바 <인간조건>이 우리에게 열린 삶을 허락했다고 했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의 <카뮈>가 ‘이방인’을 쓰고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탈고 했으며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는 실존주의의 유행을 알린다. 사르트르는 ‘전쟁은 모든 사람을 환상에서 깨워 알몸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을 뿐이며 아마도 이것이 유일하게 유익한 결과물인지 모른다.’고 했다. 실존주의는 문학, 미술 분야에서도 대안을 제시했다. <누보로망>의 ‘신소설’이 출현했고 앵포르멜<비정형>운동이라 불리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의 표현이 유행했다.
전후문학은 1953년의 휴전이후에서 60년대의「사상계」(1953년) 「문학예술」(1954년)「자유문학」(1955년) 등의 잡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으며 시대상의 반영을 가장 크게 입은 문학으로 규정할 수 있다. 모든 전쟁문학이 그렇듯 한국의 전쟁문학도 넓은 뜻의 휴머니즘을 기본으로 하여 출발하였다. 전쟁 속에서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주요한 주제로 부각될 때 이 자리에선 인간성 본래의 상태를 문제될 수밖에 없다. 이 전후문학의 휴머니즘이 서구의 전후 (2차 대전 이후)와의 동시성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근거로서 실존주의 철학과의 관련이 주목된다. 사르트르에 대한 소재는 6⦁25 이전의 「신천지」(1948.10)에 이미 있었으나 이것은 특히 단편적인 호기심의 단계를 넘지 않았었다. 전후비평에 와서야 사르트르, 말로, 카뮈 등이 상당한 활기를 동반하면서 수용되는 데 이것은 창작에 직결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게 된다.
그러나 작품들이 실존주의 철학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는 좀 의심스러운 바가 있다.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의 근거는 확실했고 소위 전쟁으로 인한 극한 상황이 그것이었다. 한국 전쟁에서 실존주의 철학에 공감하거나 그것과 자신과의 유사성을 도출해 낼 수 있는 이유가 충분히 마련 돼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존주의 철학을 문학예술상의 범주에 속하여 모더니즘에서 예상의 큰 흐름을 분류하면 리얼리즘계와 모더니즘계로 두 개의 종류를 나눌 수가 있다고 하겠다. 모더니즘계의 철학적 기반은 실존주의자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혼자 있고 따라서 불안과 공포를 속성으로 거스르며 인간 상호간의 유대란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무역사성의 존재로 파악되며 사르트르의 희곡「파리떼」, 카뮈의「시치포스의 신화」, 카프카의 「변신」등이 보여주듯 끝내는 병리학에 함몰 해버리는 데 귀착한다. 이상(李箱)의 문학 또는 이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실존주의 철학은 리얼리즘계 비평에서 가령 루카치같은 비평가가 가장 못 마땅 해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말기 현상의 철학임이 드러나는 것이 될 것이다.
<현실주의>
학문의 역사를 정치적, 정신적인 사건 전체에 독자적으로 시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당성 여부를 떠나서 판단과는 관계없이 한 과목의 상태를 독자들에게 알릴 필요성이 존재한다. 이것은 내용을 학문의 자율적인 역사과정내에 존재하는 한 부분으로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어느 시점에서 총체적인 문화적 위치의 요소로 밝혀 제시하는 것이다. 만일 문학사가 위기에 처한다면 이 위기는 좀 더 일반적인 어떤 현상의 부분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문학사는 한 과목일 뿐만 아니라 그 발전과정 자체에서 일반 역사의 한 계기점이 될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지적 흐름이라는 거대한 강물은 비평가가 이 강에 수력발전소를 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낙차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초현실주의의 경우, 이 주장은 프랑스와 독일간의 그 수준 상에 기인된 의미가 된다. 1919년 프랑스의 문인들로 이루어진 데에서 엿볼 수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전후 유럽을 휩쓴 권태와 프랑스적인 퇴폐라는 조그만 도랑물이 합류한 시냇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현실주의의 ‘신빙성 있는 원천’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이 운동을 오늘날에도 한 문인들이 존엄성 있는 공공성을 다시 한 번 신비화 시킨 것이라고만 평가할 수 있는, 지나치게 현명한 사람들은 전문가의 모험처럼 지냄에 불과하다. 문인들은 그 흐름의 원천에서 심사숙고한 끝에 이 조그만 시냇물에서는 결코 큰 발전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된다. 또한 문학의 영역은 내부로부터 뛰어나온 것이며 <문학적인 삶>이란 것이 서로 결합된 집단으로서 그 가능성의 극단적인 한계에까지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에 현실주의에서 전개 돼 나왔던 변증법적인 씨앗이 처음부터 눈에 띠지 않고 별로 중요치 않은 실체 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은 이 운동의 발전이 아직 예상되지 않았던 시기인 1924년 아라공의 「꿈의 파도」에서 제시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지금 이러한 변형단계에 처해있다. 초현실주의가 그 창립자들을 거쳐 영감에 가득 찬 <꿈의 파도>라는 모습으로 나타날 예상에 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시대에는 가장 총체적이며 완결된, 절대적인 것으로 보였다. 초현실주의가 와 닿는 모든 것은 그와 같이 융합되었다. 즉 언어는 소외와 상(像), 그리고 상의 소리가 자동판매기에 동전이 꼭 들어맞듯, ‘의미’라는 동전에 전혀 빈틈없이 들어맞는 그런 자동판매기적인 정확성으로 요행스럽게 서로 들어맞을 때에만 언어 그 자체로 나타난다. 언어는 의미만을 앞서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주체인 ‘나’로 앞서고 있다. 꿈은 세계의 구조 속에서 마치 벌레 먹은 이빨을 흔들어 대듯 개성을 표현한다. 초현실주의 서클의 글들은 문학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것, 즉 선언문, 담화, 다큐멘트, 속임수, 기만 같은 문학을 주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은 이 운동에서 이론이나 환상이 그 주제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경험이 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고 있는 도덕적 과시주의이기도 하다. 자기 고유한 존재에 관련된 문제 등에서 신중하게 비밀을 지킨다는 것은 한 때 귀족적인 덕행이었으며 이로부터 차츰차츰 이것을 신흥소시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또한 초현실주의자들의 하나인 <조그만 세계>이다. 다시 말해 큰 세계, 즉 우주에서도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역시 이곳에서도 교차로가 있고 자동차들이 움직이는 속에서 지적 시그널은 반짝이며 생각해낼 수조차 없는 사건들의 유사성과 얽혀 짜임 등이 일상의 질서 속에 들어 있다. 이것이 초현실주의 서정시가 보고해 주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입장에서 으레 빚어지는 오해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유의해 보아야 할 점이다.
대중, 민족 또는 우주와 같은 아주 복합적인 실체를 단 한마디로 표시하는데 우리 모두가 얼마나 재빨리 그리고 단순하게 익숙해져 있는가에 비교해 볼 때 문학에서는 이에 상응한 어떤 현대적인 것도 없다. 한편 오늘날 문인들은 이러한 부족한 점을 메우고 있다. 즉 그들의 종합적인 문학은 새로운 본질을 창조하고 이 본질의 조형적인 현상은 집단을 표시하는 단어들의 현상과 같이 복합적이다. 이와 같은 통합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다. 잘 파악되지 않았던 기계문명의 기적과 서둘러 연관을 맺게 된 초현실주의 운동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즉 아폴리 네르는 ‘옛날의 우화는 대부분 실현되었다. 이제 작가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발명자 스스로가 다시 실현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우화를 생각해 내는 일이다’고 했다.
4. 맺음말
김차영 시인은 1922년 경기도 강화군 길상에서 출생하였으며 호는 중천이다.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도일, 1940년 동경 명치중학을 나와 동경립명관대학을 수료하고 귀국하여 인천에서 중공업회사에 취직하고 꾸준히 시공부에 열중하다, 이후 동양통신 정치부장 역임,「후반기」「다이얄」동인이며 한국시인협회 상임 위원, 저서로는 시집『현대의 습도』『상아 환상』이 있으며 작품「추상도로」「허구의 중립지대」1951년 부산일보 등 60여 편 작품을 발표했으나 애석하게도 1997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실존주의가 한국문학에 영향을 준 측면은 기법의 새로움을 가능케 한 점에 있다. 실존주의 철학이기 보다는 실존주의적인 문학의 영향이었던 셈인데 그것을 통해 기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한다. 새로운 현실은 새 기법이 아니고는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즉 사르트르, 카뮈, 말로 등의 부조리 앙가쥬망, 행동적 휴머니즘 등의 취급된 문학을 통해 한국 전후문학은 새로운 지평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법의 혁신 없이 문학적 혁신은 실현 될 수 없다는 뜻에서 이러한 내용은 충분히 음미되어야 한다. 이제 비평의 다양성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인간의 모든 적극적인 활동에 대한 생각이 웃기는 일’이라고 말한 철학자의 의견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민족주의적 요소가 있는 시인들을 이 요소 때문에 예찬하고 ‘독일 만세’를 외치던 시절인 전후 그 당시 초현실주의자들은 스캔들에 대해 예민한 만큼 이런 스캔들에 대해선 둔감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럽에서는 바쿠닌(bakunin)이래로 자유에 대한 과격한 개념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바로 이 개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도덕적 인본주의적인 면에서 낡아빠진 자유주의적 이상을 포기해버린 최초의 인간들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작가, 사상가, 예술가들이 요구하는 것을 거의 가로막고 있다.
이에 반해 트로츠키는「문학과 혁명」에서 예술가들이란 승리에 찬 혁명의 결과로써 생겨나게 된다는 점을 이미 지적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부르주아 출신의 예술가를 <프롤레타리아의 예술>의 대가로 만드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 예술가로 하여금 비록 그의 예술적인 영향이 희생된다할지라도 이 상(像)의 장(場)이라는 중요한 현장에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서로를 무시하는 말투나 행동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일할 때는 열정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은 자신과 적성에 맞아야 한다. 가장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연인이 생겨도 용인하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동반자 관계는 할리우드 스타처럼 동시대인들을 매혹했다. 카뮈는 특히 이들을 부러워했다. 그는 아내가 임신하는 바람에 연인인 배우 마리아 카자레스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다. 카뮈와 보부아르는 서로 끌렸지만 지적인 여자를 두려워했던 카뮈는 보부아르가 자신을 무시할까 미적거렸다. 앙드레 지드의『좁은 문』에서 죄의식과 구원의 축복은 성인 시절보다도 어린 시절 속에서 더욱 더 순수하게 나타난다. 어린 시절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란 본질적인 감정을 그 자신 속에만 간직하고자 하는 요청이 크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싸움터에서 두 적군이라고 볼 수 있는 죄의식과 구원의 축복은 이야기의 현장에서 서로 뒤엉켜 있지만 훗날의 평화로운 전쟁터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며 이 싸움터가 지닌 이중적인 의미와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종말은 비로소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이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먼 훗날 성인 시절의 결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비록 산산조각이 났지만 그래도 평화스러운 것, 어린 시절의 들판위에 머물게 하는 것은 더욱 위안이 되고 성인 시절의 결정에서 내려 보는 것보다 더 밝게 비추어 준다.
반면 죄의식과 구원의 축복을 꾸밈없는 자태로, 또한 주인공의 도덕적인 자세를 꾸밈없이 구현하려고 애쓰는 예술가에겐, 어린 시절로부터 성숙한 남자와 여자에 이르는 이 거꾸로 된 길을 택한다는 것이 예술적인 구실은 아니며 될 수가 없다. 니체는 “가끔은 고독을 청하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수많은 사람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인간관계 자체가 점점 번거로운 만남으로 전략해 버린다. 그럴 때는 잠시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런 후에 다시 만나는 사람들의 온기는 뜻밖의 반가움과 설렘, 활력을 선사할 것이다”라고 했다.
⃞ 한국문학심층탐구
자유와 공존을 위한 저항과 지향1
- 아나키즘 관점에서 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김 치 홍
1.서론
문학이 시대를 반영하거나 혹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문학과 사회와의 관련성에서 이제는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아우얼바하(Erich Auerbach,1892~1957)는 문학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것에 대해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또한 제임스 우드(James Wood,1965~)는, “예술은 삶 그 자체가 아니라 늘 지어낸 것(artifice)이자 모방이다. 그러나 예술은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에이브럼스(M.H.Abrams,1912~2015)는 ‘거울과 램프(The Mirror and the Lamp)’로 설명했다.
1970년대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잘 반영한 작품으로 조세희(趙世熙,1942~)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있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의 소설집에 수록된 중편소설인데, 윤흥길의「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와 함께 70년대 산업사회로 인한 도시의 빈곤지대 또는 변두리 철거민 이주지역의 가난한 삶을 형상화 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산업사회로 이행된 시기는 1960년대부터이다. 6.25직후인 1953년에 67$이던 1인당 GNP가 1961년 83$로, 1977년에 864$로 늘었다. 산업화로 경제성장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부(富)를 증대시킨 것은 확실하지만, 국민 모두의 부를 증대시킨 것은 아니어서 수치 이상의 의미는 크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급격한 경제지표의 변화로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경제발전이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최소한도 그 경제적 행복을 위하여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산업화로 인해 우리의 물질생활, 사회관계 그리고 정신작용에 일어난 변화는 우리시대의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산업화로 인한 이 같은 현상을 작품으로 보여 준 것이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다.
조세희의「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산업사회로 이행된 지 10여년이 훨씬 지난 1976년대에 발표된 작품이다. 1970년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산업사회 속에서의 인간 삶의 의미를 구명한 작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끊임없이 독자가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산업사회로 들어선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지속적으로 읽히는 것은 사회적 환경이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음을 많은 연구자들은 언급하고 있다.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1943~)은, “칼 마르크스(K.Marx)가 그리스 예술은 그것을 생산한 사회적 조건들이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음에도, 어째서 ‘영원한 매력’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했다. 하지만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것이 ‘영원히’ 매력적인 것으로 남아 있으리라는 걸 어떻게 알까?”라고 하면서 ‘영원한 매력’은 곧 소멸될 것이라고 했다. 즉,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이 예술 작품이 영원히 매력적이지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조세희의 이 작품은 언제까지 읽힐 것인가? 조세희는 이 작품이 137만부가 넘게 팔린 상황에서 “난장이한테 미안해 죽겠다”고 말했다. 그가 미안해하는 것은 소설「난쏘공」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난쟁이들이기도 한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설적이지만,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지속적으로 읽힌다면, 이제 그만 읽히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해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까? 그것이 아니면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문학의 한 현상의 사례로 예거될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삶에서 조금은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논의는 이 작품이 오래 읽힌 것만큼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중에서 산업사회와 관련된 논의를 주로 살펴보기로 한다. 김병익은 작품집『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이 출간(出刊)되기 전에, 계간잡지에 발표된 이 작품에 대한 평을 하면서, “우리가 조세희에 대해 특별한 주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가 난장이 일가의 무허가 주택이 철거당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을 통해 이른 바 소외계층의 삶답지 못한 삶의 양상을, 통절한 아픔을 절제하는 가운데 드러내는 능력이며, 둘째는 그 드러내는 방법에 있어 ‘난장이’란 키 심벌과 그의 특유한 단문의 문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하여, ‘집’과 ‘난장이’의 상징을 주목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집은 삶의 거주지일 뿐 아니라 나아가 이 사회에 적응하여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것이며, 집이 없다든지 무허가 철거대상의 사람들은 이른 바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발전 때문에 이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한 소외계층의 삶답지 못한 삶의 양상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연작은 ‘난장이’ 일가의 무허가 주택 철거라는 사실에 대하여 원근과 명암의 시점(視點)을 자유롭게 활용함으로써 난장이와 그 가족이 행복할 수 없는 삶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조명하고 밝고 어둠의 몽타주로 다면화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 후 작품집이 출간된 뒤에 쓴 글에서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주제로 선택한 소외된 도시근로자들의 제문제’인 “산업사회의 부정적인 제증상들은 우리의 안이한 삶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하여, 산업 사회의 사회적 징후로 진단했다.
한편 작품집이 출간된 직후 이동렬은『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서평(書評)에서, “작가는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에 있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가정 정열적인 논쟁의 중심에 있는 노동문제를 정면으로 부각시킨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오직 노동문제에의 열정적 부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실체를 진단하는 것으로 확산된다.”고 하면서, “달콤한 허위의 우화(寓話)가 감싸고 있는 시대를 거침없이 암울한 시대로 조명하는 명석한 작가정신, 이 시대 전체를 아무런 유보(留保)없이 던지는 준엄하고 격렬한 매질이 조세희 문학의 가장 보람 있는 성과이며 그의 문학이 일으킨 뜨거운 반향이라고 했다. 한편 오생근은 서평을 통해, ‘70년대 한국사회가 부딪치고 있는 근대화에 따른 제반 문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난장이는 타락한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표상’이라고 했다.
한편《문학과지성》은 1979년 가을호에〈산업사회와 문학〉 특집호를 발행했다. 여기에서, 김우창은, “이 소설은 산업화 속에 휩쓸리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 규모가 작은 대로, 가장 넓게 그리고 일정한 구조적 연관 속에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도시와 도시 주변의 중하류 또는 하층 서민계급의 생활, 새로운 산업 구조 속에서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로 맞서는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의 대조와 갈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현상들을 정태적으로라기보다는 동태적으로, 즉 어떻게 커다란 사회 변화 속에서 이러한 계층이 형성되며 변화하는가를 보여준다”고 했다. 김치수는, “이른바 산업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 있어서 한 ‘난장이’ 일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난장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감추어진 문제들을 예리하게 분석해내고 있다고 했으며, 김종철은, “조세희의 소설은 우리 역사에서는 최초의 현상인 대규모적인 산업화의 핵심적 국면인 산업노동현실에 대한 본격적이고 과학적인 진단으로서 지금까지 거의 유일한 문학적 업적이다.”라고 하였다.
성민엽은, “70년대의 소설 중 가장 탁월한 작품의 하나로 조세희의 연작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꼽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 작품은 산업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심정적이며 추상적인 태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고, 또한 개별적 형태에 대한 단세포 조망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있는 듯이 보인다.”고 했다. 김윤식은, “이 작품이 던진 충격만큼 확실한 문학적 성과는 70년대를 통틀어 많지 않은데, 그것은 작가 조세희의 치열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작품을 두고 70년대 우리 문학을 논의 할 때 하나의 뚜렷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고 했다.
한편 문학사나 소설사에서 평가된 것을 보면, 이재선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윤흥길의「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와 함께 70년대 도시의 빈곤지대 또는 변두리 철거민 이주지역의 결핍상태에 초점을 둔 작품이라고 하면서, ‘도시화와 재개발 내지는 도시계획 정책에 의해서 철거 또는 이주되어야만 하는 일종의 이전지역(移轉地域)의 철거민이나 삶의 근원적인 뿌리박음(fundamentale Verwurzelung)이 박탈되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현실과 꿈의 좌절을 그림으로써, 구조적 관점에서 60년대 후반 이래 도시개발 과정에서 부수되는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주거의 정점을 잃은 도시 철거민들의 삶의 공격적인 생태구조와 이를 유발하는 부류들의 행태를 두드러지게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와 비슷한 견해를 보인 조남현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세계와 생존에 필요한 요건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분류하였고, 권영민은, 이 작품에서 조세희가 주목하고 있는 문제가 난장이로 대표될 수 있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의 세계와 재벌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의 악덕의 세계의 대립이라고도 했다.
이들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작품을 평가한 송지영은, “이 작품의 특징적 요소를 첫째는 작품 주인공이 꼽추・앉은뱅이・난장이라는 유체적 불구자로서 그들이 더 밑바닥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둘째 난장이는 자신의 비참한 삶에서 유래하는 좌절감을 극복할 수 없어 공장굴뚝에서 투신자살하는 소극적인 인간임에 비해서 그 아들 영수는 대기업 횡포에 대항할 뿐만 아니라, 드디어 그 총수를 살해하고자 하는 적극적 행동주의자라는 점이다. 셋째 그들은 다 같이 정직하게, 또한 열심히 일을 해도 삶다운 삶을 보장 받지 못하는데,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대기업의 부당한 임금과 악덕 기업가들의 사기행각 때문이라는 결론이다.”라고 하면서, “난장이는 타고난 그의 육체적 기형으로 이미 그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으며, 그로 하여금 영원한 소외자로 만든다.”고 하였다. 송지헌은 ’난장이로 변형시켜 세상에 쏘아 올린 기층민중의 기막힌 삶의 풍경‘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발전이 인간의 경제적 행복을 위하여 필요조건일지는 모르나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고, 더구나 경제의 급속한 지수적(指數的) 성장은 오히려 인간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그리고 인간이 당초부터 물질적 충족수단의 지수적 팽창을 선호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경제지표를 앞세운 산업화는 단지 서양사회 발전의 한 시기에 일어난 특수한 가치관이 마치 유독성을 갖은 전염병 같이 전세계를 휩쓸게 되었는데 인간다운 그 삶의 영위를 위해서는 이것을 푯대로 삼은 유럽적 풍토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생존을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이 설혹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목적가치일 수는 없으며, 수단가치로서 시종 그 분수를 지켜야 하는 것임을 알아야겠다.
이 작품에 대한 연구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산업사회와 연관되는 파편화된 삶의 양태를 미시적 시선으로 소외계층의 삶을 그려 낸 것에 주목하는 한편, 70년대 사회현실을 어떻게 형상화 해내고 있으며, 불균형분배에 따른 계층의 양극화 현상이라는 대립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난장이 일가가 추구하는 삶의 자세나 지향의식을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아나키즘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시도는 실상 문학연구란 것이 그 자체로서 지적 탐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는 특정한 시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 불평등과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등장인물의 정서를 느끼며 읽는 것도 바람직한 독서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난장이 일가의 비극적 운명
조세희의 중편소설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단편집인『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실린 단편 12편 중 네 번째 작품으로, 산업화로 촉발된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온 그 후유증을 작품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집은 1975년에 발표한 작품「칼날」을 시작으로 1978년〈에필로그〉까지 12편으로 각각 독립된 작품이면서 전체적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는 연작 소설집이다. 1978년 6월 5일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소설은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79년에는 극단 세실에서 이언호 각색, 채윤일의 연출로 처음 연극무대에 올려졌으며, 1981년에는 이원세 감독에 의해 동명(同名)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도시 빈민이 겪는 삶의 고통과 좌절을 주제로 한 것으로, 주인공의 행복과는 실제로는 거리가 먼 반어적으로 표현된 ‘낙원구 행복동’의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난쟁이 가족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도시 재개발 뒤에 가려진 빈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리고 있다. 가진 자들의 ‘낙원구 행복동’을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낙원구 행복동’을 박탈당하고 추방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 작품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몰락해 가는 도시 빈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노동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소외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폭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작품이 발표된 뒤에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로 이 소설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과거에 특정 시대 있었던 어떤 한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 작품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에는 동화적 분위기가 드러나 있는데, 주인공을 ‘난장이’로 설정하고, 환상적인 성격을 지닌 공간을 도입하여 동화적 분위기를 극대화 하였고, 단문(短文)을 중심으로 서술한 문장 등이 이러한 성격을 형성한다. 따라서 사회 고발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낭만적 서정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전체 이야기는 난장이 일가가 무허가 건물에서 살았던 ‘낙원구 행복동으로부터의 퇴출기(退出記)’이다. 작품은 아파트 입주권을 양도하고 그 동안 살았던 집들이 철거되어 낙원구 행복동을 떠나야 하는 날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행복동’ 생활에서 ‘악몽’과도 같았던 마지막 며칠의 이야기와 행복동을 떠난 후인 그 이후의 며칠의 이야기이다. 난장이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영수·영호·영희는 산업화 시대에서 소외된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곳에서마저 쫓겨나야 하는 가난한 가족이다.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통장으로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 계고장을 받는 순간 위기에 처한다. ‘그 날’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난장이네에게 철고 계고장이 날아든 것이다. 행복동 낙원구에 살고 있는 그들은 무허가 건축 소유자들에게 이주보조금으로 시에서 15만원을 준다는 것을 거절하고, 무허가 건물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승용차를 타고 온 젊은이에게 25만원에 팔았다. 그러나, 옆집에서 빌린 돈 15만원을 갚고 나니 남은 돈은 10만원뿐이었다. 젊은이에게 표찰을 판 뒤, 바로 영희는 사라졌다. 난장이 가족은 모두 나서 찾았으나 못 찾았고, 지섭이 사온 쇠고기로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자 철거는 아주 간단하게 끝나 버렸고, 지섭은 철거하러 온 사람들과 싸운 뒤에 끌려갔으며 난장이도 그들을 따라갔다. 그 뒤 난장이는 벽돌공장 굴뚝에서 투신자살한다. 사라진 영희는 표찰을 산 젊은이의 승용차를 타고 그를 따라갔다가 며칠 후에 표찰과 철거증, 그리고 돈을 가지고 도망 나와 임대아파트 입주신청을 마치고, 가족들을 찾기 위해 모두 철거된 행복동이 바라보이는 신애아주머니의 집으로 간다. 작품의 서사는 이것이 전부다.
이 작품의 전체 구성은, 철거 계고장이 난장이 가족에게 전달되고,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대문에 붙어 있던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팔았던 날 하루의 이야기를 1장과 2장에서 언급하였고, 영희가 알미늄 표찰을 사간 젊은이를 따라갔다가 되찾아 오는 이야기를 3장에서 제시하여, 전체를 3장으로 구성하였다. 이 세 장은 장마다 각기 다른 서술자가 등장하여 독자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행복동에서의 마지막 날 가족들과 그들의 집이 철거되는 과정을 바라보게 해 준다. 마치 신약성서 4복음의 저자인 마태·마가·누가·요한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예수의 마지막 생애 3년간의 행적을 말하듯이, 영수·영호와 영희의 관점에서 낙원구 행복동에서 퇴출되는 과정을 말한다.
제1장은 큰아들 영수의 서술시점으로 되어 있다. 영수는 작품 전체 사건의 기본적인 골격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난장이 가족의 곤궁한 삶, 특히 당장 철거되어 삶의 근거가 박탈될 운명에 놓여 있음을 제시하였다. 끝내 난장이 일가의 보금자리를 헐겠다는 계고장을 받았고, 입주가 어려워 팔아야만 하는 처지와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의 신상과 신분, 영수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서술하였고, 그리고 자신과 명희와의 사랑도 살짝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지섭에 대한 사소한 언급, 마지막 부분에서 끝내 아버지가 벽돌공장의 높은 굴뚝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을 목격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2장은 서술시점이 둘째인 영호이다. 영호는 형의 내면세계를 소상하게 제시하면서, 영희와 함께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표찰이 25만원에 팔리고, 집이 철거되는 대목을 기술했다. 입주권을 판 뒤 사라진 영희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영호는 이 장에서 아버지와 지섭과의 관계를 1장에서보다 좀 더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마지막 날 지섭이 쇠고기를 사서 들고 와서 난장이 가족들과 함께 행복동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는 것과, 난장이의 집이 헐리는 과정에서 지섭과 철거반장과의 충돌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충돌로 지섭이 끌려간 것과 그를 따라간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3장은 영희의 서술 시점으로 되어 있으면서 1,2장에서처럼 하루의 이야기가 아니라, 며칠간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표찰 매매흥정이 끝난 뒤 사라진 며칠간의 영희의 행적(行蹟)이 영희 자신의 서술로 드러나게 된다. 어머니가 돈을 받았을 때, 영희는 가족 모르게 표찰을 산 젊은이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영동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간다. 거기에서 영희는 그가 25만원에 산 것을 45만원에 팔아 엄청나게 이득을 챙기는 투기업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희는 낮에는 그의 사무실에서 부동산 관련 기사와 광고를 스크랩북에 옮겨 붙이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와 잤다. 며칠 뒤 영희는 첫날 그가 자신을 마취시켰던 그 약으로 그를 마취시키고 그의 금고에서 난장이네 표찰과 매매증서와 돈과 칼을 가지고 가서 아파트 입주권을 신청하였다. 그리고 행복동으로 돌아왔으나 마을은 이미 모두 없어졌고, 공터만 남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애아주머니의 집에서 도착하자 졸도한 영희는 거기서 아버지인 난장이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이같이 작품이 각기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게 하여 가족 구성에 대한 어느 한쪽에서 오는 편견이나 불완전함을 보완하는 구실을 한다. 즉 다른 서술 시점을 이용해서 근저에 깔려 있는 서로의 내면세계를 다른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대상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 주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된 인물인 난장이와 그의 아내, 큰아들 영수, 작은아들 영호, 그리고 딸 영희 등 세 자녀와 보조적 인물로 지섭, 명희, 신애아주머니들로 구성되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현실에서 상처를 입고 패배에 이르는 과정을 밟는 인물로 그려졌다. 특히 주인공이 ‘난장이’로 설정된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마련한 상징적 장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장이’는 현대 물질문명으로 왜소화 된 현대인의 자화상 정도로 상징화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현대문명사회에서 가진 것이 없는 자이고 전통적인 권력의 억압으로 굴종의 시대를 살았던 종의 후예로 늘 소외되어 있었지만, 자신의 수공업 시대의 기술로 희망의 끈을 이어가다가 절망한 인물이다. 작품에서 작가가 선택한 인물은 작가 자신이 인식한 현실과 자신의 세계관에 의거하여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작품에서 현실의 진실성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작가에 의해 창조된 허구적 존재이지만, 작중에서 논리적 서사로 분명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의 현실인식이나 역사의식이 잘 들어나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작품에서의 인물들은 작가의 의중이 메타포(metaphor)로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버지 ‘난장이’는 이름이 ‘김불이(金不伊)’로, 키가 117센티미터이고 체중은 32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왜소한 몸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난장이’라고 불렀고, 또한 소설의 제목이 김불이의 체구에서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큰아들 영수, 둘째 영호, 영희의 아버지이다. 그는 노비의 후손으로, 평생 동안 해온 일은 5가지로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등으로 이 같은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꾸려 도시 빈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한 때에는 서커스단의 조수로 가려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포기했다. 그는 배우는 것만이 신분이 상승할 수 있음을 자녀들에게 이야기했다. 근처에서 가정교사 일을 하던 지섭에게서『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받은 후, 그 책을 읽으며 현실의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기를 꿈꿨지만 현실은 점점 더 험악해졌다. 그는 재개발 과정에서 행복동 집이 철거당하자 벽돌 공장 굴뚝에서 투신자살했다. 온갖 궂은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가지만 현실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굴뚝에서 떨어져 자살한 것이다.
김영수는 난장이 일가의 첫째 아들로, 중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 두었지만,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다. 막내 영희가 17살인 것으로 봐서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되는 젊은이로,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로 학업을 계속하여 ‘큰 회사’에 취직하려 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했고, 대신 인쇄공장에서 조역·공목·약물·해판·정판 등의 일을 하다가 숙련공이 되어 식자로 옮긴 뒤에는 일을 하면서 무슨 책이든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교정쇄를 몇 벌씩 내어서 동생들에게 주고 읽게 했다. 그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과 가진 자들의 폭력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아버지가 자살하자 가장이 되어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다.
김영호는 난장이 일가의 둘째로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하다가 그만 두고, 뽀얀 톱밥 먼지소음으로 가득 찬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형인 영수가 그것을 보고 인쇄공장으로 옮겨 주었다. 형과 여동생에 대한 정보를 좀더 구체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였다.
김영희는 난장이 일가의 셋째인데, 17살로 그녀가 난쟁이네 딸이라는 걸 사람들이 못 믿을 정도로 예뻤다. 큰길가 슈퍼마켓 한쪽에 자리 잡은 빵집에서 일했다. 집이 철거되면서 받은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표찰을 부동산 업자의 아들이 다른 표찰과 함께 대량으로 매입하자, 자기 집 표찰을 되찾기 위해 그를 따라 그의 아파트로 간다. 며칠 뒤 그 젊은이가 잠들자, 자신을 마취 시켰던 것처럼 그를 마취시키고 표찰과 돈을 찾아 아파트 청약을 마치고 가족을 찾으러 이웃에 살던 신애아주머니를 찾아간다. 그러나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에서 자살했음을 알게 된다. 이에 영희는 큰오빠인 영수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라고 절규한다. 집의 표찰이 팔리는 과정에서 투기업자인 젊은이에게 험한 일을 당하였지만 좌절하지 않고 현실생활에서 꿋꿋하게 끝내 되찾았다.
난장이의 아내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가계를 꾸려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취로장에 나가 일을 했고, 공부만이 신분상승에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자식들에게 권했으나, 가난으로 자식들은 끝내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비록 노비의 후손이긴 했으나 생각이 올바르고 성품이 착하며 온순하나 자식들에게는 단호하면서도 자애로웠다.
이 작품에서 난장이와 그의 아내를 노비의 후예로 설정한 것은, 현대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본성은 노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전근대적 의식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신분적 제약은 자신들이 어떤 노력을 할지라도 신분상승이 될 수 없는 운명적인 장애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신들은 이런 굴레를 벗어날 수 없지만,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신분상승이 오직 교육을 통해 이루어졌듯이, 그들의 자식들도 교육을 통해 신분이 상승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엄격한 절벽에 둘러싸여 있던 난장이는 자식들도 벽에 갇히는 처지가 되자 내부적인 희망이 상실되어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 작품은 도시 빈민의 궁핍한 생활, 자본주의의 모순에 찬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현실적 패배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같은 제목의 소설집에 수록된 연작 12편 중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드러난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엄연한 현실적 문제이면서 과제인 것이다. 작자는 난장이로 대변되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 노동자의 삶의 모습, 그리고 70년대의 노동 환경을 폭로, 고발하고 있다. 작품 결말부의 영희의 절규는 더 이상 난장이로 남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 주고 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