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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봉목사의 연구실 스크랩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은총론에 대한 논쟁 고찰
정태봉 추천 0 조회 97 08.09.22 14: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은총론에 대한 논쟁 고찰

 

신원균 목사

 

 

서론

1. 문제제기

2. 연구방법

 본   론

A.  워필드(B.B. Warfield)의 논평

1.  펠라기우스주의의 기원과 성격

2.  펠라기우스 논쟁의 외적인 역사

3.  어거스틴의 입장

 B.  어거스틴의 은총론

1. 원죄(罪)에 대하여

   (De Peccato Originali)

2. 본성과 은총에 관하여

   (De Natura et Gratia, contra Pelagium)

3. 은총과 자유의지에 관하여

   (De Gratia et Libero Arbitrio)

4.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구조의 차이점

5.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은총론 논쟁이 주는 신학적     의미.

 결   론

 

 

 

 

 

서  론

 

 

 1. 문제제기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앙적 형태가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보다는 "인간 중심"적인 신앙의 형태로 변질되게 된 것은 인간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의 형태와 인간 중심적인 형태의 신앙적 특징은 이미 교회 역사의 초기에서부터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초기 교부시대의 논쟁이 후대에도 계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초기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게 되면 오늘날 변질되어 있는 신앙적 형태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Augustin)의 인간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주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명령하소서"라는3)

 표현에 담겨져 있다.  즉 어거스틴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라는 말씀의 기초에서 인간의 존재와 또한 인간이 누리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은총의 선물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가장 연약하고 비참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어거스틴은 명확하게 증거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적인 개혁신학의 기초를 정립해 주었던 것이다.

  반면 인간 중심적인 신앙의 대표적인 신학적 기초로서 펠라기우스(Pelagius)를 언급할 수 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명들을 주신 것은 우리에게 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계명을 주셨을 리가 있는가? 우리는 언제든지 선이나 악이나 자유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 자유 선택의 기능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가 타고난 최고의 선이다"4)

라고 언급하면서 인간에게 자율적인 선택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언급하므로 인간 중심적인 신앙의 형태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정신은 오늘날 자유주의를 비롯해서 모든 인간 중심적인 신학의 기초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로 신학적인 성격이 규명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을 통해서 두 분파간에 공통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그리고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에 대한 평가가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입장처럼 평가되지 않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평가됨으로 어거스틴의 신학이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오히려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입장이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평가를 제시한 사람으로 요한 웨슬레를 언급할 수 있는데 그는 펠라기우스가 이단으로 불리운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었고, 동정적이었다. 소위 펠라기우스의 이단성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완전한데 나아갈 수 있다는 것과, 따라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5)

 

  또한 한영태 교수는 "펠라기우스의 교훈이 오늘에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와 도덕, 신앙과 윤리, 바울과 야고보는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6)

라고 평가하면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했던 것이며,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책임을 주장한 것이기에 이 두 주장의 조화를 주장하면서 펠라기우스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던 것이다.

  이런 주장은 마치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은혜만을 주장하고 인간의 책임은 주장하지 않은 것처럼 어거스틴의 인간론에 대한 이해를 오해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논점을 잘못 평가하는 원인은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입장이 정확하게 구별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즉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신학적 표현이나 주제의 내용이 많이 겹쳐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신학적 입장의 특징을 정확하게 구분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표현과 내용상에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을지라도 전혀 다른 신학적 기초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입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특징들을 분명하게 구분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이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가 가지고 있는 표현상의 특징과 주제상의 내용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신학적 구조를 정확하게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논점이 어떤 방식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명확하게 구별해 냄으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인간론의 근본적인 차이점과 특징이 무엇인지를 정립해 보고자 한다.  즉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인간론에서 근본적인 차이점과 특징은 L. 벌콥의 지적처럼 "자유의지(Free Will)와 원죄(Original Sin)"에 있어서 가장 명확하게 구별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7)

 

 

2. 연구방법

  본 논문을 전개해 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고대 교부의 연구가 매우 미흡한 현(現) 신학적 형편을 고려해 볼 때 어거스틴의 방대한 논문을 연구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대 교부의 연구가 개혁신학 쪽에서 많은 내용이 연구되어진 것이 아니라 비(非)개혁신학 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었기에 어거스틴을 소개하는 것이 많은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신학적 형편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도 개혁신학자들이 소개한 어거스틴의 이해를 기초로 해서 어거스틴의 논문을 분석해 보는 것이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가장 바르게 어거스틴을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 논문은 칼빈과8)

 워필드9)

와 벌콥10)

을 중심으로 개혁신학자들이 어거스틴의 핵심적인 인간론 이해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기초로 해서 어거스틴의 논문을 분석할 것이다.  다행히 어거스틴의 은총론 논문이 번역이 되어 있어서 이 논문을 개혁신학자들의 입장에 의해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어거스틴의 은총론"(필립샤프편, Ⅰ.Ⅱ.Ⅲ.Ⅳ, 차종순역, 한국장로교출판사, 1996-199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이것은 라틴어 번역이 아니라 미국의 Eerdmans Publishing Company에서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던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Editted by Phillp Schaff, Vol. V. Saint Augustin: Anti-Pelagian Writings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로부터 느낄 수 있는 어거스틴의 깊은 신학적인 이해를 접근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전체적인 어거스틴의 신학적 성격을 이해하는데는 충분하기 때문에 이것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어거스틴의 은총론 논문은 년(年)도별로 다음과 같은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공로와 죄의 용서에 관하여, 유아세례에 관하여"(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 et Baptismo Parvulorum/412), "영과 의문에 관하여"(De Spiritu et Littera/412), "본성과 은총에 관하여"(De Natura et Gratia, contra Pelagium/415), "인간의 의의 완성에 관하여"(De Perfectione Justitiae Hominis/415), "펠라기우스 재판 진행에 관하여"(De Gestis Pelagii/417), "그리스도의 은총에 관하여, 그리고 원죄에 관하여"(De Gratia Christi, et de Peccato, contra Pelagium/418), "결혼과 현세욕에 관하여"(De Nuptiis et Concupiscientia/419), "영혼과 그 기원에 관하여"(De Anima et ejus Origine/419),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두 개의 편지를 반대하여"(Contra Duas Epistolas Pelagianorum/420), "은총과 자유의지에 관하여"(De Gratia et Libero Arbitrio/426), "비난과 은총에 관하여"(De Correptione Gratia/426-427), "성도의 예정에 관하여"(De Praedestinatione Sanctorum/428), "견인의 은총에 관하여"(De Dono Perseverantiae/429).

  그리고 "어거스틴의 은총론"에 대한 많은 신학 논문이 제시되고 있지만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비(非)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대부분 발표된 논문들이기에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어거스틴의 입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기에 이 논문들은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행히 남사현전도사가 개혁신학자인 김영규교수의 지도를 통해서 발표한 "공적론에 대한 칼빈의 비판에 있어서 어거스틴의 은총론의 영향"11)

이란 논문이 2001년도에 발표되어 이 논문도 함께 참고하여 어거스틴의 논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삼았다.

  이제 이런 자료를 중심으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논문이 워낙 방대하고 또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 있어서 주제와 그 주제에 대한 표현상의 차이가 매우 미묘하고 또한 복잡하기 때문에 논문을 차례대로 분석하는 것은 매우 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논쟁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제시되는 죄(罪)와 은총의 성격, 그리고 자유의지와 은총의 관계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3 주제를 다루어 가며 전개시키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신학구조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이 오늘날 개혁신학의 선(線)을 이어 가려고 하는 교회에게 어떤 신학적 의미가 있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본   론

 A. 워필드(B.B. Warfield)의 논평12)

 

 1.  펠라기우스주의의 기원과 성격

   워필드는 어거스틴의 "은총론"에 대한 이해를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아주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특히 그는 칼빈의 신학적인 사고에 기반해서 정확하게 어거스틴의 인간 이해를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에 워필드의 지적을 통해서 어거스틴의 신학적 구조와 인간론의 특징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워필드는 펠라기우스주의 역사적인 기원과 성격을 간략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초대교회의 4세기까지는  하나님의 본성,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위격에 대한 논쟁의 시대였으나 5세기에 들어서면은 전혀 다른 내용이 중요한 신학적 논쟁으로 제시되기 시작하였다고 정리해 주고 있다.  그것은 자유의지와 은총의 상호관계에 관한 교리를 정확하게 정리해야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론에 대한 신학적 주제가 문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동방교회에서 자유의지에 대해서 많은 강조를 한 반면에13)

 서방교회에서는 인류의 타락에 더욱 큰 강조점을 두면서 하나님의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자14)

 양쪽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립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15)

 

  이와 같은 시기에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영지주의의" 영향이었다.  즉 영지주의는 영과 육에 대한 극단적인 이원론를 주장하면서 육체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행동에 대한 무책임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영향이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 때 펠라기우스는 성도가 너무나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서 무책임하게 행하는 것을 고민하던 중에16)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그 책임성에 대한 주장은 급기야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도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지"를 주장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17)

  이런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동기를 워필드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자유의지에 대한 그의 강조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인류의 타락과 은총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데 더 큰 문제점이 있다"18)

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초기에 펠라기우스가 고민한 신학적 동기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그는 나름대로 당시의 부패해 가는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지적하고 바르게 회복해 보려는 좋은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서 제시하는 총체적인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한 부분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잘못을 범했던 것이다.19)

  이런 오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제시하는 의미가 크다.  즉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교회의 부패와 변질을 지적하면서 개혁과 회복을 주장하지만 역사적으로 증거되어 왔던 개혁신학의 교리적 체계를 정립해 놓지 못하고 이런 문제제기만 하게 될 때는 성경적인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을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고로 이해해서는 이단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론에 있어서도 성경의 총체적인 교리적 체계를 통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펠라기우스는 하나님의 은총을 완전히 파괴하고 인간의 책임과 행동만을 강조하는 인간중심적인 신학적 사고로 모든 신앙적 체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신학적 체계는 급기야 정통적인 교회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위험성을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고 있다.  "펠라기우스주의와의 투쟁은 사실에 있어서 기독교의 근본 그 자체를 위한 투쟁이며, 앞 세대에 있었던 신학적이며 기독론적인 논쟁보다도 훨씬 더 위험스러웠으며, 여기에서는 기독교의 실제적인 본질이 손상될 위험을 맞이했다".20)

  그리고 워필드는 이런 펠라기우스의 특징을 "율법주의 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으며, 더욱 중요한 펠라기우스주의의 신학적 핵심 내용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해 주고 있기도 하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펠라기우스주의의 핵심적이며 형식적인 기본 원리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완벽한 능력을 가정하는 데 있었다. 인간의 능력은 의가 요구하는 모든 사항을 행할 수 있으며, 자신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완벽을 이룰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전체적인 이론의 핵이었으며 여타의 다른 가정들은 이 핵에 의존할 뿐만 아니라 또한 바로 이 핵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시간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것이 그의 체계의 뿌리였다.21)

 

   그런데 펠라기우스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아무 의미 없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잘못된 성경 이해에서 출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그는 대하15:2의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22)

라는 말씀과 같은 성격의 구절들을 표면적인 이해로만 이해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구원과 모든 삶에 대해서 완전히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것은 곤란한데요!, 이것은 어려운데요!, 우리로서는 불가능한데요!, 우리는 사람인데요! 등등의 보편적인 핑계에 대해서 격분하면서 '이 무모한 미친 짓을 집어치우라!'"고 외쳤으며, 더 나아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이중적인 무식쟁이로 욕하는 것과 같다'라고 증거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율법을 인간에게 억지로 부과시키시는 모순된 분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23)

 

  이런 펠라기우스의 성경 이해는 점점 더 인간의 자유의지를 극단적으로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잘못된 성경 이해에서 더 위험한 이단적 교리로 나아간 펠라기우스의 오류를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고 있다.

     인간의 능력을 이렇게 주장하는 데서부터 세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유추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어거스틴도 이러한 추론이 펠라기우스 체계의 주된 요소라고 인정했다.  펠라기우스는 모든 사람은 원하기만 한다면 죄가 없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이전의 많은 성인들도 사실에 있어서 죄없이 살았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인간으로부터 떼어 낼 수 없다는 결론에 자연히 도달하게 됨으로, 각각의 인간은 과거인들의 지나가 버린 행동으로부터 연유된 죄악이나 도덕적인 연약성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태어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인간의 능력을 긍정한다는 동일한 가정으로부터 인간이 이를 순종하기 위해서 초자연적인 도우심이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므로,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연약성을 지원하기 위한 내적인 도우심이란 의미로서의 하나님의 은총의 필요성과 사실성을 강력하게 부인하였다. 바로 이 마지막 사항에 이르러서 논쟁의 가장 큰 강조점을 두었으며, 어거스틴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부인되고 또한 반대되는 데서 다른 어느 것보다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24)

 

   어거스틴은 그가 이런 구절을 주장하면서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을 주장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즉 이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데는 우리의 공로가 이미 있었다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식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는 사실에 우리의 공로가 있으며, 그 다음에 이 공로에 따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를 만나 뵙게 하신다고 이들은 생각한다고 지적하고 있다.25)

  그러나 이 구절을 보게 되면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의지가 앞선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는 성경을 단편적으로 이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른 구절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의 성격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전체의 의미를 고려해야만 위의 구절의 참된 뜻을 이해할 수 있음을 어거스틴은 지적하면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주옵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명령하소서"라는 유명한 말을 정립하게 되었다.26)

 이제 워필드는 어거스틴의 지적을 따라서 펠라기우스의 결정적인 오류들을 몇 가지로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고 있다.

     펠라기우스의주의자들의 각별한 개인주의적 세계관은 인간의 습관이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놓치는 데서 나왔다.  선을 덕스러운 행동의 복합이라고 보았듯이, 그들은 죄란 전적인 행동으로 혹은 불연속적인 일련의 행동들로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거룩함이란 일련의 거룩한 행동과 별개로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이교도들의 본질적인 주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 결국 그들은 인간을 통전적으로 보지 않고 역량(possibilitas)과, 능력(posse)이라는 이름의 자유의지의 기관으로 국한시킨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량과 능력이란 이것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며, 역량과 능력은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자유의지 이론의 결정적인 오류가 있다.  즉, 그들은 자유를 형상(form)에서만 보았을 뿐 질료(matter)에서는 보지 못하였으며, 또한 인간이 선과 악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절망적으로 오락가락하는 흔들리는 존재라고 함으로써 인격의 성장을 전혀 허락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인간이 선을 계속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익을 전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형의 사고는 인간의 유기체성을 와해시켜 불연속적인 자의적 행동의 집적체로 몰고감으로써 인류의 결속력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  분명하건데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인간이 의지를 위해서 창조되지 않고, 의지가 인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27)

 

 

2.  펠라기우스 논쟁의 외적인 역사

   펠라기우스는 "성 바울의 서신에 관한 주석(Commentary of the Epistles of Saint Paul)"라는 글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그리고 로마에서 체류하는 동안에는 변호사인 카일레스티우스(Caelestius)를 제자로 얻었으며 이 사람에 의해서 공개적인 펠라기우스주의의 논쟁이 전개되었다.  카일레스티우스는 카르타고에서 감독직을 요구하였으나 밀라노 출신의 집사인 파울리누스(Paulinus)가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며, 결국 이 문제는 감독 아우렐리우스(Aurelius)가 주재하는 회의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다루어 졌다.  여기서 파울리누스의 고소 내용은 카일레스티우스가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고 정리하고 있다.28)

 

 

아담은 숙명적인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죄를 짓거나 혹은 짓지 않았거나 죽었을 것이다.

아담의 죄는 그 자신만 오로지 손상시켰을 뿐 인류 전체를 손상시키지 않았다.

갓 태어난 유아는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와 동일하다.

인류 전체는 한편으로는 아담의 사망 혹은 타락으로 인해서 죽지 않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다시금 일어나지도 않는다.

갓 태어난 유아는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율법도 복음과 마찬가지로 영생에로 인도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에도 죄가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29)

 

 

  바로 이 회의에서 카일레스티우스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그 결과 그는 곧바로 정죄되었으며 동시에 출교의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펠라기우스는 415년 경 여름에 파울루스 오로시우스(Paulus Orosius)라는 장로가 어거스틴으로부터 온 편지를 제롬에게 가지고 가게됨으로 7월경 예루살렘 요한(John of Jerusalem)이 주재하는 교구회의에 출두하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 지적된 펠라기우스의 주장 중 핵심적인 내용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죄없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는 감독들이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많은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어서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고 급기야는 로마의 감독에게 보내어 결정을 내리기로 합의하는 정도에서 끝나게 되었다.30)

 

  이런 결정이 있은지 얼마지나지 않아서 아를르의 헤로스(Heros of Arles)와 애의 라자루스(Lazarus of Aix)라는 감독들이 대주교인 가이사랴의 율로기우스(Eulogius of Caesarea)와 함께 다시 한번 펠라기우스를 고소하게 되었다.  따라서 같은 해인 415년 12월에 리다(Lydda: Diospois)에서 14명의 감독들이 회집되어 재판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 워필드는 "아마도 이 회의가 엮어 낸 어리석은 광대짓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일찍이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31)

라고 매우 심하게 비평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회의에서 펠라기우스는 라틴어로 된 자신의 고소문에 대해서 라틴어와 희랍어에 능통했던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모든 내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시켰으며, 당시 언어적인 문제를 깊이 분석할 수 있는 재능이 없었던 감독들은 펠라기우스의 변호와 그의 교활한 위장에 명확한 정죄를 선언하지 못하고 오히려 펠라기우스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기 때문인 것이다.32)

 

  이처럼 회의를 승리로 이끈 펠라기우스는 "자유의지를 옹호하면서(In Defence of Free-Will)"라는 책을 발표하여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런 펠라기우스의 활동에 대한 소식이 북아프리카에 전해지자마자 펠라기우스와 카일레스티우스의 정죄에 대해 재확인하는 두 군데의 지역회의가 시작되었다.  즉 하나는 416년 여름 중반에 68명의 감독이 소집한 회의와 이 회의 이후 곧이어 진행된 60명의 감독이 소집한 밀레베(Mileve or Mila)회의 였다.  이와 같은 북아프리카의 회의는 그 당시 로마의 감독이었던 인노센트 1세(Innocent 1)에게 통보되어 북아프카의 결정에 동의해 줄 것이 요청되었다.  결국 417년에 인노센트는 북아프리카의 결정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 내적인 은총의 필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펠라기우스의 유아세례 이론을 거부하였으며, 또한 펠라기우스와 카일레스티우스가 정통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출교를 명령한다고 선언하게 되었다.33)

 

  그런데 이와 같은 중요한 결정이 인노센트가 죽고 난 후 세워진 조지무스(Zosimus)의 취임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즉 카일레스티우스는 로마에 나타나서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였으며, 예루살렘의 요한의 뒤를 이은 프라이루스(Fraylus)의 추천서 등을 제시하면서 자신에게 내려진 결정이 부담함을 주장하였다.  본래 희랍인이었던 조지무스는 서방의 논쟁에 관심이 없었기에 즉각적으로 카일레스티우스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북아프리카에 펠라기우스와 카일레스티우스가 정통카톨릭이라고 선언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북아프카의 성급한 판단을 신랄하게 비난하기도 하였다.34)

  이처럼 펠라기우스주의의 핵심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오류 때문에 교회를 혼란케하며 신앙의 근본을 변질시키는 일들이 당시부터 있었던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여전히 펠라기우스주의의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보류하게 될 때 교회는 엄청난 혼란 속에 빠져 들어가기 때문인 것이다.

  조무스의 결정은 당연히 북아프리카의 교회들을 흥분케 했으며 그 결과 417-418년경에 200명이 넘는 감독들이 카르타고에서 회의를 소집해서 조지무스에게 자신들은 펠라기우스와 카일레스티우스를 반대한다고 재차 선언하게 되었다.  즉 이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의 도우심을 받지 않으면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알 수 없을뿐더러, 올바르게 행동할 수도 없으므로 우리는 은총이 없으면 경건에 속한 어느 것 하나라도 가지거나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혹은 행할 수 없다"라고 선언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확고히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강경한 입장에 조지무스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펠라기우스와 카일레스티우스를 로마로부터 추방한다는 명령이 라벤나(Ravenna)의 황실로부터 발표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결정으로 카르타고에서는 기본적으로 펠라기우스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는 9개의 교회법을 모조리 정죄하게 되었다.  그리고 로마에서도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을 정죄하는 단호한 문서가 발표되었으며, 아프리카의 입장을 따라서 본성의 타락, 참된 은총, 세례의 필요성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이처럼 이 회의의 내용은 3개의 내용을 기본적인 핵심으로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35)

 

 

첫 번째는 인류와 원죄와의 관계를 다루었다.  즉 신체적인 죽음은 아담의 죄의 결과가 아닌 본래적인 필연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저주하였다.

두 번째는 은총의 성격에 관해서 다루었다.  즉 은총은 오직 과거의 죄를 사면해 주는 데 효력이 있을 뿐이며 앞으로 지을 죄를 피하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저주하였으며, 은총은 그것이 없더라도 우리가 행할 수 있었던 그 일들을 더욱 쉽게 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저주하였다.

세 번째는 인류의 우주적인 죄악을 다루었다. 즉 사도들의 죄의 고백은 오직 그들의 겸손의 소치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저주하였으며,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옵시고"라고 하였던 것은 성도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들과 교제하고 있는 죄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저주하였다.36)

 

 

  그런데 이와 같은 교회의 결정에 펠라기우스파의 선두 주자였던 엑크라눔의 율리안(Julian Eclanum)을 포함한 18명의 이탈리아 출신 감독들은 교회의 문서에 서명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축출 당하였으나, 이들은 계속적으로 지역을 옮겨 다니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입장은 확고부동하였다.  많은 펠라기우스주의의 이단들은 423년 킬리키안(Cilician)에서, 424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그리고 안디옥(Antioch)에서 정죄를 받았다.  특히 추방당한 감독들은 429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네스토리우스(Nestorius)와 함께 있기도 했으나 431년 로마의 감독이었던 코엘레스틴(Coelestine)에 의해서 네스토리우스와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모두 정죄를 당하기도 했다.37)

 

  그런데 이 이단들은 가울(Gaul)이란 지방에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좀더 색다른 형태로 다시 세워가기도 했다.  즉 이들은 "은총을 주장하는 어거스틴의 이론을 긍정하면서도 선(善)은 인간이 스스로 결정한다"는 펠라기우스적인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이런 주장들은 프로스퍼(Prosper)와 힐라리(Hilary)가 어거스틴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이 죄가 아담으로부터 유래되었으며, 결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을 필요로 하며, 이 은총은 사람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값없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며, 이 선물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태도 여부와 상관없이 언제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 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와 같은 공로를 실제적인 것으로 그리고 예견하는 가운데에서 주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38)

 

 

  워필드는 이와 같은 변형된 주장을 "반(半:semi)-펠라기우스주의"라고 지적해 주고 있으며, 이들의 새로운 지도자를 크리소스톰(Chrysostom)의 제자인 요한 카시안(John Cassian)이었으나 대표적인 우두머리를 이보다 후대에 등장한 레기움의 파우스투스(Faustus of Rhegium or Riez)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들은 아퀴테인의 프로스퍼(Prosper of Aquitaine)와 아를르의 카이사리우스(Caesarius of Arles)에 의해서 곧바로 정죄를 당하였고, 496년에는 교황 겔라시우스(Gelasius)가 파우스투스의 글을 정죄하여 최초로 발행되었던 금서목록표에 첨가시키기도 했으며, 6세기에 들어와서는 교황 호르미스다스(Hormisdas)에게도 정죄를 당하였으며, 529년에는 이 이단들의 주장을 명확하게 반대하기 위해서 카이사리우스의 주재로 "어거스틴주의의 신조"가 채택되기도 하였으며, 이것은 다음해에 보니페이스 2세(Boniface Ⅱ)의 비준을 받기도 했다.39)

 

  우리는 워필드가 이와 같이 지적하고 있는 어거스틴주의와 펠라기우스주의의 논쟁에 대한 교회역사를 깊이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후대 교회에게 끼친 영향이 막대했으며, 또한 그 오류의 내용을 오늘날 한국교회도 계속해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우리는 정통교회에서 펠라기우스의 내용을 명확하게 구별해 내지 못했을 때 교회가 얼마나 무서운 혼란을 겪게 되었는지 명심해야 한다.  특히 바른 안목을 갖지 못했을 때 이단으로 정죄했던 내용들이 정당하게 교회 안에 버젓이 들어오는 결과를 맞이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결국 이런 오류의 위협은 오늘날도 교회가 바른 안목을 가지고 정통적인 인간론에 대한 신학적 체계를 정립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여지없이 교회 가운데 정당한 입장으로 뒤바뀌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오히려 우리는 교부시대의 교회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힘을 기울여서 거듭 펠라기우스주의를 강경하게 거부하고 정죄하며 저주했었던 정신을 기억하고 이런 정신이 오늘날 개혁교회 가운데 다시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펠라기우스주의가 어떻게 반펠라기우스주의로 나아가는지를 보면서 인간론에 대한 명확한 교리적 체계를 정립하고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양보하게 되면 전체가 무너지게 됨을 깨닫고 정통적인 개혁신학에서 보존되었던 인간론에 대한 교리체계를 완전하게 보존하는 것이 교회를 보호하는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어거스틴의 입장

   이 내용은 아래의 어거스틴의 본 논문에서 보다 자세하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워필드가 정리한 핵심적인 내용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워필드는 어거스틴의 신학적 체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모든 선의 원천인 하나님에게 인간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서의 은총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아니, 은총은 그의 교리적인 발전의 각 단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본적인 요소로서, 그가 은총중심적인 원리를 근간으로 해서 세운 모든 신학이 언제나 일관성을 갖도록 해주는 결정적인 요소였다"40)

  이와 같은 신학적 체계를 통해서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의 인간론에 대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고 증거한다.  즉 어거스틴이 지적한 펠라기우스의 문제점은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을 완벽한 자유의지 안에 국한시키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간들에게 무엇을 추구할 것이며 무엇을 피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계명과 교훈 안에 국한시킴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가 선한 것을 지향하게끔 한다"41)

 등과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어거스틴이 제시한 바른 교리적 체계 가운데서의 인간론 이해를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고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된 것과 우리가 살아 있는 것과 우리가 이해하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가 사람이며 우리가 부유하게 살며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도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 이외에 우리의 것이란 없습니다.42)

 

   이처럼 어거스틴의 이해는 인간의 공로에 의해 주어지는 은총이 아니라 이 공로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은총의 선행적 성격에 대해서 분명하게 증거하였고, 이런 정신은 "우리에게 명하신 것을 주시고, 주님이 원하신 것을 우리에게 명하소서"라는 유명한 고백으로 표현되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은총과 의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거스틴은 자유의지와 믿음과 은총의 상호관계를 정신을 잃고 흠뻑 빠질 정도의 흥미있는 방법으로 다루면서, 이 상의 세 가지는 서로 배척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다"43)

라고 워필드는 지적해 주고 있다.

  특히 세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워필드는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핵심적으로 요약해 주고 있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은 갓 태어난 유아는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고 어느 정도 양보하였다.  이제 남은 문제는 무엇 때문에 갓 태어난 유아가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였다. 우리는 이 방법을 통하지 않으면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구원을 위해서도 아니고 영생을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고 말한다."44)

  이처럼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교묘하게 언어적 표현에서 모호하게, 또는 위장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주었다고 지적해 주고 있다.  그리고 414년에는 힐라리(Hilary)에 의해서 보내진 호소문에 답변하는 가운데서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의 교리적 오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었다고 지적해 주고 있다.

"첫째는 사람은 죄가 없을 수 있다.  둘째, 원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쉽사리 지킬 수 있다.  셋째, 갓 태어난 유아는 세례를 받지 않고 사망하였다고 할지라도 죄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멸망하지 않는다.  넷째, 부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팔기 이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다섯째, 우리는 절대로 맹세해서는 안 된다.  여섯째, 교회는 이 세상에 흠이나 티가 없다".45)

 

   이런 오류가 제시될 때마다 워필드는 어거스틴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을 주시고, 주실 것을 명하시옵소"라는 은총론의 방식을 가지고 모든 오류를 반박하는 원리로 삼았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은 절제를 명령하시고 절제를 주셨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명령하시고 은총으로 말미암아 주셨다.  하나님은 의문(儀文)으로 명령하시고서 성령으로 주신다.  왜냐하면 은총이 없는 율법은 죄를 넘치게 하고 영이 없는 의문은 죽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명령하시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행하려고 애쓰다가 율법 아래에서 인간의 연약성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은총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를 알 것이다"46)

라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연약한 인간에게 명령하시며, 또한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설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어거스틴은 성경의 총체적인 교리적 체계에 입각해서 은총론를 제시해 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외에도 워필드가 지적하는 어거스틴의 놀라운 신학적 구조를 발견할 수 있는 표현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여러분이 나아가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일이지만, 여러분이 나아가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란 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47)

 이런 표현도 위의 내용과 비슷하게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이 어떻게 조화롭게 설명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임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유의지 부분과 관련해서 아주 유명한 어거스틴의 지적이 있는데 이것을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면 사람은 자유의지로써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유의지를 주어서 사람을 만들어 주신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다(선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48)

 

  결국 펠라기우스가 자신의 모든 신학적 체계를 세우고자 하는 자유의지에 대한 부분도 어거스틴은 그 자유의지 자체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을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 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자유의지 자체가 선물이라는 것이다.  워필드는 최종적으로 이와 같은 펠라기우스의 신학적 내용은 기독교를 가장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임을 어거스틴이 가장 명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펠라기우스가 죄는 실체가 아니므로 실체인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 어거스틴은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파괴시키며, 만일 죄가 부패케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겠는가라고 답변하였다."49)

 이처럼 펠라기우스주의는 기독교의 또다른 면이 아니라 신앙을 가장 심각 파괴하는 이단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펠라기우스주의의 신학을 자신의 신학적 체계로 정립해서는 이것도 기독교의 한 분파 속에 속하는 것처럼 교회 가운데 들어와서는 기독교 일치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많은 분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런 분파들이 명백히 신앙을 파괴하는 이단임을 분별해 내야 할 것이다.  즉 교회일치를 이루어야 하는 형제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교회일치는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시119:63)라는 말씀에서 증거 되고 있는 것처럼 같은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교회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지 이처럼 성경을 파괴하는 자들과 일치를 이루는 것은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놀랍게 헌신한 어거스틴에게도 역시 인간이었기에 연약한 부분이 있었음을 지적하는 워필드의 평가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어거스틴을 연구하려고 할 때 어떤 방식으로 어거스틴의 인간론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할 것인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은총의 수단에 대해서 말할 때에, 즉 사람에게 은총을 수여하시는 통로와 상황을 말할 때마다 은총론과 교회론이라는 그의 신학의 상이한 두 갈래 길의 접촉점을 찾아서 접근시킴으로써, 슬프게도 그는 외부적인 영향력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서 그의 신학의 자연적인 흐름을 인위적으로 약간 굴절시켰음을 볼 수 있다.50)

 

      예를 든다면 세례는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이 원리를 제외시킬 수 있을 정도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세례는 이것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을 정도의 통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상의 교리에서 유출되는 가장 슬픈 결론은 갓 태어난 유아를 포함해서 세례받지 않고 죽은 모든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버림을 받으며, 영원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 이것이 어거스틴의 구원론의 어두운 면이다.  그러나 그가 그 시대에 통용되었던 일반적인 사상으로서 물려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은총의 신학이 아니라 죄의 사면을 위해서는 세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보편적이며 전통적인 믿음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51)

 

   우리는 워필드가 지적하는 이와 같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중세 로마 카톨릭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로마 카톨릭은 어거스틴이 실수한 부분을 오히려 어거스틴의 핵심적인 신학체계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 결과 중세시대에는 세례가 구원에 있어서 필수임을 주장하게 되었고52)

, 그 세례를 집행하는 신부들에게 결국에는 많은 권위가 세워지게 됨으로 많은 부패가 교회에 증가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어거스틴의 신학적 체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가운데 그의 인간론을 연구해야만 정통개혁신학의 교리적 체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B.  어거스틴의 은총론

 

1.  원죄(罪)에 대하여(De Peccato Originali)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에 있어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부분은 죄(罪)에 대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 은총론의 논쟁은 인간론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53)

  그리고 은총론의 의미를 정립하기 위해서도 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은총의 이해가 출발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에 있어서 죄에 대한 정의와 그 성격을 어떻게 정립하고 이해하는가가 가장 시급히 정리되어야 할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우선 죄에 대한 논쟁이 각 논문마다 다양한 주제와 연결되어서 전개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가장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논문을 중심으로, 그리고 각 주제의 내용들이 이 죄에 대한 논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를 요약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는 무엇보다 이 논쟁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 논문인 "공로와 죄의 용서에 관하여, 유아세례에 관하여"(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 et Baptismo Parvulorum/412)를 소개하면서 이 논쟁의 성격과 발단의 원인을 살펴보고 "영과 의문에 관하여"(De Spiritu et Littera/412),"그리스도의 은총에 관하여, 그리고 원죄에 관하여"(De Gratia Christi, et de Peccato, contra Pelagium/418) 등의 논문을 통해서 죄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어거스틴은 첫 번째 논문의 서두에서 본 논문은 마르켈리누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논쟁과 관련된 어거스틴의 기록된 문서가 최초로 나타난 것이 바로 '집정관이며 공증인이었던' 마르켈리누스에게 보내는 본 논문을 통해서 드러났던 것이다.  이 논문은 마르켈리누스가 카일레스티우스의 재판의 과정 중에 펠라기우스의 이단과 관련된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어거스틴에게 요청하여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질문한 내용은 3가지로 정리가 되는데 그것은 "사망죄의 전달에 대한 것과, 무죄한 삶의 가능성과, 유아세례의 필요성"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거스틴은 이 3가지의 내용을 답변하는 방식으로 본 논문을 제시해 주고 있다.54)

 

  먼저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가 "아담이 죄로 인한 허물이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죄에 대한 처벌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필연성으로 인해서 죽을 수밖에 없도록 조성되었다" 라고 주장하며, 또한 이들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율법서의 구절을 인용해서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죄가 발생하는 "영혼의 사망"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함을 지적해 주고 있다.  즉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육체의 죽음은 분명 죄로 인한 처벌에서 오는 것임을 창3:1955)

과 롬8:10-1156)

과 고전15:2157)

 등과 구절을 통해서 배격해 주고 있다.58)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아주 교묘하게 언어적인 차이성으로 피해 가려고 하는 것을 어거스틴은 냉철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즉 이들은 어거스틴이 고전 15:21절을 가지고 자신들의 입장을 배격하자 곧이어 주장하기를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라는 말씀에서 사망은 몸의 사망이 아니고 영혼의 사망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이다.59)

  그러나 이런 모든 이론을 배격하고 어거스틴은 "사도께서 뚜렷하게 몸은 우리 안에 있는 죄로 인해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도 영은 생명이기 때문에 너희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몸도 의로 인해서 살게 될 것이며, 이러한 전 과정은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즉 너희 안에 머물고 있는 성령으로 인해서 살게 될 것"60)

이라고 제시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롬5:12절의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는 말씀에 대해서 지적해 주고 있다.  즉 펠라기우스는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몸의 사망이 아니며, 아담이 범죄함을 인해서 초래하였던 그러한 사망이 아니라 실제적인 죄로 인해서 발생되는 영혼의 사망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특히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이들은 이 실제적인 죄가 첫사람으로부터 자연적인 유전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모방"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던 부분이다.61)

 

  이런 주장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사도의 말을 통해서 그 뜻은 사도께서 죄와 사망을 한꺼번에 말씀하실 때에 자연적인 유전에 의하여 모든 사람에게 죄가 전달되었다고 말하면서 죄와 사망을 들여온 소개자는 "인류의 증식"을 맨 처음에 시작한 사람인 아담이었다고 확증해 주고 있다.62)

  여기서 우리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논쟁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즉 펠라기우스도 죄를 말하고 있지만 그 죄의 성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제시해 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다른지를 정확히 구별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먼저 어거스틴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라는 말씀에서 말하는 죄는 "생식에 의한 증식"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펠라기우스는 이것을 "모방"으로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원죄의 문제를 묻는 중요한 물음이기도 하였다.  즉 원죄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본성의 잘못과 타락에 기인하지 않고 아담을 따라서 "모방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원죄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 "증식되어 전달된 것(propagatio, propagation)"이라고 확증했던 것이다.63)

 그리고 어거스틴은 이들의 잘못된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라는 말씀을 들어서 "아담으로 말미암아서 사람이 죄인 되는 것이 오로지 모방에 의한 것이라면 왜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방함으로써 의인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64)

 라고 반문하여 그들의 논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제 세 번째로 제시되었던 부분은 유아세례에 관한 부분인데, 세례의 문제에 있어서도 어거스틴은 이들이 출생으로 말미암아서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원죄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갓 태어난 유아들이 세례를 통해서 원죄가 사면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지적해 주고 있다.  즉 이들은 갓 태어난 유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의 유전 때문에서 가 아니라 그들이 생활 가운데서 스스로 범한 죄를 사면받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갓 태어난 유아들은 죄의 사면을 위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출산이 영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되기 위해서, 하늘나라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펠라기우스의 교묘함은 이들의 언어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즉 이들은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죄의 사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받는 것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죄의 사면을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표현을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담에 의한 죄가 아니라 유아들이 스스로 범죄한 것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어거스틴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원죄와 씨름하다가 급기야 이들은 "영혼은 선재적인 천상적 거주처에서 죄를 지음으로써 각 단계와 계층을 따라서 자신들의 죄상에 맞는 육체적인 몸을 지니게 되었으며, 선재적 삶에 대한 처벌로서 정도에 따라 신체적인 고통을 겪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65)

 

  이와 같은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라는 말씀을 통해서 유아도 동일하게 죄에 구원받기 위해서 세례를 필요로 하는 것임을 증거하였다.  즉 세례는 반드시 구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성경의 증거라고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서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1)66)

.  결국 유아들도 죄에 대한 사함을 받지 않으면 어둠 속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증거 했던 것이다. 즉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라는 말씀처럼 유아들도 원죄를 소유하였던 것이며 이 원죄를 사면받기 위해서 세례를 필요로 했음을 어거스틴은 증거 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죄에 대한 교리적 체계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먼저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표현을 바꾸어 인정하는 듯하는 내용도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즉 아담은 창조때부터 숙명적인 존재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제시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선:善)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7:29)라고 주장하는 아담의 선한 창조를 주장하는 어거스틴과 명백하게 반대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어 창조 이전의 선재적(先在的)인 삶의 처벌로 인한 창조까지 주장한다. 

  이렇게 아담의 첫 창조를 악한 창조로 소개한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죽음이 죄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이것은 숙명적인 것이기에 육체적인 죽음과 영혼의 죽음으로 구분을 한다.  그리고 이런 아담의 창조와 그 죄의 성격 때문에 당연히 죄의 전가를 당연히 부정하게 되고, 후손들의 죄는 단지 "모방"에 의한 죄라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다르게 어거스틴은 선한창조를 제시했으며, 이 창조가 아담의 죄로 인해서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죽음의 처벌을 받게 된 것이며, 이 죄의 결과로 "아담 안에"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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