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 삼현파 항렬표(行列表)
1792년?(洪武紀元後八壬子)고(稿) 수단하한(收單下限)1911년 譜(세보)
昌(창)○, ○두(斗), 容(용)○, ○坤(곤), 鎭(진)○, ○洙(수), 東(동)○, ○煥(환), 在(재)○
1914년 갑인보(대동보)
○圭(규), 錫(석)○, 浩(호)○, ○植(식), ○煥(환), 用(용)○, 鎭(진)○, ○永(영), ○根(근), 然(연)○, 喜(희)○,
1954년 갑오보(해방후 최초 대동보)
容(용)○, ○坤(곤), 鍾(종)鎭(진)○, ○泰(태)洙(수), 東(동)○, ○熙(희), 奎(규)○, ○錫(석), 洛(낙)○, ○相(상), 熹(희)榮(영)○, ○壎(훈)在(재), ○善(선)錡(기), 洪(홍)○, ○夏(하), ○載(재)圭(규), 鉉(현)錫(석)○, ○源(원)浩(호), ○植(식), ○煥(환)
1960년간 경자보(1954년갑오보의 증보판)
容(용)○, ○坤(곤), 鎭(진)鍾(종)○, ○洙(수)泰(태), 東(동)○, ○熙(희), 奎(규)○, ○錫(석), 洛(낙)○, ○相(상), 熹(희)榮(영)○, ○壎(훈)在(재), ○善(선)錡(기), 洪(홍)○
1974년간 갑인보(용산보, 대동보)
自判書公十九世로起昌字(19세에 창자)
19세 昌(창)○, 20세 ○斗(두), 21세 容(용)○, 22세 ○坤(곤), 23세 鍾(종)鎭(진)○, 24세 ○洙(수)泰(태), 25세 相(상)東(동)○, 26세 ○煥(환)熙(희), 27세 基(기)奎(규)○, 28세 ○鎬(호)錫(석), 29세 永(영)洛(낙)○, 30세 ○植(식)柱㈜, 31세 熹(희)○, 32세 ○在(재)壎(훈), 33세 錡(기)善(선)○, 34세 ○洪(홍), 35세 東(동)○, 36세 ○夏(하)
(1974년 갑인보와 2001년 신사보는 27세 부터 항렬에 변동이 있습니다_ds5zwk)
2001년간 신사보(辛巳譜,대동보)金海金氏璿源大同世譜(西紀2001年辛巳 鍾路譜)
自判書公十六世로 起顯字(판도판서공으로부터 16세에 현자)
16세 顯(현)○, 17세 再(재)○, 18세 ○圭(규), 19세 昌(창)○, 20세 ○斗(두), 21세 容(용)○, 22세 ○坤(곤), 23세 鍾(종)○, 24세 ○洙(수)泰(태), 25세 相(상)東(동)○, 26세 ○煥(환)熙(희), 27세 廷(정)在(재)○, 28세 ○鎬(호)鎭(진), 29세 永(영)汶(문)○, 30세 ○根(근)杓(표), 31세 炳(병)炅(경)○, 32세 ○埰(채)基(기), 33세錫(석)銘(명)○, 34세 ○洪(홍)淳(순), 35세 柱(주)桂(계)○ , 36세 ○夏(하)烈(열)
(1974년 갑인보와 2001년 신사보는 27세 부터 항렬에 변동이 있습니다_ds5zwk)
김해김씨선원대동세보(2001년 종로보)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자료실에 있음이 확인되고,
일반 서가에 있으므로 자유롭게 열람할 수가 있습니다.
1700년대까지 편찬된 족보를 살펴보면,
율리공(栗里公) 휘 대장께서 탁영공 휘 일손(馹孫) 조에 입후되어 있지 않았지요.
(율리공이 탁영공에 입후된 사실은 삼족당공(위대유)께서 기록하신 "탁영년보"에 의하면 중종원년에 탁영공을 위하여 제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때부터 율리공이 탁영공가에 입후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율리공의 후손 또한 장자 휘 갱, 차자 휘 장, 이 두분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리공의 비문에도 장자와 차자 이 두만 기록이 되어 있지요.
그런데. 1802년부터 편찬되는 족보부터는 갱, 장, 형, 용, 전, 주, 령으로 늘어납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때부터 지금의 족보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물론 이때부터 오보와 남보가 심하였음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주로 재력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주로 개인자격 또는 족보 편찬소를 통한 위탁의 방법으로 족보를 많이 들 편찬하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대종회 명의로는 발간된 사례가 없었는데 워낙 오보와 남보가 심하여 삼현파 대종회 차원에서 족보를 편찬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족보를 근간으로 삼는다면, 위보일 망정 다른 족보를 배척할 수가 없는 지경이므로,
지금까지도 대종회 명의로는 발간된 사례가 없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불가능하리라 예상됩니다.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삼현파에서는 남보, 오보일 망정 진위를 밝힐 수가 없어서
1995년까지 발간된 보첩을 총망라하여 전국을 대상으로 저산서원 명의로 총 37권의 "김해김씨 삼현파 대동보"를 발간하였는데, 이 보첩의 서문에도 밝혔지만 오보와 남보에 대하여 대단히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진위를 논할 수가 없어 모두를 포함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대종회 명의로 발간된 것은 아니나, 범 세파를 망라하여, 그동안의 보첩을 모두 포함시켰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될 것입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이 보첩이 중심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물론 이것도 거짓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이하 생략…]
갑오보(1954), 경자보(1960)는 해방 후 처음으로 간행된 김해김씨 대동세보인바,
그 당시에는 현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계파가 참여하였으며,
1974년 갑오보부터 항렬표에 세수(世數)가 부기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2001년간 신사보의 삼현파 항렬표는 1995년도 저산서원 명의로 간행한 삼현파 대동보의 항렬표를 그대로 옮긴 것으로 갑오보(1954), 경자보(1960)때와 비교하여 엄청난 자손록이 늘어났기 때문에 일부 세대의 항렬자가 변경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삼현파의 보첩에는 춘천파(金+堅)는 무사(無嗣)로 기록되어 있고,
1995년 저산서원 명의로 간행된 삼현파 대동보에는 무후(无后)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민공파중 춘천파는 청도파와 다른 항렬자를 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여지며,
2001년간 신사보는 춘천파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1954년 갑오보의 항렬표가 일부 변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kimheakim.com.ne.kr
상기1914년보 2001년보 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표작성 ds5zwk
(1974년 갑인보와 2001년 신사보는 27세 부터 항렬에 변동이 있습니다_ds5zw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