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이 세상 자랑이 가득한 자들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또 다른 죄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죄와 더불어 세상 자랑에 관련한 죄들입니다. 사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 세상 자랑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말세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죄를 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말세에 나타나는 죄의 모습을 열거하고 있는데 육신의 정욕에 빠져 있는 사람은,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에 빠져 다른 죄들도 동시에 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성적인 죄가 있는 곳에는 물질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죄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은 언제나 이리저리 복잡하고 무질서 하게 얽혀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높이는 아들로서의 겸손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명예욕이 그 마음에 가득차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고자 하여 옳지 못한 그릇된 방법으로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피해를 주는 잘못을 말합니다.
그 마음에 명예욕으로 가득한 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가정이나, 사회, 교회에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나오는 말세의 죄악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과 관련된 죄악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딤후3:1-7-
특히 자신의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명예도 소중한 것을 알고 더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 좋으련만 자신과 가족들의 삶 외는 관심이 없습니다. 명예욕이 심한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조차, 명예에 손상이 간다고 판단되면 무정한 사람으로 돌변하여 가족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으로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와 교회에서는 거룩하고 경건한척하여 사람을 속이고 뒤에서는 온갖 권모술수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일을 훼방하고, 배반하고, 사나운 행동을 서슴치 않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교회 지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위선적인 삶, 말로만 믿음을 외치고, 말로만 거룩과 경건을 외치는 쭉정이 같은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나아가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거룩과 경건의 능력은 행동하는 사랑임을 예수님처럼 손수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계속하여 능력이 나타나 사람을 살리는 경건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홀로두지 않으시고 함께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8:29,30-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는 그 순간이 얼마나 영화롭고 명예로운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하시지 말라고 하는 일에는 주저 없이 멈추어야 합니다. 나 홀로 구원 받았다고 아무리 생각하고 외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면 구원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8:51-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못 해석하여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만을 강조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유대인만 사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 밖에 모르는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으므로 사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나 자신이 물질의 풍요속에서도 마음의 심한 고통 가운데 있다면 자신을 사랑을 하고, 돈을 사랑함에서 오는 부작용인 자신을 자랑하는 죄, 교만의 죄, 훼방하는 죄, 부모를 거역하는 죄, 감사치 않는 죄, 거룩하지 않은 죄, 무정한 -사랑이 없는- 죄, 악을 갚고자 하는 죄, 참소 -남을 헐뜯어서 없는 죄를 있는 듯이 꾸미는- 죄, 절제하지 못하는 죄, 선한 일을 힘쓰지 않는 죄, 배반하는 죄,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빈곤 속에 있으면서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물질의 빈곤이 평안을 빼앗아 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빈곤이 평안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평안을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적용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자유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넘어지고 자빠져 자유를 상실한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진리이고, 이는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활에 적용될 때 삶이 행복하게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어떠함에도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말씀위에 선 믿음만이 진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수 백번 부르며 "믿습니다" 고 고백하여도 그런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은 더 이상 진리가 되어 주지 못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은 도깨비 방망이로 전락한 듯한 모습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삶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시원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기도중이라고만 말합니다.
목회자들도 마음이 답답하여 상담을 청하는 성도들에게 "기도 하십시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해결이 될 것입니다" 말로 성도들의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려 듭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기도하면 된다' 는 그 소리를 듣고 시원하게 '예' 하고 답하고 돌아서는 성도는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마음을 답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기도를 아무리 오래 해도 답답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어린이 동화책에 나오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주문을 외우면 펑 소리와 함께 튀어 나오는 도깨비 방방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식이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치고 돌아다니는데 해 달라는 것을 덥석 덥석 해 주는 부모는 없습니다.
만약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종치 않고 갖은 악한 짓으로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데도, '오냐 오냐' 하며 자식의 소원을 들어준다면 그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거나, 자식이 미워서 일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욕을 얻어먹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 것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지 않다고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누구보다 신뢰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책임은 더 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타락에 자신의 책임이 크다며 눈물로 회개하시던 옥한흠 목사님(사랑의 교회)의 절규를 잊지 못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살아생전에 통회 자복하는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한국 개신교회의 목사인 옥한음 목사(69)가 교계 전체의 자성을 촉구했다.
옥 목사는 8일 오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 대회에서 교회 지도자를 향해 "복음을 변질시켰다는 주님의 질책앞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됩니까. '나는 아니오'라고 발을 뺄 수 있는 목회자가 얼마나 됩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을 가르켜 "거룩하신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이놈이 입만 살아서 회개한 교회의 종입니다. 겉모양은 돌아가지만, 내면은 죄악이 쌓여 있는 한국 교회를 깨끗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옥 목사는 2003년 정년 5년을 앞두고 신도 수 5만 명의 사랑의 교회(서울 서초동) 담임목사를 오정현(51) 목사에게 물려준 이후 원로목사로 일해 왔다.
이날 대표 설교를 맡은 그는 교인들에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구원을 받을지도 책임질 수 없다"라고 하면 사람들 얼굴이 싸늘해집니다. 사랑의 교회에서 사역할 때도 그걸 느꼈습니다. 회개나 반성보다 듣기 좋고 부드러운 말을 골라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복음을 변질시켜 나갔습니다" 고 고백하기도 했다. 공동대회장 강성일(예장합신총회장) 목사도 "한국 교회가 일제의 강압에 굴종해 신사참배를 했고, 사회와 정치적 불의에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 참회했다.
'교회를 새롭게 민족에 희망을'을 주제로 열린 이날 대회에는 10만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 한국기독교교협의회 등 국내 보수 진보 교단의 연합행사로 치러졌다. 나팔수 100명의 팡파르로 시작해 감사예배, 부흥의 불꽃놀이 등 3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이 대회는 1907년 길선주 목사의 주도로 일어난 영적 각성 운동인 '평양대부흥운동'을 기념하고, 개신교의 새 출발을 다지자는 의미에서 개최되었다.
출처 백성호 기자의 불로그 (vangogh@joongang.co.kr) 2007.07.09 입력.
당시 늦은 감은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그리스도인이 함께 져야 할 죄악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라고 회개하셨던 옥한흠 목사님 같은 분이 계속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더욱이 대형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님들이 옥한흠 목사님같이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고 선포해야 합니다. 나아가 선포할 뿐만 아니라, 솔선수범하여 예수님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에서 멀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을 돌이켜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때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임으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무조건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기독교를 더욱 샤머니즘으로 몰아가고, 예수님의 고귀한 이름도 도깨비 방망이로 더욱 더 변질시켜 갈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타락한 이면에는 무조건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변질된 믿음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학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행함이 없는, 말로만 외쳐 대는 변질된 복음과 사랑을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들이,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을 합하여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바른 삶이 복음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증명해 나가야 합니다.
신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바른 삶을 보여주지 않고 지금처럼 성경만 연구하고 신학의 옳고 그름을 탁자 앞에 앉아 논쟁만하고 있다면 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고통가운데 점점 구원에서 멀어져 갈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이라 불리는,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아 진리 가운데 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하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고 멀리하여 불신의 담만 계속하여 높이 쌓아 갈 것입니다. 한국은 다시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여 복음의 불꽃을 피워야 합니다. 이는 먼저 구원에서 멀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버리고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는,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아픔과 손해를 끼치고 있다면 그는 지금도 구원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연구하는 신학자이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이든, 장로님이던, 기도의 어머니 라 일컫는 권사님이던 예외가 없습니다. 또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수 십 년을 믿었다 해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아픔과 손해를 입히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이것이 자신만 귀하게 여기는 자긍하는 죄입니다. 교만의 죄입니다. 무정한 죄입니다. 사나운 죄이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한 죄이며,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고한 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이 무너지고 천지가 개벽을 한다 해도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집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5:18-
우리는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짓게 되는 성적인 죄악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짓증거와 도둑질과 살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 세상 자랑으로 사람을 낮게 보고 자신을 높이는 죄악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만약 지금도 우리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을 벗 삼아 죄악을 일삼고 있다면 구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종말을 맞게 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영원한 사망의 불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그날이 이르러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 사람을 힘들게 하는 죄악에서 돌이키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거룩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구원에서 멀어지는 불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