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이씨 임영대군파.
임영대군(臨瀛大君)은 조선 제4대 세종의 4남으로,
전주 이씨 시조 이 한(李 翰)의 25세손이다.
전주 이씨 종시조 이성계가 22대손입니다.
임영대군파 시조는 세종대왕의 4남 임영대군 이 구 이며,
항 렬 표는,
25세;-구,26세;-순,27세;-자,28세;-옥정,29세;-근,30세;-덕영,31세;-욱,
32세;-진걸,33세;-흡,34세;-언정,35세;-건,36세;-종한,
이후 돌림자.
37세;-해(海),38세;-수(秀),39세;-사(思),40세;-규(圭),41세;-종(鍾),
42세;-호(浩),43세;-원(元),44세;-열(烈),45세;-후(厚),46세;-회(會),
47세;-승(承),48세;-동(東),49세;-헌(憲),50세;-균(均),51세;-호(鎬),
52세;-연(淵),53세;-상(相),54세;-섭(燮)
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k
전주이씨 임영대군파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 는 세종대왕의 제 4남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 이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평생을 청백하게 살고 절개를 지켰으므로 정(貞), 진실하고 대쪽 같다 하여 간(簡)을 쓴 것이다.
그는 성품이 조용하고 인자하며 부귀를 탐하지 않았으며, 학문을 닦는 데 힘썼다.
그는 또 사물제작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세종대왕은 임영대군에게 화포제작의 감독을 명하기도 했다.
단종의 선위(禪位) 전후 수양대군은 여러 아우들의 동정을 살피게 되었다.
이를 눈치 챈 임영대군은 경기도 광주 의곡, 지금의 의왕시 내손동 모락산(慕洛山)으로 은신한다.
그가 단종이 유배당한 영월을 바라보고 절을 했다고 하여 산 이름을 `낙양을 사모하는 산'이란 뜻으로
모락산이라고 불렀다. 망배(望拜)하던 바위는 `사인암(斯仁巖)', 주변 마을은 `의곡동(義谷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1469년(예종 1) 50세를 일기로 타계한 임영대군은 자손들에게 유훈을 남겼다.
첫째는 `왕자, 왕손 간에 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
둘째는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였다. 그는 또 `나는 본디 안평 형님과 금성 아우와 함께 절의에 죽고자 하였다' 고 했다.
임영대군은 오산군 주(澍), 구성군 준(浚), 정양군 순(淳), 팔계군 정(淨), 환성군 징(澄),
영양군 함(涵), 단계부정 인(潾), 윤산군 탁(濯), 옥천군 옥(沃)
중모현주(中牟縣主), 청하현주(淸河縣主) 등 9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이 적자를 두지 못했기 때문에 정양군에게 승통되었다.
정양군은 봉산군 돈(敦), 유산도정 민(敏), 황원정 부(敷), 덕림군 자(孜), 의산수 창(敞), 영성수 경(敬) 등 6남이 있다.
18대 종손에 이르기까지 550여 년간 임영대군 묘에서 기신제와 사계절 절사를 올리고 있다.
뿌리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