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나라청소
하상욱
PARAN IS 10
2025년 2월 1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04쪽
ISBN 979-11-91897-98-2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이따 저녁에 만나, 하고 헤어지는 아침
[달나라청소]는 하상욱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이자 유고 시집으로, 「삼백 원」 「달나라청소」 「늦겨울」 등 58편이 실려 있다.
하상욱 시인은 1967년 1월 11일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고,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23년 10월 7일 타계했다. 유고 시집 [달나라청소]를 남겼다.
비록 제도권 문단에서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고 살아가지는 못했어도 일상에서 마주치는 꽃이나 나무, 구름, 소박한 음식,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에서 시를 발견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써 온 하상욱 시인이야말로 누구보다 오롯한 시심을 품고 살아온 시인이 아닐까 한다. 소박하고 단출한 그의 시에서 연민과 사랑과 뚝심을 읽는다. 그것은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 시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하상욱의 시는 생명을 귀히 여길 줄 안다. 호박 하나에서도 호박이 여물기까지 흘러간 시간을 읽어 낼 줄 아는 시선을 지녔다. “잘 여문 어둠”과 “쩌렁쩌렁/박혀 있”는 “햇살”, “벌들의 잉잉거리는 날갯짓/나비의 그림자”, “구불텅구불텅 길 하나가/마을로 마을로/내려오고 있”는 풍경까지 보아 내는 시선이 대상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비단 호박뿐이겠는가. 하상욱의 시선이 가닿은 자리에서는 “우리가 울고 웃었던/세월이 출렁이며/고여 있”다.(「호박」)
이렇듯 대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시선을 지닌 하상욱이지만 “문득 눈떠 주위를 보니/아무도 없”는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빈방」). 다 돌려주고 비워 내서 정작 자신은 텅 비어 버렸거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너그럽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놓치고 상실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하상욱 시의 정서적 바탕을 이룬다. 그런 까닭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거나 “너무 단단한 것은” “왠지 좀 쓸쓸해 보”인다는 것을 하상욱 시의 주체는 경험적으로 안다. “누가 앉으면 삐걱삐걱”하는 “나무 의자”를 보며 “이 나무 의자는/삐걱삐걱할 때만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시의 주체는 쓸쓸함을 아는 사람이기에 “삐걱삐걱”대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나무 의자」)
이 험난하고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하상욱 시의 주체는 “절망하지 않으려고” 살아가는 대상들의 안간힘을 보아 낼 줄 안다. “절망하지 않으려고 집을 나서는 사내처럼/절망하지 않으려고 자동차는 달”리고, “절망하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핥고/절망하지 않으려고 꽃은 기어이 핀다”. 사람과 생명을 지닌 존재들뿐 아니라 사물들까지도 절망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절망하지 않으려고 시를” 쓰는 시인은 안다. 사랑과 연민과 미련의 감정이 남아 있는 한, 그래서 기를 쓰고 무언가를 하거나 버티고 있는 한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담쟁이덩굴”의 ‘푸른 등허리’처럼 “들썩들썩 일어서려는” “재 한 줌”처럼.(「절망」) 삶을 향한 의지를 놓게 되는 것은 절망 때문임을 하상욱의 시는 꿰뚫어 본다. (이상 이경수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살아서 그는 종종 문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취기 어린’ 목소리로 그는 그러나 특별한 용건을 잘 꺼내지 않았다. 정작 전화를 걸었으면서 몇 마디 변죽을 울리다가는 다짜고짜 그래 잘 지내 하고 끊는 그의 화법과 진심을, 유고 시집 원고를 읽으면서야 아프게 깨닫게 된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차곡차곡 쌓고 보태는 방식이 아니라, 접고 접어 끝내 침묵까지 갔다가 거두절미하고 한마디 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쓴다. 그의 시들을 보면 생각과 느낌이 시가 되기까지 그가 얼마나 오래 그것을 들여다보았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낡은 의자의 삐걱임이나(「나무 의자」), 그네의 미세한 흔들림에(「그네」) 한없는 눈길을 주는 그가 보인다. 세상을 천천히 하얗게 뒤덮어 가는 눈발을 넋을 놓고 내려다보는 그의 ‘하얀 머리통’도 보인다(「첫눈」). 그렇게 그는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못한 ‘세월’의 뒷모습을, 절망의 맨얼굴을, 속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을 내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래 보아야만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한 것들”을 마침내 분명하고 간결한 언어로 쓸 수 있는 것이리라(「미역국」). 세상이 얼마나 아프게 아름다운지를, 그것을 언어로 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망해 본 사람, 그리고 그렇게 몇 자, 몇 구절을 얻기 위해서 기꺼이 한 생애를 건 사람이 하상욱 시인이구나. 아름답다 못해 아프고, 아프다 못해 두렵다. 회한에 몸이 치떨린다. 시를 살아 내고 마침내 시가 된 자여. 그래서 그의 인사말은 그렇게 아프게 울리나 보다. 「늦겨울」 같은 시를 보라. “찬물에 손을 담그고 사는 여자”와 “무거운 벽돌을 지고 오르며 사는 남자”라니, 그들이 헤어지면서 “이따 저녁에 만나” 인사하고 헤어지는 삶이라니. 사는 일이나 쓰는 일이나 눈물겹다. 꽃을 피우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봄날이 간다」).
―이현승 시인
•― 시인의 말
기차는 길다 괴로움의 증거다
달려가자
달려가자
•― 저자 소개
하상욱
1967년 1월 11일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23년 10월 7일 타계했다.
유고 시집 [달나라청소]를 남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툇마루 – 11
개망초 – 12
아카시아 – 13
호박 – 14
루트 – 15
항아리 – 16
국수 – 17
가을밤 – 18
길 – 19
오체투지체 – 20
악보 – 21
삼백 원 – 22
용머리고개 – 23
김종삼 – 24
제2부
눈 오는 아침 – 27
그 골목 – 28
옹벽 – 30
달나라청소 – 32
방 – 34
흰 구름이 되어서 – 36
지퍼 – 37
빈방 – 38
기차는 길다 – 39
안개 – 40
첫눈 – 41
제3부
침묵을 받아먹는 우체통처럼 – 45
멸치 – 46
냉장고 – 48
찬비는 내리는데 – 49
절망 – 50
접시꽃 당신 – 51
봄날이 간다 – 52
불암사 단상 – 53
제4부
무당벌레 – 57
비구름 – 58
그네 – 59
진기리 – 60
대상포진 – 61
미역국 – 62
무 – 64
울먹울먹 – 65
제5부
아내 – 69
살구나무 – 70
재봉틀 – 71
라면을 끓이며 – 72
빗소리 – 73
나무 의자 – 74
앵두꽃 핀 그 옆에 – 75
밥솥 – 76
힘 – 77
애착 냄비 – 78
늦겨울 – 79
마루 – 80
겨울비에 젖으며 – 81
아궁이 – 82
앵두 – 83
계단 – 84
기차 – 85
해설 이경수 마지막 낭만을 살다 간 시인의 안부를 묻다 – 86
•― 시집 속의 시 세 편
삼백 원
손톱 발톱 깎고 방 청소했다
낱말 공부를 좀 하고 나니 어두워졌다
방 안에 있는 동전들 다 모아 오천 원을 만들고
마트에 가서 소주 큰 것 하나 사니
삼백 원이 남았다
삼백 원은 얼마나 예쁜 돈인가
삼백 원은 얼마나 예쁜 당신인가
삼백 원을 호주머니에 넣고
내 남은 생도
이 삼백 원처럼만 맑았으면 하면서
불 켜진 내 방이 환하게 보였다 ■
달나라청소
눈물 그런 건 없어요
잘못 살았고 지금도 잘못 살고 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고
저는 거리에 나가 청소를 하며 먹고살고 있어요
사랑 그런 건 없습니다
이별 그런 것도 이젠 없습니다
밤이면 달이 뜨고 별들이 뜨지요
언제 한번 거기까지 올라가
달도 닦고 별들도 닦으며 살아 볼까요
예수는 제자들에게 빵을 나눠 주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저는요 그분을 잘 알아요 너무도 잘 알아요
살아 보니까 자꾸 더 알아지더라고요
오월이 지나고 이제 유월이 다 가네요
이제 더 뜨거운 꽃들이 피겠죠
참고로 저는 계단 닦는 사람입니다
제 명함 한 장 드리겠습니다
달나라청소라는 상호가 아주 큼직하게 박혀 있는 ■
늦겨울
찬물에 손을 담그고 사는 여자와
무거운 벽돌을 지고 오르며 사는 남자가
헤어지는 아침
이따 저녁에 만나, 하고
헤어지는 아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