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화요일
6월 부터 상도에 성을 모시기 시작한 오봉산의 식구들이 완벽하게 모두 상도에 성을 모신 날이었다. 청원관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고 신선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상제님께서 고신선을 향해 "김박사도 포덕해야지... "
모두 상도에 성을 모시고 마지막 남은 오봉산의 식구는 동생선녀 곽희숙, 홍둘자. 전계선, 그리고 나 밖에 없었다. 김박사에게 포덕하란 상제님의 뜻은 오봉산의 모든 식구들에게 성을 모시란 뜻이었고 어떻게 해야할지 망설이는 우리에게 천모님께서는 적극적으로 밀어 붙이셨다.
그래서 고신선을 통해 동생선녀와 나 그리고 홍선녀님과 전선녀님까지 모두 성을 모셨다.
이렇게 성을 모시고 나니 상제님께서는 조금 미안한 듯이 "여기는 놔두지 . 다 데리고 왔나!"라고 말씀하셨다고 고신선은 말했다.
모두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소동과 고무라'의 이야기 속의 의인 열명의 일원으로 상도에서 상제님과 천모님의 일을 제대로 하게 될 것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첫 성을 모셨고 동생선녀와 고신선과 함께 신은주선무가 경영하는 청원관으로 향했다. 신선녀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직계의 선무와 인사도 할겸 겸사겸사 청원관으로 들렀는데 신선녀는 반갑게 그리고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상도에 있는 환자 한 분이 몸을 풀고 있었고 그곳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다섯 사람이 저녁식사를 하기전 교회식의 기도가 좀 낯설긴했지만 여하튼 기도를 마치고 정성이 깃든 식사를 맛있게 하고나서도 상도에 있는 분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 활력무도 따라하고 차도 마시면서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신선무와의 대화는 크게 없었지만 단 한마디도 불편한 말은 하지 않았다.
이 날 이후로 우리는 상도로 서서히 들어가서 상제님의 일을 돕고 천모님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될 생각들로 가득하였다.
11월 16일
곽희숙, 김재환, 고재천과 함께 청원관에서 조경림 선감과 첫만남을 가졌다.
18일에 오봉산 식구들의 시운치성이 잡혀 있었다. 그 전에 조선감도 보고 면도 트고 인사하기 위해서 청원관으로 향했다.
김상수씨는 금방 다녀가고 조경임선감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또 매트찜질도 하고 차도 마시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왔었다. 청원관은 처음이지만 찜질의 효과는 나름 좋았다.
집에 올때 신선무가 총무부에 자리가 비었는데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를 추천해주겠다며 생년월일시를 달라해서 톡으로 보내고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이렇게 상제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자리를 서서히 만들어 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이제는 상도로 들어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동생선녀가 꿈을 꾸었는데 상제님께서 동생을 보면서
"너는 자젹증 뭐 있노?"
"이런이런 자격증이 있습니다."
"그럼 너도 이력서 써라" 라고 하신 꿈을 꾸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이력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김명선 쪽의 사람들을 들여다가 쓰는 것은 아무래도 탐탁지가 않다며 조선감과 한선사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 일로 총무부에 들어가는 일은 뒤에 무산되고 말았다.
11월 18일 토(음 10월 1일)....상도에서 시운치성을 모심
진법이 사라진 상도지만 상제님께서 계시고 또 앞으로 천모님이 펼쳐가실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시운치성을 모시기로 했다. 멀리 있는 신선선녀들과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 가까이 있는 사람들만 우선적으로 시운치성을 모시기로 했는데 우리 식구들은 모두 6명(나, 곽희숙, 홍둘자. 전계선, 안현, 김재환)이고 다른 분이 세 명 있어서 모두 아홉이었다.
처음 들어간 상도도장의 건물 내부가 난 좀 신기했다. 미로찾기를 하는 것 같아서....
여하튼 외수방도 보고 내수방도 보고 또 식당에도 들리고 늘 집에서 내려다만 보았던 휴게실에도 들릴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백마선도 보았다. 천제단원 선녀들과 함께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복을 갈아 입었는데 여느때와 같이 모두 흰 한복이었다. 내수 방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으니 그곳에 있던 내수 분들은 하얀 한복이 모두 진짜 선녀들 같다고 했지만 이상하게 보는 무리들도 있었다. 저 사람들 모두 마음을 달리 먹은거 맞는건지 한복이 모두 소복 같고 의심스럽다는 말도 들렸다.
여하튼 우리는 먼저 영대의 1층에 모여 시운치성 준비를 마칠 동안 대기하고 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임들이 보이며 열심히 치성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신은주 선녀는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뭔지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가 3층 영대에 먼저 인사를 드려야 된다며 영대의 3층으로 한선사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영대에 올라가니 사위성존의 존영이 신명계의 모습으로 모셔져 있고 마지막 자리에는 성신천 대속주라고 존영대신에 신위의 글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의자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도전님께서 치성때 그 의자에 앉으셔서 절을 받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감의 구령에 맞춰 사위성존의 존영앞에 4배를 드리고 줄지어 나와서 1층의 집회실에서 시운치성을 모셨다.
집례는 조경임선감이 보고 집사는 이권학선남이 보았다. 그리고 신선무와 한선사가 집례를 도왔다.
법배를 올리고 자리를 잡았는데 상도의 주문이 워낙 길고 주문이 바뀌어 우리가 따라할 수는 없었다. 실은 영상을 보고 따라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미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조선감은 새로운 기도법으로 박수를 치면서 주문을 청아하게 잘해 나갔었다. 녹명지를 태우고 예를 마친 다음 전도인과 전수인은 함께 마주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조선감의 간단히 시운치성의 의미를 설명하고 인삿말로 행사는 끝나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고 조선감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후담을 들어보니 시운치성금이 적어서 신선녀께 화풀이? 도 있었다고 했다.
실로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뒤에 신선봉안식도 있었고 광명절 행사도 있었으며 우리가 모시는 식구들의 성금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데까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모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상도 시운치성 후에 우리는 오봉산의 영대 1층으로 모여서 그날의 일들을 천모님께 보고드리고 함께 나누었는데 두 신선님은 벌써 많이 지쳐 있었다. 신경을 많이 쓴 것도 있겠지만 기운이 좋지 않은 상도에 있는 동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허정리의 빛방 시료법을 배우자마자 바로 기운을 느낀 김재환신선은 상도에서는 좋은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오히려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반대로 우리 영대는 엄청난 기운이 내리고 있다고 그날 처음 들었다.
고신선이 말하기를 유사이래로 영대 3층에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시운치성을 모신 사람들은 오봉산의 식구들 밖에 없다. 이런 일은 없었다 전무(前無後無)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지휘를 필리핀에서 상제님께서 직접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