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가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사람의 지혜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지금 토크쇼가 유행하잖아요?
이 지혜는 세상의 지혜이며 관원의 지혜 곧 니고데모와 같은 지혜입니다.
고전2:6절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이 지혜는 세상이나 관원의 지혜가 아닌 지혜이며 온전한 지혜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없어질 지혜이며 멸망하는 지혜 곧 쓸모없는 지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서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주의 보좌로 나아가는 스토리텔링으로
교제하면서 주를 찬미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며 함께 찬양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7절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비밀 안에 있습니다. 감추어졌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지혜이며 그리고 그 분의 진리를 알게 하는 지혜이며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사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게 바로 ‘야다, 동침하다’는 뜻의 영생입니다(요17:3)
이와 같은 지혜는 이미 하나님이 예정하신 비밀입니다. 우리들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고 진술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이 이미 내게 이루어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아니면 죽어서 영화롭게
된다고 말하겠지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우리의 영광이 됩니다.
영광은 매우 무겁고 귀중한 가치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가진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요1:14절의 독생자의 영광을 예수를 육체대로 보는 지혜로는
예수의 영광이라고 할 것이나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들은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라 할 겁니다.
8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였으리라
아무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영광의 주께서
멸시 천대받는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을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로 권고 한다’(요18:14)고 말한 것 같이 예수님은 로마에
대한 소요의 책임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가야바의 잘못된 말이
결국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이셨지만(요1:29) 지금은 하나님의 어린 양(요1:36)으로서 하늘과 땅
그 아래에 있는 모든 만물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영광나라의 임금이십니다.
이분이 진리의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하고요.
우리 가운데 임하신 개인의 구주이면서 영광 나라 임금이신 신기한 존재이십니다.
9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예비하신 모든 복’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신령한 복입니다.
영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복을 받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귀가 있고 눈이 있어도 성령이 아니고는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활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할아버지기 손자에게 주려고 과자를 감추어 둔 것처럼 우리에게 주시려고 오랫동안
간직해 오신 감추어진 복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에 고생하는 인간들이
불쌍하게 보여서 어느 날 문득 아들을 불러 네가 지구에 내려가야겠다고 보내신 게
아닙니다. 이미 창세전에 미리 계획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 간직이 된 구원입니다.
때가 찬 경륜을 따라 컴퓨터계산보다 더 정확한 시간에 아들을 보내시어 그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그 구원을 시작하시고 지금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 그 자체가 바로 복입니다. 이 복은 이미
창세전에 예비 된 구원의 약속입니다. 나의 인생의 운명이 예정이
된 것이 아니라 나의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 예정이 된 겁니다.
10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보이십니다. 보이심 곧 계시는 감춤의 반대입니다.
빛이요 계시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이 성령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통달하신 분입니다. 혹자들은 원어를 좀 공부하거나 영어성경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예정론이 비성경적 운운하는데 그 사람들은
비성령적이기 때문에 눈과 귀가 있으나 마나한 정작 비성경적인 사람들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깊으신 마음을 살필 수 없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후하고 불어넣으신
것처럼 성경에 성령을 후하고 불어넣으셨습니다. 또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숨을 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요20:21)
11절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사정은 사람의 영이 알고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이 압니다.
사정이란 뜻 계획 마음 가치 목적 등을 망라한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성령은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를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주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신 주님과 교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현상은 성령이 불의 혀 같이 갈라져 보이지만 본질은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마22:41-46) 다윗이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을
항상 그 앞에 모시고 주의 이름을 부르듯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는 겁니다(행2:21)
행2장을 읽고 그 말씀에 감동이 되어 무릎을 꿇는다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좋은 성경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