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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문(鹿圖文) 천부경
천부경(天符經)은 한 민족 최고(最古)의 나라로 알려진 환국(桓國)에서 비롯되어 구전되어 오던 중 환웅(桓雄)의 명을 따라 신지(新誌) 혁덕(赫德)에 의해 최초로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 때가 BC389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전이다.
(신)영변지(1948년 판)에 소개된 신지필적이 천부경 원본이므로 이를 가지고 설명한다.
신영변지에 있는 신지필적이 녹도문 천부경으로 우리말 하나부터 열까지를 적고 있다. 녹도문은 갑골문이나 금문에 앞선 것으로 한자의 어원에 해당한다. (자세한 내용은 "천부경 하나부터 열까지"라는 책에 상세하게 해설되어 있습니다)
하나
‘하’자라고 하지만 원래는 ‘한’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하나’의 원래 이름은 ‘한나’였을 수도 있다. 이는 땅에서 씨앗이 발아하여 싹이 터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식물은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분류하지만 떡잎이 세 개인 식물은 없다. 이는 ‘한’이라는 글자가 우주(현 세상)의 씨앗(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이라는 우주의 씨앗에는 천(天一), 지(地一), 인(人一)의 세 가지 기운이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자로 쓰여진 일석삼극(一析三極, ‘한’을 삼극으로 나누는 것으로 그 삼극은 천일, 지일, 인일이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자는 누가 보아도 논에 모를 심거나 땅에서 싹이 세 개 올라온 모양이다. ‘나’는 낳는 것,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 ‘날 생(生)’의 어원이다. 글자의 모양은 하늘에서 내려온 세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양이니 ‘셋이 모여 하나’가 되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앞의 ‘하(한)’와 연결해 보면, ‘한’에는 천지인이라는 세 개의 씨앗이 들어 있으니 집일함삼(執一含三,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됨)이요, ‘나’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회삼귀일은 천(天一), 지(地一), 인(人一)의 세 가지 기운이 모이면 외관상 하나가 되지만 이것은 천지인이 내포된 삼태극(三太極)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은 천부경에서 비롯된 말이다.
다음은 녹도문 ‘하나’를 읽는 방법이다. 우리말이 중국(지나)으로 전해졌으므로 대개는 우리의 발음이 그대로 전해졌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글자의 의미가 변해가듯이 발음도 변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에서 설명한 한자어대로 ‘하나’를 ‘철생’으로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두식 발음으로 보면 ‘한낳’이며, 이것이 ‘한나’, ‘하나’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녹도문 ‘하’는 시작을 뜻하며, 우리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라고 하면 ‘처음(시작)부터 끝까지’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를 숫자 ‘하나’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이는 시작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말 숫자 하나도 숫자의 시작이다.
녹도문 ‘한’은 우주(현 세계)의 씨앗이며, 나는 ‘낳다’를 의미한다. ‘한’에는 천지인이라는 세 개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그 중에서 하나는 좁은 의미로 천(天一)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늘의 속성으로 ‘낳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천지만물이 생성, 창조되는 것이란 뜻이다. 한자 천부경 해석에서도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하는 우주의 본질이며, 삼극(三極)으로 나누었을 때 천일(天一)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본성은 낳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둘
‘둘’은 둘러싸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즉. 둘러싸서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둘은 ‘한’에 내포된 천지인 중에서 지일(地一)을 의미한다. 원래 땅(대지)은 모든 것을 품어서 키운다. 천부경에서 하나(천일, 天一)는 낳은 것이며, 둘(지일, 地一)은 키워서(자라서) 번식하는 것이다.
셋
‘셋’은 ‘세우다’라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한자 ‘세상 세(世)’의 어원이다. ‘셋’이라는 글자는 다음에 나올 여섯의 ‘여’자와 닮은 꼴이지만 ‘여’자가 둥글둥글한데 비해서 ‘셋’은 각이 서 있다. 녹도문 ‘셋’이라는 글자도 세 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인(人)’자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을 찾아보면 비슷하게 생긴 글자는 있지만 견(ㄑ)자 왼 쪽에 붙어 있는 팔의 방향이 모두 아래 쪽을 향하고 있으며, 녹도문 ‘셋’처럼 위를 향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말로 ‘사람이 세운 것’을 의미한다.
천부경에 나오는 녹도문 ‘셋’이란 글자는 순수한 우리 글로 금문이나 갑골문에도 없다. 녹도문 ‘셋’이 ‘사람이 세운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현재 한자로는 ‘인간 세(世)’자이다. 즉 녹도문 ‘셋’은 ‘세상 세(世)’의 어원이다. 본래 세(世)자는 인간을 의미한다. 알기 쉬운 ‘사람 인(人)’자를 제쳐두고 ‘세(世)’자를 적은 것은 우리말 셋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글자에 숨어 있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셋’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일(人一)을 뜻하므로 사람 인(人)을 쓰지 않은 것이다.
셋의 본성은 ‘다스리다, 수양하다’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닦아서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되게 하라는
것이니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수양의 목적이 개인의 깨우침일 수도 있지만 바른 세상을 만들거나 적어도 그러한 일에 이바지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셋’은 ‘한’ 속에 포함된 천지인 중에서 ‘인일(人一)’을 의미하며, 그 의미는 ‘세우다’이며, 본성은 다스리는 것, 수양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 재세이화(在世理化)하는
것이다. 바로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기도 하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 재세이화(在世理化,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려 교화시킨다), 이도여치(以道與治, 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광명이세(光明理世,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것이다. BC2333년에 개국한 고조선의 건국이념이 이토록 고상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현재 세계의 어떤 나라도 이렇게 고귀하고 철학적인 건국이념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넷
‘넷’은 네 가지 기운이 조화를 이룬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의미는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우리글 ‘ㅅ’은 ‘셋’의 의미로 ‘세우다’, ‘생겨나다’라는 것을 뜻한다.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난다는 의미에서 ‘넷’이다. 녹도문 ‘넷’은 한자 ‘기운 기(氣)’자의 어원이다.
한자 천부경의 운삼사성(運三四成)은 삼극(三極)인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 셋이 움직여서 ‘넷’을 만든다는 뜻이다. 여기서 ‘넷’은 네 가지 기운으로 토(土, 흙), 수(水, 물), 화(火, 불), 풍(風, 바람) 또는 기(氣)를 의미한다. 이 네
가지를 합쳐서 그냥 기(氣)라고 하면 바람(風)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되어 전체 문맥이 맞지 않고 숫자 넷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토(土), 수(水), 화(火), 풍(風) 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기(氣)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넷’을 구성하는 토(土, 지[地]라고도 표현한다),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요소가 모여서 우주의 삼라만상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적취설(積聚說)이다.
세계를 이루는 근본요소에 대해 이 네 가지가 인연에 따라 뭉쳐서 나타나며, 인연이 다하면
본래의 모습인 사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불교의 인연법이다. 불교에서 지(地)는 단단하므로 모든 물질을 의미하고, 수(水)는 습기로서 물질 속의 생명의 기운을 말하고, 화(火)는 열기로서 만물을
숙성시키는 기운이며, 풍(風)은 움직이며 살아 있는 힘을 의미한다. 불교의 이러한 이론 또한 천부경에서
유래한 사상이다.
네 가지 기운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토(土)는 물질을 의미한다. 여기서 토(土)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속과 비금속뿐만 아니라 액체와 기체도 포함하는 것이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항성과 행성에서부터 바위, 조약돌, 모래알까지 모두 토(土)에 해당하는 것이다. 수(水), 화(火), 풍(風)은 생물(생명체)에게 필요한 요소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물이 없으면 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가 화(火)이다.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은 살아갈 수 없다. 비록 물질(土), 물(水), 에너지(火)가 갖추어져 있더라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데 그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風) 또는 기(氣)인 것이다.
천부경의 이러한 사상은 유럽에도 전해져서 성경의 창세기편으로 편집되고, 2,000년 동안 서구 과학 사상의 주류가
되었던 4원소설의 기초가 되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너희들의 땅이 스스로 크다고 하나 (우주에서는) 한
알의 구슬과 같다. 그 속에 있는 불(용암[鎔岩])이 흔들리고 움직여서, 바다가
변하고, 육지(陸地)가
움직여서 너희가 보는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신(神)이 기운을 불어 넣어 밑바닥을 감싸면서 햇빛과 열로 따뜻하게 하여 걷고, 날고, 허물 벗고, 헤엄치고, 흙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이 번성(繁盛)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밑바닥(흙[土]와 물[水])을 감싸고. 햇빛(火)을 비추며, 숨(氣)을 내뿜어(風) 모든 생명을 창조하여 번식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도 인간의 창조에 대해 “하나님이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숨을 불어 넣어…” 라고 적고 있는데 이것을 해석하면
흙(土)에 물(水)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으며, 형상을 빚었다는 것은 그 때 열(火)이 가해졌다는 것이며, 숨을
불었다는 것은 기(氣)를 더했다는 것이다. 성경 내용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데 아마도 성경 내용이 과학적인 내용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던지 현재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로 되어 있으며, 잠든 아담에게서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없어졌다.
다섯
‘다’는 땅 위에 나무가 많이 서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로는 ‘많을 다(多)’자의 어원이다. 글자의 형태는 땅에서 나온 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다. 우리말 ‘다’는 ‘모두’를 의미하며, ‘모두 다’라고 하면 전부 또는 전체를 가리킨다. 즉, ‘다’라고 하는 것은 ‘많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우리말 다섯은 ‘땅에 만물이 생겨나다’의 뜻이다. 한글의 ‘ㄷ’은 땅을 의미하며, ‘셋’은 ‘세우다, 생겨나다’를 의미하므로 다섯은 ‘땅에 만물이 생겨나다’란 뜻이다. 즉, 땅에 산과 들, 바다와 강과 호수가 생겨나며, 온갖 식물과 동물이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녹도문 ‘다’라는 글자에서 가로로 길게 그은 선은 땅(지, 地)을 상징하며, 그 위에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땅은 모든 것을 품어서 키운다. 땅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한자에는 없지만 가장 유사한 한자는 𠀤(大大)이다. 글자의 뜻은 규모가 크거나 정도가 심한 것을 의미하니 녹도문 ‘다’자가 변한 글자임에 틀림이 없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글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섯’은 모든 생명의 탄생을 형상화한 것으로 쌀 미(米)자의 어원이다. 녹도문 ‘다’가 땅(지구=물질)의 모든 것이라고 하면 ‘섯’은 모든 생물의 탄생을 나타낸다. 땅 위와 하늘 위의 생물과 땅 속, 바다 속의 모든 생물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물 중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흙에서 자라는 식물, 물에서 헤엄치는 생물, 날아다니는 생물, 걸어 다니는 생물 등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서 번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녹도문 ‘섯’은 쌀 미(米)자의 어원이다. 녹도문 ‘섯’에 ‘쌀 미(米)’를 선택한 것에도 많은 뜻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주식이다. 우리말 다섯은 땅 위에 모든 것이 생겨난다는 의미인데,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또, 사람(우리 민족)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식량이 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섯의 ‘섯’에 쌀 미(米)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섯’에 미(米)자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미(米)자가 벼에서 탈곡하여 낱알을 하얗게 정미한 쌀을 의미하지만 그 글자의 형태가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구분하여 설명하기 좋은 형태인 것도 포함되며, 이를 가마니에 담으면 ‘섬’ 단위로 세기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곡물인 쌀 또한 식물이자 하나의 생명체다. 쌀알만큼 많은(모든) 생물(생명체)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녹도문 ‘섯’에 해당하는 글자를 ‘쌀 미(米)’를 선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섯은 땅 위에 만물을 생겨나게 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물은 산과 바다 같은 물질만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같은 생물을 포함하며,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도 포함된다.
여섯
‘여’는 하늘에 생겨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하늘에 구름이 생겨난 것이다. 한자 ‘이를 운(云)’과 ‘구름 운(雲)’의 어원이다. 앞서 나온 녹도문‘셋’자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셋은 각이 져 있지만 ‘여’자는 각이 지지 않고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다. 녹도문 ‘셋’이 ‘사람이 세운 것’을 의미한다면 녹도문 ‘여’는 ‘둥그스름한 반원(하늘)이 세운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 여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나다’라는 뜻이다. 녹도문 ‘여’자도 우리 고유의 문자로 오늘날의 한자에는 없다. 금문(金文)이나 갑골문(甲骨文)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글은 없다.
녹도문 ‘여’자는 ‘이를 운(云)’자를 뜻하며, ‘운(云)’자가 의미하는 것은 구름이 융성하게 일어나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 여섯의 뜻에 맞추어 확대 해석하면 “구름이 융성하게 피어올라 하늘을
가득 메운 것처럼 은하수처럼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녹도문 ‘여’는 하늘을 가득 채운 것을 의미한다.
한자 천부경의 대삼합육(大三合六)은 큰 셋을 합하니 여섯이란 의미이다. 한자 천부경을 풀이할 때 이 여섯은 (셋이 모여서 하나로 돌아간)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란 사실을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 모여있는 것이며, 이 삼태극의 작용으로 일곱, 여덟, 아홉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은 셋이 모여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셋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외관상으로는 하나처럼 보인다. 그래서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말이 나왔다. 운(云)자에 ‘돌아가다’는 뜻이 있으니 이것을 회삼귀일(會三歸一)과 연관시켜 보면 녹도문 ‘여’란 글자는 대삼합육(大三合六)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자인 ‘이를 운(云)’은 ‘말하다’의 뜻인데, 여기에 전혀 상관 없는 ‘구름’, ‘융성하게 피어나다’, ‘돌아가다’란 뜻이 있다는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녹도문 ‘여’자의 뜻이 남아있는 것이다.
다섯의 ‘섯’이 땅에 모든 생물이 생겨난 것을 의미하는데 비해, 여섯의 ‘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 ‘바 소(所)’의 어원이다. 글자의 형태는 두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뜻하는 글자는 아니다. 다섯의 ‘다’와 마찬가지로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여섯의 ‘여’는 ‘하늘에 생겨나다’라는 뜻이고, ‘섯’은 ‘모두’를 의미하므로 우리말 여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나다’라는 뜻이다. 우리민족은 삼의 민족이므로 굳이 셋으로 표현하자면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여섯이 의미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완성이다. 즉,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나(넷), 땅에 만물이 생성되고, 생명이 탄생하며(다섯), 하늘에 해와 달, 별들이 생겨나서(여섯)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여섯은 현재 실존하는 우주 전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성된 세계에는 3개의 섭리가 있으니 그것이 일곱, 여덟, 아홉인 것이다.
일곱
‘일’은 나무에 잎이나 꽃망울이 ‘일어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 ‘꽃부리 영(榮)’자의 어원이다. 글자의 형태로 보면 줄기나 가지가 뻗어 있고 그 위에 꽃이 피거나 다른 가지가
갈라지는 형상이다. 우리말 일곱은 ‘일어나서 자라고 소멸한다’는 뜻이다. 녹도문 ‘일’자는 나서 자라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말 ‘일굽’은 ‘일어나서 굽는다’는 것이며, 이는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생명체)은 나서, 자라고, 번식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녹도문 ‘일’은 ‘일어나다, 태어나다’를 뜻하는 글자이다. 일곱의 의미로 볼 때 우리말 일곱은 원래 ‘일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곱(굽)’은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힌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 ‘주검 시(屍)’자의 어원이다.
일곱을 지방에 따라서는 아직도 일굽으로 발음하고 있으며, 이는 원래의 일곱이 갖는 의미가
남아 있는 것이다. ‘굽는다’는 것은 기운이 꺾여서 쇠한다는 의미이며,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도문 일곱은 말 그대로 ‘일어나서 굽는다(죽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곱의 참뜻을 두 글자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곱이란 ‘하늘의 기운(天一)을 받아서 생성된 세상 만물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이다. 별(星)도 탄생하여 자라다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이니 세상 만물은 구름과 같이 생겼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상(無常)이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하늘의 진리(天二)이자 섭리이다.
여덟
‘여’자는 ‘기르다’를 의미하는 글자이며, 한자 ‘몸 기(己)’자의 어원이다. 우리말 여덟은 ‘여름(열매)을 더해서 번영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한자 ‘몸 기(己)’자는 말 그대로 몸이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다스린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초기의 기(己)자는 몸을 웅크려 씨앗을 심어 기르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서 ‘길러서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번식하는 것이다. 여덟은 모든 생물이 성숙하면 열매를 맺어서 번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덟’자는 나무에 기(旗)를 꽂아 시장이 형성된 것을 형상화한 것이며, ‘저자 시(市)’의 어원이다. 이는 노력의 결과(열매)를 수확하는 것으로 번성 또는 번영을 의미한다. ‘덟’자는 나무에 무언가 달려 있어서 열매를 맺거나 무엇이 자라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얼핏보면 나무 목(木)같기도 하지만 목(木)자와는 거리가 멀다. 녹도문 ‘덟’자는 목(木)자 위에 두 개의 점이 선명한 탓이다. 환웅(桓雄) 시절에는 시장을 열 때 나무 위에 기(旗)를 달아서 시장이 열렸음을 알렸다. 녹도문 ‘덟’은 이를 형상화한 것이다. 초기의 시(市)자는 시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 ‘장사하다, 팔다’ 등의 개념이다. 현재는 도시나 시가지를 의미한다. 시(市)는 시장이 열리는 곳으로 변두리에 비해 인구가 늘어나고 발전해서 번영한 곳이다.
여덟은 한글로 ‘열매(여름)를 더한다’는 의미로 번식하고 번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녹도문 여덟은 ‘길러서 번영하다’를 뜻한다. 하늘의 기운(天一)과 땅의 기운(地一)을 받아 태어난 모든 생물(생명체)은 태어나서, 성숙하여, 번식하는 것이 여덟이며, 이는 땅의 진리(地二)이자 섭리이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사람은 누구나
수긍하는 이야기이지만 곤충들은 존재 목적이 번식하는 것이다. 매미를 예로 들어보면, 매미는 애벌레인 굼벵이의 형태로 5~6년, 심지어는 11~17년을 땅속에서 지내다가 성충이 되며, 이 성충은 불과 1~3주일 살고 죽는다. 성충이 된 매미는 짝을 찾아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생의 목표이다. 가장 수명이 짧은 하루살이 역시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애벌레로
지내다가 성충이 되면 성충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교미하여 산란하는데 남은 생을 바친다. 이는
곤충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어류, 조류, 파충류, 포유류를 포함하여 모든 동물은 후손을 남기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이자 숙명이다. 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식물도 자라서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어 이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 생의 목적이다. 즉,
모든 생물은 자라서, 성숙하여, 번식하는 것이
존재의 일차적인 이유이며, 이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여덟’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홉
‘아’는 ‘뫼 산(山)’과 ‘몸 기(己)’를 아래위로 합쳐놓은 형상으로 수양하고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한자에서도 없어진 글자이다.
옛 기록을 보면 “13세 단군인 흘달 재위 20년에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으셨다. 미혼의 소년들에게 독서와 활 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셨다. 국자랑이 밖에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전통이 이어져 신라에서는 화랑(花郞)이 되는 것이며, 이 후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내려 오게 되는 것이다. 천부경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전통은 이미 환국(桓國)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대대로 이어져온 것이다.
수양과 관련해서 보면, 천부경에서 선도(仙道)의 뿌리가 싹트게 되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삼성기전 상편에서 ‘환인이 지기를 타고 놀았다(乘遊之氣)’라고 하여 신선도가 처음 등장한다. 이 맥이 이어져 고구려에서는 조의선인, 신라에서는 화랑선인, 백제에서는 문무도 또는 무사도로 나타난다. 가야의 암시선인, 고려의 국선도, 조선의 선도 역시 근본은 천부경의 아홉이 뜻하는 수양(닦는 것)에서 비롯된다.
명산(名山)에 들어가면 천지의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초목이 무성하고 온갖 동물이 번성하니 심신을 수양하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녹도문 ‘아’에 산(山)과 기(己)를 합쳐 놓은 것이 그것을 뜻하는 글자라는 것이다.
‘홉’은 풀을 베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한자 ‘벨 예(乂)’의 어원이다. 칠(七)자나 비(匕)자도 형태는 유사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예(乂)자는 기본적으로 ‘풀을 벤다’는 뜻이지만 이에서 파생된 의미로 ‘다스리다, 징계를 하다, 어진 사람, 쓸쓸하다’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녹도문 ‘홉’은 이 중에서도 ‘다스리다’를 의미한다.
녹도문 아홉의 글자를 붙여서 해석하면 ‘심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확대 해석하면 열기 위해(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늘의 기운(天一), 땅의 기운(地一), 사람의 기운(人一)을 모두 받아서 태어난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은 공부하고, 수양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홉’이며, 이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인간의 진리(人二)이자 섭리이다.
아홉은 다스리는 것, 수양하는 것이며, 한자(漢子) 천부경 해설에서는 삼일신고(三一神誥)에 나온 말을 인용하여 성명정(性命精)을 닦는다고 하였다. 천부경에서는 ‘아홉’이 인간의 섭리로 수양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다. 우리말 중에 ‘아홉 수가 가장 어렵다’는 것은 이를 뜻한다. 삼일신고(三一神誥)는 천부경의 또 다른 해설서로 볼 수 있으며, 삼일신고의 진리훈(眞理訓,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 아홉의 방법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한자 천부경에서는 이 ‘아홉’과 연관된 구절이 2개 있다. 하나는 일적십거 무궤화삼(一積十鉅 無櫃化三)으로 “우주의 근본 기운인 한(一)을 쌓고 쌓아 크게 열면 걸릴 것이 없는 밝은 사람(明人)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홉’은 일적십거(一積十鉅), 즉 하늘의 기운을 쌓은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명인중천지일(明人中天地一)로 “밝은 사람(明人)은 천일(天一), 지일(地一)의 기운을 온전하게 다스려 속(中)에 갈무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아홉’은 한(一)에 들어있는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의 기운을 조화롭게 다스려 하늘의 기운인 한(一)을 쌓고 쌓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열’자는 두 손으로 문을 여는 것을 형상화한 것으로 ‘열 개(開)’자의 어원이다. 녹도문 ‘열’은 ‘열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드는 모양으로 ‘들 공(廾)’자의 어원이기도 하다. 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 모양에서 ‘풀 초(草)’를 연상시키지만 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자이다. 녹도문의 ‘하’자는 현재 ‘왼손 좌(屮)’의 의미만 남아 있으며, 이는 손(手)을 가리키기도 한다.
녹도문 ‘열’은 천부경의 결론이다. 사람은 천지인의 기운을 모두 받아 태어났으니 세상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존재이다. 이렇게 귀한 존재인 사람은 아홉을 통해 열어서 자기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명인(明人, 밝은 사람)이 되어 홍익인간(弘益人間)에 이바지하라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이러한 명인(明人)을 우러러보고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