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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11월19일 주일오전설교
성경합독: 이사야24장, 사도행전8장
성경낭독: 사도행전3:11-26절
설교본문: 사도행전3:11-26절
설교제목: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예배찬송: 찬송280장(시104), 찬송89장(시31), 찬송25장(시15), 찬송357장(시134)
행3장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었던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여 보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났고 걸었습니다. 사도들을 따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장애인으로 막혔던 성전으로 담대하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나음을 입은 사람이 큰 놀라움과 경외감 속에 베드로와 요한을 간절하게 붙들었습니다. 이방인의 뜰 동쪽 면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솔로몬 행각에서는 상업과 토론으로 유명한 장소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고,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알았던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서 충격의 도가니에 빠져 소란이 일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앉은뱅이였다고 치료를 받은 사람이 사도들에게 매달리자 수많은 무리들이 놀랐고, 사도들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크게 놀랐다’는 말은 ‘경이’에 해당되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몹시 경악하듯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습을 보고 곧바로 책망하듯 말합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말입니다. 마치 우리가 앉은뱅이를 고쳤다는 듯이 놀람과 경이감을 가지고 자신들을 보느냐고 나무라며, 이 일의 근원과 출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11-16절입니다.
1.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생에 불과한 자신들을 주목하고 칭송하는 것에 대해서 교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이로운 역사를 보고 놀란 나머지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쓰임 받은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주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생명의 역사, 주께서 일으키신 놀라운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로 향하는 일은 왜곡되고 비뚤어진 우리의 무지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 마치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으로 된 일인 양 사람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하나님과 주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사람의 경건이나 능력으로 돌리는 일은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죄악에 속합니다.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모든 성도들이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것들을 취하고, 또 피조물을 찬양하는 일을 그치지 않고 있으니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생임을 늘 깨닫게 됩니다. 입으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능력의 근원이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이 받는 은혜를 마치 자신들의 경건이나 믿음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라는 입에 발린 소리는 치장에 불과한 것이지요. 베드로는 13절에서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사람을 바라보는 잘못된 것에서 돌이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언급한 것은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함으로 자신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며, 무리와 함께 약속의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시킵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셨고,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이루신 구속사역의 결과요 표적이 이 이적사건으로 바라보아야 할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나음을 받은 이적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이적의 주체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이 일을 행한 일꾼들에게 주목하는 일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합법적으로 영광을 받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나 어떤 대단한 일꾼이라 할지라도 종들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영광을 나누어 받아야 할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세례요한은 내 뒤에 오실 주님만이 “흥하여야”(요3:30)한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고 합당한 고백입니다. 이적과 관련하여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이며,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자기중심의 시대이고, 자신이 신(神)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세대입니다. 거룩한 영성과 기도, 금식과 탁월한 도덕적 행위들로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위대한 경건을 소유한 존재로 높임을 받으려는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과 대적하는 행위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신령한 집과 터는 하나뿐입니다(고전3:1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아주 조금이라도 떠나는 날에는 파멸만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을 높이지 않는다면, 놀랍도록 신령한 꾸밈과 거룩한 높음이 죄악 된 위선이 될 뿐입니다. 14-16절에서 말합니다.
14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이미 「사도행전」2장에서 무리들에게 설교했던 내용과 같은 맥락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대적하고 살인자였던 바라바는 놓아주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거부하고 살해한 죄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거룩하신 주님은 바로 너희가 넘겨주었고, 생명의 주를 너희가 죽였다고 말합니다. 놀라 입을 틀어막고 사람을 높이려던 무리를 향해서 자신들이 무슨 무서운 죄악을 저질렀는지를 깨닫도록 채근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비록 메시야를 죽였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는데,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부활하여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 앉은뱅이를 일으켰다고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주’께서 생명을 주시고, 치유를 주시며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의 출처와 근원이 사도들 자신에게 있지 않고 죽음에서 살아나신 생명의 주님, 승천하여 자신들을 파송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믿음과 믿음으로 나았다는 말은, 앉은뱅이가 치유되고 나음을 입은 원인과 방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께 기초하지 않는 믿음은 결코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으며, 우리의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무리들에게 강력하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촉구합니다. 17-21절입니다.
2.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
17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베드로는 메시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아 죽인 일에 너희가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무리 중 몇몇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마음에 크게 찔린바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된 일이 고의가 아니며,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낙심으로 절망과 좌절로 떨어지지 않도록 다독이는 위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용서의 소망이 완전히 차단되는 경우에는 공포에 휩싸여 두려운 나머지 완악하게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알지 못하고 한 일이라 하여, 그들의 범죄가 완화되거나 축소될 수는 없었습니다.
무리들 뿐 아니라 관리들도 무지 때문에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관리들은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을 뜻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많은 관리들은 바울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과 복음에 대한 지혜에 눈을 떴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모든 관리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리들 가운데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을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올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무지 속에 자행된 주님에 대한 박해와 재판, 죽음에 대한 요구로 십자가에 죽으신 일은 예언된 일이며,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들의 무지로 주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었지만, 이 일은 선지자들로 이미 예언된 약속의 성취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너희를 구속하시도록 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어서 스스로를 멸망에 빠뜨리고 있지만, 악조차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우리를 구원하심은 하나님의 자비롭고도 놀라운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소망을 말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했지만, 메시야의 죽으심은 도리어 배반했던 죄인들의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은 아이러니와 신비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권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라고 말입니다. 비록 메시야를 배척했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방조했지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도록 예비하신 일이기에 돌이켜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죄 없이 함”은 죄를 지워버리는 것, 흔적을 남기지 않는 말소를 뜻합니다. 베드로는 죄와 형벌에 대한 완전한 말소의 기회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회개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말합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신약에 여기에서 딱 한 번만 나오는 표현으로, 안식과 회복을 포함하는 때를 가리킵니다. 죄로 인한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참된 안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약속하신 메시야를 통해서 구원이 최종적으로 성취되는 시기를 뜻합니다.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 하면 성령의 역사로 죄로부터 깨끗하게 되는 역사, 곧 회개는 새롭게 되는 일과 만물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회복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모든 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늘에 계시고 장차 주님은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믿지 않고 거부하는 이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0, 21절을 다시 봅시다.
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나음을 입은 이 일이 주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며, 생명과 구원이 오직 주님께 매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새롭게 됨과 구원이 있으나, 믿지 않고 끝까지 거절하는 이들에게는 예정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때에는 심판주로 오실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가서는 주님을 몰랐다고 누구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은 ‘예정’되어 있으며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포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고, 나사렛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보내심을 따라 원수 갚을 만반의 채비를 하고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주님은 하늘에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통해서 만물의 회복을 시작하셨고, 당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불러내시기 시작하셨고 예정된 사람의 수가 차기까지 그 일을 지금도 지속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와 씨름하며 마치 종살이 같은 형국에 처한 때에라도 주님의 회복의 완성을 위한 일은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완성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유예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보는 수많은 혼란스러운 소음에 마음을 지나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은 마침내 주님께서 오셔서 만물을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베드로의 입을 통해 이 놀라운 비밀과 약속, 이미 성취된 그리스도의 나라와 장차 다가올 완성의 소식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가장 분명한 일은 회개하고 주님을 믿는 일입니다. 선지자들의 약속에 따라 오신 주님을 붙드는 일이며,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날을 기다리면서 만물의 회복의 약속을 고대하는 일입니다.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선지자와 더불어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언약의 자손이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22-26절을 봅시다.
3. 듣지 아니하는 자는 멸망 받으리라
22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를 높였고, 모세의 가르침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를 단수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비한정적 용법이라 유일한 선지자 한 사람만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너희 형제 가운데서’라고 말함으로 이스라엘을 가르칠 교사를 이스라엘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못 박고 있습니다. ‘나 같은’이라는 말은 하나님은 단지 모세만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뒤이어 일어난 수많은 선지자들과 교사들을 보내고 세우셔서 사역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고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는 모세를 공경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고착화된 유대인들에게 모세 외에 모든 선지자들에게도 마땅한 공경을 돌려야 하고, 모두가 결국에는 오실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요한의 때까지 예언하였고, 그 후에는 하나님나라가 전파될 것’(마11:13)이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4:25)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드러내실 수 있고 가르쳐 주실 수 있는 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셔서 자기 백성을 가르치시기로 약속된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17:5)고 명령하신 분입니다. 베드로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23절입니다.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누구든지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자는 사형판결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거부하고 무시하는 이들은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전한 말씀을 거부하는 일에도 이처럼 멸망과 심판이 가혹하게 선포되었는데, 율법의 주인이 되시며 참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거절하는 이들에 대한 심판은 얼마나 더 무섭고 가혹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의 기업의 백성이 되는 것 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시33:12). 그러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이가 있다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시고, 말씀을 듣도록 하시는데 이 복음을 거절하는 이들은 교회의 지체, 하나님의 자녀, 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지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의 증언 속에 복음을 가리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예언들의 종착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을 듣는 유대인 무리를 향하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며 언약의 자녀들이라고 말합니다. 조상 아브라함의 때로부터 약속된 씨에 대한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25절입니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율법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누린 선택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자손이 되며, 조상 아브라함과 세우신 약속을 받은 언약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이 가리켜 외쳤던 메시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셔서 후손들이 대대로 기다렸던 그 씨는 베드로가 전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대인들이 받고 누렸던 언약과 약속의 종착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없이함을 받을 것이며, 영생을 취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선지자의 자손이자, 언약의 자손이기에 응당 그 언약의 성취를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마땅하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족속이 너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땅 위의 모든 족속’은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되지만, 좀 더 분명하게는 ‘모든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로 접붙임 받게 될 것’이라는 해석이 보다 더 좋은 해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열국의 아버지’ 곧 모든 민족을 자기에게로 모으실 그 날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이방인들로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구원을 유업으로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유대인이 먼저였지만 이제 다음으로 이방인들도 생명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26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율법아래 있을 때에는 백성들을 축복하는 일은 제사장들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주리라”(민6:27)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시대 그림자로 드러났던 것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히브리서7장에 기록된 별다른 대제사장 멜기세댁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주께 속한 성도들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럼으로 돌이켜 각각 악함을 버리고 주님의 축복에 참여하라고 권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생명과 구원의 복을 취하라고 강권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복은 아담에게, 노아에게 또, 아브라함에게와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된 언약의 복입니다. 죄악 중에 출생하여 죄 가운데서 망해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피로 건지셨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진 복음의 약속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일어난 변화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복음을 지키고 보존하며, 가르치고 전하여 유일한 복인 예수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축복에 이웃을 초대해야 하겠습니다. 가장 가까운 식구로부터 주어지는 모든 기회 가운데서 멸망치 않도록 생명의 복음을 나누어가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