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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1절에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창조하다”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1)
“하늘(heavens)”이라는 단어(샤마임)는 복수형으로 사용됩니다. 영어에서도 “heavens”로 복수형입니다.
“땅(earth)”은 “에레츠”며 “지구”, “대지”, “육지”라는 의미입니다. “하늘과 땅”이 한자어로 “천지(天地)”로 번역되었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 하늘과 그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은 우주 만물 전체를 나타냅니다.2) 그리고 영적인 하늘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이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예를 하늘 위에 주신 분이십니다.
시편 8편 1절에 “주여 당신의 이름이 모든 땅에서 얼마나 장엄한가요, 당신은 당신의 영예를 그 하늘 위에 주신 분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주(主)”(아돈)는 왕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왕상 1:47).3)
시인은 야훼의 이름이 모든 땅 안에 얼마나 장엄한지 찬양하였습니다. 야훼의 이름과 야훼의 영예가 병행되는데 그의 이름은 그의 영예입니다.
하나님의 영예는 그의 이름을 통해서 인류에게 알려집니다.4)
야훼의 이름과 야훼의 영예가 병행되며 또한 땅과 하늘이 병행됩니다. 그의 영예로운 이름은 온 땅 안에 장엄하며 하늘 위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야훼의 영예로운 이름이 실로 장엄하다고 감탄합니다.
시편 11편 4절에 “하나님께서 그 성별의 신전에 그의 왕좌는 하늘에, 그의 눈이 바라보며 그의 눈꺼풀이 인류의 자손들을 검사하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하늘 왕좌에 계신 것을 알고 믿음을 회복합니다.5)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아담의 자손들을 내려다보시며 검사하십니다.
시편 14편 2절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아담의 자손을 내려다보시니, 슬기롭게 행하며 하나님을 요구하는 자가 존재하는지 보시기 위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69편 30~36절에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할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께 수소보다 선하니 뿔을 가지고 발굽들을 가르는 황소라. 겸손한 자들(humble)이 보았으며 기뻐할(be glad) 것이라, 하나님을 요구하는(seek) 자들이고 너희의 마음이 살게 할 것이니.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에 들으시고, 그 종들을 업신여기지 아니하심이며. 하늘과 땅이 그를 찬양하고 바다들과 안에 움직이는 모두도 그러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지온을 구원하시고 유다의 성읍들을 지으실 것이고 그들이 거기에서 거주하고(dwell) 그것을 소유할 것이고. 그의 종들의 씨(the descendants)가 그것을 물려받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 안에 머무를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겠다고 하였습니다(시 69:30). 천지가 찬양하고, 바다들과 그 안에 기는 모두도 그러합니다(시 69:34).
그런데 누구는 찬양 안 합니까? 하나님께서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 안 한다는 것입니다. 찬양 시간에 입 딱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도 찬양하고 땅도 찬양하는데, 하물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청년이 교회에 왔는데, 찬양 시간에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교회 안 나옵니다. 그런데 찬양 시간에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 이 자리에 또 있습니다.
하물며 말을 못 하는 하늘도, 말을 못 하는 땅도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입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천지(하늘과 땅)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시편 121편 1~2절에 “내가 나의 눈을 그 산들에 들어 올리겠노라 나의 원조(help)가 어디서 오느냐(shall come)? 나의 원조가 하나님에게서 오니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121편은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오느냐?”라는 내용입니다.6)
이 시편은 순례자의 노래로서 가장 친숙한 시편인 23편처럼 순박하게 42편처럼 간절하게 우리 영혼을 울려줍니다.7)
시인은 대담하게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확신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읽는 사람은 내적인 안정감과 ‘달콤한 확신’을 얻습니다. 편안한 자리에 앉은 때는 이 시의 위로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8)
주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가는 여행 주제가 나옵니다.9) 이 시는 한 가지 주제인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로 구성되었습니다.10)
이 시편의 중심 분위기는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고백이므로, 이 시편을 신뢰의 시로 보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11)
1~2절은 ‘나의 도움이신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고백입니다.12)
“산들”은 예루살렘 산지 지온을 가리킬 가능성이 큽니다(시 121:1). 고대 근동에서는 산과 높은 언덕이 대개 신(神)들과 관련 있습니다.13)
1절은 ‘고난의 상황을 탄원’한 내용입니다.14) 시인은 고난의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곳이 어디인지를 질문합니다.15)
시인은 그의 도움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고백합니다(시 121:2). 우리의 도움은 하나님에게서 오며 그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무능한 외국의 신(神)들과는 다르시므로 순례 길의 어려움에서 확실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16)
시인은 그를 도울 수 있는 신(神)은 하나님뿐이신 것을 고백합니다.17) 그 이유는 그가 신뢰하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까지 간섭하시는 매우 크신 분이십니다.18)
창조 신앙은 하늘과 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론적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확실하게 구원과 해답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표명합니다.19)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력자가 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하나님에게서 올 수 있는 것을 믿는 삶을 삽니까?
시편 124편 8절에 “우리의 조력자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안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24편 8절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 주제에 해당합니다.20)
요즘 마트에 가도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이 노래가 나오고, 미국에서 미국 노래 순위에 1위도 할 정도로 유명한 노래가 되었습니다. 내용은 없는데, 요즘 20대를 보면 머리가 비어 있는지 내용이 없습니다. 윤수일 아파트는 내용이 있는데, 요즘 세대는 생각 없는 듯이 보입니다. 생각 없이 사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를 중국 사람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대출받기 힘든데 중국인들은 대출로 집 사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중국인들이 한국을 잠식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인 A씨는 서울에서 15억 원 이상 주택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전액을 중국 현지 은행에서 대출받아 강남구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를 89억 원에 사들였습니다.21)
중국이 한국 먹을 때 총으로 먹지 않고 이런 방법으로 먹는 것입니다. 동남아,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들에서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 나라의 부자들은 다 중국 사람들 아닙니까?
사람이 아파트를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것입니다. 시인은 그 도움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신(god)들이 많잖습니까? 불교에서는 부처를 섬기고 힌두교에는 신(神)이 한두 개가 아니고, 일본에도 신(神)이 많잖습니까? 그 신(god)들하고 우리의 신(God)이신 하나님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의 하나님은 바로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잡신(雜神)은 천사들이 타락한 존재인 우상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상들은 사람들에 의해 금을 녹이고 나무를 잘라 만들어진 것들이고,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하고는 참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 이상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런 참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참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사람을 만드셨고 지금도 일일이 간섭하십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돕는 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창 2:18). 야훼 하나님께서 모세의 돕는 자(helper)가 되셨습니다(출 18:4).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 혼자 밖에 나가서 동물들 이름 지었고 아담이 보니까 동물들이 다 2마리씩 있는데 자기만 혼자 있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돕는 자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존재가 여자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남편의 조력자가 되어야지 남편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여자의 본분인 돕는 역할을 잘하는 때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여자가 ‘나 돕는 자 싫어, 나 능력 많아’, 자기는 국회의원이라 하면서 밖에 나가서 페미니즘 외치고 이상한 법 만들고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어긋나는 것입니다.
페미니즘 외치는 여자들 얼굴 볼 때, 그 얼굴이 행복하게 보이는가요? 남자와 여자는 똑같다면서 평등을 외치는데 어떻게 남녀가 똑같습니까? 여자가 본분을 지키지 못하면 목적에서 어긋나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쨌든 사람이 자기 창조 목적을 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주관하는 자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돕는 자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돕는 자를 그 성별에서 보내실 것입니다(시 20: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조력자시며 그는 우리의 방패이십니다(시 33:2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조력자시며 우리의 구조자십니다(시 70:5).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력자신 하나님 안에 신뢰하여야 하며(시 115:9), 아론의 집은 그들의 돕는 자신 하나님 안에 신뢰하여야 하며(시 115:10), 우리는 다 우리의 돕는 자신 하나님 안에 신뢰하여야 합니다(시 115:11).
올라감의 노래에서 핵심 신앙 고백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22)
나의 원조는 하나님에게서 오니 천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시 121:2). 우리의 원조는 하나님께 있으니 천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시 124:8).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셨다면 다른 것들은 쉽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시편 134편 3절에 “하나님께서 지온으로부터 너에게 복을 주시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노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이 그 백성들에게 임할 것을 기원합니다. 크리스트교 전통에서는 예배 마지막에 인도자가 축원의 말을 합니다.23) “축원(祝願)”이라는 말은 “축복(祝福)하며 기원(冀願)”한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지온으로부터 복을 주실 것입니다.24) 지온 성전은 지속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25)
3절의 형식은 제사장의 축도이므로 제사장의 축원이라고 해석됩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축복하며 기원합니다.26)
이 말씀과 같이 우리가 우리의 손을 들어 올리고 하나님을 송축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온으로부터 복을 주실 것입니다(시 134:3).
우리 인류는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으며,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 5~6절에 “하나님께서 너를 지온으로부터 복 주실 것이고 너는 예루살렘의 행복을 너의 생명의 모든 날에 볼 것이고. 너의 아들들에게 아들들을 보라 평화가 이스라엘 위에”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생명을 살아가며 보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평화가 이스라엘 위에 있을 것인데 하나님을 섬기면 평화가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왕이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야’라면서 산다면 그 사회에 싸움과 다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의 왕이 되어서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될 것이냐? 하나님이 나의 왕이 되셔서 그 명령에 복종하며 사는 사람이 될 것이냐?
각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살면 항상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게 되겠으나 각 사람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살 때 삶 속에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행복과 평화와 회복의 복을 주십니다.27)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왜 남자와 달라야 해?’, ‘내가 왜?’라고 하며 내 마음대로 살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자의 창조 목적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며 삶을 살면 삶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의 원리이고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것이 회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러 온 자들에게 지온으로부터 복을 주십니다.28)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이 중요한데 어떻게 예배합니까? 주보 순서지 밑에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예전의 개역 성경에는 예배자가 “진정으로” 예배한다고 번역되었는데 예배자의 마음에 “진정”이 있고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일요일이니까 교회 가야겠다고 하고 교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대통령 만날 때도 내일 월요일 1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가기 싫은데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며 약속에 나가는 것과 내일 만나기 위해 내일 입을 옷 오늘 미리 찾고 준비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렇게 성의 없이 대통령을 만날 때 대통령이 좋아하겠냐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예배할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진정한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찬송시간에 입 닫고 기도시간에 딴짓하고 신앙 고백 시간에 딴생각하고, 설교 시간에 휴대전화를 검색한다면 예배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영(靈)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이시며 이렇게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지온으로부터 그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복을 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지온으로부터 복을 받는 복된 자들이 다 됩시다!
복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올라감의 노래”가 마칩니다.29)
3. 우리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만 합니다.
시편 136편 5~6절에 “이해력 안에 그 하늘을 만드신 이에게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 그 땅을 물 위에 치신(spread) 이에게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예배할 뿐 아니라, 하늘을 만드시고 땅을 물 위에 펴신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는 그의 자비가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구원영생교회 성도들이 다 됩시다!
1) Gordon J. Wenham, 『창세기 1-15』, WBC 성경주석 1, 박영호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101.
2) Wenham, 『창세기 1-15』, WBC 성경주석, 103.
3) 김정우, 『시편 주석 Ⅰ』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05), 280.
4) Peter C. Craigie, 『시편 1-50』, WBC 성경주석 19, 손석태 역 (서울: 솔로몬, 2008), 136.
5) 김정우, 『시편 주석 Ⅰ』, 337.
6) 김정우, 『시편 주석 Ⅲ』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10), 515.
7) 김정우, 『시편 주석 Ⅲ』, 516.
8) 김정우, 『시편 주석 Ⅲ』, 516.
9)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1), 381.
10)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382.
11) 김정우, 『시편 주석 Ⅲ』, 518.
12) 김정우, 『시편 주석 Ⅲ』, 520.
13) Nancy L. deClaissé-Walford, Rolf A. Jacobson and Beth LaNeel Tanner, 『NICOT 시편』, NICOT 성경주석, 강대이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1083.
14)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382.
15)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381.
16) 김정우, 『시편 주석 Ⅲ』, 522.
17)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383.
18)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384.
19) 김정우, 『시편 주석 Ⅲ』, 522.
20) 김태경, 『시편 Ⅲ』,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주석, 398.
21) 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220551
22) 김정우, “구성적 관점에서 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시편 120-134)의 통일성” 『신학지남』 제305호 (2010): 25, n. 38.
23) deClaissé-Walford, Jacobson and Tanner, 『NICOT 시편』, 1138.
24) 김정우, 『시편 주석 Ⅲ』, 635.
25) 김정우, 『시편 주석 Ⅲ』, 636.
26) 김정우, 『시편 주석 Ⅲ』, 637.
27) 김정우, 『시편 주석 Ⅲ』, 638.
28) 김아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시편 120-134)의 구성적 주석적 연구”, 『ACTS 신학저널』 제50집 (2021): 124.
29) 김아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구성적 주석적 연구”,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