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온유한 자들
하나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자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이 있어 하늘나라가 확장되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너무나 귀하게 보시며 아끼십니다. 그들은 언제나 안전한 구원 안에 머물며,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밖에 머물러 있는 자들과, 구원 밖으로 뛰쳐나간 자들을 향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안전한 구원 안으로 돌아오도록 인도합니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성정을 가진 온유한 자들입니다.
온유(溫柔)라는 단어 프리우스prius(헬라어)는, 친절한kindness, 공손한meekness, 사려깊음thoughtfulness, 정중함politeness, 예의바른courtesy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말씀하신 온유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 온유와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온유는 마음씨가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예의바른 태도와 품위가 있는 우아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을 보호할 때 나타나는 기사도 정신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협심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는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기사도 정신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협심은 배제되어 있으나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NIV영어성경은 예수님의 온유를 hum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humble이라는 단어의 뜻은, 겸손한, 얌전한, 교만한 점이 없는, 남이 하라는대로 하는, 자존심을 낮추는, 힘 의지를 무너뜨리고 꺽는, 등 이런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와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의 온유 어떻게 다른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 온유는 사람을 향해서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는 하나님을 향해서 자녀가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입니다. 성령의 열매 온유는 사람을 향해서 맺어야 할 열매이므로 때로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할 의협심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은 절대 순종이지 싸울 때 가지는 의협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원토록 불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조금은 뜻이 다른 단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온유한 자는 예수님처럼, 불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온유함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나는 온유하고 겸손한 자" 라고 소개하는데, 여기서 소개되는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이 산상에서 말씀하신 온유한 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산에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자녀의 태도와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온유한 자의 표본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셨는지를 살피면 온유한 자는, 어떠한 자인지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지셨던 마음은,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에 '아니요'라고 말씀하지 않으신 겸손한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목동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순한 양 같은 얌전한 마음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순종하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1:29-
예수님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일이 없는, 자신의 의지는 없는 순하고 얌전한 양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 이사야서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53:6,7-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토 달지 않으시고 순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쫓는 무리들에게, 아니 지금 우리들에게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예수님이 주신 구원 안에 안전하게 머물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려면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교만한 점이 없는 겸손하고 얌전한 온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내 의지를 주장하지 않고, 자신은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존심을 꺽은 자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모두 예수님을 닮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의 마음, 즉 온유한 마음으로 세상을 밝히는 이들은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대 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세상은 밝아지지를 않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서로를 향해 던지는 비방과 생각 없는 비판으로 인해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원인 없는 문제는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성도, 이런 교회의 모습의 원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오히려 무시하는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세운 권세자들에 순종하라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지도자로 세운 대통령을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은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가 교만하여 도덕적인 잘 못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에게 돌을 던진다는 것을 곧 하나님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향해 비방하고 욕을 한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큰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한 지도자를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 목회자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담임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교회의 제직이나, 어떤 분 보다 먼저 예수님처럼, 모세처럼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자신의 의지가 꺽여진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과 함께 동역하는 분들 역시 목사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해야 합니다.
협력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담임 목사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품었던 온유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함께 동역하는 분들은 목사님을 성도님들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비방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불만이 있고 욕할 일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러쿵저러쿵 성도님들에게 말하여 당을 지을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목사님을 찾아가 면전에서 옳고 그름을 말해야 합니다. 그럴 용기와 자신이 없으면 비방대신에 사역지를 옮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인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담임 목회자도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일지라도 비판에 앞서,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며 지혜롭게 찾아가 잘 못을 말씀드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보편적으로 공동체의 리더자를 통해 일합니다.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들은 리더자의 결정이 본인의 생각에 합리적이지 않아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리더자가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 일을 주문 할 때는, 그것이 회의를 거쳐 결정난 사항이라면 더더욱 최선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의지를 꺽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세로 위에 세운 권세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예수님을 닮은 온유한 자입니다.
온유라는 것은, 친절하고, 공손한, 그리고 사려깊은 정중함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온유는 때로 예수님처럼 자신의 의지를 꺽고, 또 때로는 자존심을 버리고 따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담임 목회자는 철저히 예수님을 닮아야합니다. 또한 담임 목사님과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 위에 세우신 목사님을 잘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잘 따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 펼쳐진다면 그들이 섬기는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도 건강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 세운 권세자를 거스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위에 세운 권세자들을 잘 따르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매우 선한 일입니다. 온유한자, 즉 선한 일에 힘쓰는 자녀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자가 받을 복이 땅이라는 것은 삶의 지경을 넓어짐을 뜻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가지셨던 온유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주신 구원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며 세상을 밝히는 등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로마서13:1-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