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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서신서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면 문제 없는가?
사람들은 성령이라고 하면 납작 엎드러져 숨이 넘어가곤 한다.
그만큼 성령은 불가침의 절대적 성역으로 알고 있으나, 알고보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삼라만상과 그 기능들이 성령의 작동임을 깨닫게
될것이다. 우선 "성령" 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폭넓게 알아보기로 한다.
하나님은 성령이며 창조주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이 세상에 성령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고차원의 사람에서부터 가장 저차원의
티끌 한점에서 물 한방울까지 모두 성령에 속한다.
아무리 무생물일지라도 천착해 들어가면 그 속에 하나님이 지으신 성령이
들어 있기 때문에 영과 영의 교감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고차원의
성령이냐 저차원의 성령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그것을 대별하면
인간은 가장 고차원의 성령이요, 다음은 동물군이요, 다음은 식물군이요,
다음은 무생물군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신 후 영생을 주시고자 하신
성경의 말씀(성령)은 어떤가? 영생을 주시고자 하신 성경의 말씀이야말로
초고차원의 에너지로 압축된 성령의 핵심덩어리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을 관활하는 두뇌와 인간의 감성을 관활하는 가슴은
성령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교류교감할 수 있는 체널이요, 그 체널에
즉 인간의 두뇌와 가슴에 생명의 에너지장인 성경말씀(성령)을 빼곡히
채워 넣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생의 조건이다.
성경말씀의 성령이 그토록 막중존대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은 모두 비유비사이며 상징이다. 그 이유인즉 마지막 때
성경을 깨닫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직전에 사탄마귀를 잡기 위한 모략과
작전으로 말씀을 비유로 주신 것이다.
성경은 비유이므로 문자 그대로 읽어서 구원받는 게 절대로 아니다.
반드시 문자 속에 감추어진 뜻을 깊이 깨달아야만 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고집스럽게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고 구원을 이미 받았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기성교단이 있다. 이 같은 기성교단은 기독교초창기부터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기성교단은 이천년전 초창기부터 형성되었으므로 이것을 "옛뱀" 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비유의 말씀을 풀었노라고 주장하는 자칭 메시야집단들로
사자후를 토하는 적그리스도 집단이 있다. 적그리스도는 오늘날 창궐한
신흥교단이다.
(적그리스도는 오늘날 창궐한 신홍교단이므로 이것을 "옛뱀의 후손용" 이라고 한다)
오늘날 사방을 둘러보아라.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기독교계열 교단들은 모두 한결같이
옛뱀 아니면 옛뱀의 후손들로 운집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단언하건데
이들 중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그 이유인즉 이렇다.
첫째 옛뱀 기성교단을 보기로 한다.
기성교단의 머릿돌과 주춧돌은 말로는 하나님이요, 말로는 예수님이지만
기실은 사도바울이다. 하나님 및 예수님의 말씀과 바울서신서는 서로
상반되고 충돌하는 부분이 아주 많고 많아서
여기에 도무지 그 점들을 모두 다 나열할 수는 없다.
인류가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받느냐 못받느냐의 아주 중요한 핵심과제임에도
그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반기를 드는 자는 아무도 없으며, 이때
가차없이 하나님 및 예수님의 말씀에는 일별의 눈길조차 주지 않고
빼먹어버리고 당연히 바울 서신서에 달려가 입맞추고 있다.
기성교단은 온통 바울의 교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성교단은 그 방대한 주석집부터 하나님 및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고, 바울의 교리에 의한 바울의 교회를 위한 바울의 방대한
주석집이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열매는 없이
나무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말라 죽게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데, 구약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역사기록물이지만 그 내면은 이천년전 초림예수님 때와 오늘날 재림예수님
때에 대한 대대적인 예언서가 되고 있다. 게다가 그 예언들이 모두
그 시대 구약의 문물과 제도하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모두 오늘에 대한 명백한 "비유비사" 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키워드인 창세기부터 고밀도로 깊이 감추어진 그 비유문자를
그 누가 깨달으랴! 깨닫는 자 아무도 없다. 성경기록 시대는 말씀을
깨닫는 시대가 전혀 아닌 만큼 예수님조차도
성경문자 한 줄 풀어주신 일이 전혀 없었다.
예수님은 구약을 풀어주시기는 커녕 오히려 설상가상으로 말씀을 비유가
아니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으니,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기록된 신약성경조차 꼭꼭 감추어진 비유로 판도라상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판도라상자의 비유를 누가 열어주신다고 했는가?
예수님이 오늘의 재림 때 저 창세기부터 밝혀주신다고 단단히 약속하시고
떠나가셨다. 창세기부터 열어주신다고 했다면 창세기도 수수천년의
이끼가 낀 "비유"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누가 나타났는가? 사도바울이다.
로마시민권을 갖고 학문에 출중하고 율법에 능하고 백성들로 우러름을
받던 바울이다. 바울은 본디 예수믿는 신도들을 잡아죽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살인자였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고 계속 살인자의 길을 가기 위해 다멕섹 언덕을 지날 때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꼬꾸라진 후에 돌발적으로 개과천선한듯
살인자의 길을 멈췄다. 하지만 이것은 크게 업그레이드된 살인자의 길로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무기보다 무서운 것은 붓이라고 했다.
바울이 살아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한계가 있는 아주 적은 숫자일 뿐이다.
그러나 바울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수수천년 예수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은
그의 붓끝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살인자의 길을 멈추고 붓을 들어 말끝마다 하나님 및 예수님과
성령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의적으로 서신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성경의 비유를 깨닫지는 못한 까닭에 문자 그대로 읽고 문자 그대로
전파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에게 완전히 100% 어필되어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이는 일에 오늘날까지 100% 대성공 했다.
하나님 및 예수님은 유전죄는 없다고 강력히 책망하셨으나, 바울은 그 반대로
아담의 유전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고 강력히 맞섰는데
기성교단의 신자들은 물론이요 자칭재림주들 역시 바울의 교리에 믿음을
굳히고 환호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성공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래야 죄를 알아 그 죄에서 벗어나 사함도
받고, 따라서 구원받을 수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시킴으로써
성경을 깨닫지 못하도록 가로막아 버렸으니, 바울은 사람들을 이천년동안
무수히 죽여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을 비유로 말하고 재림 때는 그 비유의 말씀을 창세부터
드러내시고 영생을 살아서 지상에서 주신다고 분명히 하셨다.
하지만 바울은 그 반대로 영생은 초림 예수님으로부터 이미 다 받았으니
살아서 지상영생은 필요없고 각개인이 죽어서 천당 간다고 주장했다.
(죽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이것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죄와 아무 상관없이 그저 우리의
몸뚱아리를 저 하늘로 끌어올려가는 일이나 하는 손오공 같은 존재라고
하나님께 강력히 맞섰을 때, 믿는 신도들은 바울을 신봉하며 오늘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100% 대성공한 것이다.
하나님이 징벌하시는 인간의 죄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를 말한다.
그런데 바울은 재림 예수님은 우리죄와 아무 상관이 없다 했으니 그분은
성경 한 줄 풀어줄 일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러면 초림 예수님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 성경 한줄 풀어주신 일이 없었다.
초림 예수님도 성경을 풀어주신 일이 없고 재림 예수님도 성경을
풀어주시지 않고 누가 성경을 풀어준단 말인가? 그렇다면 아무도 성경은
풀어볼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것이고 오로지 바울이 외치고 있는 선악과
교리만이 기독인들이 믿어 구원받게 된다는 뱀의 논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는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는 유전죄를
전파시키고, 초림예수님으로 부터는 영생을 이미 받아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완전 선을 이룬 천당행이라고 주장하며, 반면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는 악이라고 주장하는 <예수천당-불신지옥>이라는 선악과 교리가
기성교단의 존립기반이 되게 했다.
하나님이 금하신 동산중앙의 선악과의 선악교리를 바울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먹였다. 사람들은 번폐스럽게 성경을 깨달아야할 필요가 없이
달콤한 그 선악교리에 매료 당했다. 때문에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고
알려준 대로 예언은 그렇게 흘러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성교단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도록 사주한 옛뱀 바울에
의해 이천년동안 지금까지 우리 모두는 영적으로 죽어왔던 것이다.
영적으로 죽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실 당장 생물학적으로도 죽여왔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을 이루는 선이고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타 종교나 세상학문은 지옥에 떨어질 악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중세 종교암흑시대에 학문탄압에 의해 학자들이 처형을 당해야만 했으며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도 아직 불신자들은 무수히 죽어야 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또 있다. 하나님은 6일창조기사에서 맨 끝날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그 남여를 일컬어
"하나님 형상" 이라고 칭송했었다.
그런데 바울은 지독한 가부장제의 마쵸였던 까닭에 남자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이고 여자는 남자의 놀이갯 감이요 남자의 영광을 위해
지어진 들러리라고 거짓말까지 꾸며댔으며
사람들은 그의 거짓말까지도 아주 좋게 여겼다.
뿐만 아니라 남자는 먼저 지어지고 여자는 뒤에 지어졌으므로 여자는
남자에게 절대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리를 가르쳤으며
사람들은 매우 좋아라 했다.
사실 먼저 지어진 것이 월등하다면 먼저 지어진 동식물들에게 마지막
지어진 남여사람들이 경배해야 하는 논리인데도 사람들은 바울의 말이라면
아무 생각없이 신주단지 모시듯 모신다. 하나님 및 예수님의 가르침이
도무지 아닌, 옛뱀 바울의 말에는 사람들은 무조건 열광한다.
이렇게 바울의 여자억압과 여자탄압의 거짓말이 온 세계에 먹혀들어 그것이
빌미가 되어 중세 종교암흑기에 여자들이 조금 똑똑한 낌새가 보이기만 하면
그녀들 수수백만이 마녀로 죄없이 끌려가 화형을 당해야만 했다.
여자들은 바울의 말에 의하면 남자의 노리겟감이나 되는 짐승수준이어야
하는데 왜 똑똑하게 구느냐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쟌다크도 이 중의 한 사람으로 화형을 당해야만 했다.
잠시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얼마나 못된 잔학한 마초인가?
바울이 살아 생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괴수였으며 그가
죽어서는 그의 붓끝에 의해 오늘날까지 지구인 모두가 영적으로 죽고
생물학적으로도 처형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 모두도 즉 기성교단 모두도 얼마나 무지몽매한
악독한 씨종자들인가?
그런데 그 중에 양심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질문한다.
"사도바울은 성경에 상반된 교리를 가르치지 아니했는가?" 라고.
그러면 돌아오는 답변인즉 이러하다.
사도바울의 서신서는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 라고.
생각해보라. 위에서 상술했듯이 성령으로 짓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든가?
티끌 한점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지으신 창조물이라면 사도바울과 그의 생각까지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누가 부인하랴!
하나님이 짓지 아니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따라서 모든 것은 성령의
활동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하나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든 것은 성령의 움직임에 있는데 도대체 성령과 반대되는 악령이란
어디서 나타났는가 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있듯이 악령도 반드시 있는데 악령의 출처는 어디였는가?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출생되었기 때문에 악령도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
아무리 골백번 이야기를 들려줘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근본은 선과 악이 함께 있는 혼재의 하나님으로부터 창조가
시작되었다고 말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니 그게 답답하다.
하나님은 알파 하나님이요, 다시 오메가 하나님이다.
처음엔 알파창조가 있게 되는데 알파창조에서는 선악이 함께 있는 시작의
창조이므로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45:7)"
라고 알려주고 있다. 즉 하나님은 선과 악을 함께 지으셨다고 하신다.
이것이 성령이신 하나님이 처음 하늘 처음 땅을 지으신 알파창조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신 빛 속에는 어두움도 함께 있는 것이며,
평안 속에는 환난도 함께 있는 것이며, 성령으로 지으신 것 속에는
악령도 함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러므로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기록된 책" 이라든가 혹은 "성령의 감동"
이라고 할 때, 그 성령 속에는 악령의 움직임도 함께 있음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악령, 혹은 사단마귀가 어디서 나왔는가?
자체적으로 독립해서 나왔는가?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창조를 하시게 되자 그속에 함께 있었던 악령, 혹은
사단마귀가 나온 것이다. 때문에 악령, 혹은 사단마귀는 창조주가 아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피조물일 뿐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도발자이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코가 꿰어 부리심을 받고
멸망으로 들어갈 무저갱 행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성령의 감동" 이란
절대적인 빛의 성역이 아니다. 어둠의 영역도, 즉 악령도 함께 숨어 있는
카오스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정체를
알기 위해 반드시 그 열매를 찾아내어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진단해 본결과 바울의 언행이 과연 옳았던가? 아니지 않는가?
천하에 못된 악령의 앞잡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생각해 보라. 악령일수록
그것을 감추고 하나님께 도전하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을 낚아채기 위해
자신을 일컬어 내가 악령이다고 말할 위인이 어디 있겠는가?
악한 꽤를 도모할수록 탄탄히 성령으로 위장하기 마련이다.
바울이 곧 그런 위인이었다.
바울 속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무차별 죽이는 악령이 있었으나 그것을
숨기고 성령의 감동 운운 했던 것이다.
옛뱀 마귀임을 숨기기 위해 바울은 가장 의로운 척 했으며, 가장 순교자적
노력을 했던 것이며, 가장 경건한 척 했던 것이며, 가장 곤고한 척 했으며,
가장 거룩하고 가장 현명한 유식자 노릇을 했던 것이며,
그러다가 가끔씩은 그의 오만불손이 드러나 뽀록이 나고 있기도 했다.
오늘날 교단의 물을 잔뜩 흐리고 있는 지도자들이 자신을 일컬어
“내가 사탄이다” 라고 실토하던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런 자들일수록
“나야말로 불세출의 성령체다” 라고
최대한 미화하고 극대화시키지 않던가? 사도바울도 마찬가지다.
어리석게 말에 속지 말고 그의 행동과 그의 열매로 판단하기 바란다.
세상 일에는 달통하면서 어찌하여 성경의 진리에서는 말에 속고 악한 행동에
눈감아 주려는가?
속는 자도 속이는 자와 함께 똑같이 악해서 속고 속이는 법이다.
정직하지 못한 그런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그물망에 잡히고 말리라.
바울이 옛뱀 마귀임을 믿을 사람은 믿고 말 사람은 말기를…
갈등을 느끼지 말고 편안히 받아드리기를…
어차피 첫열매로 구원받을 숫자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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