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어렵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들을 싫어하는 소위 3D 기피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불법으로 입국한 타국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난민 유입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다. 혹자들은 이방인 유입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는 이 땅에 유구한 세월 동안 뿌리박고 살아온 배달민족이라는 자부심과 질서 및 안전 등에 위협을 당한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우리 역시 과거 빈궁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서의 서러움을 선진국으로부터 겪은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나타나는 매스컴 소식은 우리 기분을 우울하게 하며 마음까지도 씁쓰레하게 만든다.
일부 악덕 업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 구타, 많은 사람으로부터의 괄시 등... 그러나 그들은 누구에게도 자기 불이익을 말할 수 없고 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데 그것은 그들이 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정당한 절차로 들어오지 않은 불법 체류자들이기 때문이다. 시민권은 그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증서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시민권을 소유했느냐에 따라 대우도 달라진다. 물론 강대국 시민권은 상대적으로 약한 약소국가 시민권과는 차별성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초일류 국가라 하는 미국 시민권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아담은 다스려야 할 뱀의 말을 들으므로 오히려 사단의 종으로 전락한다. 이로 인해 사단은 공중 권세를 잡았고 이 세상 사람들은 세상 풍속을 좇으며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게 되었다.(엡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창세전에 택한 자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어 성도라 칭하시고 하늘 시민권을 부여하셨다. 그리고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어 왕노릇하며(딤후2:12)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러나 육신이 머무는 동안은 세상에 속해 여전히 살아간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일찍이 성도를 향해 나그네라고 명명한 것이다.(창47:9/벧전1:1)
성도는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이 땅에 속한 자들과는 뚜렷한 구별을 가진다. 먼저 사모하는 대상이 다르다. 세상에서는 각계의 유명 인사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을 사모하지만 성도는 오직 참신랑이시며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사모한다.(시73:25) 세상은 보이는 것을 중시하며 주목하지만 성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것에 주목한다.(고후4:18) 또한 보물을 쌓아두는 곳도 땅이 아닌 하늘에 보관한다.(마6:19) 이 세상 풍속인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 같은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않고, 하나님 뜻에 따라 위의 것을 생각하며 육체의 남은 때를 살려고 힘쓰게 된다. 성도의 이러한 모습을 세상은 이상히 여겨 비방하며 조롱하기도 한다.(벧전4:3,4)
그리고 성도는 신앙으로 인해 이 땅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매를 맞기도 하며, 궁핍함에 처하기도 한다. 이는 초대 교회 때뿐만 아니라 교회사가 증언하며 지금도 중국 지하교회와 이슬람권에서 비일비재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 땅의 시민권을 가지지 않고, 오직 하늘 시민권을 가진 불법 체류자들이기 때문이다.(빌3:20) 그러므로 이 세상 풍속을 좇지 않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르지 않는 자에게 핍박과 환란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요15:18~20)
그러나 성도는 오늘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인내하며 나그네로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는 이 땅 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마침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이지만(계20:14),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마침은 영원히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함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도 목자이신 어린양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당한 서러운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는 것(계7:16,17)을 알고 있기에 이방 땅에서의 험악한 세월을 넉넉히 참고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