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와 달리 야외에 시공할때는
많은 제약요건이 따른다. 우선 기온의 변화와 기후조건으로
작품구간 안에서 갑작스런 홍수피해가 있을 것이다. 극심한 건조와 추위도 극복해야 할 요소중 하나다.
아직 이러한 요소를 모두 해결한 경우는 아직 없는걸로 안다.
거의가 실내온실조건에 의한 고정불변의 지형을 이루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경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가혹한 자연의 시련이 내리쬐는 야외가 오히려
매력적인 시험의 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우기가 되면 때론 산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계곡물이 불어나 하천이 범람하여
풍경의 일부가 유실되고... 힘들게 조성한 이끼벌판이나 바위군이 파괴될 수도 있는 가변성이
상존하고 그런 변화를 묵묵히 소화해내는 튼튼하지만 야성이 살아숨쉬는 곳이라면 어떨까...
가치있는 공간이라는 것은 굳이 잘 정돈되고 아름답게 빛나야 하며
엽서에 나옴직한 그런 풍경을 연출해아만 할까?
황무지라고 부르는 광활한 야성의 장소는 그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온실에서 자란 티없이 고운 장미보다 비바람에 견디며 이슬과 별빛을 먹고 자연의 시련을 이겨내서
피워낸 들장미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야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자연의 진면목을 가까이서 접할수 있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또다른 자리매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퓰리처상 수상 시인이자 환경보호자와 토착민 그룹과 함께 몸소 야성의 삶을 실천해 오고 있는
반(反)문화주의의 기수인 게리 스나이더의 글을 보기로 하자.
'수백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그 전체가 비교적 야성적이었고, 도처에 훌륭한 숲과 많은 야생 동물들이
있었다. 서구 문명이 미개하고 무질서하다고 부르는 야성은, 실제로는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냉혹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자유롭다. 지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식물과(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삶,
폭우, 폭풍, 고요한 봄날의 아침, 그리고 어둠 속에서 반원을 그리며 쏜살 같이 흘러가는 유성, 이 모든 것은
야성의 실제 세계이며, 우리 인간은 그 세계에 속해 있다.'
첫댓글 가슴벅찬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함께 공감할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멋진자료 감사합니다.
멋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