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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말씀 전반부 “예수님의교회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경위와 또 사람들 유튜브 영상 말씀을 들을 때에 오해가 될 소지가 있는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신 부분은 지면관계상 생략돼 있으니” 이해바랍니다.)
성경 말씀은 우선 요한계시록 11장을 펴놓으십시오. 오늘 말씀은 딱히 본문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을 펴서 읽어가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지식으로 알아야 할 몇 가지를 부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는 믿음을 대비하라는 뜻에서이고 또 누군가는 지식으로 받게 하고자 하는 것이지만은 그러나 믿음에 있어 자기 지식이 되어 속지 않아야 할 대단히 중요한 것이기에 다루는 것이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제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말씀하는 두 증인이 누구인가? 두 증인~ 누구인가 하는 것과 다시 오실 예수님의 구분되어야 할 재림에 관한 것과 7년 환난에 들어간 자의 구원받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이 세 가지입니다.
먼저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인데 우리 계시록 11장 1절, 2절을 한번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이해되셨죠? 말씀 내용에 대해서 이해되셨죠? 척량하라고 하신 것이 있잖아요! 1절의 내용은 지금 말씀 본문의 내용에서는 우리가 이해하기는 지금 건축물 성전을 말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건축물 성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아직도 성전과 제단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건물 성전을 말합니다. 건물 성전!
성전과 제단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영적으로 회복하실 것이기에 그래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하신 은유적 표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하여 예배 즉 경배하려고 모인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고 그들을 척량하라고 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2절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여 많은 고난을 받으며 고통을 겪을 것을 의미합니다.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힌다고 한 것은 마지막 때에 7년 환난 중에서 3년 반을 말하는 것이고, 짓밟힌다는 것은 메시아 언약을 버리고 예수님을 배척하여 십자가 처형을 했던, 그들이 스스로 불러들인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마5:13에 말씀하셨잖아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 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뭐 한다고 그랬어요?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들이 소금의 일을 감당하지 못했단 말이에요. 하신 말씀대로 이방인들에게 짓밟힌 것을 말합니다.
그다음 3절에서 12절까지 우리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의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 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오늘날 사단의 하수인들이 자기가 두 증인이라고 나타난 경우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은 이방인 중에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도대체 이방인이 어떻게 증인이 된다는 말입니까? 증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 목격한 자가 증인이에요. 예수님을 직접 만나 목격한 자라야 증인이에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뜻을 이루시는 일에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을 앞에 내세워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두 증인을 두 선지자라고 했는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이방인들로 세우지 않으십니다. 이방인이 어떻게 선지자가 되겠습니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 같은 경우도 선지자가 아니라 말씀에 대하여서 선지자적 사명을 행한 것이다. 라고 말하였지 않습니까? 선지자적 사명! 사람을 세우신 선지자는 침례 요한으로 끝이 났고, 모든 선지자의 말을 받아 그 말씀을 이루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서 이제 선지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후 성영님이 하나님의 참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오셔서 알리시는 영적인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선지자이십니다. 지금은 성영님이 선지자이십니다. 영적 선지자~ 선지자이십니다. 그렇기에 신약 시대에 자신이 선지자라고 나오는 자들은 다 선지자를 흉내 내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할 길로 이끌어 버리는 미친 자들이오. 사단의 도구들입니다. 그러면 두 증인이 누구인가? 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과 두 선지자는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남은 자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여 이삭줍기와 같이 마지막 알곡을 거두어 들이 실 것인데, 이미 기름 부음을 받은 모세와 엘리야 이 두 선지자를 보내서 마지막 일을 하게 하시고 땅의 일을 마치는 것입니다. 증인이라고 한 것은 목격자라는 말로 예수님을 직접 보고 만나서 말씀을 들은 자를 말하는 것이고, 선지자라고 한 것은 구약에서 택함을 받아 하나님께 직접 말씀과 계시를 받고 예언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그리고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이 모세와 엘리야를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가장 큰 선지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 두 증인의 활동하는 곳은 조금 전 우리 8절에 읽은 그 내용에서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이니라 해서 성전이 있는 지역 예루살렘, 이스라엘 예루살렘 그 장소가 지금 이스라엘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두 증인에 대해 본문 4절에서 말하기를 이는 이 땅에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라고 해서 이는 구약의 스가랴 4장2,3절에 기록된 말씀 즉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한 것과 그다음 4장 14에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 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한 말씀과 연관을 둔 것으로서, 오늘 지금 계시록(11:4) 말씀과 연관을 두었단 말이에요. 이것은 스가랴서의 성전 재건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때에 있을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며, 바로 선지자가 어떤 자인지를 알게 하신 뜻입니다. 오늘 본문 11장 4에서 촛대와 스가랴 4장 2에 등대는 같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스가랴 4장 3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한 것은, 이때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하나님이 세우신 자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중심하여 일을 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을 두고 두 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더 설명하자면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다.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는데 이는 기름 발리 운 자 둘이니 온 세상에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한 것이 스가랴 때에는 유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말한 것이지만 이 두 사람을 말한 것으로 준(準)한 것이 아니라 확대하면 마지막 때에 온 세상 전 세계를 포함한 예언의 말인 것입니다. 예언의 말! 등대를 밝히는 데는 기름이 있어야 하는 것으로, 그 불을 계속 밝히기 위해 감람나무 열매를 찧어서 나오는 기름으로 사용합니다. 기름을 계속 공급해 주어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있어 기름을 계속 공급하는 감람나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그래서 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 3장 9에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했어요.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했고, 스가랴 4장 6에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뭐로 돼요? 신으로 되느니라’ 한 돌에 한 것은, 이제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다고 하는 이 한 돌은 언약하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일곱 눈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 곧 성영님을 말합니다. 일곱은 하나님의 완전수로 온전히 꿰뚫어 보고 감춰진 것이 없단 말이에요. 꿰뚫어 보고 아시는 전지성을 말하고 곧 예수님의 영 천지에 충만하신 성영님을 말합니다. 그래서 계시록 5장 6에서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름을 공급해 주는 감람나무처럼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이루실 언약의 뜻이 계속 흐르도록 계속하여 밝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그 기능과 같은 그 일은 사람의 힘으로나 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 사람의 무슨 똑똑한 이런 것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말입니다. 이미 기름 부으신 그 성영님으로 한다 그 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신 성영님의 기름 부음으로만 된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또한 촛대가 있어야 등잔이 있겠죠! 촛대가 있어야 등잔이 있고, 그 등잔의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야 불을 밝게 하여 사방을 비추는 것이기에 그래서 두 촛대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계시록 본문 4에 두 증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는 이 땅에 주 앞에 서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와서 증인이 된다는 말입니까?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여호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한다는 의미입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한다 라는 의미예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성전을 재건할 때에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충돌이 크게 있었고, 이방인들의 방해와 박해, 내부 분열과 갈등, 낙심 등으로 성전 재건이 오랫동안 중단되기도 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러나 마침내 완성되어 그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 또는 제2성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2성전이라고 말해요.
마지막 때에 두 증인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러 왔을 때도~ (마지막 때 두 증인이 누구예요?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이 두 증인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러 왔을 때에도 상황이 그와 같을 것임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스가랴 때의 성전 재건은 사람이 손으로 지은 건축물, 즉 예수님을 예표(豫表)한 성전을 말하지만은 계시록의 두 증인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무너진 ‘영적인 성전’ 재건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아들으셨죠? 구약은 눈으로 보이는 성전이, 계시록은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회심하여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믿음의 성전 재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현실의 유대인들! 오늘날 지금 현실의 유대인들은 보이는 성전 재건을 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고 지금 싸우고 있잖아요! 계속 전쟁하잖아요! 이게 현실적으로 성경대로 지금 하고 있는데 못 믿을 게 뭐 있어요? 그렇죠? 싸우고 있는데 지금도 여전히 그 싸움은 끊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7년 환난 중에도 계속 있다는 말입니다. 이 두 증인은 와서 그것을 파기하고 믿음의 성전, 즉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전하여 믿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니 그것으로 서로 대립하여 부딪힘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증거 하는 말을 받아들여 회심하는 자가 많아서 그들은 천사들로 인침을 받겠으나, 인침 받은 사건이 계시록 7장 1-4에 있죠? 그렇지 않은 자는 예수님 당시처럼 분노하여 이방인들과 함께 두 증인을 힘써 방해하고 박해할 것입니다.
그러면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인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느냐? 오늘 우리 읽은 본문 3에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증인에 대해서는 내가 조금 전에 설명을 했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은 3년 6개월의 기간을 말하고, 예언도 설명을 했으니 반복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한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고 회개할 때 입었던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입었던 것으로 곧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바로 앞에 있으니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불신과 죄악에 대해 지체치 말고 가슴을 치며 울고 통곡하여 회개하고 메시아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굵은 베 옷을 입고 촉구하여 전한 것입니다.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를 이스라엘을 중심하여서 3년 반 동안 전 세계를 향해 선포되고 외칠 것입니다.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에 대해서는 본문 6절입니다.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하는 날 동안 즉 3년 반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열왕기상 17장과 18장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의 길로 나간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가 비 내리지 않을 것을 예언한 대로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고, 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자 비가 내렸습니다. 이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그 때 일을 다시 재현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일 것입니다.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기억나시죠~ 그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했는데, 출애굽기 7장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권능으로 애굽 온 땅에 물을 피로 변하게 한 사건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7장 20에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하신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그렇죠? 또 여러 가지 재앙으로 여호와가 참 신이신 줄을 나타냈습니다. 그와 같이 선지자 모세가 애굽에 내린 재앙을 재현하여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함 같이 자신이 마지막 때에 남은 자들을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인도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왔음을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선지자를 해하려고 하니 오히려 해하려는 그들이 죽임을 당하고, 후 3년 반으로 이어질 기간 중에도 권세를 가지고 재앙(계15장의 일곱 재앙 곧 계16장의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으로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숭배하는 자들에게 악한 종기가 나서 괴롭힘 당하고, 바다와 강과 물이 피로 변하고 그 피를 마시게 하고, 해가 불처럼 사람을 태우고, 큰 지진, 큰 우박 등)으로 땅을 칠 때에 많은 사람이 죽고 여러 가지 재앙을 계속 만나게 되니 사람들이 이 두 선지자를 해쳐 죽이려고 혈안이 된 것이죠! 온 땅 사람들이 혈안이 된 거예요~ 죽이려고! 두 선지자가 증거를 마칠 때에 오늘 본문 7절에 그랬죠!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랬어요. 죽임을 당했다. 10절에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하였어요. 그러니까 온 땅 세계인들이 이 선지자들의 죽음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자기들의 원수 같은 자가 죽으니 얼마나 즐거운지 여기는 이제 교황과 그에 속한 자들 다 포함입니다. 서로 예물을 보내기까지 하며 축하하는 그야말로 세계의 축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와 엘리야의 죽음은 히브리서 9장 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하신 그 목숨이 있는 육체의 죽음을 말합니다. 죽은 지 3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일어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니 부활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신명기 32장 50에 ‘네 형 아론이 호르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 가리니’ 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의 죽음을 말씀하셨어요. 그렇죠? 말씀하셨고, 신명기 34장 5,6에 기록되기를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해서 분명히 죽었어요. 분명히 죽어 장사되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죽은 자가 어떻게 육체로 올 수 있느냐? 그것도 수천 년이나 지났는데 하는 의문과 질문이 있죠?
우선 신명기 34장 7에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 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 하였더라’ 했습니다. 모세 이전의 조상들은요 전부 다 죽음을 말할 때 다 기력이 쇠하여 향년 몇 세에 죽었더라 했습니다. 모두가 다 기력이 쇠한 육체의 수명을 다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러나 모세는 예외입니다. 모세는 눈도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아직 무엇인가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그런 예고예요. 모세는 분명히 죽어 장사되었다고 말했으나 곧바로 또 뭐라 그랬어요? 장사된 그 묘를 아는 자가 지금까지 없다 함으로써 실제로는 죽어 장사된 것이 아니라 모세의 죽음에는 하나님의 숨은 비밀이 있다는 그 뉘앙스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왜 그래져야 했는가? 사단에게는 철저히 감춰져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할 일을 위하여 모세를 숨기셨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유다서 1장 9절에 보면은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해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했습니다.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공개 매장해야 한다고 미가 엘과 다투며 우겼다는 말입니다. 우겼다! 왜 우겼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의 시체를 경배하게 하려고 속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귀도 모세의 시체에 그 매장지를 모르는 것이죠! 매장지를 몰라! 매장지를 알지 못하니 미가 엘과 왜 공개 매장하지 않는 것이냐를 따지며 다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감추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또 다른 단서가 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죽어’ 한 그것이 그때까지 죽지 않고 보존되었다는 것에 단서가 됩니다.
그다음 엘리야는 어떻게 했어요?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산채로! 육체로 승천했다는 말입니다. 그 사건이 열왕기하 2장에 있는데 그래서 엘리야가 육체로 보존되었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이 육체로 나서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니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인데 바로 마지막 때에 육체로 와서 남은 사명을 마치고 죽기 위해서 산 채로 보존된 것입니다. 죽었던 사람을 하나님이 다시 살려서 다시 보내고 또 죽게 하는 게 아니라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한번 죽는 거예요. 한번! 두 번 죽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요? 그것은 저녁 모임에서 설명해 드릴게요. 말씀이 기니까! 사람이 육체로 나서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일이니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인데 바로 마지막 때에 육체로 와서 남은 사명을 마치고 죽기 위해서 산 채로 보존된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마지막 때에 와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장자 백성으로서 마쳐야 할 책임의 일을 육체로 와서 마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산채로 승천하여 보존되었고, 모세는 하나님께서 감추신 것으로, 다시 말해 죽었으나 하나님께서 육체로 보존하시려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던 것처럼 모세도 잠들게 하여, 죽은 게 아니라 잠들게 하여 손으로 덮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장사된 그 묘를 미가엘도 마귀도 알 수 없었던 것이고, 육체로 보존된 모세를 1차로는 예수님을 만나게 (마17:1-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하시고, 환란 때의 증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수천 년 동안을 육체로 보존할 수가 있으며 보존될 수가 있느냐? 성경은 여러분이 이것 분명히 여러분의 지성에 가지고 있어야 돼요! 성경은요. 사람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다룬 비합리적인 것으로 가득 찬 책이라고 언젠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합리성을 찾으면...(이미 설교에 나갔어! 설교에)... 그래서 합리성을 찾으면 하나님을 알 길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에 주는 말이 아니고 바로 신앙, 믿음입니다. 믿음! 신앙으로만 만나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의 근거되는 말씀을 기록하여 놓은 책이기에 그것을 신앙,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고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말하는 것도 자기 이성으로 들으려고 하니까 자기 이성으로 들~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해! 오해로 듣는 것입니다. 성경을 대하는 사람이 반드시 이것을 알고 대해야 하는 것 명심해야 합니다. 벧후 3장 8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 개념이에요. 시간개념! 하나님의 시간은 천 년이 하루 같으시니 수천 년이라도 하나님께는 3,4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보존하실 수 있고 보존되게 하십니다. 하루가 천년 같은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일에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는지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는지~ 그 하루가 천년 같은 거예요. 하나님의 마음! 아들을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원수로 내줬어! 원수로~ 형벌로 내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루가 천 년 같은 거야!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되세요? 하나님의 마음은 그 일이 너무나 큰 고통이셨기에 하루가 천년 같으셨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모세와 엘리야가 선지자인데 그러면 어떻게 또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마17장과 눅 9장에 보면은 변형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율법의 대표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와 만나서 대화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반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이것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로 말씀한 것을 이것을 목격한 요한이 알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거예요. 다 알고 기록한 거예요. 율법과 선지자로 말씀한 것을 그리스도 예수님이 바통을 받아 이루실 것에 대한 것 곧 율법의 정죄로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나 부활하시고 엘리야처럼 승천해 가실 그 장래 일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에게 보내 하나님이 이루시는 전후의 뜻을 이야기하여 바통을 넘기는 것으로 예수님의 목격자인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예수님의 대한 예표의 일을 하게 하셨고, 그같이 하나님의 창조에서부터 예표로 행하여 나타낸 구약을 거친 모세에게~ 구약을 다 거친 모세! 예수님을 예표로 행한 그 구약을 거쳐 온 모세에게 예수님을 실지로 만나 장래 일까지를 나누게 하신 증인입니다. 증인! 그러니까 구약과 신약을 정통한 자라는 말입니다. 이로서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라는 것을 성경 말씀을 근거하여 분명히 선포합니다. (아멘!)
그다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재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리라’(행1장, 계1장, 22장) 하시고 승천해 가셨으니 이제 때가 되었음에 불원간 다시 오실 것인데 다시 오시는 것을 일반적으로는 재림이라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성영님으로 잉태되어 마리아를 통해서 오신 것을 초림이라고 하고 다시 오시는 것은 재림이라고 하는데 다시 오시리라 했으니까 그냥 재림이라고 하는데 그 재림은 두 가지의 형태로 구분이 됩니다. 한 가지는 1차로 자기 신부들을 데리러 하늘 공중으로 재림하실 것인데 그것을 ‘공중강림’이라고 합니다. 재림의 1차로서 하늘로 강림하시는 것은 먼저 자기의 신부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입니다. (마24:40,41, 살전4:16) 성영님께서 믿는 자 곧 성영님으로 다시 난 자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하는 것이죠! 성영님으로 믿는 자 예수님의 신부된 자들을 안고 올라가 버리시는 참으로 놀라운 성영님으로 되는 신비한 일로서 일회성 사건으로 이것을 휴거라고 표현합니다. 이 휴거는 7년 환난으로 들어가는 중 초반쯤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휴거에 참여되지 않으면 다 환난으로 들어갑니다. 환난으로, 환난으로 들어갑니다. 환난에서는 짐승과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며, 이마와 손에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며, 예수님의 흘리신 피의 믿음을 증거하고 그 믿음의 증거로 목 베임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 때입니다. (계20:4) 명심할 일입니다. 이것이 환난 때에 구원받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법! 그다음에 2차로 지상 강림 즉 ‘지상 재림’이 있습니다. 지상 재림! 우리는 이 예수님의 지상 재림을 보면 절대로 안돼요! 절대로! 이 재림은 멸망할 자들이 만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7년 환난이 끝나는 때에 이미 심판할 권세를 가진 휴거된 성도들과 함께 땅에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려고 내려오시는 것으로서 그 사건의 기록이 계 1장 7에 있고, 또 19장 11-16에 있고, 마24장 29, 30에 있습니다. 이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 재림에 대해서 구분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7년 환난에 남겨진 자의 구원받는 것은, 이미 2024년4월14일(주 예수님의 날 예배)에 권면했던 내용이에요. 권면의 내용으로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인데 참으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시 전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가 실체의 예수님! 실체로 계신 예수님을 만나 뵌 적은 없죠. 만나 뵌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성영님으로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그 말씀으로 만난 증인으로서 마지막 환란의 때에 구원받는 기회로 주시는 방법을 말씀을 근거로 하여 증거로 남기고자 하나님 앞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아멘) 혹! 참으로~ 정말~ 혹입니다. 참으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은 누가 되었든지 믿다가 들림 받지 못하여 남겨졌다면 정신 바짝 차리고 물론 여기에서는 순교의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순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편한 말로 순교할 것으로 각오를 절~대~로 해야 합니다. 환난에까지 들어가서 목숨에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죽는 것이 순교인데 그 순교까지는 아니라도 옛 사람을 죽음에 넣고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님을 따른 그 육적인 순교를 은혜의 때에 하지 않았으니, 거듭남이 없었으니 남겨진 것인데 그래서 환난 때의 죽음은 자기 믿음을 보이는 거예요. 자기 믿음을! 보이는 것이기에 순교라고 할 수 없다. 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죄를 사하신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기 믿음을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목 베임을 받는 것으로, 보여야 하는 것으로서 그때는 이것밖에 구원받는 다른 방법이 도무지 없습니다. 도무지 없어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만일에 죽는 것이 두려워서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하면~ 죽는 것이 두려워 짐승의 표를 받는다면 여러분! 바보 천치 미련한 자~ 짐승 같은 자가 받는 것일 것입니다. 어차피 환난 때에 죽~어! 환난 때에~ 환난 중에! 환난 때 큰 재앙들 때문에 죽어! 어마어마한 재앙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죽어! 그리고 또 거기서 살아남았더라도 환난 끝 날에 다~ 예수님이 (조금 전에 말씀드린) 심판하러 오시잖아요.
이미 휴거된 성도들과 심판하러 오시죠! 그것을 지상 재림 또는 지상강림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다 멸망 받아 죽는 것인데~ 도대체 그 며칠 더 살자고 그~ 그 짓해야 되겠느냐 말입니다. 그 짓해야 되겠느냐? 도대체 구원받을 그 믿음을~ 그 죽음을 피할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그 죽음을 피해야 할 이유가 뭐있겠어요? 무엇을 위해서 피해야 합니까? 무엇을 위해서! 아~ 천년시대에 들어가려고? 이미 아마 이 말씀을 받기 전에 모든 사람(교인)들이 다 천년 시대에 들어가면 살 줄 알아! 구원받을 줄 알아! 착각이에요~ 착각! 맞아~ 그게 그러니까 천년시대에 들어가려고 피하는 것입니까? 그런 잔꾀는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 두렵지만 그러나 마지막 기회이니 두려움에 지지 말고 절대로 목 베임 받아 죽어야 합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니 살려면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든지 살아남으려고 이리저리 숨고 피하는 것은 여전히 지옥입니다. 그때는 이것이 현실이구나! 실상이구나! 이제 상황으로 증명이 됐으니 다른 방법이 없는 거 알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분명한 증거가~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는 그것이 얼마나 큰 다행이며 얼마나 큰 복인 것입니까?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복 복 복 그 복을 꽤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꽤 여러 번~ 이것만큼 다행한 일이 세상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계시록 13장 15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고 했으니 다 죽인다고 했어! 다 죽인다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것도 믿는 자이기 때문에 하지 않을 것이니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불구덩이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을 생각한다면 죽지 못할 것 절대 없습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원한 지옥입니다. 지옥! 불못에 던져진 그 지옥! 영원한 지옥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지 잠깐의 고통을 피하려고 영원한 지옥을 택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망설인다면 영원한 불구덩이가 있으니 불구덩이에 들어가겠으면 망설여도 됩니다. 666 짐승의 표 받아도 됩니다. 지금 이 은혜의 때에 (이미 은혜의 때도 지나감이라고 지금 교회에게 선포하셨어요!) 은혜의 때에 예수님과 함께 죽지 않은 자들에게 그때 구원의 기회를 주신 것이니 반드시 목 베임 받음으로 믿음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하면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는 자기 선택입니다. 잘 피하여 살아남았어도 그것이 오히려 그때는 말로 할 수 없는 큰 저주이니 절대로 구원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목 베임을 받을 것을 스스로 자청해야 합니다. 영원한 지옥 불구덩이에 고통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광이니 자청하여 예수님의 피의 믿음을 시인하고 목 베임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강조하고 강조하는 거예요. 인식되라고~
죽는 것은 잠깐의 고통이에요. 잠깐의 고통. 잠깐의 고통이지만 잠깐의 그 고통을 택한다면 모세와 엘리야를 일으키신 것처럼 일으키셔서 하늘로 올리우실 것입니다. 만일에 환난에서 살아남아 천년 시대에 들어가면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요. 구원 없어요. 남은 자에게 지옥이냐 구원이냐 절대 절명의 일이 걸린 것이기에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제가 거듭 거듭 당부하여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5장에 환난 때 남은 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보이도록 하셨고 천년 시대의 상황도 이미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에게 마지막 때의 일을 다 예언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하지 않은 말을 제가 또 하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천년 시대에 들어가서 100살에 죽은 것을 아이라 저주라고 했어요. 아이라 저주라고~ 우리 65장 17절에서 20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 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천년 시대의 일이예요.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 시대 들어가는 그러니까 그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심판하러 온 휴거된 성도들은 이 천년 시대에 들어와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그 기쁨이 영원하고 즐거울 것이다고 말씀했어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이제 천년 시대의 이야기죠. 백세에 죽거나 못되어 죽음은 뭐라 그런다 했어요?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말했어요. 저주를 받은 것이라. 그런데 거기 들어가서는 아 그걸 말했죠! 그러니까 그리고 아이겠고 그것은 저주라 이 말은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입니까? 구원의 때 은혜의 때 지금 이 구원의 때 은혜의 때를 지나 기회 주신 또 마지막 구원의 때까지 지나갔으니 이후는 구원의 기회가 없어 저주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이라도 말입니다. 아이들이라도 자아 성립이 된 자가 천년 시대에 들어가면 저주입니다. 그 시대에 들어가면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은 그 시대에 들어가서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은 천년을 사는 것입니다 천년 시대이기 때문에~ 천년을 살아~ 천 살까지 사는 거예요. 그런데 환난에서 살아서 들어간 자들은 100년 안에 다 죽습니다. 죽는 그들은 저주라 사단의 유혹하는 말을 따른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아이라 한 것은 종말의 믿음에 대한 지각이 없는 자라는 말이에요. 종말에 대한 믿음이 없는~ 지각이 없는 자라 그런 뜻이에요. 은혜의 때에 있던 자들이 천년 시대에 들어가서 구원받을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저주입니다. 제가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전하는 목사들의 외침이 한참 요란했을 때 그들의 말을 제가 들어보게 되었는데 그 속에는 살려면 여러분이 살려면 환난을 대처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환난 때 짐승의 표 받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통조림 물 불 양식 등을 미리 준비하라! 저런 오지 등 찾을 수도 없는 곳에 가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 7년만 잘 견디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안 들으셨어요? 그런 거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종말의 때에 심취되어 있는 사람들의 말들이에요. 그래서 저도 그 얘기를 듣고 저도 그래야 되는 것인가? 그러면 이런 것들을 성도들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뜻을 성영님이 밝히 비추어 보게 하시니 그렇게 말하는 것들은 다 사단의 작전에 따른 인본의 꾀요, 전부 다 예수님이 없는 자들이 제 목숨 살기 위해서, 목숨 부지하려고, 목숨 때문에 목숨 부지하려고 만들어 낸 인간의 잔꾀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나 예수님이 없는 성영님으로 믿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의 속이는 망할 꾀라는 것입니다.
만일 들림 받지 못했으면 거기에 답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답은~ 믿음을 시인하고 사단에게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음으로써 사단에게 목숨을 내놓으란 말이에요. 내놓음으로써 모세와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살리심을 받는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환난의 때에도 구원받는 자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받는 자들이 많이 있어요. 그 증거의 말씀이 마24장 31에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하셨고, 계시록 7장 13,14에 우리가 지금 읽은 그 이하 내용입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입니다. 마24장 31은 7년 환난에서 나오는 성도들을 사방에서 모은다는 말씀이고, 계시록 7장은 사방에서 모은 그 영혼들이 하늘에 올라와 있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휴거 될 줄 알고 있다가 남겨진 자들이 많~이 있다는 얘기죠. 이때 구원받는 자가 또 많은 것은 그 남겨진 자가 많이 있다는 그런 의미죠. 목사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더니 스스로 잘 믿는 것으로 여기며 구원받을 줄 믿고 있다가 남겨진다면 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이 얼마나~ 두려움에 정신을 잃고 까무라칠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안 믿어지는 거예요. 왜 내가 왜? 왜 내가 남아야 돼? 내가 얼마나 열심이었는데 무엇이 내가 지금 저 들림 받지 못할 이유가 내가 뭐 있는데? 하고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그러니까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믿었는데 남겨진 자신을 보고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의 마음이 일어날 자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돼! 그러면 안 돼~ 정말 정말 안돼요!
가인이 선을 행치 아니한 자기의 악을 보기보다는~ 자기 악을 보지 못했어! 그런데 자신과 제물을 열납지 않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심히 분하여 하고 안색이 변한 것처럼 그때도 그럴 것이다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 가인의 제사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들림 받지 못한 거예요. 그리고 그 들림 받지 못하였음을 직시하고, 정신 차려 남은 자들과 함께 서로 힘을 같이 하여 죽이는 자들에게 저항하지 말고, 믿음을 시인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구원받는 것이니 혹이라도 정말 혹이라도 말입니다 마리아가 신약 성도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당부를 하였던 것처럼, 저는 오늘 당부하기를 누구든지 혹이라도 남겨진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믿지 않은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제 힘을 다해 제 명예를 다해 당부하고 당부합니다. 그때는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어야 다시 사는 것이니 환난 때는 하나님의 이삭줍기와 같은 구원의 기회라는 것,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을 반드시 알고 죽음을 받아드리기를 당부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마16장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 진리예요. 우리는 육이 죽으러 왔어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으로 언제 죽어도 다 죽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환난 때는 예수님을 위하여서의 죽음은 아니지만은 그러나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으니 제가 거듭거듭 강조합니다. 자기를 위하여서 죽음을 받아들여야 삽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지금 이때에 구원받은 믿음이 되어 예수님 강림하실 때 다 올라가야 한다는 것,
지금 이때 이 구원이 또 우리에게 기회가 있으니 말입니다, 이 말씀을 또 들을 수 있게 됐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명하신 사명으로 받고 성영님 의지하여 말씀으로 사는 그 믿음이 되는 것에
목숨을 다하기를 참으로 바라면서 오늘 저는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난 증인으로서의 속지 않게 하기 위한
말씀 증거가 되게 할 말씀으로 두 증인이 누구인가 두 가지로 구분되는 예수님의 재림과 환난 때의
마지막 기회 주신 구원의 법에 대하여서 증거하는 말씀으로 전했습니다. 아멘!
모두가 믿음으로 받으신 줄로 믿고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에게 성영님을 보내 주시고 오늘도 속지 않는 믿음이 되도록 말씀의 복을 주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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