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오늘날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사람들이,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또는 기근과 굶주림으로, 각종 사고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도 굳센 심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반듯하게 세워가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철옹성과 같이 너무나 견고하여 세상 바람이 이리 저리 불어도 좌로 우로 지우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공평의 추가 가난하다고 해서, 또는 돈 많은 부자들이라 해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마음을 씁니다. 그들은 오늘도 예수님이 주신 구원 안에 안전하게 거하며 죄악으로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키고자, 자신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고 기쁘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언제나 주리거나, 목마르지도 않고 '배 부르다' 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믿음 안에 안전하게 거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진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義가 무엇인지 알고, 주리고 목마르다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 다른 목사님들은 어떻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설명하고 있는지 몇 몇 분들의 설교를 찾아보았습니다. 대 부분의 내용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해석이 틀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산상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강조하는 것 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철저히 율법화 되어 이웃과의 바른 관계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릇된 신앙을 깨뜨리기 위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율법학자와 많이도 부딪쳤습니다. 마가복음23장에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설명합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3:23-28-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세속화 되고, 권력화 되어 있는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신앙을 쫓아가는 유대인들의 잘 못된 신앙을 고치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믿음을,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첫 번째처럼 이웃을 나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마태복음22:37-39- 이라고 정의 할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만큼, 그 이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을 섬기고 있던 유대인들의 믿음이, 사람을 무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신경쓰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이유는, 탐심과 권력에 눈먼 종교지도자들의 잘 못된 가르침의 영향을 받아서입니다. 원래 구약의 율법은 사람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이런 귀중한 것을 감출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을 실천할 수 있는 믿음이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은 뒤로 슬그머니 버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사람들이 보는 길거리에서는, 말씀을 지키는 척, 실천하는 척하는 위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동족들의 그릇된 믿음을 보며, 종교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자들에게 뼈 있는 경고와 더불어 불같은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성난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5:17-2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23:25-28-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잘 못된 신앙을 물려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유대인들을 깨우고 싶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먼저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 조차도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믿음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호통을 칩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3:6,7-
그 만큼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이미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은 의식화되고 종교화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선택받은 유대인들의 믿음을 바로 세우고자 산에 모인 무리들에게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 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사람과의 바른 관계라는 사실을 빼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의義라고 외치는 그릇된 수많은 설교로 인해 설교자 자신도, 설교를 듣는 회중들도 종교화 되고, 입으로만 행함을 외치는 위선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산상에서 말씀하신 의義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정의, 정직, 공정함(righteousness)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에서, 한 쪽으로 치우쳐 사람의 도리를 팽개치고, 하나님을 잘못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자들의 삶이 배부르다고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정의롭게 살고, 정직하게 살고, 누구를 대하던 공정하게 대하는 삶은 누가 봐도 옳은 삶입니다. 옳은 삶을 사는 그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만족함이 있고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의를 행치 않고, 부정직하게 살고, 사람을 대할 때 실리를 생각하며 차별을 가지고 대하는 그릇된 자들의 삶에는 만족이 없으며 감사가 있을리 없습니다.
오늘도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예수님이 살았던 정의로운 삶, 정직한 삶, 공평한 삶을 목말라 합니다. 주리다의 페이나오(헬)는 배가 고파 죽을 만큼의 배고픔 상태를 뜻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갈증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예수처럼 살지 않으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아니 예수님처럼 살지 않으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죽은 자입니다.
사슴은 자주 목이 말라, 물을 마시기 위해 냇가로 내려옵니다. 그 이유는 사슴은 피가 따뜻한 온혈 동물이기에 물을 마시지 않으면 건강한 몸을 유지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義로운 삶을 목말라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건강한 삶을 살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삶이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온기가 없었고, 정이 없었습니다. 의로움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의義로운, 즉 옳은 삶을 알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그 옳은 삶에 목말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산상에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이들은, 삶의 모습이 어떠해도 오롯이 올곧은 삶, 정직한 삶, 공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삶이 풍성하고 행복해도 여전히 예수님의 삶을 갈망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을 입으로 가 아닌, 몸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오늘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