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Here is wisdom. Let him that hath understanding count the number of the beast:∼
기독교는 부활(復活)과 영생(永生)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구원을 얻은 것이요,
옛 행실을 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났으니 부활에 참여한 것입니다.
또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영원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17:3)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이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죽었던 몸(肉體 body)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이요, 살아난 그 몸이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요즈음 교계에서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보다 새롭게 다듬으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라는 부분은 쉽게 고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신경이 육체의 부활을 강조하기 위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요11:25-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살아서 예수를 믿었으며, 그들의 신앙고백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대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분명한 것은 성경을 보는 이마다 예수님과 사도들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떠난 자는 죽은 자, 병든 자입니다. 그러한 죽은 심령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활이요, 생명이니 곧 영생입니다.
(계3:1 겔13:19 37:11)
“네가 살았다 하나 죽은 자로다”
(요5:24-25)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찬송 204 -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찬송 393 -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 죽은 영혼 살리기까지∼”
이처럼 베드로와 사도들의 신앙고백은 이 시대의 사도신경과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영이 살아나는 부활이요, 후자는 육체가 살아나는 부활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성경의 가르침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부활론은 큰 권세로 교회에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어찌 이것이 티끌과도 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주도된 것이겠습니까?
짐승의 표 “666”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제 그 실체가 드러날 때가 되었으니, 심판의 날이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빛으로, 심판의 말씀으로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수 <7>은 하늘의 완전 수이니 온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이에 가장 근접한 <6>이 세번 반복된 것은 “666”의 실체가 진리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666”은 가장 올바른 진리로 위장하고 교회에 들어온 세속한 땅의 교훈입니다.
짐승의 표 “666”은
여러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땅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붉은 용(세속한 비진리)은 바다와 땅의 두 경로(經路)를 통하여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세상의 종말, 인류의 죽음과 같은 세속한 종말론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 입니다. 육체의 부활과 같은 세속한 교훈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 새끼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거짓을 예언합니다. 육체의 부활론은 가장 올바른 진리인것처럼 큰 권세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합니다.(계13:14 )
- 큰 기사와 이적을 행합니다.
육체의 부활론은 이전보다 더 큰 권세로 이적들까지 동반하며 다시 등장하였습니다.(계13:13 )
-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의 우상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습니다. 육체의 부활론은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하여 말씀의 칼 에 상하여 죽게 되었으나 그의 때에 다시 등장하였습니다(겔21:9-10).
-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하면 누구든지 매매를 할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분위기는 예배시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습니다. 상호간에 교류는 물론 교회로서의 존립자체가 힘든 시대적 상황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세가지 유형(類型)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옳다고 신봉(信奉)하는 자는 이마에 표를 받은 자요, 생존을 위하여 어쩔수 없이 받아들이는 자는 오른손에 표를 받은 자요, 이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는 이마와 오른손에 표를 받은 자입니다.
- 짐승의 수, 사람의 수입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양떼들을 세속한 땅의 교훈으로 사로잡는 짐승과 같으니 짐승의 수요, 성경에 없는 사람이 만든 글이니 사람의 수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여러분!
말씀을 새롭게 깨달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세속한 비진리, 그것이 곧 짐승의 표 “666”의 실체입니다. “666”은 결코 남의 일이거나 멀리 있지 않습니다. 육체의 부활을 가르치는 사도신경이야말로 “666”의 실체인 것입니다.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낡은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새로운 말씀의 세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내시는 구원의 날입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수를 세어보라.”(REB: 여기 비밀의 열쇠가 있다. 계17:9 여기에 해석의 실마리가 있다)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펴 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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