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변화된 신앙생활 가집시다 (평신도 신앙)
입바른 소리를 싫어하고 아부하는 자들을 가까이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라면 이는 문제가 있는 교회입니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가 보기 싫어서 꼬투리만 잡히면
그대로 짤라 버리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현실이라면
이미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사라지고
사랑이 매 말라 버린 폐허의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제가 본당에서 100%의 사목을 할 수는 없으며
사제가 그리스도의 삶을 다 드러낼 수 없습니다.
김웅열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새삼 떠오릅니다.
"사제도 사람이기에 사목의 전체를 다 잘 할 수 없다.
한 사제가 본당에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이며,
신자들이 사제가 잘한 것을 열 가지를 모았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라는
말씀을 하실 만큼 사제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본당에서 사제가 사목하는 동안 어떤 문제점이 일어나
사제가 사제의 길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는
사제의 책임보다
그 본당 신자들의 책임이 더 큰 것입니다.
사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우리들처럼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제가 잘못된 사목을 한다면
올바른 사목을 하도록
신자들의 의견을 건의를 해야 합니다.
사제는 누구나 훌륭한 사목을 하고 싶어 할 분만 아니라
성인사제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제를 변질 시키는 것이 누구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칭찬보다 눈에 보이는 사제에게
환심을 쌓으며 자신의 명예를 얻으려고 물질공세를 하고
교회를 변질시키고 있는 평신도들입니다.
평신도들은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례성사를 통해 굳게 하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돌아보면
평신도들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방관하는
방관자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 안에는 시끄러운 문제가 돌출되기도 합니다.
잘못하는 신자가 있으면 충고하고 이끌어 줘야합니다.
서로 부딪히는 것을 싫어서
또 얼굴 붉히는 것이 싫어서
방관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뒷날 하느님 나라에서
뭐라고 변명의 말을 하시겠습니까?
나하나 입을 닫고 묵인하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교회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대를 위해서라도
냉정한 꾸짖음을 해야 합니다.
사제의 영명축일 행사를 해주고 축하해주는 것은
사제가 더 거룩하고 성스러운 사제의 길을 걸으며
훌륭한 성인사제가 되도록 힘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터놓고 흥겹게 축하하는 자리라고 해서
사제에게 해서는 안 될 행위를 신자들이 요구한다면
이는 사제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신자들의 행위 하나가
한번 두 번 보여 짐으로 인해
사제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며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치장하고 진하게 풍기는 향수로 인해
사제의 정신을 순간적으로 흩트려 놓게 됩니다.
특히 밤늦게 혼자 사제와 만나
술을 나누는 자매가 있다면
이런 행위는 사제를 보살피는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사제의 길에 누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섬돌선교사님 글중에서
첫댓글 불가에는 위법망구(爲法忘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법을 위해서는 몸 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보여라”, 는 뜻이라고 합니다. 신부가 잘못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고 임의적 암묵적으로 동의 또는 방관을 한다면 한국천주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신부의 잘못을 단죄하는 것 아닙니다.
잘못을 깨닫게 하여 사제가 올바른길을 가게끔하는 것도 기도 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칭찬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