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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성지순례는 교수님들과 함께 가려 아껴두었다 드디어 2008년 7월7일부터 13일의 여정에 동행케 되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성지순례 갔다가 돌만 보고 왔다고!" 또는 " 아는 만큼 보고 온다고!"....... 소원했던 순례길 이었기에 성경의 역사와 지명을 지도와 연결하여 머리에 담아 보는등 쬐끔 준비를 했다. 허나 순례를 다녀온 지금 혼동과 허무에 빠져있다. 보고 온 돌만큼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적들 처럼 나의 믿음도 무너져 내려 앉은 돌들처럼 흩어져 내려앉아 버린 느낌이다. 어떻게 일어나야 하나?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하나? 주님께 물으며 하염없는 눈물과 회개로 날들을 보내게 된다.
이집트에서 모세의 출애굽 여정에따라 두달걸린 시내산까지의 여정을 불과 몇시간만에 도착하여 다음날 새벽 2시경에 낙타를 타고 중반까지 데려다 주는 서비스를 받으며 나머지는 모세의 심정을 헤아리며 정상까지 오른다. 해돋이를 보며 교수님의 멘트를 들으며 시내산 정상의 그 자리를 음미해본다. 모세가 주님을 뵈었던곳! 십계명을 받았던 곳! 엘리야도 850:1의 영적전쟁을 치르고 승리의 기쁨은 잠시 burn-out되어 피하여 도망하다 이곳으로 와 재 사명을 부여받았던 곳! 나는 과연 이자리에서 주님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혼동이 왔다. 전도로 질주해온 나의 삶에 주님의 재 사명을 부여하시는 그 음성이 혼란스러웠다. 계속하여 요르단을 떠날 때까지 사막의 여정은 나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 사막의 훈련소에서 40년 동안의 삶을 통해 주님은 오직 그의 백성이 주님만 바라보기를! 주님과 사랑의 순종의 관계!가 정립되길 원하였으리라!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외엔 어떤 미혹의 대상이 없는 그곳에서! 사람이 떡으로 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얼마나 각인시키고 싶으셨을까?!!!!
가나안 입성 전 모세의 마지막 설교에서 "이스라엘은 행복자로다! 이같이 하나님을 경험한 백성이 어디 있느냐?"하시며 가나안에 들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신세대에게 누누히 반복하여 설교하고 그는 주님께로 돌아갔다. 과연 행복이 무엇인가? 다시 정의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내가 주님과 관계 맺어 주님과 친밀함을 유지하는 가운데 서로 오고가는 기도와 삶가운데 수놓아진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그의 한 번 응답은 늘 기적으로 다가왔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수없는 능력을 보이신! 형용할 수 없는 사랑으로 다가오신!...... 그분과 함께 함이 행복이었다.
현대의 인간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이 이스라엘을 위한 축복의 조건이었다면 아니 그것을 주시기 위함이었다면 어쩌면 주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킬 필요가 없었겠구나!하는 생각에 이른다. 목격한 이스라엘은 수천년 역사속에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지리적인 위치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평안과 안식과는 거리가 있는 지리적 위치다. 오히려 애굽 왕의 마음만 돌이키시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안연히 살수 있었을텐데 주님은 학대케 하셔서 이들을 내몰으셨다. 역사의 회오리치는 그 현장으로!!!!! 40년훈련을 통해 오직 가나안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살도록! 그래서 온 세상에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그곳으로 주님은 옮기셨으나 그들의 욕망은 주님을 져버렸다. 이천여년을 디아스포라로 헤메이다 이제야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회개하는 통곡의 벽 앞에서 나도 함께 통곡하게 된다. 주님은 역사의 오고가는 세대 속에 주님의 백성이 주님의 백성다운 정체성을 세상에 알리길 원하셨다. 그들을 통해 주님을 세상에 보이시길 원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얼마나 주님의 마음이 아프셨을까? 우리를 향한 기대로 너무도 열망하셨던 만큼 너무도 주님을 아프게 한것이다. 주님의 형상을 세계에 반영하는 도구가 되기보다는 세상을 따라 세상속에 빠져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늘 새롭게 창조해가는 존재라는 것을 잊은것이다. 그 결과는 멸망! 즉 노아의 홍수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서지 못함에 또 한번의 심판!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은 필연적이었으리라! 그러나 주님은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고 또 다시금 기회를 주시고, 그것도 가능성이 없어지자...... 급기야 예수님을 주신 것이다. 인간이 아니 내가 얼마나 가능성 없고 퇴락된 모습인가를 그 지역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주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는가?! 십자가 길을 걸으며 그 옆의 가게에서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나 주님이 십자가 지시고 가실 때 조소하던 사람이나 주님 때문에 다시금 나의 욕구와 영광을 구하는 나나 무엇이 다를까?!!!
주님의 콜링에 직장을 버리고 "사람낚는 어부!로서의 길로 turning point 했을땐 나름 대로 돈도! 명예도! 모든 것이 쓰레기임을 보여주셨기에 부끄럽고 연약하여 내가 감히 주님 가신 길을 갈 수는 없지만 그 가신 길을 증언하는 삶을 살겠다!고 20년을 달려왔고... 또 그길에서 주님은 너무도 많은 기적과 능력과 사랑을 베푸시며 한사람 한사람 회심 할 때마다 주님의 지혜와 각본으로 그들을 구원하셔서 복음의 현장에서 늘 주님을 뵈옵고 기적을 경험하는 도구가 되어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삶으로 인도하셨지만 되돌아보면 모든 나의 흔적들은 죄의 점철임을 보게되어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날마다 다시 새롭게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다.
다시금 성지순례를 통해 정말 주님이 내게 원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보게하신다. 교수님께서는 "무엇을 보는가?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 차라리 보이는 것을 보는 것 아닌가?" 말씀하셨다. 그렇다! 진리는 말씀으로 비추이는 빛 뿐이고! 온 세상은 마귀의 비추이는 현상으로 몰고간다. 관습과 경험과 문화......를 통해 특히 TV를 통해 사람들을 정신없는 물결속으로 이끌고 간다. 여기에 한 줄기 빛으로 비추고 계신 예수님의 계시를 바로 읽지 못하면 신앙이라는 이름하의 또 하나의 우상을 섬기도록 세상은 유도하고 있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도 나는 또 세상을 잡고 있고 마귀가 제시하는 그 열매를 쫒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자리한다. 내 뜻은 하나도 이루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뜻만 이루는 도구ㅡ되기를 소망하며 통곡의 회개를 올리게 된다.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만을 얼마나 열망해야 할까? 거룩이라는 길에 나의 욕구가 끼이지 않도록 또 한번 나를 돌아보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 그시대를 빛냈던 그 유적들이 지금은 돌 무더기가 되어 그때의 자취를 보여주듯이 내 믿음속에 더러움이 끼어 있어 그렇게 나의 믿음도 무너져 버렸다. 내가 과연 믿음이 있는 자인가?! 거룩하신 주님을 따르는 길에 주님을 향한 말씀을 이루는 도구만 되고자 하는 거룩의 길에 있을때만 그분을 뵐 수가 있으리라! 주님의 보혈 속에 다시금 나를 담그며 다시 태어나길 기도하게 된다. 다시금 나를 내려놓고 세상의 때가 끼이지 않는 주님을 향한 사랑에 응답하는 자로!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아니, 주님이 나를 너무도 사랑으로 부르시기에 정신차려 믿음의 돌을 다시금 세워가려 몸부림쳐본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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