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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천일국 경전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 효 정
가족사랑은 자신의 생명까지 헌신
"사랑해!"
가장 달콤한 말입니다. 모든 생명을 잉태시키는 첫 번째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동물에게도 사랑과 번식의 권리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동물도 인연을 찾아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부의 책임이 없습니다. 사랑은 있되 책임은 없습니다. 반면 인간에게는 사랑의 자유와 함께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부부가 사랑의 신성함을 믿으며 책임을 다할 때 행복의 보금자리가 만들어집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나누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참된 부부가 되고 아들딸을 낳아 참된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해 줍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참사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까지도 사랑해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투신할 수 있게 됩니다.
중앙아메리카 벨리즈에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6,500쌍 국제 축복가정으로, 1996년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를 나갔던 가정이 있습니다. 어느 날 밤, 그 집에 괴한이 총을 들고 침입했습니다. 아빠에게 총을 쏘려 하자 셋째 아들인 열아홉살 야나이 마사키가 순간적으로 뛰어들어 대신 총을 맞고 숨졌습니다.
나는 이 보고를 받고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가족이 항상 평탄하게 살아갈 수는 없지만 이 같은 일을 겪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가족과의 헤어짐, 그것도 이생에서의 이별로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 역시 자식을 넷이나 앞서 보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구하려 했듯이, 역으로 자식이 위험에 처하면 불에 뛰어들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족사랑은 하나님이 소망하셨던 사랑이고, 무엇보다 부자지간의 사랑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가장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이렇게 바깥에서 갑작스레 찾아오는 불행도 있지만, 가정 안에서 자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아직 평화롭지 못한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남편과 아내의 불화입니다. 79억 명이 살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지구에는 두 사람이 살아갑니다. 남자와 여자, 곧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무수한 인간이 함께 살아가면서 온갖 관계를 맺고 매일 복잡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문제는 남자와 여자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그 두 사람이 서로 믿고, 사랑하고, 책임을 다하면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행복이란 내가 사는 가정에서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참된 부모와 참된 부부 그리고 참된 자녀가 평화의 가정을 이루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와 자녀, 손자가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집안에 아무리 어려운 골칫거리가 생겨도 부모가 아들딸을 사랑하는 마음, 할아버지가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또 손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3대가 한집에서 함께 사는 가정이 제일 행복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으면 그 자식은 진정 효자입니다. 충신이 되기 전에 먼저 효자가 되어야 하고, 내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남녀가 결혼하기 전에는 진정한 효자효녀가 되지 못합니다. 부모 앞에 자기 자식을 보여 주는 사람이 참된 효자효녀입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행복한 곳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어서 좋은 곳이며, 오빠와 누나가 있고 동생이 있어서 따뜻한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객지에 살면서도 사무치게 그리운 곳이 고향입니다.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향수가 있습니다. 고향이 있는 본향 땅, 그 그리움이 가장 오롯이 살아 있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희생이라는 꽃 한 송이 바치다
"이 결혼, 절대 반대다!"
"당장 집어치워라. 이따위 결혼식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야!"
"내 딸을 데려다가 이렇게 결혼시키다니 ······ 아이구, 분해라."
안에서는 신랑신부들이 꽃송이를 들고 엄숙하게 서 있는데 밖에서는 부모들이 몰려와 아우성을 치고 난동을 부렸습니다.심지어는 연탄재를 던져 아름다운 신부가 뒤집어쓴 일도 있었습니다.
1960년에 처음 통일교회 합동결혼식이 열렸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고, 반대하는 부모들로 인해 축하받아야 할 신성한 결혼식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때 받은 핍박과 비난은 필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험악했습니다. 그러니 그 아픔과 반대를 딛고 합동결혼식은 반세기 넘게 지구촌 곳곳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통일교회 합동결혼식은 희생과 배려의 또 다른 상징입니다. 원래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어느 시인은 "사랑은 나를 버리는 아픔"이라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으면 참된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 자신을 기꺼이 희생해야 합니다.
"너는 좋은 대학을 졸업했고, 좋은 직업도 가졌다. 그러나 네 신부될 여인은 학교를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집안도 가난하다. 결혼하겠느냐?"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싫습니다"라며 고개를 좌우로 젓습니다. 그러나 통일교회 식구들은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결혼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만나서 그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랑신부는 그 진리를 감사히 받아들이지만 부모는 결사 반대합니다. 반대가 가장 극심한 경우는 한국과 일본의 신랑신부입니다.
"내가 일제시대에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런데 그런 원수 나라의 딸과 결혼을 하겠다니······우리 가문에 일본 며느리는 절대 들일 수 없다! 절대 안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실행하기 쉽지 않은 말입니다. 입술을 깨물며 합동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들은 결혼 후에도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딸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아갑니다.
2018년 가을, 희망전진대회가 청평수련원 내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열렸습니다. '효정 스피치'로 무대에 오른 전남 장성교회의 고바야시 게이코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일본에서 공무원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내다가 1998년 한국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여느 가정처럼 달콤한 신혼생활을 기대했지만 그런 평범한 행복조차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간질병 환자였습니다.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삶에 무기력해지고 매사에 무관심했습니다. 어떤 일에도 감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가기 전에 청평수련원에 들렀습니다. 속죄기도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며칠 후 갑자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네 남편도 사랑한단다. 몸이 약하고 외롭게 사는 불쌍한 내 아들을 네가 내 대신 보살펴 주면 안 되겠니?"
그녀는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통곡하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후 마음의 문을 열어 점차 남편을 사랑하자 하나님은 그녀에게 사랑스러운 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남편에게도 변화가 생겨 몸이 건강해지고 일자리도 찾아 집안이 안정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부가 열심히 5남매를 키우며 행복한 삶을 꾸려 가고 있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며칠 후 나는 일본 선교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4천여 명이 넘는 일본 부인들이 청평에 모였습니다. 마침 생일을 맞은 몇몇 부인에게 작은 선물을 전해 주면서, 지금까지 남편에게 생일선물을 받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시골에서 바쁘게 살아가느라 생일을 잊고 지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난 30년 동안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의 뜻과 참부모님을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나아가 일본의 과거 잘못을 대신 탕감하겠다고 참고 희생해 온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기리며 기모노를 입은 채 엎드려 사죄하기도 했습니다.
행복은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부족한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나도 모르게 찾아옵니다. 나보다 한참이나 못한 사람, 오히려 원수의 집안과 결혼할 때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천운이 함께하는 행복이 출발합니다. 돈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말고, 직업이 무엇인지 헤아리지 말고, 외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인성을 갖춘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가 최고의 배우자입니다. 그런 배우자를 만나 내 사랑을 다 줄 때 가치 있는 삶이 됩니다.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열린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신성하고 보배로운 행사입니다. 지금까지 축복결혼을 받은 신랑신부는 수억 쌍에 이릅니다. 그 축복가정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반드시 있습니다. 한국 신랑과 일본 신부, 미국 신랑과 독일 신부, 세네갈 신랑과 필리핀 신부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말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른 것이야 금방 극복됩니다. 중요한 것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갈비뼈 하나가 뜻하는 것
"위대한 남성이 있다면, 그 뒤에는 반드시 위대한 여성이 있다."
서양에서 전해 오는 격언 중 하나입니다. 남성이 더 온전하게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여성입니다. 아내가 없으면 남편은 온전해지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침묵하는 사회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성은 어머니의 소명을 다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인격을 갖춘 올바른 인간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성만이 지닌 권한이면서 또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여성들이 자녀나 남편에게 또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나는 늘 안타까웠습니다. 여성은 시대마다 고난의 앞길에서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통일교회 여성들은 참부모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모신 참된 딸, 참된 아내, 참된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그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여성들이 지금까지 해온 대로 기존의 관습에 젖어 남성을 흉내 내고, 자신들의 위상만 높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남성과 여성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참사랑으로 자기 것을 상대에게 베풂으로써 상대를 완성시켜 주고 하나가 됨으로써 서로를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나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또 다른 일성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남성을 온전하게 해주는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이제 여성은 하늘 법도를 따라 참부모를 모시고 새로운 심정문화 세계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타락의 속성을 벗어던지고 새로이 이룩할 본연의 문화, 인류가 애타게 찾는 사랑과 선의 문화를 꽃피워야 합니다. 집안에서도 참사랑의 화신으로 남편을 품고 참부모의 심정으로 아들딸을 길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머물고 본연의 사랑이 흘러넘치는 가정을 이루어야 할 주역은 바로 여성입니다. 참된 어머니의 길과 더불어 참된 아내의 길, 참된 딸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여성의 모성과 사랑, 친화력이 바탕되는 화해와 평화의 세계입니다. 여성의 힘이 세상을 구할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여성은 그 시대의 온전한 거울
"대회를 불허합니다."
"아니, 왜요? 이 대회는 정치집회가 아니라 여성대회입니다. 그러니 대회를 열게 해 주세요."
"여성이든, 무엇이든······아무튼 절대 안 됩니다."
1993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여성대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두어 달 전부터 준비해서 모든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러시아 당국이 대회를 열지 못하게 했습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는 모든 집회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정치와 무관한 여성대회라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멀리에서 온 식구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어 몇몇 나라가 독립했던 그때 우크라이나 등의 주변국에 사는 식구들은 내가 모스크바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곳 식구들이 모스크바에 한 번 오려면 돈을 내 비자를 받고 먼 거리를 며칠 걸려 기차를 타고 와야 했기에 비용이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거의 두서너 달 수입과 맞먹는 돈을 들여 찾아온 식구들은 대회장 앞에서 멈춰야 했습니다. 러시아 관리들은 대회는커녕 식구들조차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숙소에서 러시아가 진정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숙소 주변에 식구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숙여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주고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간절한 마음은 하나로 통했습니다. 지금은 포옹도 하지 못하고 손잡고 인사도 나누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뜨겁게 만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들의 볼에 흘러내리던 뜨거운 눈물을 선연하게 기억합니다.
23년이 흐른 2016년, 경주에서 유엔이 주관하는 콘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유엔 사무총장과 100개 나라 4천여 명의 NGO 대표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더 밝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계평화여성연합은 그 동안의 순수하고 폭넓은 활동을 인정받아 주요 NGO로 뽑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당국의 반대로 집회를 열지 못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계평화여성연합은 이제 유엔에서 적극 후원하는 중요 단체가 되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헌신해 온 여성연합의 평화정신과 봉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첫 단추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 9월 일본 도쿄에서 총리 부인들 7천여 명의 여성 대표들이 참석해 아시아평화여성연합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창설자로서 '아시아와 세계를 구원하는 참사랑운동'을 주제로 강연했습니다. 이듬해에는 도쿄돔에서 5만 명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준비 기간은 보름에 불과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토로해 깊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1992년 봄, 서울에서 70여 나라 16만 명의 여성이 모였습니다. 4천 대의 버스가 참석자들을 잠실운동장으로 실어 나르느라 서울 시내 교통이 마비될 지경이었습니다. 여성시대가 선포하는 현장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습니다. 그날 탄생한 여성연합은 결코 세상에 흔한 또 하나의 여성단체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될 것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의 연설은 지금까지 남성들이 주도했던 전쟁과 폭력, 갈등을 끝내고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이상세계로 나아가는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나는 세계를 순회하면서 여성 지도자들을 격려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진정한 여성운동을 펼쳤습니다. 대회가 금지되었던 모스크바에도 들어가 수많은 여성과 식구들을 만나 기쁨의 해후를 하고 대회를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여성들은 그 동안 여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남성들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깨기 위해 여권신장운동도 벌이고 여성해방운동에도 뛰어들었으나 주로 남성을 상대로 한 투쟁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세계평화여성연합을 통해 여성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 주면서 여성 자신과 남성까지 포용하고 발전시키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여성이 시대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맑고 순수해야 하며, 자신을 먼저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강한 힘을 가져야 합니다. 효심으로 부모를 섬기는 참된 딸이 되고, 정절과 헌신으로 남편을 내조하는 참된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사랑과 정성으로 아들딸을 기르는 참된 어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신 참사랑의 가정을 이루고, 평화세계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참된 여성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바늘을 찾다
휘이잉~
모래바람이 불어오면 눈을 뜨지 못합니다. 모래는 눈 속으로, 살 속으로 마구 파고들고, 햇빛은 이글이글 타오릅니다. 사막에서는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몹시 힘이 듭니다. 여행객은 며칠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날이 힘겹지 않을까, 애잔한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래바람이나 뜨거운 햇빛을 친구로 여길 것입니다. 삶을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것은 다른데 있습니다.
고대문명의 발상지로서 나일강 주변의 사막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는 4천 500년 전에 세워졌습니다. 어디에서 그 엄청난 무게의 거대한 돌들을 가져와서 어떻게 지었는지 오늘날의 과학기술로도 밝혀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된 질문은, 그들이 왜 그런 건축물을 지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을 지닌 생활보다는 영원한 세계의 삶을 더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본심의 작용에 의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지상생활에 대한 미련보다는 영원한 세계, 영계의 생활을 더 중요시하며 살았습니다.
1960년대 말, 우리 부부가 처음 세계 순회를 할 때 이스라엘에 들렀습니다. 그날따라 무척 더웠습니다. 이스라엘은 남한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성경에 나온 곳을 찾아 일주했는데 불과 네 시간 만에 다 둘러보았습니다. 우리는 순회를 하면서 평상시에는 이렇게 평화로운 곳인데 어찌하여 끊이지 않고 분쟁과 갈등 그리고 테러가 난무할까,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중동은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탄생한 신성한 땅입니다. 뛰어난 문명으로 세계의 문화를 이끌어 온 우수한 민족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 갈등으로 아픔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도 모자라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가 일어나 선량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는 폭탄과 테러, 갈등이 난무하는 중동 한복판에서 안위를 돌보지 않고 화해와 사랑으로 평화를 실천하는 일에 일찌감치 뛰어들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유럽의 선교사들이 차례차례 요르단, 이란, 레바논으로 갔습니다. 그 중에는 여성 식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은 그 어떤 대륙에서보다 수난을 겪었습니다. 시련과 핍박이 끊이지 않았으며 추방되는 일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몇몇 이슬람국가에서는 선교 자체가 엄하게 금지되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 식구들의 헌신으로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고, 교육과 봉사를 이해의 폭을 넓혀 갔습니다.
우리는 무슬림 지도자를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씩 뉴욕으로 초대해 원리와 새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원리에 감복한 이슬람 사람들은 축복결혼식도 했습니다. 이는 역사상 처음 있는 종교의 위대한 화해였습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나는 중동으로 건너가 터키에서 '참부모와 성약시대'를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강연에서 이슬람도, 무함마드도 언급되지 않자 청중의 절반이 퇴장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강연하기로 했을 때는 큰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은 지금 전쟁의 본거지인데 어떻게 가시겠습니까?"
"테러가 잠잠해졌을 때 가면 더 좋을 텐데요."
그러나 나는 총칼이나 포연은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유대교들의 반대로 강연장의 대관이 갑작스레 취소되어 부랴부랴 장소를 옮겨야 했고, 역시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 하여 중도에 퇴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굴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끝까지 강연을 마쳤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길을 나선 나를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중동에 가는 일 자체가 지극히 위험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지않는 강연을 하면 심한 야유와 비웃음을 살 거라고 우려하면서 방문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한 곳도 여러 번 찾아갔기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지구 끝 어디라도 찾아가 구원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 독생녀의 소명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중동평화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화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십자가를 내리는 운동을 하는 한편, 예루살렘 거리에서 십자가를 들고 행진했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받은 은 30냥으로 샀다는 '피밭' 땅에 십자가를 묻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한 유대인 여성은 4천 년 유대인의 원한이 풀려 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두 종교의 화합을 위해 '예루살렘 선언문'도 발표했습니다. 예수님 대관식도 올렸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인류를 찾아온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를 해원하는 대관식에는 예수님을 반대했던 유대교인들도 참석해 그 의미를 더 했습니다. 또한 70여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들과 3천여 명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뜨겁게 포옹했습니다.
이 모든 중동평화의 밑바탕에는 우리 부부의 뜻에 따라 여성 식구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낯선 땅, 거친 자연,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에서 10여 년 동안 가정을 뒤로한 채 헌신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우리 부부가 중동과 처음 마주한 것은 이미 50년 전입니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는 사막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설렘과 아픔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 중동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모든 나라가 한마음으로 평화를 이루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서 홀로 작은 바늘을 찾는 심정이었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세우지 않고는 결코 돌아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독생녀가 함께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의해 테러가 자행되는 것은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비극의 악순환은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독생녀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시나브로 늘어나면서 중동에도 참된 평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