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讀書新聞)
한국의 출판 정보를 알려주는 주간신문. 학술ㆍ문화ㆍ예술ㆍ출판정보 전문의 주간신문.
발행인 방재홍(方在鴻). 국내 유수의 출판인 63명이 주주가 되어 1970년 11월 3일 김익달(金益達)을
초대사장으로 해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202번지에서 창간되었으며,
동년 11월 8일 창간호가 타블로이드판형으로 4색 인쇄되었고, 30면 내외로 발행되었다.
사시(社是)로서 ‘정신문화의 계발, 지식의 대중화, 독서의 생활화, 소비성향적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저항 및 인기주의의 배격’ 등을 내걸고 있다. 창간 당시의 우리나라 출판계는 소부수 출판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영세한 출판시장에서 양서보급과 독서운동 촉진은 어려웠다.
따라서 서평(書評) 및 도서광고를 일간 신문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출판경영상의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에 출판계에서는 양서 소개와 독서 지도를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전달할 전속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출판업계 공동의 지원 아래 독서신문이 엘리트주간지로서 나오게 된 것이다.
매주 일요일에 발행되는 이 신문의 주요 주주(株主)는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다.
이 신문이 다루고 있는 주요내용을 목적별로 분류하면 독서인구의 개발, 독서광고의 일원화,
해외시장 개척 및 저작활동과의 관련문제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양서소개와 독서지도를 보다 신속히 전문적으로 전달할 매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공동 지원을 하여 독서신문이 나오게 되었다. 매주 일요일에 발행되며 독서인구의 개발,
독서광고의 일원화, 해외시장 개척 및 저작활동과의 관련문제 등에 중점을 두었다.
1980년 10월 20일 제567호부터는 제호(題號)를 [주간독서(週刊讀書)]로 바꾸었다가
1982년부터 다시 원래의 제호인 [독서신문]으로 환원하였으며, 현재는 격주 일요일에 발행한다.
2009년 현재 (주)한국시사신문사에서 발행하고 있으며, 발행인은 방재홍, 발행소(發行所)는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596-9 독서신문빌딩에 있다.
【회사 연혁】
▶1970 5월 ㈜독서신문사 법인설립(공보처 등록 제 다239호)
▶1970 10월 8일 창간호 발행
▶1993 10월 대표이사 방재홍 취임
▶1995 3월 중국 북경 특파원 파견(중국 도서관 및 대학 실태조사)
▶1995 12월 독서문화원 개원
▶2000 7월 독서신문 독후감 현상 공모전 시행
▶2004 2월 오늘경제신문 창간
▶2004 11월 제5회 독후감 경진대회 개최
▶2007 2월 왕인문화협회 창립
▶2007 4월 인터넷 경제일간지 이뉴스투데이 창간
▶2007 12월 한국 현대시 100주년 기념 문학상 시상
▶2008 7월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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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기억들 하시나요 ? 우리들의 학창시절 여느해 흰눈이 펄펄 나리던 광복동 거리에 ~~
독서하는 시민이 됩시다~~라는 문구가 세겨진 가판대 아래로 수북이 펼쳐 쌓여진 이색적인 주간지가
어깨를지나 가슴을 빙빙 동여맨 노란 띠를 두른 학생들에 의해 오가는 시민들에게 열열히
홍보되던 때를 말입니다.
그 신문은 바로 전국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그당시 부산의 번화가에서도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켰던
학술,문화,예술,출판정보에 관한 전문 신문으로 창간된 독서신문 이란 주간 교양지였다.
창간 당시인 1970년 우리나라 출판계는 소부수 출판을 주종으로 형성된 영세한 출판사들이 출판업계에
대부분으로 형성되어 있었기에 그들에 경영상태가 한정적일수 밖에 없어 이들이 영세한 경영난을
타파하기위해 양서보급및 독서운동 촉진이란 명목아래 국내 소규모 유수회사들이 주요 주주가되어
이 신문을 창간한 것이다.
그때 이 신문사가 신문홍보를 위해 돌격대로 앞세운 이들이 현역 대학생들이었고, 학생들의 신선한
이메이지를 활용해서 이 신문이 순수한 엘리트 주간지임을 듣보일려 학생들을 활용했던것으로 추정된다.
그당시 나는 학업을 하면서 가난해서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문교부와는 상관없이 운영되던 ~~
부산동상재건 중고 학교~~라는 곳에서 기업체에 다니는 여공,
혹은 일용직을 전전하는 학생아닌 학생들을 자진하여 학생 신분으로 그들을 가르키며
사명감을 가지고 교단에서 봉사하고 있었다.그
해 겨울 나는 야학으로 가기위해 학교정문을 나설때 학교앞에서 독서신문이란 회사에서 나온 직원들의
설명회에 우연챦게 참석하게 되었고,
그들의 설명을 듣고 결론에 도달한것이 일부 직업을 갖지못한 우리 야학 학생들에게 독서전개
운동에 참여시킴으로 비정규라는 학생신분의 열등감에 긍지도 북 돋우어주고 그리고 일정 학생으로서
떳떳하게 수입원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내 맘 한구석에 용솟음 치며 머리끝이
쭈삣하여오는 감을 받았다.
그때 재건중고 야학 학생들의 전교 학생이래야 모두 합쳐서 백여명쯤 되었지 싶으다. 이중에서 절반가량은
직업도없이 떠도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날로 몇안되는 교사들이 교무실에 모여서 이 내용을 정식으로 채택해서 빈둥거리는 학생들을 독서
캠페인에 참석 시키기로하고 그들도 불우한 자신들이지만 저들도 남을위해 뭔가 흔적을 남길수있다는 자부심을 일깨려 한것이다.
그당시 사재를 투입하여 이 학교를 운영하시던 분은 지역 교회에서 장노직분을 갖고있었던
그리고 자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시던 김재두 장로라는 분이셨다.
지금도 그때의 사심없었던 사명감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나는 독서신문사 가판 관계자와
우리학생들을 캠페인에 활용하기로 하고 크리스마스 전후를 끼고 10일간 동래지역에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투입 하기로했다.
그때 ~~독서하는 시민이 됩시다 ~~를 외치면서 거리로나간 우리들은 교사들을 포함해서 50명은
족히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평균적으로 학생 1인당 20부정도를 거리 시만들에게 보급했으니
그양이 1일 1000부 정도였다.
그러니까 열흘동안 50여명이 독서신문 1만부를 보급했고 이익금은 10만여원 ,
정확하지는 않치만 그당시 동사무소 직원 한달 월급이 2만원 안팎이었으니
우린 그때 힘을 합쳐서 뭔가를 했던것이다.
보급될 독서신문은 캠페인 10일동안 매일매일 신문사 차량에실려 물량이 학교로 전달되었다.
그당시 신문 한부값이 20원 이었는데 신문사에서는 절반인 10원을 학생들에게 수당으로 특별히 지급했다.
이와같은 자립 기틀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익금에 일부를 교장선생님의 추천에따라 그당시 철거민
빈민촌이었던 동상동 판자집 불우새대에 여러가정 연탄과 쌀을 전달했고 적은것이긴 했지만 이 미담이
독서신문사와 연계를 이루고있었던 ~~시청각교육 신문사~~에 소문이 전해지면서
우리 이야긴 그곳 기자에의해 미담으로 신문지면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때 불우한 그들이 힘을 합쳐 이루어낸 자립기금으로 또다른 뷸우한 이들에게 도움을 건낸날이
바로 그때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교정이래야 비록 창틀이 부서져서 차가운 바람으로 양 볼떼기 애아리는 볼폼없는
교실이었지만 대학교복을 입고 교단에 등단하는 학생신분의 선생님에 대한
예의와 존경심은 너무나 확고한 그들이었기에 지금 생각하니 인생의 한부분을 살면서 가장 보람되고
값진 인생사로 기억된다.
그땐 그와같은 끈끈한 정과 정리속에 비록 불우한 사제간의 만남이었지만 오늘날 나에게
그들이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됨은 가르치는 이나 가르침을 받았던
그들에 관계속엔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정도의 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 당시는 어려운 시기였고 책 한권 사보기가 어려운 시대
저는 사법고시 공부를 하면서 2번 낙선이 되고
시간은 5년이 수~~욱 흘러간 그런날~~.
흘러간 시간입니다.
2019년 3월 27일
황주철 글.
첫댓글 회장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