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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49재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망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 것입니까?
얼마 전 어머님의 49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절에 가서 스님들의 염불을 듣고 음식과 과자, 과일을 쌓아 놓은 불단을 보았습니다. 저의 어머님께서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재를 올렸으나, 솔직히 아직은 잘 확신이 서질 않는군요.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49재가 무엇인지, 스님들께서 하신 염불은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49재를 지내는 것이 저의 어머님께 실제적으로 어떤 도움을 드리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49재
49라는 숫자의 의미부터 알아보자.
이 우주의 구조를 알기란 그리 어렵지 않으나 중생들에게는 복잡하고 거대한 모습으로 보이게 되므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번뇌에 의하여 많은 가지가 벌어진 후, 다시 그 가지에서 생각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경(佛經)에 의지하면 간단해진다. 우리가 느끼는 우주는 눈에 드러나는 물질이라는 것과 그 물질을 느끼는 정신으로 나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 즉 신심(身心)이라는 것이니 몸은 정신에 가장 가까운 ‘물질(物質)’이고 마음은 몸에 가장 가까운 ‘비(非)물질’로서 물질의 존재성을 판가름하고 물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나’라는 존재를 설정하는 능력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물질은 다시 흙과 물, 불, 바람의 네 가지로 나뉘게 되므로 모든 물질은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물질을 구성하는 이 네 가지 요소들 역시 다시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니, 흙에도 수분이 있고 온도, 즉 불이 있으며 온도에 의하여 대류를 일으키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순수한 물이라 해도 역시 눈에 보인다면 극미하지만 빛을 반사하는 정도의 흙을 함유하고 있으며 온도와 공기를 가지고 있다. 역시 불도 그러하기에 흙은 재와 불꽃의 색(그을음)으로 남으며 물은 그을음과 어울려 연기를 만들고 바람은 불꽃이 지속되도록 산소를 공급함으로서 불의 존재를 유지시키게 된다. 바람 역시 그와 같다. 이렇게 네 가지 자체가 서로를 함유한다면 네 가지가 화합된 물질은 당연히 네 가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마음, 또는 정신이라고 불리는 비물질은 간단히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물질이라는 네 가지를 느끼는 감각(感覺)이다. 여기서 감각이란 물질로 이루어진 몸의 오관(五官)이 아니라 꿈을 보고 듣는 감각을 말한다. 정신이 없는 눈알만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정신의 감각이 몸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신의 감각을 ‘견정(見精)’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감각한 것을 인식하고 기억시키고 망각시키는 능력이 있는데 이것을 ‘식정(識精)’이라고 한다. 본 것이 무슨 색인지 알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혀서 아는 기억이 있어야 한다. 즉 눈만 있다고 자기 집을 찾아갈 수는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의 위치와 모습, 주소, 방향 등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므로 모든 행위는 견정과 식정이 어우러져야 함을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좋고 싫고, 여기와 저기, 이것과 저것, 거리와 방향 등을 알 수 있는 기준점인 ‘생각’이다. 생각은 중간을 유지하고 있어야 본성을 잃지 않으므로 생각하는 시간은 항상 '지금'이고 장소는 항상 '여기'인 것이다. 만약 생각의 시간적 기준점이 바뀐다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있을 수 없으므로 세월을 깨달을 수 없고 위치적 기준점이 바뀐다면 장소나 거리, 방향에 대한 개념은 사라지므로 오고간다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을 마음, 즉 정신의 공간성(=空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의 모든 능력은 견정과 식정, 그리고 공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물질의 요소는 네 가지(四大)이고 정신의 요소는 세 가지(三大)이므로 온 우주는 결국 일곱 가지(七大)의 ‘재료’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허공 속에 허공이 들고 물속에 다시 네 가지가 들어있듯, 그 일곱 가지 각각에 다시 일곱이 들었으므로(7*7=49) 49가지 종류가 우주 ‘조화’의 근본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육신을 얻기 이전,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중음(中陰=bardo)의 상태에서 스스로의 근본이며 우주의 근본인 49가지의 법칙을 49일에 걸쳐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 49일 동안 이승에서 살던 마음을 가지고 본래의 참다운 자리를 만나게 되는데, 만약 앞에 드러나는 경치가 자기 본연의 모습임을 깨닫는다면 곧 해탈을 이루겠지만 ‘몸’이라고 생각하던 어리석은 견식(見識)을 가지고 간 ‘마음’이라면 스스로가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심판을 받게 된다. 이미 몸이 없으므로 더 이상 생사를 걱정할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두려워 도망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 어리석음의 정도에 따라 자궁을 선택하여 들어가게 되는데 어머니가 결혼을 하여 몸을 만드는 씨앗인 아버지의 정자(精子)와 만나게 되면 비로소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도둑질을 많이 하던 사람이었다면 밤에 다니는 습관과 몰래 훔치는 습관 때문에 쥐의 자궁(子宮)으로 들어가 생쥐가 될 것이며, 게으르고 공부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오직 그 정신만이 남았기에 스스로 소의 자궁을 선호하므로 송아지로 환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49일 동안 일어나므로 사실 매일 망자(亡者)의 영혼을 불러 망자가 처해있는 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듯이 하나하나 설명해주어야만 자기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49재를 집도하는 자를 믿고 따르게 된다. 그렇게 인도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윤회가 없는 극락을 볼 수 있겠지만, 이승에서 남을 의심하고 스님을 무시하며 아집이 강한 자였다면 역시 49재를 집도하는 스님도 믿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만을 벗어나도록 안내하여 인간, 아수라, 천상에라도 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과 49재의 이치, 그리고 망자가 보고 있는 경치를 명확히 볼 수 있는 고승이 아니라면 모두가 헛일이며 오히려 귀신이 되도록 부추기는 일이 된다. 귀신이란 이미 스스로의 몸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승을 집착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니 만약 스스로도 해탈하지 못한 스님이 망자에게 제삿밥을 주고 재물을 탐하는 마음을 보여준다면 망자는 당연히 이승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의 위대함과 마음의 이치, 즉 우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는 결코 뜻대로 다음 생애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늦지 않게 도를 닦아야 할 것이다. 영원히 흘러가는 이 길을 닦는 것이 누구나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일임에 불구하고 다음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당장의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영혼을 혼탁하게 만든 다음, 그 몽롱하고 악해진 마음으로 도를 닦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그나마 그런 사람은 조금 나은 것이다. 불도를 아예 모르거나 욕하고 훼방하며 가는 사람들이야 어떻겠는가. 그렇기에 무명이 가장 큰 죄라고 하는 것이며, 또 알고 짓는 죄보다 모르고 짓는 죄가 더 크다고 말하는 것이다. 윗글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쓴 것이지만 특히 어리석은 욕심으로 49재를 종용하거나 선전하여 돈을 버는 스님 아닌 스님들이 반드시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리하자면 49재도, 망자도, 그리고 절이라는 곳도 모두 우리의 마음에 있을 뿐이다.
49재는 마음이 생과 사의 중간(정신이 몸에서는 떠났고 다음의 몸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맞이하고 있을 때, “죽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어 마음이 곧 자기였음을 일깨우고 어리석음을 없애주기 위한 것이니 실체가 없는 정신의 세계인 것이다.
또한 망자의 이름도 결국은 여기서 49재를 치러주려는 사람의 마음에만 있는 것이지 그 분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있는 일이 아니며 당사자는 생각을 하며 중음을 보고 있으므로 죽은 것이 아니다. 오직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대의 기억일 뿐, 이 역시 보이지도 않는 마음의 작용이며 보이지 않으니 죽고 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절이라는 곳도 역시 그곳이 '49재를 해줄 수 있는 곳'이라는 그대의 생각에 존재하는 곳이지 실제로 49일을 겪는 망자의 마음에는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그러므로 재를 지내는 자의 마음이 망자의 마음과 상통하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망자가 보고 있는 중음의 세계를 통달하여 그가 결정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려줌으로서 망자에게 믿음을 주어야한다는 말이다. 망자와 통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법을 이해해야하고, 법을 이해하려면 '지금'이라는 찰나의 실체를 통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망자가 생각하는 시간도 '지금'이고 '재'를 지내는 시간도 '지금'이며 삼라만상이 존재하며 활동하는 시간이 지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작정 49재를 지내는 것보다 49재가 과연 실질적인 일인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땅의 불자들이여!
자손들에게 천도재나 49재를 부탁할 것이 아니고 스스로 해탈하고 스스로를 이승에서 천도하고 당당하게 다음 생을 맞이하라. 이것은 이론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다. 석가모니께서는 머리에 불을 끄듯 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정말 다급하고 간절한 일이다. 이것이 불도가 과학보다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 사이비 스님이나 어리석은 자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편을 갈라 서로를 미워하는 오만에서 벗어날 오직 한 가지 길이다. 그 세상의 이름을 곧 '불국토(佛國土)'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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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49재에 대해 많이 궁금했었는데 명쾌한 답변 감사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합장()
정말 새로운 깨우침을 받고 있습니다. 큰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막연 하게만알았던 49재.살아있는자들이 열심히기도하고 보시하면 부모님이 극락세계로 가시줄알고 정말49일동안열심히기도해드렸는데...얼마나스스로을 깨우치고 해탈했을까...정말로어머니께 믿음을 줄수있었을까...지금이라도 열심히공부해야겠습니다...스님좋은법문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49재가 이런의미가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석가모니불 합장 ()
살아가며 자신을 위해 49재를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늘 회향하며... 고맙습니다
목숨을 거둔후 49일 동안에 명부전에 들기전 12 대왕들에게 생전의 잘잘못을 심판받는 기간이 49일이라고 ...이승에 집착을 끊고 무사히 명부전에 들기를 기도해 주는것이 49재라고들 하는데요..이러한 말들은 타종교인들에게는 우상과 미신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이글을 읽고나니...다른 이야기를 해줄수 있을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제일 이해가 않가는 부분입니다. 저도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이나 어렵군
요.허공이 7로 구성되었음은 인정하나 허공과 허공의 조합 49제라 이부분에서
막힙니다.죽으면 허공과 마음만 남아 인연의 고리로 돌고 도는것은 알겠으나
마음의 49의 변화인지 49일인지 더한 변화인지더욱 모호해지기만 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49재란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려는 자비에서 나온 방편으로 이해했거든요..
감사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조상때부터 해오던 기일날 제사를 지내는데 조상이 해탈을 하여 천상계에 있다면 제사밥을 먹으로 오지도 않을테고 아님 윤회의 법칙에따라 다시 태어났어도 올수가없고 오는 것은 모두 귀신인가요
공감합니다. 많은 부분을 알고 갑니다. 당당하게 다음생을 맞으라. 몇번이고 읽으면 더욱 선명하게 보일것입니다.
어머님이 불심이 강하여 자주 다니시던 해탈도량에 모셨습니다.. 마음 으로 모셔라 ,,삼우제 와 첫재 힐때도 스님이 말씀하던
내용인데 ..지금이라도 시작해 보겠습니다..나무아비타불
저도 궁금했는데 명쾌한 답을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었다라는 기억은 산사람에게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돌아가신 울 엄마도 해탈하시길 하는 바람입니다 열심히 나 스스로 해탈하기위해서 또 이렇게 방황합니다.
고맙습니다
49재를 알게 해준 부처님께 삼가 경배올립니다.49재의 인연으로 인해 부처님 법을 알게 해준 돌아가신 어머님,아버님 감사합니다. 부디 부디 극락왕생하십시오.
49재란 우리 마음에 있고 ! 눈에 보이는 모든 행위는 보이지 않는 정신을 위한 행위이며 정신또한 견정과 견식과 공성 속에서 운행한다!
우리의 정신은 극락에서 살아야 하는대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정신이 가상으로 물질 공간을 창조하여 있지도 아니하는 물질 속에서 희ᆞ로ᆞ애ᆞ락 을 누리며 살아가는대!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대부분 정신으로 가상 물질을 만들고 살아 가고있다!
이 어찌 안타깝다 하지 아니할수 있겠는가?
물질을 창조한 정신이 아귀다툼과 아수라속 에서 짐승처럼 살지말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하여 극락의 삶을 살아야 우리의 삶은 항상 극락이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