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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교회 교인 서약서
1. 예슈아를 나의 왕으로 결정합니다. 아멘 !
1) 마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가 예슈아를 왕과 주인으로 영접하는 순간, 가장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습관과 버릇, 그리고 육신에 속한 모든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죽은 것을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의 옛 자아의 기능을 예슈아의 복음의 능력을 통해 소멸케 하시고, 우리를 재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하셨습니다 (창 1:28, 창 9:1).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과 같은 존재로 온 열방을 통치하길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발적 순종이 필요합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누리는 보호와 자유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보호아래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자유와 보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게 만듭니다. 그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도록 부추깁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가 아닌 무거운 멍에 일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불순종이란? 사단이 합법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시작이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왜곡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십자가에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간 자에게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주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싶은 이유는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순종 (히 : 샤먀)의 뜻은 ‘듣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 영적전쟁의 싸움은 경배 싸움과 순종 싸움입니다. 경배 (히 : 샤카)란? 왕이신 예슈아에게 영과 혼과 육이 항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 (하나님의 성품)을 보게 될 것이며, 즉시,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즉, 최고의 경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순종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2. 왕이신 예슈아의 권위를 위임한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의 권위 안으로 들어가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멘 !
1) (새 번역) 히 13:17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잘 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권위는 전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성령 충만하다, 예슈아는 나의 주님이시다,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신앙과 삶을 분리시키며, 개인 이기주의 신앙생활과 기복주의 신앙을 하게 합니다. 그 결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와 나라, 사회와 가정 가운데 권위의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배우고, 훈련하고, 깨지면서, 다시 복음으로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운 권위자의 말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면, 결국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리게 되며, 그는 불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맹목적인 순종을 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순종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 권위자의 모습과 교회 권위자의 모습은 달라야 합니다. 교회 권위자는 교회를 독점하는 것이 아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합니다. 권위자는 자리가 주어지는 힘과 지위가지고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쉽을 가지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리더쉽은 낮아짐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것이 그 사람의 성품이 되며, 그것이 그 사람의 영성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은 자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를 따라가게 되어졌을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위자와 성도는 서로에 대한 말과 태도를 조심해야 합니다. 서로 경쟁하고, 시기하고, 의혹이 팽배해서, 서로를 향한 담이 쌓이게 되는 곳에서는 공동체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서 신뢰감을 보여주며, 모든 벽들을 스스로 무너뜨려야 합니다. 권위자는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예슈아의 피 값으로 산 교회 공동체를 나의 가족으로 받아드리기로 결정합니다. 아멘!
1) (새 번역)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세상 성공의 기준을 가지고 성공하였는가, 또는 실패하였는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본질은 희석되고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하게 되며, 자신만 잘 믿고 은혜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헬라적 신앙).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마 22:37-39). 우리는 세상의 방법으로 자신과 이웃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정해놓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리스도 전에 있는 자기의 모습을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슈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예술 작품이 되었으며,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물론 이웃의 모습 안에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의 모습, 거룩한 자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존귀한 자녀와 거룩한 자가 된 것처럼, 자신의 이웃을 하나님의 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감정이 생기며, 영혼을 향한 긍휼한 마음과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웃을 사랑하는 대가로 치를 위험과 아픔을 각오하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이웃을 향한 긍휼의 마음과 여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1) 엡 4:3 성령이 여러분을 성령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
성경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가족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족은 존재 자체가 하나입니다. 이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일은 교회 공동체에게 달려 있습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며, 성별, 나이, 계층이 다 다릅니다. 이러한 다양성을 가진 교회 공동체는 예슈아의 권위 안에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용서, 용납, 화해하는 사역을 중요시해야 하는데, 이 사역은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인정해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이를 대하는 말과 태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에게 대하는 말과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딤전 5:1-16).
(2)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예슈아의 제자라면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열매의 이름은 서로 사랑하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날마다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이웃을 날마다 사랑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에서 훈련되었다면, 세상에 나아가 동일한 방법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되며 (갈 5:22-23),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예슈아를 머리로 두고 있는 교회 공동체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며,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4. 교회 공동체와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아멘!
1)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헬라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지 않게 만듭니다. 그리고 헬라의 영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결과 예슈아의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며, 타락과 사단의 속임수에 무기력하게 노출됩니다 (렘 7:10-11, 렘 8:5).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사람이 원하는 육체적 천국의 개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마 7:21).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죄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왕 노릇하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 죄와 싸우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예슈아께서 알려주신 주기도문에는 ‘우리’라는 단어가 6번이나 나오며, 하나님은 모세 한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애굽에서 불러내셨고, 이스라엘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1)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예슈아를 통하여 구원이 시작된 사람이 진리에 순종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말씀을 듣는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진리에 순종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가볍게 여기다’의 히브리어는 ‘바자’이며, 경멸, 멸시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슈아가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교회 공동체와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진행하는 양육의 과정을 통하여 교회 성도들은 함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되어집니다 (롬 10:17). 교회 공동체는 양육을 통하여 서로 마음을 나누고, 기도해주고, 눈물을 흘리며, 아파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슈아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아멘!
1)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어졌다면, 구원의 완성이 되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질 때, 예슈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거하실 것입니다 (슥 8:3). 천년왕국 동안 예루샬라임은 이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정부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숫자와 양적인 부흥만을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전도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존재의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있습니다.
6. 주일과 안식일, 월삭과 절기를 거룩하게 지킬 것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나의 우선순위로 두기로 결정합니다. 아멘!
1) 출 12: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
절기란?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다른 의미로 특별한 축제 또는 결혼식이 열리기로 정해놓은 시간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해서 우리와 친밀한 만남과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길 원하십니다.
(1) 사 66:22-23 22.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23.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선지자 이사야는 이 땅 가운데 완성되어질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에 월삭과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하나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교회는 예행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달 당신의 계획을 알려주시길 원하시며, 그 계획을 우리가 성취하길 원하십니다. 절기, 월삭, 샤밧은 계속 반복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스템은 왜 반복되어질까요? 이 땅에서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복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것이 될 수 없으며, 깊어질 수 없습니다.
(2)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 (음식법), 월삭, 샤밧을 지킨다는 이유로 인해 아무도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장래 일 (히 : 올람 하바)의 뜻은 오는 세상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회복되어진 에덴동산)이며, 그림자는 거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절기는 이 땅에서 장래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의 역할이며, 장래일의 핵심은 예슈아입니다.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날마다 예슈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시간’이라는 자산을 주었습니다 (엡 5:16 세월을 아끼라). 우리는 이 땅에서의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한 서약
1. 나는 살아있는 교회 공동체의 언약을 지키기로 다짐합니다. 나는 교회 공동체에서 정해 놓은 훈련과정을 책임을 가지고 기꺼이 수행할 것을 분명히 밟힙니다. 나는 이 서약을 함에 있어, 나의 생각과 의견에 정반대인 사람들과도 연합하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비록 나와 맞지 않은 방법과 길일지라도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그에 따른 아픔도 극복할 때까지 관계의 어려움과 고통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
2. 나는 종의 모범이 되시고,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이인 예슈아가 공동체의 모퉁이 돌이 되심을 고백합니다. 나는 교회 공동체의 사역을 위한 언약을 지키기로 다짐하면서 내 삶 속에 기꺼이 종의 모습을 가지기로 약속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3. 나는 받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기를 구하겠습니다. 사랑받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를 구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생각과 마음 안에 잘못되어진 부분들을 피하는 것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교회 공동체와 나눔하고, 깊은 숙고를 통해서 성장하겠습니다. 오늘 나는 기쁩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이 언약 가운데 매인 바 되어 오히려 내 삶의 성숙과 자유, 그리고 헌신을 이룰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년 월 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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