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2:13-19절 헛된 말싸움은 영혼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지난주에 계속해서 보면 12절에서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는 말씀에서 부인하신다는 것은 주님과 우리사이에 형성된 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도 결국은 우리를 모른다고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결국은 깨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기억해야 할 부분은 구원을 잃어 버리는 조건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즉 주를 부인하는지, 시인하는지에 따라서 중대한 일이 결정됨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주를 부인하거나 시인하는 것이 구원을 결정하는 준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주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입술로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롬10:9,10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아멘.
예수님도 마10:32절“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했습니다.
요일2:23절“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아멘. 주를 믿는 것과 시인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 전한바 있었는데 어느 장로가 북에 들어 갔는데 김일성 동상 앞에서 절하라 했습니다. 그때 장로는 속으로 말하기를 나의 진심은 아닙니다. 어쩔수 없어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무어라 할까요? 그래 알았다. 그러실까요. 그렇다면 다니엘에 나오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왜 풀무불에 들어 갔을까요?
구원을 받은 우리는 복음을 위해 인내하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가야 합니다. 가다보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일도 많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환란이라 고난이라 부릅니다. 그 고난앞에서 우리는 인내로 견뎌야 하고 앞으로 주 앞에서 받을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이 앞서 가신 길을 따라 갈 것을 결단하는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아멘.
그래서 헛된 말싸움은 영혼을 죽이는 독약입니다.
14절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새번역 “신도들에게 이것을 일깨우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엄숙히 명해서 말다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고,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본절에서 눈여겨 볼 단어는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엄히 명하였다는 것입니다.
말다툼은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분쟁, 혹은 이권으로 피해를 보게 될 때 싸우지 말라는 것도 있을수 있지만 그보다는 신학적, 신앙적인 논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딤전1:4절을 보면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이 말씀을 근거로 생각해 본다면 본절에서 말하는 ‘말다툼’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한 결과로 아무 유익이 없는 무익한 논쟁,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고 분열시키는 것, 그래서 망해가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딤전 6:4,5절에 보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또한 딛3:9절“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했습니다. 결국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 분별력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입니다.
15절“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야 복음을 왜곡시키지 않고 올바르게 전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만 걸었다고 다 올바른 복음을 전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단들도 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고전2:14절“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거짓 교훈은 빠른 감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6절“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딤전6:20절“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고 말씀했습니다. 또 ‘버리라’는 말의 의미는 ‘피하다, 도망하다’로서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적 사설들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기’ 때문이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점점 진보하고 발전해서 자신들 앞에 놓인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다르는 곳은 17절에서 멸망임을 말씀합니다.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여기서 거짓교훈은 ‘악성종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즉 그 거짓교훈에 착념해 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난치병에 걸려 죽게 만드는 것과. 또한 이병은 인간의 노력으로 완치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롬16:17,18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우리가 믿는 부활은 영혼과 육체의 부활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다 했습니다. 또 어떤이들은 부활은 지나갔다고도 했습니다. 또 영적인 것은 선하고 물질과 육체는 악하다고 했습니다. 현대에도 지옥은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분별력도 가져야 합니다. 롬8:11절에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또 고후4:14절“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그러므로 바른 부활관은 영육이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위에 믿음을 세워서 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영과 육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영광의 자리에 서기를 축복합니다.
교회는 거짓 교훈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하는 울타리와 같은 곳입니다.
19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터’란 ‘초석, 터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본절에서 ‘터’는 교회를 상징한다 할수 있습니다.
또 성도는 두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19절에“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알다’라는 의미는 히‘야다’를 말씀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친밀한 교제를 통해 아는 것입니다. 마10:30절“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주님은 우리를 자녀처럼, 신부처럼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 불의를 행해서는 안된다 하십니다. 마7:21절에서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요일2:4,5절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이어령교수에 ‘신한국인’ 이란 책에 바람닭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람닭은 바람의 방향을 알리는 것이기에 높은 장대에 달려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있거나 지붕위에서도 가장 높은 용마루에 자리를 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바람닭처럼 이 시대의 사상의 흐름에 대해 방향을 일러 주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자들이 누구일까를 고민하였습니다.
이처럼 바로 우리가 이 시대의 바람닭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돌풍처럼 이는 시대 사상의 흐름속에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며 또 거짓된 교훈의 사악함을 들어내는 사명은 분명 성도인 우리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사람들과 그들의 말에 일침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삶을 누구보다 솔선수범해야할 책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에 있어 진리를 추구하므로 이 세상이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보여주고 무엇이 진리인지, 선인지, 사랑인지, 정의인지를 만방에 알려야 할 사명을 잘 수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 합니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