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진술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오늘 아침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행복한 웃음으로 인사하면서 집을 나섰겠죠. 또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발걸음 역시 단란한 가족이 맞아주는 행복에 종일의 고단함도 눈 녹듯 녹아내리겠죠. 아마 판사님뿐만 아니라 대다수 평범한 국민이 그렇게 살아가리라 여겨집니다.
지금 이 시간 판사님과 저의 재판과정 또한 늘상의 일과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고단한 일상의 일과에 시달리든 아니면 잠시의 행복감에 젖어 시름을 잊든, 분명한 건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라면, 조국이 분단되어 뒤틀려진 역사와 자본주의에 절여져 살아야 하는 운명 앞에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70여년의 역사가 속절없이 흘렀건만 일제에 관련하여 우린 내부적으로나 일본에게나 굴곡진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약소국이니 어쩔 수 없다는 어리석은 논리에 의해 강대국 미국에 기대어 60여 년간 분단을 고착해왔지 않습니까? 정전협정을 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평화협정으로 대체한다 해놓고도, 우리 한국은 반쪽 조국 북한을 여전히 주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 우리 한 민족 한 겨레끼리 주체적으로 평화와 통일의 길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않는 건지, 부끄럽기도 하고 원통하기도 하고 정말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 억장 막히는 아픔의 역사현장에 살면서도 잠시의 위안과 기쁨마저 없다면 무슨 살맛이 있겠습니까마는, 오늘 판사님과 저는 진실과 자유 그리고 현실과 책임이라는 외줄 위에 함께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실정법에 스스로 묶여 충실해야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지워졌지만, 그래도 하늘이 준 양심에 따라 심판 할 수 있는 진실과 자유의 권한 또한 주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나마 사법부에 희망을 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간 수없이 재판을 수행해 오신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전후 사정을 익히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국가의 국책사업이요 군사안보 사업이라는 명분에 성역화 되어버린 위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가려진 미국과의 관련된 문제점과 무시된 민주적 절차의 문제점이 고스라니 드러난 반역사적이요 반민주적 국가범죄임이 드러났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설계가 바꿔져야하는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미 건설계획 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해 온 이유는 한국을 위한 주한미군이 아니라,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이해에 더 부합하는 게 아닐까요? 포장만 그럴듯하게 ‘민군복합관광미항’이라며 국민을 속였음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한국은 이제 월등히 군사력도 북한보다 앞서있는데 아직도 여전히 군사주권이라 할 수 있는 작전통수권을 왜 미국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점점 다가오는 미래세대 국민 앞에 설명이 안 됩니다.
무시된 민주적 절차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에 명시 되어있습니다. 이른바 유신헌법이란게 이 헌법 제1조를 뒤틀었지만, 얼마나 긴긴 역사에서 민주화 투쟁을 통해 회복해 내었습니까?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는 이런 값진 희생적 투쟁으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이 헌법과 함께 세워지기 전에는 누가 주인이고 그 주권을 가질까요.
1948년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생기기 이전은, 이미 수백 년 수천 년을 그 자리에서 살아 온 원주민공동체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국가에 의해서 규정된 국민보다는 원주민에게 주권이 있고 주인의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국민보다 주민이 더 앞선다는 겁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하는 주체인 국가는 이점을 유념하여야 합니다. 강정마을 주민의 주권보다 앞선 국가의 특권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민주주의의 유린행위는 국가의 범죄입니다.
사실 수백 년 수천 년 그 땅을 지켜온 원주민의 주권에 앞서서 더 고려해야 할 주권이라면, 수억 수십 수백억 년을 지켜온 지구와 생명체들일 것입니다. 인간 공동체의 주권과 민주적 절차도 중요하지만 생태계의 주권과 대화 또한 더 중요한 조건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항구적으로 물려줄 대대손손 역사에도 물론이요 자연생태계에도 정말 못할 짓을 하는 범죄가 아닐까요?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국민의 한 사람 주권자로서 또한 헌법과 법률을 세운 주체자로서 그 법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 한편 국민임과 동시에 민족공동체의 일원이요 세계시민으로서도 그 법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땅히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민족공동체와 세계시민으로서도 부합하는 모법에 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모법은 당장 우리 앞에 성문화 되어 제시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보편적 양심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은 물론 그것을 넘어선 심판에 대하여도 그 권한이 사법부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에 의해 강행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이 양심에 바탕을 둔 자연법에 위배되는 범죄행위 일뿐 아니라, 더 상위 모법인 생명법과 진리에 비춰볼 때도 어긋나고 그릇된 죄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러한데 한 국가의 실정법과 그 하위 규범인 각종 규정이나 규칙에만 따라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가치를 포기하는 행위요 부끄러운 사리분별력이 아닐 수 없는 일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런 면에서 저는 검찰이 제기한 범죄사실의 원인이 되는 가치의식에 관한한 자연과 역사와 국민 앞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인으로서 인간 보편적 양심에 따라 확신하며 선택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행동을 결행함에 있어서 다소 수행이나 수양의 부족으로 인해,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준 일에 대하여는 깊이 반성을 하면서 사과를 구할 마음입니다.
지난 22년간 우리사회에서 가장 멸시받는 노숙인 부랑인과 한 공동체 안에서 뒹굴며 사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목사라는 종교인으로서 가장 모범이 되는 예수의 삶을 따르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진리를 완성해 나가는 길 중 하나라는 의식은 확실하지만, 친 가족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나 공동체 가족에게도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주기 일쑤였습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정진만이 가야할 길일뿐입니다.
며칠 뒤면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정부를 선택하느냐 하는 중요한 선택의 날입니다. 국가를 건설하고 국민이 그 국가의 사무를 어떤 정부를 선택해 맡겨야 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부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예와 위신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수반이 되는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역사의식 그리고 자연생태에 관한 가치의식이 어떠한가는, 정말 선택의 조건에 중요한 바로미터가 된다고 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제 결언을 맺겠습니다. 최후 진술서라고 써 보니 좀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판결 업무 중 정말 어렵고 민감한 제주 해군기지 관련 사건이 얼마나 심려와 고민이 되시는 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정말 사법부의 명예와 자존심으로 역사 앞에 당당한 판결을 하시길 충심으로 빕니다. 하느님의 가호가 평화의 길을 갈망하는 강정마을과 자연생명체들과 갈등에 관련된 모든 분들과 대한민국 사법부에 함께하시길 다시 한 번 마음모아 기원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2년 12월 14일
피고인 김홍술 씀
첫댓글 여섯번째 참석한 결심공판에서 검사로부터 구형 징역 1년 6개월과 벌금 10만원 받았으며 내년 1월 9일이 선고공판입니다.
두손모아 지지합니다!목사님 늘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때가되면 원고와 피고가 바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