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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의하면 고대국가가 형성되던 시절 실직국의 안일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기어 이 산을 넘을 때 하도 재가 높아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통곡산(通谷山)으로 부르다가 현재의 통고산이 되었다. 그러니 정 군의 얘기가 틀린 건 아니었다. 믿고 따라 와준 대학산악부 새내기에게 통곡의 고통을 안겨주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정맥을 종주할 때도 이토록 크게 길을 잘못 든 적은 없었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되짚어보았다. 산을 얕본 건 아니었으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게 원인이었다. 산보다 스스로를 더 높게 여기고 산보다 자기자신에 집중한 게 아니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다고 산을 우상화시키고픈 뜻도 없으나 냉정하게 있는 그대로의 산으로 보지 못했다.
대가로 발의 여러 상처 때문에 산행이 어려워 서울로 올라와 몸을 추스른 다음 내려가야 했다. 며칠 후 다시 햇네마을을 지나 왕피천을 다시 건너고 있을 땐 염 기자와 한국트레킹학교 전 강사 박은주씨와 함께였다. 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로 중림골의 지형을 반복해서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물의 깊이는 여전히 낮았고 햇살에 데워져 미지근하여 걷기 좋았다. 지형 하나하나를 짚으며 걸었다. 다시 실수할 거란 생각은 없었으나 신중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골이 가진 아름다움이 눈에 들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익숙한 계곡이 되어버린 중림골을 빠르게 올라 잘못 들었던 지계곡 합수점에 닿았다. 어둠침침한 왼쪽 계곡은 쳐다보지도 않고 통과했다. 일행이 뭐라 얘기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 뒤부터 다시 풍경이 눈에 들기 시작했다. 계곡 옆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가니 비닐로 된 심마니의 모둠도 있다. 그러고 보니 골이 깊고 그늘지며 가파르고 통풍이 잘돼 충분히 산삼이 있을 법하다.
고풍스런 금빛으로 환한 오지 계곡
널찍하던 골의 양쪽 능선이 서서히 다가오더니 이내 협곡이다. 그러나 두려움을 주진 않는다. 깊은 곳도 가슴까지 정도의 깊이라 얕은 곳으로 지나면 골반까지만 젖고 충분히 지난다. 물은 긴 계곡을 여행하는 사이 데워져 몸을 담가도 춥지 않다. 오지 계곡산행의 재미에 어느덧 긴장감은 날아가 버리고 골을 탐닉하고 있는 일행을 발견한다.
하산할 때 내려설 계곡 합수점을 지나 왼편의 중림골 주계곡으로 든다. 골은 좁았다 넓었다를 반복하며 물놀이 하며 여름을 보내고 싶은 온갖 소들을 다 보여준다. 중림골은 오지에서 발견한 금광마냥 물은 고풍스런 금빛으로 환하다. 아무리 걸어 들어가도 물은 낮은 마음과 햇살에 반짝이는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며칠 사이에 비가 왔는데도 이렇게 깊이가 낮은 건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하게 만든 이곳의 금강소나무 숲이 워낙 훌륭해서다. 잘 보전된 숲은 홍수를 막아낸다.
작은 폭포도 많지만 위협적인 건 없다. 간혹 물이 깊은 곳은 우회하는 데가 있다. 그러나 바위가 많고 계곡 옆으로 난 길이 없는 개척산행이다 보니 일반 산길을 가는 것에 비해 시간이 배로 걸린다. 미끄러운 바위가 많아 발 디딤도 조심스럽다.
다시 계곡 합수점이다. 붉은 바위가 가운데 놓여 있고 양쪽 골 모두 크기는 같아서 어디가 지계곡이라 판단하기 어렵다. 지도를 보니 왼쪽은 갈전마을로 이어진 계곡이다. 917번 지방도에서 산을 넘어 임도가 연결돼 안에 마을이 있다는 얘긴데 사람이 거주하는지 궁금하다.
오른쪽 계곡으로 든다. 골이 깊어질수록 쓰러진 나무와 낙엽이 물을 메운 늪지대가 늘어난다. 골은 서서히 수량이 줄어들며 아름다움의 크기도 줄어든다. 비슷비슷한 풍경이라 익숙해져서인지도 모른다.
출발한 지 7.3km를 지난 지점에서 다시 합수점을 만난다. 왼쪽으로 든다. 어차피 양쪽 다 길이 없지만 왼쪽 골의 지형이 더 완만해 봉우리에 오르기가 더 수월해서다. 왼쪽 중림골 최상류로 들자 경사가 가팔라지며 쓰러진 나무와 덤불, 낙엽 때문에 오르기 쉽지 않다. 어떻게든 능선에 올라 비박해야 하기에 오른쪽 능선을 오르기로 결정한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가파른 비등산로 속으로 몸을 던진다. 온갖 장애물과 가파른 비탈이 사람의 길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러나 머릿속엔 오로지 능선에 서야 한다는 생각뿐 다른 건 없다. 격렬한 호흡을 토해내며 능선에 닿았다. 쓰러지듯 한 명씩 능선에 와 주저앉는다. 아직 지능선을 타고 2km를 올라야 낙동정맥 937.7m봉에 닿는다.
능선도 길은 없다. 온갖 덤불과 나무를 헤치며 격렬하게 고도를 높인다. 지긋지긋하게 등산복과 배낭을 끌어당기는 덤불을 지나며 등산로의 고마움을 체감한다.
반가운 937.7m봉, 나무가 빼곡해 조망은커녕 야영터도 없다. 고속도로 같은 정맥길을 잠깐 걸어 능선 갈림에서 목적지인 오른쪽 옛길로 향한다. 500m쯤 내려서자 넓진 않지만 야영할 공간이 나온다. 텐트 한 동을 치고 나머지는 비박한다. 자는데 소리가 요란해 눈을 뜨니 전투기들이 조명탄 쏘고 난리다. 한번 잠이 깨자 주변에서 움직이는 짐승들 소리가 무척 크게 들린다. 새벽에 잠깐 잠이 들었으나 악몽과 함께 눈을 떠야 했다.
옛길은 의외로 제법 잘 나 있어 당장 등산로로 써도 무리가 없다. 능선 코너를 돌아서는데 저 앞에 멧돼지 4마리가 있다. 제일 큰 덩치의 어미가 “꽤에엑!”하는 굉음을 지르며 도망가자 새끼들이 따라 간다. 갈림길에서 좋은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꺾는다. 계곡으로 내려서기 위함이다. 옛길 흔적은 여전하지만 나무와 덤불로 덮여 걸음이 더뎌진다. 계곡에 닿자 옛길의 흔적도 사라진다.
숲이 무척 짙은 골이라 어둑어둑하다. 골 왼쪽, 오른쪽으로 가다 물 속을 걷기도 하며 내려간다. 어제 내내 계곡을 봐서인지 별다른 감흥이 없다. 골의 분위기도 어제 올라왔던 골보다는 좁고 평범한 풍경이다. 내려서는 계곡은 물을 따라가므로 길찾기 할 것 없이 속도를 낸다. 그러다 너른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리가 바위에 부딪힌다. 서두르지 말라는 통고산의 타이름이다.
속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개척산행도 편안해진다. 온갖 장애물이 버티고 있어 긴장을 풀진 못하지만 디딜 만한 바위와 사면을 부지런히 좇아 내려선다.
숲이 어찌나 짙은지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는데도 몰랐다. 어제 지났던 합수점을 통과, 눈에 익은 계곡을 내려선다. 첫날 잘못 들었던 갈림목에서 좁은 골을 바라본다. 저 이상한 골에 홀린 게 아니었다. 그냥 방심했고 여러모로 허술했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면서도 환한 빛깔을 잃지 않는 중림골이 마침 일깨워주었다.
[산행 길잡이]
길이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팬티까지 젖을 각오로 붙어야 사람 없고 등산로 없고 휴대폰 안 터지는 오지 청정골
오지 계곡 개척산행이다. 간간이 희미한 길이나 옛길이 있지만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깊은 계곡이므로 혼자서 산행하다 사고나 조난을 당할 경우 구조될 가망이 없다. 초보자는 계곡 탐방만 적당히 하다 나오는 게 좋다. 표지기나 길은 없으므로 독도능력이 필수이며 GPS가 있어야 산행이 수월하다.
산행은 햇네마을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중림골을 따라 937.7m봉 남쪽 지능선 아래의 계곡 상류까지 들어가서 적당히 완만해지는 곳에서 능선으로 올려쳐 937.7m봉까지 가면 된다. 정상에서는 정맥길을 5분 정도 따르다 능선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옛길을 따라 가면 된다.
옛길로 능선 따라가다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들어 계곡으로 내려가면 된다. 계곡부터는 다시 옛길이 없어지므로 편하고 빠른 길을 본능적으로 골라 내려가면 된다.
포털 네이버에서 ‘햇네마을’을 치면 네이버 지도에서 정확한 위치가 표시된다. 돌나라행복마트 앞 공터 주차장이 산행 시작지점이다. 마트라 적혀 있지만 일반 가정집이므로 간식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 양계장이 있고 풀이 높은 임도는 계곡 쪽으로 가 닿는다. 이곳 수심이 발목에 닿을 정도로 낮으므로 여기서 왕피천을 건너야 한다.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계곡을 거슬러 오를 수 없으므로 발은 젖을 요량이어야 한다.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등산화는 배낭에 넣어 가는 게 좋다. 계곡 상류에서 능선으로 치고 오를 때 갈아 신어야 한다. 총 23km 산행 중 계곡산행만 16km가 넘으므로 샌들을 오래 신으면 발에 물집이나 상처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목이 짧은 등산화나 리지화가 있다면 그걸로 물을 텀벙텀벙 걷는 게 더 낫다.
중림골 입구에서 왼쪽 숲으로 들어가면 표지기가 있다. 무척 희미한 길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이 길을 놓치지 말고 따라가면 첫 번째 지계곡이 나오는 지점까지 산행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이후 길이 조금 이어지다 등산로가 없는 계곡의 연속이다. 계곡 옆으로 풀을 헤치며 지나갈 만하다가도 금방 협곡이 나와 발을 물에 담가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차피 길은 없으므로 그때그때 지형에 따라 유연하게 올라야 한다. 깊은 데는 골반까지 물에 젖는 구간도 있으므로 바지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게 좋으며 팬티까지 젖을 각오로 가야 당황하지 않는다. 허벅지까지 오는 물을 피하려 가파른 경사면으로 우회하다 오히려 다치거나 시간이 배로 걸릴 수 있다.
길찾기는 물길이 갈라지는 계곡 합수점에서 왼쪽 오른쪽 선택만 하면 된다. 간단한 듯하지만 이 선택을 실수하면 완전히 엉뚱한 곳으로 빠질 수 있으므로 독도에 신경써야 한다. 계곡 상류로 갈수록 쓰러진 나무와 낙엽의 늪이 많아 백패킹이 어려워진다. 능선으로 간다고 해도 어차피 길은 없으므로 지형도를 잘 살펴 완만하다 싶은 데서 능선으로 올라 개척산행을 해서 937.7m봉까지 가야 한다.
개척산행이지만 중림골의 장점은 수심이 낮아 백패킹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단점은 계곡이 너무 많아 질릴 정도라는 것이다. 거리에 비해 산행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 계곡에 바위가 많아 넘어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 곳이 많아서다.
베테랑 산꾼들이라면 비박장비를 준비해 능선에서 1박하고 다음날 내려오는 게 중림골의 매력을 맛보기 딱 좋다. 정맥길에는 비박터가 없고 937.7m봉에서 북동으로 5분 정도 진행하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옛길로 내려가면 2인용 텐트 2동 정도 칠 만한 평평한 데가 나온다. 멧돼지가 새끼들과 함께 서식하는 지역이므로 홀로 비박하기보다는 3명 이상 하는 게 좋다.
차량을 통고산자연휴양림에 댈 수 있다면 937.7m봉에서 정맥을 종주해 통고산 정상 지나 휴양림으로 내려가도 된다. 정맥길이 편해 발이 빠르다면 당일산행도 가능하다. 그러나 중림골 상류에서 937.7m봉까지 비등산로를 올려치는 구간이 무척 가파르고 힘이 든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거리에 비해 시간 소모가 큰 계곡이므로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선 안 된다. 가민 오레곤300GPS로 확인한 실주행거리는 23km, 937.7m봉까지 7~8시간, 하산하는 데 6~7시간, 총 14시간 정도 걸린다(통고산·보부천 특별부록지도 참조).
교통
대중교통이 없다. 자가용으로 가야 한다. 버스는 왕피천 생태보전지역 임도로 진입할 수 없고, 다인승 승합차 정도까지 운행 가능하다. 서울에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풍기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해서 영주로 들어선 다음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울진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면 된다. 영주와 울진을 잇는 고속화도로가 공사 중이라 반 정도만 길이 열려 있다. 내비게이션에 따라서는 신도로(고가차도)를 인식하지 못하고 구도로로 나와야 한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나 2010년 8월 기준 신도로가 끝나는 곳까지 무조건 직진해야 한다.
공사 중인 데서 구도로를 타고 직진하다 통고산자연휴양림 지나 서면사무소 근처에서 왕피길로 우회전해 구불구불한 임도를 타고 50분 정도 들어간다. 30분 이상 들어가면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 우회전해 한농교육관 방향으로 간다. 한천교 앞 갈림길에서 좌회전해 둔덕길을 올라 다시 우회전해 햇네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공터 주차장이다. 관리초소를 지날 때 차량번호와 연락처 등을 적는다. 만약 통고산자연휴양림(054-783-3167)으로 하산해 햇네마을로 차를 가지러 가기 위해 택시를 부를 경우 5만원 정도 든다. 울진호출택시(054-782-4044), 울진콜택시(054-783-4044).
숙박 (지역번호 054)
산행 기점인 햇네마을에는 민박집이 없다. 들머리에서 가장 가까운 민박은 왕피리삼거리에 있다. 왕피휴양민박(011-819-9016)이며 주인이 평일에는 외부에 있다가 주말에만 들어오기도 하므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왕피리의 도로가 끝나는 지점인 속사마을에도 펜션(017-814-7128)이 있다. 왕피길 입구 서면사무소 근처에는 삼성식당(782-9032), 동해민박(783-4054), 서울민박(783-8563), 무지개민박(782-9309), 산장민박(783-7199) 등이 있으며 서면카센터(011-518-0744)가 있다.
통고산자연휴양림은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국립 휴양림이며 8월 성수기 기준 4인실 5만원, 8인실 9만8,000원이다. 야영데크는 1박 4,000원이다.
월간산/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염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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