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의 은유적 세계관
서정적 동일성이 은유적 세계관에 기반 하는 것처럼 생태시의 세계관인 생태적 동일성도 은유의 미학에 바탕이 된다. 은유(metaphor)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언어 기호와 대상 사이의 동일성과 주체와 대상 사이의 총체성을 지향하는 수사학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은유는 유추적인 기능을 통해 신체 화된 언어를 메타 인지적으로 인식하면서 생태중심주의 세계로 통합해 가는 원리가 내재된다.
은유는 유사성에 대한 내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는 수사학으로 현실과 현실 너머의 이질적인 세계를 연계시키는 초월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휠라이트가 구분한 병치 은유(diaphor)는 다차원적인 의미 층을 순간적으로 뛰어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또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혹은 비유기표와 비유기의 사이에 어떤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수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한 일치가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의 차이성의 폭도유추를 통해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고 작용이 내재되어 있다. 이를 세계관의 차원으로 확장하여 이해하면 기호와 지시 대상의 동일성에 대한 믿음의 세계관과 이들 너머의 존재에 대한 본질이나 신을 인정하는 세계관에 자리하고 있다. 세계의 본질이 끝없이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인간의 인식은 동일성 속에서 차이성의 의미를 확장하며 근접한 유사성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은유의 수사학과세계관의 원리는 생태적 삶의 원근법을 배우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승호는 언어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능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체와 객체가합일이 되는 서정적 동일성을 설명하면서 기표와 기의가 완전히 일치하는 은유적 언어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은유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구 수사학의 중심이었으며, 야콥슨은 환유와 함께 현대 수사학의 근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현재에는 문화와 사유 방식을 설명하는 원리로 확장되어 활용이 되고 있다. 물론 은유는 제유 적 사유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인간 중심적인 동일성의 영향력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이 언어를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a는 b이다’의 구성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생태적 동일성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에도 이 ‘b’의 자리에 인간중심적인 시선을 넘어서 어떤 경험의 총체를 생태적인 원리로 나타낼 수 있는가에 핵심이 있다.
박현수는 전통주의의 수사학을 “문학사의 연속성에 근거한 시간성의 수사학, 문학의 서정성을 강조하는 마법성(주술성)의 수사학, 전통 미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음악성의 수사학”으로 체계를 세운 바가 있다. 이 중에서 생태적 동일성과 관련한 표현을 위해서 이‘b’의 자리에는 생태중심주의 세계관과 서정성에 기반 한 수사학을 설정해 놓을 수 있다. 서정성은 “자아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무화시키는 순간에 발생”하게 되는데, 생태적 동일성은 자연과 인간의 생태적인 간격을 초월하여 평등하고 대등한 일체감을 추구하기 때문에 서정성의 핵심에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주심에 대한 지향을 통해 드러나게 되며 수사학적으로 은유의 원리와 만나게 된다. 「눈 내리는 삿포로」시에서 인간 중심주의 영향력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문학의 서정성이 강조된 수사학적인 은유의 원리를 이해 할 수 있다.
눈은 사람 가슴을 알고
침묵과 고요함을 데리고
땅을 향해 내린다
사람들 어깨에 머리에
닿기까지 머나먼 비상을 꿈꾼다
고층 건물과 고가도로
껴안고 있는 고요의 흰 바다
무덤의 함성으로
마지막 착지점에 이르러
하늘의 흰바다를 펼치고 있다
- 이상규의 「눈 내리는 삿포로」 전문 -
1연의 「눈은 사람 가슴을 알고, 침묵과 고요함을 데리고, 땅을 향해 내린다.」에서 자연과 인간사이 연관성을 표현하면서 먼저 자연이 인간 사회를 적응하면서 언어의 침묵으로 부합 시켰다. 그 침묵의 눈은 인간의 죄 사함을 말하며, 무죄 상태로 구원하는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우주 안에 있는 사람의 가슴은 고요할 뿐이며 외침도 들리지 않는다. 자연은 고유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의 악행에 굴하지 않고 땅으로 내리는 시간 자체도 방해되지 않는다. 그래도 자연은 땅, 즉 사람에게로 다가와 자연을 알게 해주는 은유인 것이다. 아니 가르쳐 주는 것이다. 「사람들 어깨에 머리에, 닿기까지 머나먼 비상을 꿈꾼다.」에서는 생명의 그물이라는 모든 존재들 간의 긴밀한 연결고리로서 조화로운 미래상을 말하는 거룩한 질서로 이해된다.
2연의 「고층 건물과 고가도로, 껴안고 있는 고요의 흰 바다」에서는 개발로 인한 문명의 발달이 가져 온 개체들을 첫째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베드로 전서에 ‘산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다.’(14장2절)고 있듯이 첫 번째 심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 「무덤의 함성으로, 마지막 착지점에 이르러」에서는 죄 사함을 받고 살아남은 자들은 마지막 도착점에 온 것이다. 구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홍해를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가기위한 유월한 의미이다. 고층 건물과 고가도로처럼 탐욕과 경쟁을 거부하고 자연과의 공동체에 기반을 둔 생태적인 질서 속에 살아야 한다. 역설적으로 생태적인 질서 속에 잘 살아 왔다고 주장은 하겠지만 이어지는 구절에 또 다른 다음 단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물로 남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늘의 흰바다를 펼치고 있다」에서 이 구절은 「눈 내리는 삿포로」에서 가장 핵심을 말한다. 하늘의 흰 바다는 분명히 우리가 바라는 파라다이스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미래세계의 생태시대로 다가가기위한 방법에는 단호하고 단순성을 강조하면서 질서나 규율이 없는 것은 아니다. ‘a는 b이다’의 구성 방식에서 생태적 동일성을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에도 이 ‘b’의 자리에 자연중심적인 어떤 경험의 총체를 생태적인 원리로 나타내듯이 하늘의 흰바다는 미래 생태사회로 다가가기 위해서 생태적 내면화와 영속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은유는 근원적 세계관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에 근거하여 초월은유, 치환은유, 절대은유의 층위로 나눌 수가 있다. 생태적 동일성에 기반 한 시적 표현에서는 전통주의 수사학과 동일한 입장의 초월은유를 주로 활용하게 된다. 창작 주체가 자연과 인간, 생태적 개체와 인간 등을 인식할 때 현실적인 차이를 초월하여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통일성과 동일한 가치를 중심으로 소통하게 된다. 그리고 생태적 동일성의 표현은 본질적 언어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근대를 극복하고자 초월은유를 하나의 이데올로기 사용한 전통서정시론과 연결된다. 그들은 리얼리즘문학이나 모더니즘문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아와 세계의 형이상학적인 동일성을 추구하는 순수서정을 통해 근대화에 저항하는 현대적 성격을 이루어 왔다. 근대 이후에도 생태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자연과 인간의 질서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생태적 동일성의 표현은 이러한 전통주의 수사학과 전통 서정시론에 기대어 서정성을 회복하면서 언어를 통해 우주심을 담아내는 은유적 원리를 사용한다.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려면 우리는 생태환경에 대한 비판적인 자유로운 토론이 있어야 되며, 그 토론을 통하여 윤리 도덕적 가치에 대한 자세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창작과제를 제시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창작은 지속성을 지녀야하므로 이 내용이 다른 생태시 청적내용에서 다시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서 자신들이 읽고 있는 시에서 하나의 장면을 떠올리고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러면 작품 속 등장인물의 상황을 바탕으로 ‘생태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시의 이해에서는 생태시의 정서와 분위기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담보되어야만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생태시 이해와 감상능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인식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생태시를 읽고 가장 감정적인 반응하기 쉬운 반면에 이런 감정적 반응은 금방 잊혀 지기도 한다. 스스로 감정적 반응을 인지적인 반응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비평문쓰기 활동’을 제시한다. 비평문쓰기는 반응을 심화하는 단계로서 자신들은 의견을 정리해 본다. 따라서 이것은 자신들의 ‘생태 환경에 대한 인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독창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는 곧 창의력과 연계된다.
이상규의 「춥다」의 전문 시를 보면, 생태 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연히 알 수 있다. 자연 생태계가 파손되어 종말의 이미지를 주어 인간중심적 문명에 대한 비판한 시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 시를 통해서 손상된 지구가 태초의 모습과 다른 것을 우리들에게 인지하게 해주며, 생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에 관심을 가지도록 주문함과 생명 사상이 아직 남아 있음을 희망과 숨은 의도를 전해준다.
고창 읍성
낯선 하늘 아래
심심한 나뭇잎
나뭇잎 사이로
흩어지는 그림자
나뭇잎과 그림자 사이
참 춥다
고창 읍성
저녁연기 흐르는 쪽으로
짓눌린 돌들
날아오르는 돌담길
흩어지는 그림자
돌담과 연기 사이
참 춥다
- 이상규의 「춥다」 전문 -
이 작품은 사실적이면서 반어법을 사용한 생태계의 현실을 고발한 내용으로 볼 수 있다. 「고창 읍성, 낯선 하늘 아래」에서는 지구가 탄생되고 신생대 4기에 접어들면서 인류 출현으로 이 지구상에서 활동하는 자체가 낯설기만 한다. 「심심한 나뭇잎」은 생명체가 없어져 버린 광경을 표현 한 것으로 무죄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개체를 말하며, 「나뭇잎 사이로, 흩어지는 그림자」에서는 그 개체들이 자연 속으로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림자는 상실과 좌절 등 막다른 길에 머무를 때 자주 표현되는 시어로서 시적 화자는 최초의 자연 생태계로 돌아갈 수 없는 회귀 본능을 잃어버린 상태임을 나타낸다.
이어지는 시 귀 절 「나뭇잎과 그림자 사이, 참 춥다」 에서는 극도로 상실되었음을 나타내는 내면적인 내용을 알 수 있다. 그냥 추운 것이 아니라 참 추운 것은 회귀 불능에 대한 소외감을 가져 인생의 좌절감은 우울하게 만들어 이런 세상과는 연(緣)을 끓고 싶을 정도로 자포자기증후군으로 이어진다.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져 준다. 어떤 역할에 따라 「참 춥다」의 시상은 우리에게 더욱 쓸쓸하고 외롭게 여겨지고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하며 인류의 생애는 ‘여기까지’란 끝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강한 부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 반어법을 사용하면서 미래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반문의 말은 비아냥거리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 그 일에 대한 대안을 꿰뚫고 있다고 이해되듯이, 시적 화자는 생태시대의 도래를 알고 있다.
「저녁연기 흐르는 쪽으로, 짓눌린 돌들」에서 저녁연기는 인간들이 황폐하게 만들어 놓은 자연환경이 분산되어 저물어져 기고, 파괴된 환경 영향으로 돌들마저 인간들에게 핍박을 받은 상태이다. 「날아오르는 돌담길」은 핍박과 수모를 받은 돌들은 인간들이 원하는 돌담이 된 것으로 자기희생적인 삶을 말해준다. 연어가 알을 놓고 부화할 때까지 곁에서 그 새끼들을 위하여 죽음으로써 숲을 만들어 보호해 주는 것처럼 돌들도 희생적인 삶이 있는데, 인간들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족만을 위함을 고발하고 있다.
시문학은 생명을 불러 넣기도 하지만 막다른 길에 처한 절실함으로 표현되는 언어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적 화자가 고창읍을 왜 모르겠는가, 정작 몰라서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뭇잎, 그림자, 저녁연기, 돌담길 등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생태중심주의 시상에서 떠 올린 것으로서 이 시어들이 지구 중심적 언어를 사용한다.
문학 교육의 목표는 ‘문학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문학능력’은 ‘학습자가 문학현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생태문화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문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은 문학작품의 창작과 수용과정에서 가능하다. 문학학습교육과 더불어 문학수용에 대한 다양한 학습 방법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생태시는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을 통한 창작을 시도할 수 있다. 생태시를 다양하게 읽고 그에 대한 시어와 일상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방 시창작과 한 줄 감상쓰기 활동 등을 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제시되는 내용과 주제의식에 따라 그들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생태시는 쉽게 이해․감상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활용하여 비평문 쓰기가 가능하다. 비평문이라는 생소한 글의 형식을 완전하게 요구하기보다는 독자들이 비평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고 나름대로의 감상 내용의 근거를 찾게 함으로써 비평문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자들이 비평문 쓰기에 막연한 부담을 가지겠지만 생태시로 접근하게 되면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해결방향이 글쓰기에 쉽게 적용될 수 있다. 막연한 생태환경에 대한 불안보다 문제 상황을 부각시킴으로써 좀 더 자연스러운 글쓰기를 통한 문제해결이 될 것이다. 생태시는 바로 독자 자신의 현실문제와 연결되므로 해결방향이 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해결 방향도 공격적이거나 경쟁적이지 않고 포용적이고 조화로운 상생의 삶을 구하기 때문에 더욱 독자들의 인성형성에도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