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다나엘 무화과나무 (요한복음 1장 43~51절) - 야곱의 사다리 꿈
지난주의 말씀은 창세기 첫째 날과
창세기 둘째 날을 지나 창세기 셋째 날에
십자가를 통하여 밝히 드러낸 생명의 양식과
백성을 양육할 땅을 준비하시고 복음의 잔치를 베풀
종들을 부르시는 장면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말하자
세례요한을 따르던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와
요한복음의 저자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들에게 와서 보라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습을 보여주신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행하여 주시는 일을 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심으로
복음이 밝히 드러나게 되고
복음의 잔치를 베풀어 주어 열린 하늘 문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모습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습을
제자들을 부르는 모습을 통하여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43~46절을 보면 ....
요1:43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요1: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사렛은 갈릴리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나사렛 예수라는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또 멸시와 천대를 받아 흑암에 사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어 준다고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에서 자라시며 빛을 비추어 주시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멸시와 천대를 받으실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이사야 53장 2~3절을 보면 ....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버림을 받고 멸시받은 모습으로
버림받고 멸시를 받은 자들이 사는 곳인
갈릴리에서 자라시고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이사야 9장 1~2절을 봅니다.
사9:1 <평강의 왕>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빛이신 예수님이 유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아
흑암이 가득한 갈릴리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루어 주시려고 예수님은
갈릴리의 아주 작은 마을인 나사렛에서
자라시며 사역을 하신 것인데
빌립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본문 4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성경에는 메시아가 갈릴리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고 있는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
미5:2 <베들레헴에서 다스릴 자가 나오리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다스릴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나다나엘은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인데
빌립이 나사렛 예수라 말하니
그곳에서는 메시아가 오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인 것이며
자라신 곳은 나사렛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4~7절을 보면 ....
눅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눅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눅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처럼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다가
호적하러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을 때에
예수님을 낳은 것으로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러한 빌립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본문 4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빼먹지 않으며 율법을 모두 지키며
율법에 따라 성전에 제물을(예배) 드리고 있는
바리새인을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하지 않고
이들에게 멸시를 당하여 성전에 나가지도 못하고
갈릴리에서 살아가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말씀하시는데
나다나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이어지는 본문 48절을 봅니다.
요1: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하나님 백성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미가서 4장과 스가랴 3장의 말씀
그리고 왕하 4장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데
이 말씀들은 예수님이 다스리는
메시아 왕국과 복음 시대를 모형한 말씀입니다.
먼저 미가서 4장 1~4절을 봅니다.
미4:1 <여호와께서 이루실 평화>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4:2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여기서 끝날은 예수님의 초림을 말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인 시온산으로 많은 민족들이
몰려간다는 것으로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천하 만민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다는 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율법을 완전하게 해주신다는 뜻으로
율법 속에 숨겨있는 복음을 밝히 드러내어
자신의 백성에게 가르쳐 믿음에 이르게 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이어지는 3~4절을 봅니다.
미4:3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4: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전쟁이 없으므로 전쟁에 쓰이는 무기가 필요치 않아
그 무기를 모두 농기구로 만든다는 것으로
영원히 전쟁이 그친다는 것이며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아
평안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면
이런 일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말씀을
스가랴 3장 8~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슥3: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한다는 것은
약속의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주신다는 뜻입니다.
슥3: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슥3: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은 예수님을 말하고
그 돌에 일곱 눈이 있다는 것은 온 땅을 감찰하시며
하나님 백성을 안전하게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성령님)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백성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신 복음의 말씀을
성령님이 깨닫게 하심으로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쟁이 그치고 평안히 살아가게 되는데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한다는 것으로
복음을 먼저 깨달은 자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복음으로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시면
영원히 전쟁이 그치고 평안히 살게 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삶의 모형으로 솔로몬 왕 때에
백성들이 살았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4장 24~25절을 보면 ....
왕상4:24 솔로몬이 그 강 건너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그 강 건너편의 왕을 모두 다스리므로
그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를 누렸으니
왕상4: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모형한 다윗 왕이 죽고
성령님이 오셔서 믿음에 이르게 하여 구원하시고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솔로몬 왕이 모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다스릴 때 전쟁이 그치고
백성들이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던 것처럼
메시아가 오시면 전쟁이 그치고 평안히 살아갈 것을
미가서와 스가랴서에서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니엘은 그 날을 소망하며 약속의 말씀대로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 오심을 소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나다나엘의 모습을 모습을 지켜 보신 예수님은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나다나엘처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은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믿음이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알아보았다는 뜻으로 본문 4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아무도 모르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아 오심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던 나다나엘은
자신을 알아본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임금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나다나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본문 50~5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요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다나엘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날을 소망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는 말씀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큰 일은 솔로몬 왕 때에 전쟁이 그치고
각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아가는 모습의 참 형상인
하나님 나라에서 평안히 살게 하시기 위하여
굳게 닫혀있던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전쟁도 없고 눈물도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평안히 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본문 51절의 말씀은
창세기 28장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으로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28장 10~14절을 보면 ....
창28:10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에서를 피하여 도망하는 야곱이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았다는 것인데
한 돌은 머릿돌 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으로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를 품에 안고 있듯이
하나님이 70세가량 된 야곱을 품에 안고
계시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품에서
평안히 자고 있는 야곱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야곱을 이 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품에 안고 보호하신다는 것인데
그 이유를 말하고 있는 12절부터 보겠습니다.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이 열리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이 그 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모형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3~14절을 보면 ....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야곱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약속의 말씀인데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말씀대로
야곱이 누워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신다는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주셔야 한다는 것으로
굳게 닫혀 있는 하늘 문을 열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하늘 문을 열어 주시고
천하 만민을 구원하셔서 열어 주신 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늘 문을 열어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0~51절을 보면 ....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씀이 굳게 닫혀있던
하늘 문을 열어 주셨다는 뜻이며
야곱의 꿈으로 보여주신 것처럼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은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야곱이 이 땅으로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고 보호하신다고
이어지는 28절은 말합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말씀은 야곱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품에 안고 보호하시며
하나님 나라로 안전하게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복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굳게 닫혀있던 하늘 문을 열어 주신 것이며
또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 속에 감추어진 복음을 밝히 드러내시고
그 복음을 전하여 복음의 잔치를 열어 주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을 부르고 계신 것은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혼인 잔치에 유대인을 초대하였으나 오지 않자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종들에게
네거리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청하게 하기 위하여 종들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종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시고
혼인 잔치를 베푸는 모습이 2장에 나오는
가나 혼례의 모습인 것입니다.
창세기 셋째 날에 자신의 백성을 양육하실
땅과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인 복음의 말씀을 준비하시고
종들을 시켜 많은 사람을 청하여 모으고
예수님은 복음의 잔치를 베푸시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 잔치에 참여하여
예수님이 준비하신 포도주를 먹으며
즐거워하고 있음을 잊지 마시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힘쓰고 애쓰며 또 그분을 알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