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
1. 삼국유사에 나타난 삼국의 음악 풍속
1) 예악사상
<권1>
紀異第一 기이제이
斲(余+又)曰. 大抵古之聖人. 方其禮樂興邦. 仁義設敎. 則怪力亂神, 在所不. 語然而帝王之將興
착(여+우)왈. 대저고지성인. 방기례낙흥방. 인의설교. 칙괴력난신, 재소불. 어연이제왕지장흥
也. 膺符命, 受圖帱(竹+錄), 必有以異於人者. 然後能乘大變, 握大器, 成大業也. 故河出圖, 洛
야. 응부명, 수도帱(죽+록), 필유이리어인자. 연후능승대변, 악대기, 성대업야. 고하출도, 낙
出書, 而聖人作. 以至虹繞神母而誕羲, 龍感女登而生炎. 皇娥遊窮桑之野. 有神童自稱白帝子,
출서, 이성인작. 이지홍요신모이탄희, 룡감녀등이생염. 황아유궁상지야. 유신동자칭백제자,
交通而生小昊. 簡狄呑卵而生契. 姜嫄履跡而生奡(/棄). 胎孕十四月而生堯. 龍交大澤而生沛公.
교통이생소호. 간적탄난이생계. 강원리적이생오(/기). 태잉십사월이생요. 룡교대택이생패공.
自此而降. 豈可矍(死+單)記. 然則三國之始祖. 皆發乎神異. 何足怪哉. 此神異之所以漸諸篇也.
자차이강. 개가확(사+단)기. 연칙삼국지시조. 개발호신리. 하족괴재. 차신리지소이점제편야.
意在斯焉.
의재사언.
→기이(紀異) 제1
첫 머리에 말한다.
대체로 옛날 성인(聖人)은 예절과 음악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고, 인(仁)과 의(義)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쳤다. 때문에 괴상한 일이나 힘이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왕(帝王)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부명(符命)을 얻고 도록(圖록)을 받게 된다.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뒤에라야 큰 변의 틈을 타서 대기(大器)를 잡아 대업을 이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하수(河水)에서 그림이 나왔고,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와서 이로써 성인(聖人)이 일어났던 것이다. 무지개가 신모(神母)의 몸을 두르더니 복희(伏羲)를 낳고, 용이 여등(女登)에게 교접하더니 염제(炎帝)를 낳았다. 황아(皇娥)가 궁상(窮桑)이라는 들판에서 노는데 자칭 백제(白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동(神童)이 와서 황아와 교접하여 소호(少昊)를 낳았다. 간적(簡狄)은 알[卵] 하나를 삼키더니 설[契]를 낳고 강원(姜嫄)은 한 거인(巨人)의 발자취를 밟고서 기(充)를 낳았다. 요(堯)의 어머니는 잉태한 지 14개월이 된 뒤에 요(堯)를 낳았고, 패공(沛公)의 어머니는 용(龍)과 큰 연못에서 교접해 패공을 낳았다. 이 뒤로도 이런 일이 많지만 여기에선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삼국(三國)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러운 데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괴이할 것이 있으랴. 이 기이편을 이 책의 첫머리에 싣는 것은 그 뜻이 실로 여기에 있다.
2) 가사를 알 수 없는 노래에 관한 기록
興德王鸚鵡 흥덕왕앵무
第四十二興德大王. 寶曆二年丙午卽位. 未幾有人奉使於唐. 將鸚鵡一雙而至. 不久雌死. 而孤雄
제사십이흥덕대왕. 보력이년병오즉위. 미기유인봉사어당. 장앵무일쌍이지. 불구자사. 이고웅
哀鳴不已. 王使人掛鏡於前. 鳥見鏡中影. 擬其得偶. 乃啄其鏡而知其影. 乃哀鳴而死. 王作歌云.
애명불이. 왕사인괘경어전. 조견경중영. 의기득우. 내탁기경이지기영. 내애명이사. 왕작가운.
未詳.
미상.
흥덕왕(興德王)과 앵무새
제42대 흥덕대왕(興德大王)은 보력(寶曆) 2년 병오(丙午; 826)에 즉위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사람이 당(唐)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다. 오래지 않아 암놈이 죽자 홀로 남은 수놈은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는다. 왕은 사람을 시켜 그 앞에 거울을 걸어 놓게 했더니 새는 거울 속의 그림자를 보고는 제 짝을 얻은 줄 알고 그 거울을 쪼다가 제 그림자인 것을 알고는 슬피 울다 죽었다. 이에 왕이 앵무새를 두고 노래를 지었다고 하나 가사(歌辭)는 알 수 없다.
四十八景文大王 사십팔경문대왕
王諱膺廉. 年十八爲國仙. 至於弱冠. 憲安大王召郞. 宴於殿中. 問曰. 郞爲國仙. 優遊四方. 見何
왕휘응렴. 년십팔위국선. 지어약관. 헌안대왕소랑. 연어전중. 문왈. 랑위국선. 우유사방. 견하
異事. 郞曰. 臣見有美行者三. 王曰. 請聞其說. 郞曰. 有人爲人上者. 而紉謙坐於人下. 其一也.
리사. 랑왈. 신견유미항자삼. 왕왈. 청문기설. 랑왈. 유인위인상자. 이인겸좌어인하. 기일야.
有人豪富而衣儉易. 其二也. 有人本貴勢而不用其威者. 三也. 王聞其言而知其賢. 不覺墮淚而謂
유인호부이의검역. 기이야. 유인본귀세이불용기위자. 삼야. 왕문기언이지기현. 불각타누이위
曰. 朕有二女. 請以奉巾櫛. 郞避席而拜之. 稽首而退. 告於父母. 父母驚喜. 會其子弟議曰. 王之
왈. 짐유이녀. 청이봉건즐. 랑피석이배지. 계수이퇴. 고어부모. 부모경희. 회기자제의왈. 왕지
上公主貌甚寒寢. 第二公主甚美. 娶之幸矣. 郞之徒上首範敎師者聞之. 至於家問郞曰. 大王欲以
상공주모심한침. 제이공주심미. 취지행의. 랑지도상수범교사자문지. 지어가문랑왈. 대왕욕이
公主妻公信乎. 郞曰然. 曰奚娶. 郞曰. 二親命我宜弟. 師曰. 郞若娶弟. 則予必死於郞之面前. 娶
공주처공신호. 랑왈연. 왈해취. 랑왈. 이친명아의제. 사왈. 랑야취제. 칙여필사어랑지면전. 취
其兄. 則必有三美. 誡之哉. 郞曰聞命矣. 旣而王擇辰. 而使於郞曰. 二女惟公所命. 使歸以郞意
기형. 칙필유삼미. 계지재. 랑왈문명의. 기이왕택신. 이사어랑왈. 이녀유공소명. 사귀이랑의
奏曰. 奉長公主爾. 旣而過三朔. 王疾革. 召群臣曰. 朕無男孫. 屳旱之事. 宜長女之夫膺廉繼之.
주왈. 봉장공주이. 기이과삼삭. 왕질혁. 소군신왈. 짐무남손. 선한지사. 의장녀지부응렴계지.
翌日王崩. 郞奉遺詔卽位. 於是範敎師詣於王曰. 吾所陳三美者, 今皆著矣. 娶長故, 今登位一也.
익일왕붕. 랑봉유조즉위. 어시범교사예어왕왈. 오소진삼미자, 금개저의. 취장고, 금등위일야.
昔之欽艶弟主. 今易可取二也. 娶兄故, 王與夫人喜甚三也. 王德其言. 爵爲大德. 賜金一百三十
석지흠염제주. 금역가취이야. 취형고, 왕여부인희심삼야. 왕덕기언. 작위대덕. 사김일백삼십
兩. 王崩. 諡曰景文. 王之寢殿. 每日暮無數衆蛇俱集. 宮人驚怖. 將驅遣之. 王曰. 寡人若無사蛇
량. 왕붕. 시왈경문. 왕지침전. 매일모무삭중사구집. 궁인경포. 장구견지. 왕왈. 과인야무사사
不得安寢. 宜無禁. 每寢吐舌滿胸鋪之. 乃登位. 王耳忽長如驢耳. 王后及宮人皆未知. 唯按頭匠
불득안침. 의무금. 매침토설만흉포지. 내등위. 왕이홀장여려이. 왕후급궁인개미지. 유안두장
一人知之. 然生平不向人說. 其人將死. 入道林寺竹林中無人處. 向竹唱云. 吾君耳如驢耳. 其後
일인지지. 연생평불향인설. 기인장사. 입도림사죽림중무인처. 향죽창운. 오군이여려이. 기후
風吹. 則但聲云吾君耳長. [道林寺舊在入都林邊. ]國仙邀元郞, 譽昕郞, 桂元叔宗郞等遊覽金蘭.
풍취. 칙단성운오군이장. [도림사구재입도림변. ]국선요원랑, 예흔랑, 계원숙종랑등유람금난.
暗有爲君
암유위군
主理邦國之意. 乃作歌三首. 使心弼舍知授針卷, 送大炬和尙處. 令作三歌. 初名玄琴抱曲. 第二
주리방국지의. 내작가삼수. 사심필사지수침권, 송대거화상처. 령작삼가. 초명현금포곡. 제이
大道曲. 第三問群曲. 入奏於王. 王大喜稱賞. 歌未詳.
대도곡. 제삼문군곡. 입주어왕. 왕대희칭상. 가미상.
→제48대 경문대왕(景文大王)
왕의 이름은 응렴(膺廉)이니 나이 18세에 국선(國仙)이 되었다. 약관(弱冠)에 이르자 헌안대왕(憲安大王)은 그를 불러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과 물었다. "낭(郎)은 국선이 되어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놀았으니 무슨 이상한 일을 본 것이 있는가." "신(臣)은 아름다운 행실이 있는 자 셋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나에게 들려 주게." "남의 웃자리에 있을 만한 사람이면서도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이 그 하나요, 세력 있고 부자이면서도 옷차림을 검소하게 한 사람이 그 둘이요, 본래부터 귀(貴)하고 세력이 있으면서도 그 위력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그 셋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낭이 어질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나에게 두 딸이 있는데 낭의 시중을 들게 하리라." 낭이 자리를 피하여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물러가 부모에게 고했다. 부모는 놀라고 기뻐하여 그 자제(子弟)들을 모아 놓고 의논하기를, "왕의 맏공주(公主)는 모양이 몹시 초라하고 둘째 공주는 매우 아름답다 하니 그를 아내로 삼으면 다행이겠다"하였다. 낭의 무리들 중에 우두머리로 있는 범교사(範敎師)가 이 말을 듣고 낭의 집에 가서 낭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공주를 공의 아내로 주고자 한다니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어느 공주에게 장가들려는가?" "부모께서 둘째 공주가 좋겠다고 하십니다." 범교사는 말한다.
"낭이 만일 둘째 공주에게 장가를 든다면 나는 반드시 낭의 면전에서 죽을 것이고, 맏공주에게 장가간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경계해서 하도록 하라." "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 뒤에 왕이 날을 가려서 낭에게 사자를 보내어 말했다. "두 딸 중에서 공의 뜻대로 결정하도록 하라." 사자가 돌아와서 낭의 의사를 왕에게 보고했다. "맏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
그런 지 3개월이 지나서 왕은 병이 위독했다. 여러 신하들을 불러 놓고 말한다. "내게는 사내자식이 없으니 죽은 뒤의 일은 마땅히 맏딸의 남편 응렴(膺廉)이 이어야 할 것이다." 이튿날 왕이 죽으니 낭이 유언을 받들어 왕위에 올랐다. 이에 범교사는 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제가 아뢴 세 가지 아름다운 일이 이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맏공주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그 하나요, 예전에 흠모하시던 둘째 공주에게 이제 쉽게 장가드실 수 있게 되신 것이 그 둘이요, 맏공주에게 장가를 드셨기 때문에 왕과 부인이 매우 기뻐하신 것이 그 셋입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고맙게 여겨서 대덕(大德)이란 벼슬을 주고 금(金) 130냥을 하사했다. 왕이 죽자 시호(諡號)를 경문(景文)이라고 했다.
일찍이 왕의 침전(寢殿)에는 날마다 저녁만 되면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인(宮人)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이를 쫓아내려 했지만 왕은 말했다. "내게 만일 뱀이 없으면 편하게 잘 수가 없으니 쫓지 말라." 왕이 잘 때에는 언제나 뱀이 혀를 내밀어 온 가슴을 덮고 있었다.
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나귀의 귀처럼 되었는데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를 알지 못했지만 오직 복두장(복頭匠) 한 사람만은 이 일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평생 이 일을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죽을 때에 도림사(道林寺) 대밭 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대를 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 그런 후로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 왕은 이 소리가 듣기 싫어서 대를 베어 버리고 그 대신 산수유(山茱萸) 나무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거기에서는 다만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고 하는 소리가 났다(도림사道林寺는 예전에 서울로 들어가는 곳에 있는 숲 가에 있었다).
국선 요원랑(邀元郞)·예흔랑(譽昕郞)·계원(桂元)·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을 유람하는데 은근히 임금을 위해서 나라를 다스리려는 뜻이 있었다. 이에 노래 세 수(首)를 짓고, 다시 심필(心弼) 사지(舍知)를 시켜서 공책을 주어 대구화상(大矩和尙)에게 보내어 노래 세 수를 짓게 하니 첫째는 현금포곡(玄琴抱曲)이요, 둘째는 대도곡(大道曲)이요, 셋째는 문군곡(問群曲)이었다. 대궐에 들어가 왕께 아뢰니 왕은 기뻐하여 칭찬하고 상을 주었다. 노래는 알 수가 없다.
3) 가사가 전해지는 노래에 관한 기록
<권2>
孝昭王代竹旨郞[亦作竹曼. 亦名智官.]효소왕대죽지랑[역작죽만. 역명지관.]
第三十二孝昭王代. 竹曼郞之徒有得烏[一云谷.] 級干. 隷名於風流黃卷. 追日仕進. 隔旬日不見.
제삼십이효소왕대. 죽만랑지도유득오[一云谷.] 급간. 례명어풍류황권. 추일사진. 격순일불견.
郞喚其母, 問爾子何在. 母曰. 幢典牟梁益宣阿干. 以我子差富山城倉直. 馳去行急. 未暇告辭於
랑환기모, 문이자하재. 모왈. 당전모량익선아간. 이아자차부산성창직. 치거항급. 미가고사어
郞. 郞曰. 汝子若私事適彼. 則不須尋訪. 今以公事進去. 須歸享矣. 乃以舌拭一合, 酒一缸. 卒左
랑. 랑왈. 여자야사사적피. 칙불수심방. 금이공사진거. 수귀향의. 내이설식일합, 주일항. 졸좌
人[鄕云皆叱知. 言奴僕也. ]而行. 郞徒百三十七人, 亦具儀侍從. 到富山城. 問箚人. 得烏失奚
인[향운개질지. 언노복야. ]이항. 랑도백삼십칠인, 역구의시종. 도부산성. 문차인. 득오실해
在. 人曰. 今在益宣田. 隨例赴役. 郞歸田, 以所將酒拭饗之. 請暇於益宣. 將欲偕還. 益宣固禁不
재. 인왈. 금재익선전. 수례부역. 랑귀전, 이소장주식향지. 청가어익선. 장욕해환. 익선고금불
許. 時有使吏侃珍管收推火郡. 能節租三十石. 輸送城中. 美郞之重士風味. 鄙宣暗塞不通. 乃以
허. 시유사리간진관수추화군. 능절조삼십석. 수송성중. 미랑지중사풍미. 비선암새불통. 내이
所領三十石, 贈益宣助請. 猶不許. 又以珍節舍知騎馬鞍具貽之. 乃許朝廷花主聞之. 遣使取益宣.
소령삼십석, 증익선조청. 유불허. 우이진절사지기마안구이지. 내허조정화주문지. 견사취익선.
將洗浴其垢醜. 宣逃隱. 掠其長子而去. 時仲冬極寒之日. 浴洗於城內池中. 仍合凍死. 大王聞之.
장세욕기구추. 선도은. 략기장자이거. 시중동극한지일. 욕세어성내지중. 잉합동사. 대왕문지.
勅牟梁里人從官者. 拄合黜遣. 更不接公署. 不著黑衣. 若爲僧者. 不合入鐘鼓寺中. 勅史上侃珍
칙모량리인종관자. 주합출견. 갱불접공서. 불저흑의. 야위승자. 불합입종고사중. 칙사상간진
子孫爲枰定戶孫, 標異之. 時圓測法師是海東高德. 以牟梁里人故不授僧職. 初述宗公爲朔州都督
자손위평정호손, 표리지. 시원측법사시해동고덕. 이모량리인고불수승직. 초술종공위삭주도독
使. 將歸理所. 時三韓兵亂. 以騎兵三千護送之. 行至竹旨嶺. 有一居士, 平理其嶺路. 公見之歎
사. 장귀리소. 시삼한병난. 이기병삼천호송지. 항지죽지령. 유일거사, 평리기령노. 공견지탄
美. 居士亦善公之威勢赫甚. 相感於心. 公赴州理. 隔一朔. 夢見居士入于房中. 室家同夢. 驚怪
미. 거사역선공지위세혁심. 상감어심. 공부주리. 격일삭. 몽견거사입우방중. 실가동몽. 경괴
尤甚. 翌日使人問其居士安否. 人曰. 居士死有日矣. 使來還告其死. 與夢同日矣. 公曰. 殆居士
우심. 익일사인문기거사안부. 인왈. 거사사유일의. 사내환고기사. 여몽동일의. 공왈. 태거사
誕於吾家爾. 更發卒修葬於嶺上北峯. 造石彌勒一軀, 安於塚前. 妻氏自夢之日有娠. 旣誕, 因名
탄어오가이. 갱발졸수장어령상배봉. 조석미늑일구, 안어총전. 처씨자몽지일유신. 기탄, 인명
竹旨. 壯而出仕. 與庾信公爲副帥. 統三韓. 眞德, 太宗, 文武, 神文四代爲瘣宰. 安定厥邦. 初得
죽지. 장이출사. 여유신공위부수. 통삼한. 진덕, 태종, 문무, 신문사대위외재. 안정궐방. 초득
烏谷, 慕郞而作歌曰.
오곡, 모랑이작가왈.
去隱春皆理米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悓史年數就音墮支行齊目煙廻於尸
거은춘개리미모동거질사곡옥시이우음아동음내질호지사오은 悓사년삭취음타지항제목연회어시
七史伊衣逢烏支惡知乎下是郞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칠사이의봉오지악지호하시랑야모리시심미항호시도시봉차질항중숙시야음유질하시
→효소왕대(孝昭王代)의 죽지랑(竹旨郞; 죽만竹曼 또는 지관智官이라고도 한다)
제32대 효소왕(孝昭王) 때에 죽만랑(竹曼郞)의 무리 가운데 득오(得烏; 혹은 득곡得谷) 급간(級干)이 있어서 풍류황권(風流黃卷)에 이름을 올려 놓고 날마다 나오고 있었는데, 한 번은 10일이 넘도록 보이지 않았다. 죽만랑은 그의 어머니를 불러 그대의 아들이 어디 있는가를 물으니 어머니는 말한다. "당전(幢典) 모량부(牟梁部)의 익선아간(益宣阿干)이 내 아들을 부산성(富山城) 창직(倉直)으로 보냈으므로 빨리 가느라고 미처 그대에게 인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죽만랑이 말한다. "그대의 아들이 만일 사사로운 일로 간 것이라면 찾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이제 공사(工事)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대접해야겠소." 이에 떡 한 그릇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좌인(左人; 우리말에 개질지皆叱知라는 것이니 이는 노복奴僕을 말한다)을 거느리고 찾아가니 낭(郎)의 무리 137명도 위의(威儀)를 갖추고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게, 득오실(得烏失)이 어디 있는가고 물으니 문지기는 대답한다. "지금 익선(益宣)의 밭에서 예(例)에 따라 부역(賦役)을 하고 있습니다." 낭은 밭으로 찾아가서 가지고 간 술과 떡을 대접했다. 익선에게 휴가를 청하여 함께 돌아오려 했으나 익선은 굳이 반대하고 허락하지 않는다. 이때 사리(使吏) 간진(侃珍)이 추화군(推火郡) 능절(能節)의 조(租) 30석(石)을 거두어 싣고, 성안으로 가고 있었다. 죽만랑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는 풍미(風味)를 아름답게 여기고, 익선의 고집불통을 비루하게 여겨 가지고 가던 30석을 익선에게 주면서 휴가를 주도록 함께 청했으나 그래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번엔 진절(珍節) 사지(舍知)의 말안장을 주니 그제야 허락했다. 조정의 화주(花主)가 이 말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서 익선을 잡아다가 그 더럽고 추한 것을 씻어 주려 하니, 익선은 도망하여 숨어 버렸다. 이에 그의 맏아들을 잡아갔다. 때는 중동(仲冬) 몹시 추운 날인데 성안에 있는 못[池]에서 목욕을 시키자 얼어붙어 죽었다.
효소왕(孝昭王)이 그 말을 듣고 명령하여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벼슬에 오른 자는 모조리 쫓아내어 다시는 관청에 붙이지 못하게 하고, 승의(僧衣)를 입지 못하게 하고, 만일 중이 된 자라도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절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칙사(勅使)가 간진(侃珍)의 자손을 올려서 칭정호손(秤定戶孫)을 삼아 남달리 표창했다. 이때 원측법사(圓測法師)는 해동(海東)의 고승(高僧)이었지만 모량리(牟梁里) 사람인 때문에 승직(僧職)을 주지 않았다.
처음에 술종공(述宗公)이 삭주도독사(朔州都督使)가 되어 임지(任地)로 가는데, 마침 삼한(三韓)에 병란(兵亂)이 있어 기병(騎兵) 3,000명으로 그를 호송하게 했다. 일행이 죽지령(竹旨嶺)에 이르니 한 거사(居士)가 그 고갯길을 닦고 있었다. 공(公)이 이것을 보고 탄복하여 칭찬하니 거사도 공의 위세가 놀라운 것을 보고 좋게 여겨 서로 마음 속에 감동한 바가 있었다. 공이 고을의 임소(任所)에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나서 꿈에 거사가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데 공의 아내도 같은 꿈을 꾸었다. 더욱 놀라고 괴상히 여겨 이튿날 사람을 시켜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그곳 사람들이 "거사는 죽은 지 며칠 되었습니다" 한다. 사자(使者)가 돌아와 고하는데 그가 죽은 것은 꿈을 꾸던 것과 같은 날이었다. 이에 공이 말한다. "필경 거사는 우리 집에 태어날 것이다." 공은 다시 군사를 보내어 고개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내고, 돌로 미륵(彌勒)을 하나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 놓았다. 공의 아내는 그 꿈을 꾸던 날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죽지(竹旨)라고 했다. 이 죽지랑(竹旨郞)이 커서 벼슬을 하게 되어 유신공(庾信公)과 함께 부수(副師)가 되어 삼한을 통일했다. 진덕(眞德)·태종(太宗)·문무(文武)·신문(神文)의 4대에 걸쳐 재상으로서 이 나라를 안정시켰다.
처음에 득오곡(得烏谷)이 죽만랑(竹曼郞)을 사모하여 노래를 지으니 이러하다.
간 봄 그리워하니, 모든 것이 시름이로세.
아담하신 얼굴, 주름살 지시려 하네.
눈 돌릴 사이에나마, 만나뵙도록 기회 지으리라.
낭(郎)이여! 그리운 마음에, 가고 오는 길.
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 있으리.
水路夫人 수로부인
聖德王代. 純貞公赴江陵太守. [今溟州.] 行次海汀晝饍. 傍有石濵. 如屛臨海. 高千丈. 上有甅
성덕왕대. 순정공부강능태수. [금명주.] 항차해정주선. 방유석빈. 여병림해. 고천장. 상유리
瘙花盛開. 公之夫人水路見之. 謂左右曰. 折花獻者其誰. 從者曰. 非人跡所到. 皆辭不能. 傍有
소화성개. 공지부인수노견지. 위좌우왈. 절화헌자기수. 종자왈. 비인적소도. 개사불능. 방유
老翁牽潪牛而過者. 聞夫人言折其花. 亦作歌詞獻之. 其翁不知何許人也. 便行二日程. 又有臨海
노옹견지우이과자. 문부인언절기화. 역작가사헌지. 기옹불지하허인야. 변항이일정. 우유림해
亭. 晝膳次. 海龍忽攬夫人入海. 公顚倒抖地. 計無所出. 又有一老人告曰. 故人有言. 衆口攓金.
정. 주선차. 해룡홀람부인입해. 공전도두지. 계무소출. 우유일노인고왈. 고인유언. 중구건금.
今海中傍生. 何不畏衆口乎. 宜進界內民. 作歌唱之. 以杖打岸. 則可見夫人矣. 公從之. 龍奉夫
금해중방생. 하불외중구호. 의진계내민. 작가창지. 이장타안. 칙가견부인의. 공종지. 룡봉부
人出海獻之. 公問夫人海中事. 曰七寶宮殿. 所饍甘滑香潔. 非人間煙火. 此夫人衣襲異香. 非世
인출해헌지. 공문부인해중사. 왈칠보궁전. 소선감골향결. 비인간연화. 차부인의습리향. 비세
所聞. 水路姿容絶代. 每經過深山大澤. 屢被神物掠攬. 衆人唱海歌詞曰. 龜乎龜乎出水路. 掠人
소문. 수노자용절대. 매경과심산대택. 누피신물략람. 중인창해가사왈. 구호구호출수노. 략인
婦女罪何極. 汝若我逆不出獻. 入網捕掠燔之喫. 老人獻花歌曰. 紫布岩乎邊希執音乎手母牛放敎
부녀죄하극. 여야아역불출헌. 입망포략번지끽. 노인헌화가왈. 자포암호변희집음호수모우방교
遣. 吾綔不喩璃綔伊賜等花綔折叱可獻乎理音如
견. 오호불유리호이사등화호절질가헌호리음여
→수로부인(水路夫人)
성덕왕(聖德王)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 지금의 명주溟州)로 부임하는 도중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었다. 곁에는 돌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두르고 있어 그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데, 그 위에 철쭉꽃이 만발하여 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이것을 보더니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꽃을 꺾어다가 내게 줄 사람은 없는가." 그러나 종자(從者)들은, "거기에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하고 아무도 나서지 못한다. 이때 암소를 끌고 길을 지나가던 늙은이 하나가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가사(歌詞)까지 지어서 바쳤다. 그러나 그 늙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뒤 편안하게 이틀을 가다가 또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용이 나타나더니 부인을 끌고 바닷 속으로 들어갔다. 공이 땅에 넘어지면서 발을 굴렀으나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또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말한다. "옛 사람의 말에,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이제 바닷 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境內)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강언덕을 치면 부인을 만나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공이 그대로 하였더니 용이 부인을 모시고 나와 도로 바쳤다. 공이 바닷속에 들어갔던 일을 부인에게 물으니 부인이 말한다. "칠보궁전(七寶宮殿)에 음식은 맛있고 향기롭게 깨끗한 것이 인간의 연화(煙火)가 아니었습니다." 부인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용모가 세상에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려 갔다.
이때 여러 사람이 부르던 해가(海歌)의 가사는 이러했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랴.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는다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러했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저 꽃 꺾어 바치오리다.
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
德經等大王備禮受之. 王御國二十四年. 五岳三山等. 時或現侍於殿庭. 三月三日. 王御歸正門樓
덕경등대왕비례수지. 왕어국이십사년. 오악삼산등. 시혹현시어전정. 삼월삼일. 왕어귀정문누
上. 謂左右曰. 誰能途中得一員榮服僧來. 於是適有一大德. 威儀鮮潔. 敭榩而行. 左右望而引見
상. 위좌우왈. 수능도중득일원영복승내. 어시적유일대덕. 위의선결. 양건이항. 좌우망이인견
之. 王曰. 非吾所謂榮僧也. 退之. 更有一僧. 被衲衣負櫻筒.[一作荷墠.] 從南而來. 王喜見之.
지. 왕왈. 비오소위영승야. 퇴지. 갱유일승. 피납의부앵통.[일작하선.] 종남이내. 왕희견지.
邀致樓上. 視其筒中. 盛茶具已. 曰. 汝爲誰耶. 僧曰忠談. 曰. 何所歸來. 僧曰. 僧每重三重九之
요치누상. 시기통중. 성다구이. 왈. 여위수야. 승왈충담. 왈. 하소귀내. 승왈. 승매중삼중구지
日. 烹茶饗南山三花嶺彌勒世尊. 今澀旣獻而還矣. 王曰. 寡人亦一埞茶有分乎. 僧乃煎茶獻之.
일. 팽다향남산삼화령미늑세존. 금삽기헌이환의. 왕왈. 과인역일埞다유분호. 승내전다헌지.
茶之氣味異常. 埞中異香郁烈. 王曰. 朕嘗聞師讚耆婆郞詞腦歌. 其意甚高. 是其果乎. 對曰然.
다지기미리상. 埞중리향욱렬. 왕왈. 짐상문사찬기파랑사뇌가. 기의심고. 시기과호. 대왈연.
王曰. 然則爲朕作理安民歌. 僧應時奉勅歌呈之. 王佳之. 封王師焉. 僧再拜固辭不受. 安民歌曰.
왕왈. 연칙위짐작리안민가. 승응시봉칙가정지. 왕가지. 봉왕사언. 승재배고사불수. 안민가왈.
君隱父也臣隱愛賜尸母史也民焉狂尸恨阿孩古爲賜尸知民是愛尸知古如窟理叱大綔生以支所音物
군은부야신은애사시모사야민언광시한아해고위사시지민시애시지고여굴리질대호생이지소음물
生此綔栲惡支治良羅此地綔捨遺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國惡支持以支知古如後句君如臣多支民隱
생차호고악지치량나차지호사유지어동시거어정위시지국악지지이지지고여후구군여신다지민은
如爲內尸等焉國惡太平恨音叱如
여위내시등언국악태평한음질여
讚耆婆郞歌曰
찬기파랑가왈
咽嗚爾處米. 露曉邪隱月羅理.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 沙是八陵隱汀理也中. 耆郞矣悓史是史
열오이처미. 노효사은월나리. 백운음축우부거은안지하. 사시팔능은정리야중. 기랑의悓사시사
藪邪. 逸烏川理叱炏惡希. 郞也持以支如賜烏隱. 心未際叱綔逐內良齊. 阿耶. 栢史叱枝次高支好.
수사. 일오천리질炏악희. 랑야지이지여사오은. 심미제질호축내량제. 아야. 백사질지차고지호.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玉玉莖長八寸. 無子廢之. 封沙梁夫人. 後妃滿月夫人. 諡景垂太后. 依
설시모동내호시화판야. 옥옥경장팔촌. 무자폐지. 봉사량부인. 후비만월부인. 시경수태후. 의
忠角干之女也. 王一日詔表訓大德曰. 朕無祜. 不獲其嗣. 願大德請於上帝而有之. 訓上告於天帝.
충각간지녀야. 왕일일조표훈대덕왈. 짐무호. 불획기사. 원대덕청어상제이유지. 훈상고어천제.
還來奏云. 帝有言. 求女卽可. 男卽不宜. 王曰願轉女成男. 訓再上天請之. 帝曰. 可則可矣. 然
환내주운. 제유언. 구녀즉가. 남즉불의. 왕왈원전녀성남. 훈재상천청지. 제왈. 가칙가의. 연有
유
男則國殆矣. 訓欲下時. 帝又召曰. 天與人不可亂. 今師往來如後里. 漏洩天機. 今後宜更不通.
남칙국태의. 훈욕하시. 제우소왈. 천여인불가난. 금사왕내여후리. 누설천기. 금후의갱불통.
訓來以天語諭之. 王曰. 國雖殆. 得男而爲嗣足矣. 於是滿月王后生太子. 王喜甚. 至八歲王崩.
훈내이천어유지. 왕왈. 국수태. 득남이위사족의. 어시만월왕후생태자. 왕희심. 지팔세왕붕.
太子卽位. 是爲惠恭大王. 幼盓故太后臨朝. 政條不理. 盜賊蜂起. 不遑備禦. 訓師之說驗矣. 小
태자즉위. 시위혜공대왕. 유우고태후림조. 정조불리. 도적봉기. 불황비어. 훈사지설험의. 소
帝旣女爲男故. 自期杀至於登位, 常爲婦女之戱. 好佩錦囊. 與道流爲戱. 故國有大亂. 修爲宣德
제기녀위남고. 자기살지어등위, 상위부녀지희. 호패금낭. 여도류위희. 고국유대난. 수위선덕
與金良相所弑. 自表訓後. 聖人不生於新羅云.
여금량상소시. 자표훈후. 성인불생어신나운.
→경덕왕(景德王)·충담사(忠談師)·표훈대덕(表訓大德)
당(唐)나라에서 덕경(德經) 등을 보내 오자 대왕(大王)이 예를 갖추어 이를 받았다.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4년에 오악(五岳)과 삼산신(三山神)들이 때때로 나타나서 대궐 뜰에서 왕을 모셨다. 3월 3일 왕이 귀정문(歸正門) 누각 위에 나가서 좌우 신하들에게 일렀다. "누가 길거리에서 위의(威儀) 있는 중 한 사람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 이때 마침 위의 있고 깨끗한 고승(高僧) 한 사람이 길에서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었다. 좌우 신하들이 이 중을 왕에게로 데리고 오니, 왕이 "내가 말하는 위의 있는 중이 아니다"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다시 중 한 사람이 있는데 납의(衲衣)를 입고 앵통(櫻筒)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이 보고 기뻐하여 누각 위로 영접했다. 통 속을 보니 다구(茶具)가 들어 있었다. 왕은 물었다. "그대는 대체 누구요?" "소승(小僧)은 충담(忠談)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는 차를 달여서 남산(南山)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께 드리는데, 지금도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그 차를 한 잔 나누어 주겠는가요." 중이 이내 차를 달여 드리니 차맛이 이상하고 찻잔 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풍긴다. 왕이 다시 물었다.
"내가 일찍이 들으니 스님이 기파랑(耆婆郞)을 찬미(讚美)한 사뇌가(詞腦歌)가 그 뜻이 무척 고상(高尙)하다고 하니 그 말이 과연 옳은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하여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주시오." 충담은 이내 왕의 명을 받들어 노래를 지어 바치니 왕은 아름답게 여기고 그를 왕사(王師)로 봉했으나 충담은 두 번 절하고 굳이 사양하여 받지 않았다. 안민가는 이러하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스런 어머니시라.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라 여기시니,
백성이 그 은혜를 알리.
꾸물거리면서 사는 물생(物生)들에게, 이를 먹여 다스리네.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
後句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면,
나라는 태평하리이다.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노래
헤치고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가는 것 아닌가.
새파란 시내에, 기파랑의 모습 잠겼어라.
일오천(逸烏川) 조약돌에서, 낭(郎)이 지니신 마음 좇으려 하네.
아아! 잣나무 가지 드높아,
서리 모를 그 씩씩한 모습이여!
경덕왕(景德王)은 옥경(玉莖)의 길이가 여덟 치나 되었다. 아들이 없어 왕비(王妃)를 폐하고 사량부인(沙梁夫人)에 봉했다. 후비(後妃) 만월부인(滿月夫人)의 시호(諡號)는 경수태후(景垂太后)이니 의충(依忠) 각간(角干)의 딸이었다. 어느날 왕은 표훈대덕(表訓大德)에게 명했다. "내가 복이 없어서 아들을 두지 못했으니 바라건대 대덕은 상제(上帝)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해 주오." 표훈은 명령을 받아 천제(天帝)에게 올라가 고하고 돌아와 왕께 아뢰었다.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을 구한다면 될 수 있지만 아들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왕은 다시 말한다. "원컨대 딸을 바꾸어 아들로 만들어 주시오." 표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천제께 청하자 천제는 말한다. "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아들이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 표훈이 내려오려고 하자 천제는 또 불러 말한다. "하늘과 사람 사이를 어지럽게 할 수는 없는 일인데 지금 대사(大師)는 마치 이웃 마을을 왕래하듯이 하여 천기(天機)를 누설했으니 이제부터는 아예 다니지 말도록 하라." 표훈은 돌아와서 천제의 말대로 왕께 알아듣도록 말했건만 왕은 다시 말한다. "나라는 비록 위태롭더라도 아들을 얻어서 대를 잇게 하면 만족하겠소." 이리하여 만월왕후(滿月王后)가 태자를 낳으니 왕은 무척 기뻐했다. 8세 때에 왕이 죽어서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혜공대왕(惠恭大王)이다. 나이가 매우 어린 때문에 태후(太后)가 임조(臨朝)하였는데 정사가 다스려지지 못하고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루 막을 수가 없다. 표훈 대사의 말이 맞은 것이다.
왕은 이미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기 때문에 돌날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항상 여자의 놀이를 하고 자랐다. 비단 주머니 차기를 좋아하고 도류(道流)와 어울려 희롱하고 노니 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지고 마침내 선덕왕(宣德王)과 김양상(金良相)에게 죽음을 당했다.
표훈 이후에는 신라에 성인이 나지 않았다.
處容郎望海寺 처용랑망해사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 自京師至於海內. 比屋連墻無一草屋.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於四時. 於
제사십구헌강대왕지대. 자경사지어해내. 비옥련장무일초옥. 생가불절도노. 풍우조어사시. 어
是大王遊開雲浦. [在鶴城西南今蔚州.] 王將還駕. 晝歇於汀邊. 忽雲霧冥樱. 迷失道路. 怪問左
시대왕유개운포. [재학성서남금울주.] 왕장환가. 주헐어정변. 홀운무명앵. 미실도노. 괴문좌
右. 日官奏云. 此東海龍所變也. 宜行勝事以解之. 於是勅有司, 爲龍璡佛寺近境. 施令已出. 雲
우. 일관주운. 차동해룡소변야. 의항승사이해지. 어시칙유사, 위룡진불사근경. 시령이출. 운
開霧散. 因名開雲浦. 東海龍喜. 乃率七子現於駕前. 讚德獻舞奏樂.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개무산. 인명개운포. 동해룡희. 내률칠자현어가전. 찬덕헌무주낙. 기일자수가입경. 보좌왕정.
名曰處容. 王以美女妻之. 欲留其意. 又賜級干職. 其妻甚美. 疫神欽慕之. 變爲人. 夜至其家.
명왈처용. 왕이미녀처지. 욕류기의. 우사급간직. 기처심미. 역신흠모지. 변위인. 야지기가. 竊
절
與之宿. 處容自外至其家. 見寢有二人. 乃唱歌作舞而退. 歌曰. 東京明期月良夜入伊遊行如可入
여지숙. 처용자외지기가. 견침유이인. 내창가작무이퇴. 가왈. 동경명기월량야입이유항여가입
良沙寢矣見昆脚烏伊四是良羅二綔隱吾下於叱古二綔隱誰支下焉古本矣吾下是如馬於隱奪叱良乙
량사침의견곤각오이사시량나이호은오하어질고이호은수지하언고본의오하시여마어은탈질량을
何如爲理古. 時神現形, 墦於前曰. 吾羨公之妻. 今犯之矣. 公不見怒. 感而美之. 誓今已後. 見篐
하여위리고. 시신현형, 번어전왈. 오선공지처. 금범지의. 공불견노. 감이미지. 서금이후. 견잡
公之形容. 不入其門矣. 因此國人門帖處容之形. 以僻邪進慶. 王旣還. 乃卜靈鷲山東麓勝地置寺.
공지형용. 불입기문의. 인차국인문첩처용지형. 이벽사진경. 왕기환. 내복령취산동록승지치사.
曰望海寺. 亦名新房寺. 乃爲龍而置也. 又幸鮑石亭. 南山神現舞於御前. 左右不見. 王獨見之.
왈망해사. 역명신방사. 내위룡이치야. 우행포석정. 남산신현무어어전. 좌우불견. 왕독견지.
有人現舞於前. 王自作舞. 以像示之. 神之名或曰祥審. 故至今國人傳此舞. 曰御舞祥審. 或曰御
유인현무어전. 왕자작무. 이상시지. 신지명혹왈상심. 고지금국인전차무. 왈어무상심. 혹왈어
舞山神. 或云. 旣神出舞審象其貌. 命工摹刻. 以示後代. 故云象審. 或云霜髥舞. 此乃以其形稱
무산신. 혹운. 기신출무심상기모. 명공모각. 이시후대. 고운상심. 혹운상염무. 차내이기형칭
之. 又幸於金剛嶺時. 北岳神呈舞. 名玉刀鈐. 又同禮殿宴時. 地神出舞. 名地伯級干. 語法集云.
지. 우행어김강령시. 배악신정무. 명옥도검. 우동례전연시. 지신출무. 명지백급간. 어법집운.
于時山神獻舞. 唱歌云. 智理多都波都波等者. 盖言以智理國者. 知而多逃. 都邑將破云謂也. 乃
우시산신헌무. 창가운. 지리다도파도파등자. 개언이지리국자. 지이다도. 도읍장파운위야. 내
地神山神知國將亡. 故作舞以警之. 國人不悟. 謂爲現瑞. 耽樂滋甚. 故國終亡.
지신산신지국장망. 고작무이경지. 국인불오. 위위현서. 탐낙자심. 고국종망.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제49대 헌강대왕(憲康大王) 때에는 서울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하고 초가(草家)는 하나도 없었다. 음악과 노래가 길에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 어느날 대왕(大王)이 개운포(開雲浦; 학성鶴城 서남쪽에 있으니 지금의 울주蔚州이다)에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낮에 물 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서 길을 잃었다. 왕이 괴상히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뢴다. "이것은 동해(東海) 용(龍)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원에게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게 했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으므로 그곳을 개운포라 했다.
동해의 용은 기뻐해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德)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의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가서 왕의 정사를 도우니 그의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했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로 처용의 아내를 삼아 머물러 있도록 하고, 또 급간(級干)이라는 관직(官職)까지 주었다. 처용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해서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남몰래 동침했다. 처용이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이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들어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 가랑이 넷일러라.
둘은 내해이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꼬.
그때 역신이 본래의 모양을 나타내어 처용의 앞에 꿇어앉아 말했다.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이제 잘못을 저질렀으나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왕은 서울로 돌아오자 이내 영취산(靈鷲山) 동쪽 기슭의 경치 좋은 곳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망해사(望海寺)라 했다. 또는 이 절을 신방사(新房寺)라 했으니 이것은 용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왕이 또 포석정(鮑石亭)에 갔을 때 남산(南山)의 신(神)이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좌우의 사람에겐 그 신이 보이지 않고 왕만이 혼자서 보았다. 사람이 나타나 앞에서 춤을 추니 왕 자신도 춤을 추면서 형상을 보였다. 신의 이름을 혹 상심(詳審)이라고도 했으므로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은 이 춤을 전해서 어무상심(御舞詳審), 또는 어무산신(御舞山神)이라 한다. 혹은 말하기를, 신이 먼저 나와서 춤을 추자 그 모습을 살펴 공인(工人)에게 명해서 새기게 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보이게 했기 때문에 상심(象審)이라고 했다 한다. 혹은 상염무(霜髥舞)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그 형상에 따라서 이름지은 것이다.
왕이 또 금강령(金剛嶺)에 갔을 때 북악(北岳)의 신이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를 옥도검(玉刀劍)이라 했다. 또 동례전(同禮殿)에서 잔치를 할 때에는 지신(地神)이 나와서 춤을 추었으므로 지백급간(地伯級干)이라 했다.
<어법집(語法集)>에 말하기를, "그때 산신(山神)이 춤을 추고 노래부르기를, '지리다도파(智理多都波)'라 했는데 '도파(都波)'라고 한 것은 대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미리 사태를 알고 많이 도망하여 도읍이 장차 파괴된다는 뜻이다"했다. 즉 지신과 산신은 나라가 장차 멸망할 것을 알기 때문에 춤을 추어 이를 경계한 것이나 나라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상서(祥瑞)가 나타났다 하여 술과 여색(女色)을 더욱 즐기다가 나라가 마침 내 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武王[古本作武康. 非也. 百濟無武康.] 무왕[고본작무강. 비야. 백제무무강.]
第三十武王. 名璋. 母寡居. 築室於京師南池邊. 池龍交通而生. 小名薯童. 器量難測. 常掘薯橅.
제삼십무왕. 명장. 모과거. 축실어경사남지변. 지룡교통이생. 소명서동. 기량난측. 상굴서橅.
賣爲活業. 國人因以爲名. 聞新羅眞平王第公主善花[一作善化.]美艶無雙. 剃髮來京師. 以薯橅餉
매위활업. 국인인이위명. 문신나진평왕제공주선화[일작선화.]미염무쌍. 체발내경사. 이서橅향
閭里群童. 郡童親附之. 乃作謠. 誘群童而唱之云. 善化公主主隱他密只嫁良置古薯童房乙夜矣卵
려리군동. 군동친부지. 내작요. 유군동이창지운. 선화공주주은타밀지가량치고서동방을야의난
乙抱遣去如童謠滿京. 達於宮禁. 百官極諫. 竄流公主於遠方. 將行. 王后以純金一斗贈行. 公主
을포견거여동요만경. 달어궁금. 백관극간. 찬류공주어원방. 장항. 왕후이순김일두증항. 공주
將至竄所. 薯童出拜途中. 將欲侍衛而行. 公主雖不識其從來. 偶爾信悅. 因此隨行. 潛通焉. 然
장지찬소. 서동출배도중. 장욕시위이항. 공주수불식기종내. 우이신열. 인차수항. 잠통언. 연
後知薯童名. 乃信童謠之驗. 同至百濟. 出王后所贈金. 將謀計活. 薯童大笑曰. 此何物也. 主曰.
후지서동명. 내신동요지험. 동지백제. 출왕후소증김. 장모계활. 서동대소왈. 차하물야. 주왈.
此是黃金. 可致百年之富. 薯童曰. 吾自小掘薯之地. 委積如泥土. 主聞大驚曰. 此是天下至寶.
차시황김. 가치백년지부. 서동왈. 오자소굴서지지. 위적여니토. 주문대경왈. 차시천하지보.
君今知金之所在. 則此寶輸送父母宮殿何如. 薯童曰可. 於是聚金. 積如丘陵. 詣龍華山師子寺知
군금지김지소재. 칙차보수송부모궁전하여. 서동왈가. 어시취김. 적여구능. 예룡화산사자사지
命法師所. 問輸金之計. 師曰. 吾以神力可輸. 將金來矣. 主作書, 幷金置於師子前. 師以神力. 一
명법사소. 문수김지계. 사왈. 오이신력가수. 장김내의. 주작서, 병김치어사자전. 사이신력. 일
夜輸置新羅宮中. 眞平王異神變. 尊敬尤甚. 常馳書問安否. 薯童由此得人心. 卽王位. 一日王與
야수치신나궁중. 진평왕리신변. 존경우심. 상치서문안부. 서동유차득인심. 즉왕위. 일일왕여
夫人. 欲幸師子寺. 至龍華山下大池邊. 彌勒三尊出現池中. 留駕致敬. 夫人謂王曰. 須創大伽藍
부인. 욕행사자사. 지룡화산하대지변. 미늑삼존출현지중. 류가치경. 부인위왕왈. 수창대가남
於此地. 固所願也. 王許之. 詣知命所. 問塡池事. 以神力一夜頹山塡也爲平地. 乃法像彌勒三會.
어차지. 고소원야. 왕허지. 예지명소. 문전지사. 이신력일야퇴산전야위평지. 내법상미늑삼회.
殿塔廊惫各三所創之. 額曰彌勒寺.[國史云王與寺.] 眞平王遣百工助之. 至今存其寺.[三國史云.
전탑낭비각삼소창지. 액왈미늑사.[국사운왕여사.] 진평왕견백공조지. 지금존기사.[삼국사운.
是法王之子. 而此傳之獨女之子. 未詳]
시법왕지자. 이차전지독녀지자. 미상]
→무왕(武王; 고본古本에는 무강武康이라고 했으나 잘못이다. 백제百濟에는 무강武康이 없다)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寡婦)가 되어 서울 남쪽 못 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던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항상 마[薯여]를 캐다가 파는 것으로 생업(生業)을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지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선화善化)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울로 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먹이니 이내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동요를 지어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善化公主)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방(薯童房)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童謠)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해서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보내게 하여 장차 떠나려 하는 데 왕후(王后)는 순금(純金)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도중에 서동이 나와 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저 우연히 믿고 좋아하니 서동은 그를 따라가면서 비밀히 정을 통했다. 그런 뒤에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가 맞는 것도 알았다. 함께 백제로 와서 모후(母后)가 준 금을 꺼내 놓고 살아 나갈 계획을 의논하자 서동이 크게 웃고 말했다. "이게 무엇이오?" 공주가 말했다. "이것은 황금이니 이것을 가지면 백 년의 부를 누릴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덩이처럼 쌓아 두었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면서 말했다. "그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보배이니 그대는 지금 그 금이 있는 곳을 아시면 우리 부모님이 계신 대궐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소이다." 이에 금을 모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용화산(龍華山) 사자사(師子寺)의 지명법사(知命法師)에게 가서 이것을 실어 보낼 방법을 물으니 법사가 말한다. "내가 신통(神通)한 힘으로 보낼 터이니 금을 이리로 가져 오시오." 이리하여 공주가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금을 사자사(師子寺) 앞에 갖다 놓았다. 법사는 신통한 힘으로 하룻밤 동안에 그 금을 신라 궁중으로 보내자 진평왕(眞平王)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어느날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려고 용화산(龍華山) 밑 큰 못 가에 이르니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수레를 멈추고 절을 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한다. "모름지기 여기에 큰 절을 지어 주십시오. 그것이 제 소원입니다." 왕은 그것을 허락했다. 곧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을 메울 일을 물으니 신비스러운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헐어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미륵삼존의 상(像)을 만들고 회전(會殿)과 탑(塔)과 낭무(廊무)를 각각 세 곳에 세우고 절 이름을 미륵사(彌勒寺; <국사國史>에서는 왕흥사王興寺라고 했다)라 했다. 진평왕이 여러 공인(工人)들을 보내서 그 역사를 도왔는데 그 절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삼국사三國史>에는 이 분을 법왕法王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과부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자세히 알 수 없다).
<권3>
芬皇寺千手大悲盲兒得眼 분황사천수대비맹아득안
景德王代. 漢奴里女希明之兒. 生五稔而忽盲. 一日其母抱兒詣芬皇寺左殿北壁篐千手大悲前. 令
경덕왕대. 한노리녀희명지아. 생오임이홀맹. 일일기모포아예분황사좌전배벽잡천수대비전. 령
兒作歌禱之. 遂得明. 其詞曰. 膝綔古召恊 二尸掌音毛乎支內良千手觀音叱前良中祈以支白屋尸
아작가도지. 수득명. 기사왈. 슬호고소협 이시장음모호지내량천수관음질전량중기이지백옥시
置內乎多千隱手□叱千隱目綔 一等下叱放一等綔除惡支二于萬隱吾羅一等沙隱賜以古只內乎叱等
치내호다천은수□질천은목호 일등하질방일등호제악지이우만은오나일등사은사이고지내호질등
邪阿邪也吾良遺知支賜尸等焉放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 讚曰竹馬瘳笙戱陌塵. 一朝雙碧失瞳人.
사아사야오량유지지사시등언방동의용옥시자비야근고. 찬왈죽마추생희맥진. 일조쌍벽실동인.
不因大士籾慈眼. 虛度楊花幾社春.
불인대사인자안. 허도양화기사춘.
→분황사 천수대비(芬皇寺千手大悲) 맹아득안(盲兒得眼)
경덕왕(景德王) 때에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희명(希明)이라는 여자의 아이가, 난 지 5년 만에 갑자기 눈이 멀었다. 어느날 어머니는 이 아이를 안고 분황사(芬皇寺) 좌전(左殿) 북쪽 벽에 그린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나가서 아이를 시켜 노래를 지어 빌게 했더니 멀었던 눈이 드디어 떠졌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무릎을 세우고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비옵나이다.
1,000손과 1,000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기를,
둘 다 없는 이몸이오니 하나만이라도 주시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시오면, 그 자비(慈悲) 얼마나 클 것인가.
찬(讚)해 말한다.
죽마(竹馬)·총생(총笙)의 벗 거리에서 놀더니,
하루아침에 두 눈 먼 사람 되었네.
대사(大士)가 자비로운 눈을 돌리지 않았다면,
몇 사춘(社春)이나 버들꽃 못 보고 지냈을까.
<권4>
良志使錫 양지사석
釋良志. 未詳祖考鄕邑. 唯現迹於善德王朝. 錫杖頭掛一布孱. 錫自飛至檀越家. 振拂而鳴. 戶知
석량지. 미상조고향읍. 유현적어선덕왕조. 석장두괘일포잔. 석자비지단월가. 진불이명. 호지
之納齋費. 孱滿則飛還. 故名其所住曰錫杖寺. 其神異莫測皆類此. 旁通雜譽. 神妙絶比. 又善筆
지납재비. 잔만칙비환. 고명기소주왈석장사. 기신리막측개류차. 방통잡예. 신묘절비. 우선필
札. 靈廟丈六三尊, 天王像, 幷殿塔之瓦. 天王寺塔下八部神將. 法林寺主佛三尊, 左右金剛神等.
찰. 령묘장륙삼존, 천왕상, 병전탑지와. 천왕사탑하팔부신장. 법림사주불삼존, 좌우김강신등.
皆所塑也. 書靈廟, 法林二寺額. 又嘗彫烩造一小塔. 竝造三千佛. 安其塔置於寺中, 致敬焉. 其
개소소야. 서령묘, 법림이사액. 우상조회조일소탑. 병조삼천불. 안기탑치어사중, 치경언. 기
塑靈廟之丈六也. 自入定以正受所對爲涑式. 故傾城士女爭運泥土. 風謠云. 來如來如來如. 來如
소령묘지장륙야. 자입정이정수소대위속식. 고경성사녀쟁운니토. 풍요운. 내여내여내여. 내여
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至今土人沃相役作皆用之. 蓋始于此. 像[初]成之
애반다나. 애반다의도량. 공덕수질여량내여. 지금토인옥상역작개용지. 개시우차. 상[초]성지
費. 入穀二萬三千七百碩.[或[云][改]金時租] 議曰. 師可謂才全德充. 而以大方, 隱於末技者也.
비. 입곡이만삼천칠백석.[혹[운][개]금시조] 의왈. 사가위재전덕충. 이이대방, 은어말기자야.
讚曰. 齋罷堂前錫杖閑. 靜裝爐鴨自焚檀. 殘經讀了無餘事. 聊塑圓容合掌看.
찬왈. 재파당전석장한. 정장노압자분단. 잔경독료무여사. 료소원용합장간.
→양지사석(良志使錫)
중 양지(良志)는 그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고, 오직 신라 선덕왕(宣德王) 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석장(錫杖) 끝에 포대(布帶) 하나를 걸어 두기만 하면 그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 시주(施主)의 집에 가서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다. 그 집에서 이를 알고 재(齋)에 쓸 비용을 여기에 넣는데, 포대가 차면 날아서 돌아온다. 때문에 그가 있던 곳을 석장사(錫杖寺)라고 했다.
양지의 신기하고 이상하여 남이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그는 또 한편으로 여러 가지 기예(技藝)에도 통달해서 신묘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또 필찰(筆札)에도 능하여 영묘사(靈廟寺) 장육삼존상(丈六三尊像)과 천왕상(天王像), 또 전탑(殿塔)의 기와와 천왕사(天王寺) 탑(塔) 밑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등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영묘사(靈廟寺)와 법림사(法林寺)의 현판을 썼고, 또 일찍이 벽돌을 새겨서 작은 탑 하나를 만들고, 아울러 삼천불(三千佛)을 만들어, 그 탑을 절 안에 모셔 두고 공경했다. 그가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상(丈六像)을 만들 때에는 입정(入定)해서 정수(正受)의 태도로 주물러서 만드니, 온 성 안의 남녀들이 다투어 진흙을 운반해 주었다. 그때 부른 풍요(風謠)는 이러하다.
왔도다. 왔도다. 인생은 서러워라.
서러워라 우리들은, 공덕(功德) 닦으러 왔네.
지금까지도 시골 사람들이 방아를 찧을 때나 다른 일을 할 때에는 모두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것은 대개 이때 시작된 것이다. 장육상(丈六像)을 처음 만들 때에 든 비용은 곡식 2만 3,700석이었다(혹은 이 비용이 금빛을 칠할 때 든 것이라고도 한다).
논평해 말한다. "양지 스님은 가위 재주가 온전하고 덕이 충만(充滿)했다. 그는 여러 방면의 대가(大家)로서 하찮은 재주만 드러내고 자기 실력은 숨긴 것이라 할 것이다."
찬(讚)해 말한다.
재(齋)가 파하여 법당 앞에 석장(錫杖)은 한가한데,
향로에 손질하고 혼자서 단향(檀香) 피우네.
남은 불경 다 읽자 더 할 일 없으니
소상(塑像) 만들어 합장하고 쳐다보네.
元曉不羈 원효불기
聖師元曉. 俗姓薛氏. 祖仍皮公. 亦云赤大公. 今赤大淵側有仍皮公廟. 父談捺乃末. 初示生于押
성사원효. 속성설씨. 조잉피공. 역운적대공. 금적대연측유잉피공묘. 부담날내말. 초시생우압
梁郡南,[今章山郡.] 佛地村北, 栗谷娑羅樹下. 村名佛地. 或作發智村.[俚云弗等乙村.] 娑羅樹
량군남,[금장산군.] 불지촌배, 률곡사나수하. 촌명불지. 혹작발지촌.[리운불등을촌.] 사나수
者. 諺云. 師之家本住此谷西南. 母旣娠而月滿. 適過此谷栗樹下. 忽分産. 而倉皇不能歸家. 且
자. 언운. 사지가본주차곡서남. 모기신이월만. 적과차곡률수하. 홀분산. 이창황불능귀가. 차
以夫衣掛樹. 而寢處其中. 因號樹曰娑羅樹. 其樹之實亦異於常. 至捓稱娑羅栗. 古傳. 昔有主寺
이부의괘수. 이침처기중. 인호수왈사나수. 기수지실역리어상. 지야칭사나률. 고전. 석유주사
者. 給寺奴一人, 一夕饌栗二枚. 奴訟于官. 官吏桰在之. 取栗檢之. 一枚盈一鉢. 乃反自判給一
자. 급사노일인, 일석찬률이매. 노송우관. 관리桰재지. 취률검지. 일매영일발. 내반자판급일
枚. 故因名栗谷. 師旣出家. 捨其宅爲寺. 名初開. 樹之旁置寺曰娑羅. 師之行狀云. 是京師人. 從
매. 고인명률곡. 사기출가. 사기댁위사. 명초개. 수지방치사왈사나. 사지항상운. 시경사인. 종
祖考也. 唐僧傳云. 本下湘州之人. 按麟德二年間. 文武王割上州下州之地. 置敕良州. 則下州乃
조고야. 당승전운. 본하상주지인. 안린덕이년간. 문무왕할상주하주지지. 치칙량주. 칙하주내
今之昌寧郡也. 押梁郡本下州之屬縣. 上州則今尙州. 亦作湘州也. 佛地村今屬慈仁縣. 則乃押梁
금지창녕군야. 압량군본하주지속현. 상주칙금상주. 역작상주야. 불지촌금속자인현. 칙내압량
之所分開也. 師生小名誓幢. 第名新幢.[幢者俗云毛也.] 初母夢流星入懷. 因而有娠. 及將産. 有
지소분개야. 사생소명서당. 제명신당.[당자속운모야.] 초모몽류성입회. 인이유신. 급장산. 유
五色雲覆地. 眞平王三十九年, 大業十三年丁丑歲也. 生而穎異. 學不從師. 其遊方始末, 弘通茂
오색운복지. 진평왕삼십구년, 대업십삼년정축세야. 생이영리. 학불종사. 기유방시말, 홍통무
跡. 具載唐傳與行狀. 不可具載. 唯鄕傳所記有一二段異事. 師嘗一日風顚唱街云. 誰許沒柯斧.
적. 구재당전여항상. 불가구재. 유향전소기유일이단리사. 사상일일풍전창가운. 수허몰가부.
我斫支天柱. 人皆未喩. 時太宗聞之曰. 此師殆欲得貴婦, 産賢子之謂也. 國有大賢. 利莫大焉.
아작지천주. 인개미유. 시태종문지왈. 차사태욕득귀부, 산현자지위야. 국유대현. 리막대언.
時瑤石宮[今學院是也.]有寡公主. 勅宮吏覓曉引入. 宮吏奉勅將求之. 已自南山來過蚊川橋[沙川.
시요석궁[금학원시야.]유과공주. 칙궁리멱효인입. 궁리봉칙장구지. 이자남산내과문천교[사천.
俗云年川. 又蚊川. 又橋名楡橋也.]遇之. 佯墮水中濕衣袴. 吏引師於宮. 眦衣朜峷. 因留宿焉. 公
속운년천. 우문천. 우교명유교야.]우지. 양타수중습의고. 리인사어궁. 자의朜신. 인류숙언. 공
主果有娠. 生薛聰. 聰生而睿敏. 博通經史. 新羅十賢中一也. 以方音通會華夷方俗物名. 訓解六
주과유신. 생설총. 총생이예민. 박통경사. 신나십현중일야. 이방음통회화이방속물명. 훈해육
經文學. 至今海東業明經者. 傳受不絶. 曉旣失戒生聰. 已後易俗服. 自號小姓居士. 偶得優人舞
경문학. 지금해동업명경자. 전수불절. 효기실계생총. 이후역속복. 자호소성거사. 우득우인무
弄大瓠. 其狀圴奇. 因其形製爲道具. 以華嚴經一切無楌人, 一道出生死, 命名曰無楌. 仍作歌流
농대호. 기상작기. 인기형제위도구. 이화엄경일절무안인, 일도출생사, 명명왈무안. 잉작가류
于世. 嘗持此. 千村萬落且歌且舞. 化詠而師. 使桑樞瓮涨篩糅之輩. 皆識佛陀之號. 咸作南無之
우세. 상지차. 천촌만낙차가차무. 화영이사. 사상추옹창사유지배. 개식불타지호. 함작남무지
稱. 曉之化大矣哉. 其生緣之村名佛地, 寺名初開, 自稱元曉者. 蓋初輝佛日之意也. 元曉亦是方
칭. 효지화대의재. 기생연지촌명불지, 사명초개, 자칭원효자. 개초휘불일지의야. 원효역시방
言也. 當時人皆以鄕言稱之始旦也. 會住芬皇寺. 纂華嚴曤. 至第四十廻向品. 終乃絶筆. 又嘗因
언야. 당시인개이향언칭지시단야. 회주분황사. 찬화엄확. 지제사십회향품. 종내절필. 우상인
訟. 分軀於百松. 故皆謂位階初地矣. 亦因海龍之誘. 承詔於路上, 撰三昧經曤. 置筆硯於牛之兩
송. 분구어백송. 고개위위계초지의. 역인해룡지유. 승조어노상, 찬삼매경확. 치필연어우지양
角上. 因謂之角乘. 亦表本始二覺之微旨也. 大安法師排來而粘紙. 亦知音唱和也. 旣入寂. 聰碎
각상. 인위지각승. 역표본시이각지미지야. 대안법사배내이점지. 역지음창화야. 기입적. 총쇄
遺骸, 塑眞容. 安芬皇寺. 以表敬慕漠天之志. 聰時旁禮. 像忽廻顧. 至今猶顧矣. 曉嘗所居穴寺
유해, 소진용. 안분황사. 이표경모막천지지. 총시방례. 상홀회고. 지금유고의. 효상소거혈사
旁. 有聰家之墟云. 讚曰. 角乘初開三昧軸. 舞壺終掛萬街風. 月明瑤石春眼去. 門掩芬皇顧影空.
방. 유총가지허운. 찬왈. 각승초개삼매축. 무호종괘만가풍. 월명요석춘안거. 문엄분황고영공.
廻顧至.
회고지.
→원효불기(元曉不羈)
성사(聖師) 원효(元曉)의 속성(俗姓)은 설씨(薛氏)이다. 조부는 잉피공(仍皮公) 또는 적대공(赤大公)이라고도 하는데 지금 적대연(赤大淵) 옆에 잉피공의 사당이 있다. 아버지는 담날내말(談捺乃末)이다. 원효는 처음에 압량군(押梁郡)의 남쪽(지금의 장산군章山郡) 불지촌(佛地村) 북쪽 율곡(栗谷)의 사라수(裟羅樹)밑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의 이름은 불지(佛地)인데 혹은 발지촌(發智村; 속언俗言에 불등을촌弗等乙村이라 한다)이라고도 한다. 사라수란 것을 속언에 이렇게 말한다. "스님의 집이 본래 이 골짜기 서남쪽에 있었다. 그 어머니가 태기가 있어 이미 만삭인데, 마침 이 골짜기에 있는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산하였으므로 몹시 급한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고 그 속에서 지냈기 때문에 이 나무를 사라수라 했다." 그 나무의 열매가 또한 이상하여 지금도 사라율(裟羅栗)이라 한다. 예로부터 전하기를, 옛적에 절을 주관하는 자가 절의 종 한 사람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밤 두 알씩을 주었다. 종이 적다고 관청에 호소하자 관리는 괴상히 여겨 그 밤을 가져다가 조사해 보았더니 한 알이 바리 하나에 가득 차므로 도리어 한 알씩만 주라고 판결했다. 이런 이유로 율곡(栗谷)이라고 했다.
스님은 이미 중이 되자 그 집을 희사(喜捨)해서 절로 삼고 이름을 초개사(初開寺)라고 했다. 또 사라수 곁에 절을 세우고 사라사(裟羅寺)라고 했다. 스님의 행장(行狀)에는 서울 사람이라고 했으나 이것은 조부가 살던 곳을 따른 것이고, <당승전(唐僧傳)>에는 본래 하상주(下湘州) 사람이라고 했다. 상고해 보건대, 인덕(麟德) 2년 사이에 문무왕(文武王)이 상주(上州)와 하주(下州)의 땅을 나누어 삽량주(삽良州)를 두었는데 하주는 곧 지금의 창령군(昌寧郡)이요, 압량군(押梁郡)은 본래 하주의 속현(屬縣)이다. 상주는 지금의 상주(尙州)이니 상주(湘州)라고도 한다. 불지촌은 지금 자인현(慈仁縣)에 속해 있으니, 바로 압량군에서 나뉜 곳이다. 스님의 아명(兒名)은 서당(誓幢)이요, 또 한 가지 이름은 신당(新幢; 당幢은 우리말로 모毛라고 한다)이다.
처음에 어머니 꿈에 유성(流星)이 품 속으로 들어오더니 이내 태기가 있었으며, 장차 해산하려 할 때는 오색 구름이 땅을 덮었으니, 진평왕(眞平王) 39년 대업(大業) 13년 정축(丁丑; 617)이었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남보다 뛰어나서 스승을 따라 배울 것이 없었다. 그의 유방(遊方)의 시말(始末)과 불교를 널리 편 큰 업적들은 <당승전(唐僧傳)>과 그의 행장에 자세히 실려있으므로 여기에는 모두 싣지 않고 오직 향전(鄕傳)에 있는 한두 가지 이상한 일만을 기록한다.
스님이 일찍이 어느날 풍전(風顚)을 하여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리겠는가.
나는 하늘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
사람들이 아무도 그 노래의 뜻을 알지 못했다. 이때 태종(太宗)이 이 노래를 듣고 말했다. "이 스님은 필경 귀부인(貴婦人)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賢人)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이때 요석궁(瑤石宮; 지금의 학원學院이 이것이다)에 과부 공주(公主)가 있었는데 왕이 궁리(宮吏)에게 명하여 원효(元曉)를 찾아 데려가라 했다. 궁리가 명령을 받들어 원효를 찾으니, 그는 이미 남산(南山)에서 내려와 문천교(蚊川橋; 사천沙川이니 사천沙川을 속담에는 모천牟川, 또는 문천蚊川이라 한다. 또 다리 이름을 유교楡橋라 한다)를 지나다가 만났다. 이때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적셨다. 궁리가 원효를 궁에 데리고 가서 옷을 말리고 그곳에 쉬게 했다. 공주는 과연 태기가 있더니 설총(薛聰)을 낳았다. 설총은 나면서부터 지혜롭고 민첩하여 경서(經書)와 역사에 널리 통달하니 신라 10현(賢) 중의 한 사람이다. 방언(方言)으로 중국과 외이(外夷)의 각 지방 풍속과 물건 이름 등에도 통달하여 육경(六經)과 문학(文學)을 훈해(訓解)했으니, 지금도 우리 나라에서 명경(明經)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이 이를 전수(傳受)해서 끊이지 않는다.
원효는 이미 계(戒)를 잃어 총(聰)을 낳은 후로는 속인(俗人)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고 이름했다. 그는 우연히 광대들이 가지고 노는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이 괴상했다. 원효는 그 모양을 따라서 도구(道具)를 만들어 <화엄경(華嚴經)> 속에 말한, "일체의 무애인(無애人)은 한결같이 죽고 사는 것을 벗어난다"는 문구를 따서 이름을 무애(無애)라 하고 계속하여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 어느날 이 도구를 가지고 수많은 마을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교화(敎化)시키고 읊다가 돌아오니, 이 때문에 상추분유(桑樞분유) 확후(확候)의 무리들로 하여금 모두 부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타佛)을 부르게 하였으니 원효(元曉)의 교화야말로 참으로 컸다 할 것이다. 그가 탄생한 마을 이름을 불지촌(佛地村)이라 하고, 절 이름을 초개사(初開寺)라 하였으며 스스로 원효라 한 것은 모두 불교를 처음 빛나게 했다는 뜻이다. 원효도 역시 방언이니, 당시 사람들은 모두 향언(鄕言)의 새벽이라고 했다.
그는 일찍이 분황사(芬皇寺)에 살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지었는데, 제4권 십회향품(十廻向品)에 이르러 마침내 붓을 그쳤다. 또 일찍이 송사(訟事)로 인해서 몸을 백송(百松)으로 나눴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이를 위계(位階)의 초지(初地)라고 말했다. 또한 바다 용의 권유로 해서 노상에서 조서(詔書)를 받아 <삼매경소(三昧經疏)>를 지었는데, 붓과 벼루를 소의 두 뿔 위에 놓았으므로 각승(角乘)이라 했다. 이것은 또한 본시이각(本始二覺)이 숨어 있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대안법사(大安法師)가 이것을 헤치고 와서 종이를 붙였는데 이것은 또한 지음(知音)하여 서로 창화(唱和)한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총이 그 유해(遺骸)를 부수어 소상(塑像)으로 진용(眞容)을 만들어 분황사에 모시고, 공경하고 사모하여 종천(終天)의 뜻을 표했다. 설총이 그때 곁에서 예배하자 소상이 갑자기 돌아다보았는데, 지금까지도 돌아다본 그대로 있다. 원효가 일찍이 살던 혈사(穴寺) 옆에 설총이 살던 집 터가 있다고 한다.
찬(讚)해 말한다.
각승(角乘)은 처음으로 <삼매경(三昧境)>의 축(軸)을 열었고,
무호(舞壺)는 마침내 1만 거리 바람에 걸었네.
달 밝은 요석궁(瑤石宮)에 봄 잠 깊더니,
문 닫힌 분황사(芬皇寺)엔 돌아다보는 소상(塑像)만 비었네.
心地繼祖 심지계조
釋心地. 辰韓第四十一主憲德大王金氏之子也. 生而孝悌. 天性盓睿. 志學之年. 落采從師. 拳懃
석심지. 신한제사십일주헌덕대왕김씨지자야. 생이효제. 천성우예. 지학지년. 낙채종사. 권근
于道. 寓止中岳.[今公山.] 適聞俗離山深公傳表律師佛骨簡子. 設果訂法會. 決意披尋. 旣至後
우도. 우지중악.[금공산.] 적문속리산심공전표률사불골간자. 설과정법회. 결의피심. 기지후
期. 不許瑻例. 乃席地垽庭. 隨衆禮懺. 經七日. 天大雨雪. 所立地方十尺許. 雪飄不下. 衆見其神
기. 불허瑻례. 내석지은정. 수중례참. 경칠일. 천대우설. 소립지방십척허. 설표불하. 중견기신
異. 許引入堂地. 紉謙稱恙. 退處房中. 向堂潛禮. 狪斎俱血. 類表公之仙溪山也. 地藏菩薩日來
이. 허인입당지. 인겸칭양. 퇴처방중. 향당잠례. 동재구혈. 류표공지선계산야. 지장보살일내
問慰. 喚席罷還山. 途中見二簡子貼在衣褶間. 持廻告於深. 深曰. 簡在函中. 那得至此. 檢之封
문위. 환석파환산. 도중견이간자첩재의습간. 지회고어심. 심왈. 간재함중. 나득지차. 검지봉
題依舊. 開視亡矣. 深深異之. 重襲而藏之. 又行如初. 再廻告之. 深曰. 佛意在子. 子其奉行. 乃
제의구. 개시망의. 심심리지. 중습이장지. 우항여초. 재회고지. 심왈. 불의재자. 자기봉항. 내
授簡子. 地頂戴歸山. 岳神率二仙子. 迎至山椒. 引地坐於椎上. 歸伏椎下. 謹受下戒, 地曰. 今將
수간자. 지정대귀산. 악신률이선자. 영지산초. 인지좌어추상. 귀복추하. 근수하계, 지왈. 금장
擇衣奉安聖簡. 非吾輩所能指定. 請與三君, 憑高擲簡以卜之. 乃與神等陟峰点, 向西擲之. 簡乃
택의봉안성간. 비오배소능지정. 청여삼군, 빙고척간이복지. 내여신등척봉점, 향서척지. 간내
風槎而飛. 時神作歌曰. 楝椎遠退灲平兮. 落葉飛散生明兮. 覓得佛骨簡子兮. 邀於淨處投誠兮.
풍사이비. 시신작가왈. 련추원퇴灲평혜. 낙섭비산생명혜. 멱득불골간자혜. 요어정처투성혜.
旣唱而得簡於林泉中. 卽其地構堂安之. 今桐華寺籤堂北有小井是也. 本朝睿王嘗取迎聖簡. 致內
기창이득간어림천중. 즉기지구당안지. 금동화사첨당배유소정시야. 본조예왕상취영성간. 치내
瞻敬. 忽失九者一簡. 以牙代之. 送還本寺. 今則漸變同一色. 難卞新古. 其質乃非牙非玉. 按占
첨경. 홀실구자일간. 이아대지. 송환본사. 금칙점변동일색. 난변신고. 기질내비아비옥. 안점
察經上卷. 旀一百八十九簡之名. 一者求上乘得不退. 二者所求果現當證. 第三第四求中下乘得不
찰경상권. 며일백팔십구간지명. 일자구상승득불퇴. 이자소구과현당증. 제삼제사구중하승득불
退. 五者求神通得成就. 六者修四梵得成就. 七者修世禪得成就. 八者所欲受得妙戒. 九者所曾受
퇴. 오자구신통득성취. 륙자수사범득성취. 칠자수세선득성취. 팔자소욕수득묘계. 구자소증수
得戒具.[以此文訂. 知慈氏所言新得戒者. 謂今生始得戒也, 舊得戒者. 謂過去曾受, 今生又增受
득계구.[이차문정. 지자씨소언신득계자. 위금생시득계야, 구득계자. 위과거증수, 금생우증수
也. 非謂修生本有之新舊也.] 十者求下乘未住信, 次求中乘未住信. 如是乃至一百七十二. 皆過現
야. 비위수생본유지신구야.] 십자구하승미주신, 차구중승미주신. 여시내지일백칠십이. 개과현
世中. 或善或惡得失事也. 第一百七十三者. 捨身已入地獄.[巳上皆未來之果也.] 一百七十四者.
세중. 혹선혹악득실사야. 제일백칠십삼자. 사신이입지옥.[사상개미내지과야.] 일백칠십사자.
死已作畜生. 如是乃至餓鬼修羅人人王天天王聞法出家値聖僧生兜率生淨土尋見佛住下乘住中乘
사이작축생. 여시내지아귀수나인인왕천천왕문법출가치성승생두률생정토심견불주하승주중승
住上乘得解脫第一百八十九等是也. [上言住下乘至上乘得不退. 今言上乘得解脫等. 以此爲別
주상승득해탈제일백팔십구등시야. [상언주하승지상승득불퇴. 금언상승득해탈등. 이차위별
爾.] 皆三世善惡果報差別之相. 以此占看. 得與心所行事相當. 則爲感應. 否則爲不至心. 名爲虛
이.] 개삼세선악과보차별지상. 이차점간. 득여심소항사상당. 칙위감응. 부칙위불지심. 명위허
謬. 則此八九二簡. 但從百八十九中而來者也. 而宋傳但云百八籤子. 何也. 恐認彼百八煩惱之名
류. 칙차팔구이간. 단종백팔십구중이내자야. 이송전단운백팔첨자. 하야. 공인피백팔번뇌지명
而稱之. 不揆尋經文爾. 又按本朝文士金寬毅所撰王代宗錄二卷云. 羅末. 新羅大德釋盓. 獻太祖
이칭지. 불규심경문이. 우안본조문사김관의소찬왕대종녹이권운. 나말. 신나대덕석우. 헌태조
以表律師袈裟一領, 戒簡百八十九枚. 今與桐華寺所傳簡子, 未詳同異. 讚曰. 生長金閨早脫籠.
이표률사가사일령, 계간백팔십구매. 금여동화사소전간자, 미상동리. 찬왈. 생장김규조탈농.
儉懃聰惠自天鍾. 滿庭積雪偸神簡. 來放桐華最上峰.
검근총혜자천종. 만정적설투신간. 내방동화최상봉.
→심지계조(心地繼祖)
중 심지(心地)는 진한(辰韓) 제41대 헌덕대왕(憲德大王) 김씨(金氏)의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효성과 우애가 깊고 천성이 맑고 지혜가 있었다.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서 불도(佛道)에 부지런했다. 중악(中岳; 지금의 공산公山)에 가서 살고 있는데 마침 속리산(俗離山)의 심공(深公)이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전해 받아서 과정법회(果訂法會)를 연다는 말을 듣고, 뜻을 결정하여 찾아갔으나 이미 날짜가 지났기 때문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이에 땅에 앉아서 마당을 치면서 신도(信徒)들을 따라 예배하고 참회했다. 7일이 지나자 큰 눈이 내렸으나 심지(心地)가 서 있는 사방 10척 가량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그 신기하고 이상함을 보고 당(堂)에 들어오기를 허락했으나 심지는 사양하여 거짓 병을 칭탁하고 방 안에 물러앉아 당을 향해 조용히 예배했다. 그의 팔꿈치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마치 진표공(眞表公)이 선계산(仙溪山)에서 피를 흘리던 일과 같았는데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매일 와서 위문했다. 법회가 끝나고 산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옷깃 사이에 간자(簡子) 두 개가 끼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가지고 돌아가서 심공(深公)에게 아뢰니 영심(永深)이 말하기를, "간자는 함 속에 들어 있는데 그럴 리가 있는가."하고 조사해 보니 함은 봉해 둔 대로 있는데 열고 보니 간자는 없었다. 심공이 매우 이상히 여겨 다시 간자를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다. 심지가 또 길을 가는데 간자가 먼저와 같았다. 다시 돌아와서 아뢰니 심공이 말하기를, "부처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받들어 행하도록 하라"하고 간자를 그에게 주었다. 심지가 머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오니 중악의 신이 선자(仙子) 둘을 데리고 산꼭대기에서 심지를 맞아 그를 인도하여 바위 위에 앉히고는 바위 밑으로 돌아가 엎드려서 공손히 정계(正戒)를 받았다. 이때 심지가 말했다. "이제 땅을 가려서 부처님과 간자를 모시려 하는데, 이것은 우리들만이 정할 일이 못되니 그대들 셋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서 간지를 던져 자리를 점치도록 하자." 이에 신들과 함께 산마루로 올라가서 서쪽을 향하여 간자를 던지니, 간자는 바람에 날아간다. 이때 신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막혔던 바위 멀리 물러가니 숫돌처럼 평평하고,
낙엽이 날아 흩어지니 앞길이 훤해지네.
불골(佛骨) 간자(簡子)를 찾아 얻어서,
깨끗한 곳 찾아 정성드리려네.
노래를 마치자 간자를 숲속 샘에서 찾아 곧 그 자리에 당(堂)을 짓고 간자를 모셨으니, 지금 동화사(桐華寺) 첨당(籤堂)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 이것이다.
본조(本朝) 예종(睿宗)이 일찍이 부처의 간자를 맞아 대궐 안에서 예배했는데, 갑자기 아홉 번째 간자 하나를 잃어 아간(牙簡)으로 대신하여 본사(本寺)에 돌려보냈더니, 지금은 이것이 점점 변해서 같은 빛이 되어 새것과 옛것을 분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바탕은 상아도 옥도 아니다.
<점찰경(占察經)> 상권(上卷)을 상고해 보면 189개 간자(簡子)의 이름이 있는데 이러하다. 1은 상승(上乘)을 구해서 불퇴위(不退位)를 얻은 것이요, 2는 구하는 과(果)가 마땅한 증(證)을 나타내는 것이요, 제3과 제4는 중승(中乘)과 하승(下乘)을 구해서 불퇴위(不退位)를 얻은 것이요, 5는 신통력(神通力)을 구해서 성취함이요, 6은 사범(四梵)을 구해서 성취함이요, 7은 세선(世禪)을 닦아 성취함이요, 8은 받고 싶은 묘계(妙戒)를 얻음이요, 9는 일찍이 받은 구계(具戒)를 얻음이요(이 글을 가지고 고정考訂한다면, 미륵보살彌勒菩薩이 말한, '새로 얻은 계戒'는 금세今世에 처음 얻는 계戒를 말하는 것이요, '옛날 얻은 계戒'는 과거세過去世에 일찍이 받았다가 금세今世에 또 더 받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생본유修生本有의 신구新舊를 말한 것이 아님을 알겠다), 10은 하승(下乘)을 구하며 아직 신심(信心)에 살지 않는 것이요, 다음은 중승(中乘)을 구하여 아직 신심에 살지 않음이다. 이와 같이 해서 제172까지는 모두 과거세(過去世)나 현세(現世) 사이에 혹 착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혹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 일들이다. 제173은 몸을 버려 이미 지옥에 들어감이요(이상은 모두 미래未來에의 과果이다), 제174는 죽은 후에 축생(畜生)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아귀(餓鬼)·수라(修羅)·인(人)·인왕(人王)·천(天)·천왕(天王)에까지 미치고, 불법(佛法)을 들음, 출가(出家), 성승(聖僧)을 만남,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남, 정토(淨土)에 태어남, 부처를 찾아뵘, 하승(下乘)에 머무름, 중승에 머무름, 상승에 머무름, 해탈(解脫)을 얻음의 제189 등이 이것이다(위에서는 하승下乘에 머무름에서부터 상승上乘에서 불퇴전不退轉함을 얻음까지 말했고, 이제 상승上乘에서 해탈解脫을 얻음 등을 말함은 이것으로 분별된다). 이들은 모두 삼세(三世)의 선악과보(善惡果報)의 차별의 모습이다.
이것으로 점을 쳐 보면, 마음이 행하려고 한 일과 간자가 서로 맞으면 감응(感應)하고 그렇지 못하면 지극한 마음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이것을 허류(虛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8과 9의 두 간자는 오직 189개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송전(宋傳)>에서는 다만 108 첨자(籤子)라고만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필경 저 백팔번뇌(百八煩惱)의 명칭으로 알고 말한 것 같다. 그리고 또 경문(經文)을 상고해 보지도 않은 것 같다.
또 상고해 보면, 본조(本朝)의 문사(文士)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왕대종록(王代宗錄)> 2권에 신라 말년의 고승(高僧) 석충(釋沖)이 고려 태조(太祖)에게 진표율사(眞表律師)의 가사 한 벌과 계간자(戒簡子) 189개를 바쳤다고 써 있다. 이것이 지금 동화사(桐華寺)에 전해 오는 간자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찬(讚)해 말한다.
금규(金閨) 속에서 자랐건만 일찍 속박을 벗어났고,
부지런함과 총명함 하늘이 주었네.
뜰에 가득 쌓인 눈 속에서 간자를 뽑아,
동화산(桐華山) 높은 봉우리에 갖다 놓았네.
<권5>
廣德嚴莊 광덕엄장
文武王代. 有沙門名廣德, 嚴莊二人友善. 日夕約曰. 先歸安養者須告之. 德隱居芬皇西里.[或云.
문무왕대. 유사문명광덕, 엄장이인우선. 일석약왈. 선귀안양자수고지. 덕은거분황서리.[혹운.
皇龍寺有西去房. 未知孰是.] 蒲鞋爲業. 挾妻子而居. 莊庵栖南岳. 大種力耕. 一日, 日影拖紅.
황룡사유서거방. 미지숙시.] 포혜위업. 협처자이거. 장암서남악. 대종력경. 일일, 일영타홍.
松陰靜暮. 窓外有聲, 報云. 某已四往矣. 惟君好住. 速從我來. 莊排嫰而出顧之. 雲外有天樂聲.
송음정모. 창외유성, 보운. 모이사왕의. 유군호주. 속종아내. 장배눈이출고지. 운외유천낙성.
光明屬地. 明日歸訪其居. 德果亡矣. 於是乃與其婦收骸. 同營蒿里. 旣事. 乃謂婦曰. 夫子逝矣.
광명속지. 명일귀방기거. 덕과망의. 어시내여기부수해. 동영호리. 기사. 내위부왈. 부자서의.
偕處何如. 婦曰可. 遂留. 夜將宿欲通焉. 婦夘之曰. 師求淨土. 可謂求魚緣木. 莊驚桰在問曰. 德
해처하여. 부왈가. 수류. 야장숙욕통언. 부夘지왈. 사구정토. 가위구어연목. 장경桰재문왈. 덕
旣乃爾. 予又何妨. 婦曰. 夫子與我. 同居十餘載未嘗一夕同床而枕. 況觸汚乎. 但每夜端身正坐.
기내이. 여우하방. 부왈. 부자여아. 동거십여재미상일석동상이침. 황촉오호. 단매야단신정좌.
一聲念阿彌瞜佛號. 或作十六觀. 觀旣熟. 明月入戶. 時昇其光. 加趺於上. 竭誠若此. 雖欲勿西
일성념아미루불호. 혹작십륙관. 관기숙. 명월입호. 시승기광. 가부어상. 갈성야차. 수욕물서
奚往. 夫適千里者, 一步可規. 今師之觀可云東矣. 西則未可知也. 莊愧姖而退. 便詣元曉法師處.
해왕. 부적천리자, 일보가규. 금사지관가운동의. 서칙미가지야. 장괴거이퇴. 변예원효법사처.
懇求津要. 曉作敠觀法誘之. 藏於是潔己悔責. 一意修觀. 亦得西昇. 敠觀在曉師本傳, 與海東僧
간구진요. 효작철관법유지. 장어시결기회책. 일의수관. 역득서승. 철관재효사본전, 여해동승
傳中. 其婦乃芬皇寺之婢. 蓋十九應身之一德. 嘗有歌云. 月下伊底亦西方念丁去賜里遣無量壽佛
전중. 기부내분황사지비. 개십구응신지일덕. 상유가운. 월하이저역서방념정거사리견무량수불
前乃惱叱古音[鄕言云報言也.] 多可支白遣賜立誓音深史隱尊衣希仰支兩手集刀花乎白良願往生
전내뇌질고음[향언운보언야.] 다가지백견사립서음심사은존의희앙지량수집도화호백량원왕생
願往生慕人有如白遣賜立阿邪此身遺也置遣四十八大願成遣賜去.
원왕생모인유여백견사립아사차신유야치견사십팔대원성견사거.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문무왕(文武王) 때에 중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 사이가 좋아 밤낮으로 약속했다. "먼저 안양(安養)으로 돌아가는 자는 모름지기 서로 알리도록 하지." 광덕은 분황(芬皇) 서리(西里; 혹은 황룡사皇龍寺에 서거방西去方이 있다고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에 숨어 살면서 신 삼은 것으로 업을 삼아, 처자를 데리고 살았다. 엄장은 남악(南岳)에 암자를 짓고 살면서 나무를 베어 불태우고 농사를 지었다.
어느날 해 그림자가 붉은빛을 띠고 소나무 그늘이 고요히 저물었는데, 창밖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이미 서쪽으로 가니 그대는 잘 살다가 속히 나를 따라오라." 엄장이 문을 밀치고 나가 보니 구름 밖에 천악(天樂) 소리가 들리고 밝은 빛이 땅에 드리웠다. 이튿날 광덕이 사는 곳을 찾아갔더니 광덕은 과연 죽어 있다. 이에 그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호리(蒿里)를 마치고 부인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어떻겠소." 광덕의 아내도 좋다고 하고 드디어 그 집에 머물렀다. 밤에 자는데 관계하려 하자 부인은 이를 거절한다. "스님께서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구하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장이 놀라고 괴이히 여겨 물었다. "광덕도 이미 그러했거니 내 또한 어찌 안 되겠는가." 부인은 말했다. "남편은 나와 함께 십여 년을 같이 살았지만 일찍이 하룻밤도 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거늘, 더구나 어찌 몸을 더럽히겠습니까. 다만 밤마다 단정히 앉아서 한결같은 목소리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불렀습니다. 또 혹은 십륙관(十六觀)을 만들어 미혹(迷惑)을 깨치고 달관(達觀)하여 밝은 달이 창에 비치면 때때로 그 빛에 올라 가부좌(跏趺坐)하였습니다. 정성을 기울임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서방정토(西方淨土)로 가지 않으려고 한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체로 천릿길을 가는 사람은 그 첫걸음부터 알 수가 있는 것이니, 지금 스님의 하는 일은 동방으로 가는 것이지 서방으로 간다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엄장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 물러나 그 길로 원효법사(元曉法師)의 처소로 가서 진요(津要)를 간곡하게 구했다. 원효는 삽관법(삽觀法)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다. 엄장은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한 마음으로 도를 닦으니 역시 서방정토로 가게되었다. 삽관법은 원효법사의 본전(本傳)과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 속에 있다.
그 부인은 바로 분황사의 계집종이니, 대개 관음보살 십구응신(十九應身)의 하나였다. 광덕에게는 일찍이 노래가 있었다.
달아, 서방까지 가시나이까,
무량수불(無量壽佛) 앞에 말씀(우리말로 보언報言을 말함) 아뢰소서.
다짐 깊은 부처님께 두손모아,
원왕생(願往生)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아뢰소서.
아아, 이 몸 남겨 두고 사십팔원(四十八願)이 이루어질까
月明師兜率歌 월명사두률가
景德王十九年庚子四月朔. 二日拄現. 挾旬不滅. 日官奏請緣僧, 作散花功德則可禳. 於是潔壇於
경덕왕십구년경자사월삭. 이일주현.협순불멸.일관주청연승, 작산화공덕칙가양. 어시결단어조
朝元殿. 駕幸靑陽樓. 望緣僧. 時有月明師, 行于阡陌時之南路. 王使召之. 命開壇作啓. 明奏云.
원전. 가행청양누. 망연승. 시유월명사, 항우천맥시지남노. 왕사소지. 명개단작계. 명주운.
臣僧但屬於國仙之徒. 只解鄕歌. 不閑聲梵. 王曰. 旣卜緣僧. 雖用鄕歌可也. 明乃作兜率歌賦之.
신승단속어국선지도. 지해향가. 불한성범. 왕왈. 기복연승. 수용향가가야. 명내작두률가부지.
其詞曰. 今日此矣散花唱良巴寶白乎隱花良汝隱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彌勒座主陪立羅良.
기사왈. 금일차의산화창량파보백호은화량여은직등은심음의명질사이악지미늑좌주배립나량.
解曰. 龍樓此日散花歌. 挑送靑雲一片花. 殷重直心之所使. 遠邀兜率大僊家. 今俗謂此爲散花歌.
해왈. 룡누차일산화가. 도송청운일편화. 은중직심지소사. 원요두률대선가. 금속위차위산화가.
誤矣. 宜云兜率歌. 別有散花歌. 文多不載. 旣而日■在卽滅. 王嘉之. 賜品茶一襲, 水精念珠百
오의. 의운두률가. 별유산화가. 문다불재. 기이일■재즉멸. 왕가지. 사품다일습, 수정념주백
八箇. 忽有一童子. 儀形鮮潔. 墦奉茶珠. 從殿西小門出. 明謂是內宮之使. 王謂師之從者. 及玄
팔개. 홀유일동자. 의형선결. 번봉다주. 종전서소문출. 명위시내궁지사. 왕위사지종자. 급현
徵而俱非. 王甚異之. 使人追之. 童入內院塔中而隱. 茶珠在南壁篐慈氏像前. 知明之至德至誠,
징이구비. 왕심리지. 사인추지. 동입내원탑중이은. 다주재남벽잡자씨상전. 지명지지덕지성,
能昭假于至聖也如此. 朝野莫不聞知. 王益敬之. 更■絹一百疋. 以表鴻誠. 明又嘗爲亡妹營齋.
능소가우지성야여차. 조야막불문지. 왕익경지. 갱■견일백필. 이표홍성. 명우상위망매영재.
作鄕歌祭之. 忽有驚祝吹紙錢, 飛擧向西而沒. 歌曰. 生死路隱此矣有阿八次綔伊遣吾隱去內如辭
작향가제지. 홀유경축취지전, 비거향서이몰. 가왈. 생사노은차의유아팔차호이견오은거내여사
叱都毛如云遣去內尼叱古於內秋察早隱風未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一等隱枝良出古去奴隱處毛冬질도모여운견거내니질고어내추찰조은풍미차의피의부량낙시섭여일등은지량출고거노은처모동
乎丁阿也彌刹良逢乎吾道修良待是古如. 明常居四天王寺. 善吹笛. 嘗月夜吹過門前大路. 月馭爲
호정아야미찰량봉호오도수량대시고여. 명상거사천왕사. 선취적. 상월야취과문전대노. 월어위
之停輪. 因名其路曰月明里. 師亦以是著名. 師卽能俊大師之門人也. 羅人尙鄕歌者尙矣. 蓋詩頌
지정륜. 인명기노왈월명리. 사역이시저명. 사즉능준대사지문인야. 나인상향가자상의. 개시송
之類歟. 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 讚曰. 風送飛錢資逝妹. 笛搖明月住姮娥. 莫言兜率連天
지류여.고왕왕능감동천지귀신자비일. 찬왈. 풍송비전자서매. 적요명월주항아.막언두률련천 遠. 萬德花迎一曲歌.
원. 만덕화영일곡가.
→ 월명사(月明師) 도솔가(兜率歌)
경덕왕(景德王) 19년 경자(庚子; 790) 4월 초하루에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니 일관(日官)이 아뢰었다. "인연 있는 중을 청하여 산화공덕(散花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조원전(朝元殿)에 단을 정결히 모으고 임금이 청양루(靑陽樓)에 거둥하여 인연 있는 중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때 월명사(月明師)가 긴 밭두둑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서 그를 불러 단을 열고 기도하는 글을 짓게 하니 월명사가 아뢴다. "저는 다만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기 때문에 겨우 향가(鄕歌)만 알 뿐이고 성범(聲梵)에는 서투릅니다." 왕이 말했다. "이미 인연이 있는 중으로 뽑혔으니 향가라도 좋소." 이에 월명이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바쳤는데 가사는 이러하다.
오늘 여기 산화가(散花歌)를 불러, 뿌린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령을 부림이니, 미륵좌주(彌勒座主)를 모시게 하라.
이것을 풀이하면 이렇다.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散花歌)를 불러, 청운(靑雲)에 한 송이 꽃을 뿌려 보내네,
은근하고 정중한 곧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어니, 멀리 도솔대선(兜率大僊)을 맞으라.
지금 민간에서는 이것은 산화가(散花歌)라고 하지만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兜率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산화가(散花歌)는 따로 있는데 그 글이 많아서 실을 수 없다. 그런 후에 이내 해의 변괴가 사라졌다. 왕이 이것을 가상히 여겨 품다(品茶) 한 봉과 수정염주(水晶念珠) 108개를 하사했다. 이때 갑자기 동자(童子) 하나가 나타났는데 모양이 곱고 깨끗했다. 그는 공손히 다(茶)와 염주(念珠)를 받들고 대궐 서쪽 작은 문으로 나갔다. 월명(月明)은 이것을 내궁(內宮)의 사자(使者)로 알고, 왕은 스님의 종자(從子)로 알았다. 그러나 자세히 알고 보니 모두 틀린 추측이었다. 왕은 몹시 이상히 여겨 사람은 시켜 쫓게 하니, 동자는 내원(內院) 탑속으로 숨고 다와 염주는 남쪽의 벽화(壁畵) 미륵상(彌勒像) 앞에 있었다. 월명의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이 미륵보살을 소가(昭假) 시킴이 이와 같은 것을 알고 조정이나 민간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왕은 더욱 공경하여 다시 비단 100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시했다.
월명은 또 일찍이 죽은 누이동생을 위해서 재를 올렸는데 향가를 지어 제사지냈었다. 이때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더니 지전(紙錢)을 불어서 서쪽으로 날려 없어지게 했다. 향가는 이러하다.
죽고 사는 길이, 여기 있으니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과 같이,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은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彌타刹)에서 너를 만나볼 나는,
도를 닦아 기다리련다.
월명은 항상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있으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어느날 달밤에 피리를 불면서 문 앞 큰길을 지나가니 달이 그를 위해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이 때문에 그곳을 월명리(月明里)라고 했다. 월명사(月明師)도 또한 이 일 때문에 이름을 나타냈다.
월명사는 곧 능준대사(能俊大師)의 제자인데 신라 사람들도 향가를 숭상한 자가 많았으니 이것은 대개 시(詩)ㆍ송(頌) 같은 것이다. 때문에 이따금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찬(讚)해 말한다.
바람은 종이돈 날려 죽은 누이동생의 노자를 삼게 하고,
피리는 밝은 달을 일깨워 항아(姮娥)가 그 자리에 멈추었네.
도솔천(兜率天)이 하늘처럼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萬德花) 그 한 곡조로 즐겨 맞았네.
融天師彗星歌眞平王代 융천사혜성가진평왕대
第五居烈郎, 第六實處郎,[一作突處郎] 第七寶同郎等三花之徒. 欲遊楓岳. 有彗星犯心大星. 郎
제오거렬낭, 제륙실처낭,[일작돌처낭] 제칠보동낭등삼화지도. 욕유풍악. 유혜성범심대성. 낭
徒疑之. 欲罷其行. 時天師作歌歌之. 星■在卽滅. 日本兵還國. 反成福慶. 大王歡喜. 遣郎遊岳
도의지. 욕파기항. 시천사작가가지. 성■재즉멸. 일본병환국. 반성복경. 대왕환희. 견낭유악
焉. 歌曰. 舊理東尸汀叱乾達婆矣遊烏隱城叱綔良望良古倭理叱軍置來叱多烽燒邪隱邊也藪耶三
언. 가왈. 구리동시정질건달파의유오은성질호량망량고왜리질군치래질다봉소사은변야수야삼
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月置八切爾數於將來尸波衣道尸掃尸星利望良古彗星也白尼反也人是有叱
화의악음견사오시문고월치팔절이삭어장내시파의도시소시성리망량고혜성야백니반야인시유질
多後句達阿羅浮去伊叱等邪此也友物比所音叱彗叱只有叱故
다후구달아나부거이질등사차야우물비소음질혜질지유질고
→ 융천사(融天寺) 혜성가(慧星歌) 진평왕대(眞平王代)
제5 거열랑(居烈郞), 제6 설처랑(實處郞; 혹은 돌처랑突處郞이라고도 씀), 제7 보동랑(寶同郞) 등 세 화랑의 무리가 풍악(風岳)에 놀러 가려고 하는데 혜성(慧星)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하였다. 낭도(郎徒)들은 이를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그 여행을 중지하려고 했다. 이때에 융천사(融天寺)가 노래를 지어 부르자 별의 괴변은 즉시 사라지고 일본(日本) 군사가 제 나라로 돌아가니 도리어 경사가 되었다. 임금이 기뻐하여 낭도(郎徒)들을 보내어 풍악에서 놀게 했으니, 노래는 이렇다.
옛날 동해(東海)가에 건달파(乾達婆)가 놀던 성을 버리고,
'왜군(倭軍)이 왔다'고 봉화를 든 변방이 있어라.
세 화랑은 산 구경 오심을 듣고 달도 부지런히 등불을 켜는데,
길 쓰는 별을 바라보고 '혜성(慧星)이여' 하고 말한 사람 있구나.
아아, 달은 저 아래로 떠갔거니, 보아라, 무슨 혜성(慧星)이 있으랴.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우리 회원님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좋은글 이기에 퍼가지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여 거절 하시면삭제 하겠습니다. 꼬리글에 답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