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사각거리고
김소형
PARAN IS 12
2025년 4월 3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33쪽
ISBN 979-11-94799-01-6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티티새가 물어다 준 길을 건너 환한 당신에게로 갑니다
[너는 사각거리고]는 김소형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그냥」 「새파란 눈」 「머나먼 나무」 등 57편이 실려 있다.
김소형 시인은 2021년 [애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너는 사각거리고]를 썼다.
시는 말로 말을 부정하는 일이고 말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것은 말과 사물 사이의 간극에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끊임없이 말을 갱신하는 새로운 기쁨을 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말을 하는 시인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또 거부해야 하는 힘든 갱생의 길이기도 하다. 김소형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 [너는 사각거리고]에서 그러한 시인의 길이 얼마나 지난하고 괴로운 일인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일인지를 잘 보여 준다. 그의 시어는 타락한 세상의 말들을 태초의 싱싱한 소리들로 바꾸고, 직선과 사각으로 구획된 우리의 삶을 둥근 곡선의 화합의 세계로 이끈다. (이상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사각. 사각. ‘내’가 ‘당신’을 내다보는 소리. ‘당신’이 ‘나’를 들여다보는 소리. “사각거리는 그물 속에서/애벌레처럼 나는/입을 오물거리”는데 ‘당신’은 어디서 그것을 보고 있을까(「초대받았어」). ‘당신’은 어느 나무에서 자라고 있을까. 사각. 사각. 그 소리는 ‘당신’의 세계로 오라는 신호일까, 오지 말라는 경고일까.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이미지이자 동시에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활자. “당신이 개똥지빠귀라고 말해서 나는 티티새라고” 답해 본다(「티티새」).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서로를 바라보게 된 시인은 “어리둥절한 새 한 마리”가 된다(「시인의 말」). ‘당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나’는 “크리스타마딜리디움 무리카툼/아무도 모르는 은색 방울 종”으로 역진화한다(「공벌레」). 사랑으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육체는 방해물이다. 팔다리가 무거우면 버리고 아래가 허전하다면 날개를 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김소형 시인의 ‘소리-이미지’는 “눈과 귀를 닫고” ‘당신’의 동굴을 거쳐 ‘소리-활자’로 전이된다(「공벌레」). 김소형 시인이 꾸려 놓은 소리 공동체는 “세상의 단어들이 ‘사각’ 한 단어로 모여”든 곳(「초대받았어」), “보이지 않는 소리들”이 모여서(「모자」) 공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곳, “아주 오래전부터 몸속에 슬어 있던 것이/깨어나는” 장소이다(「겹눈을 가진 사람」). 사각. 사각. ‘내’가 ‘당신’을 들여다보는 소리. ‘당신’이 ‘나’를 내다보는 소리. ‘나’는 ‘새-활자’가 된다. ‘나’는 “손끝에서 퍼렇게 녹”슨 글자를 흘리며 “날개를 퍼득”거려 본다(「답장」). ‘당신’의 “한쪽 귀에” “다글다글 굴러다닌다”(「한 방울」). 사각. 사각. ‘당신’의 “손을 잡았는데 내 손을 잡는 것 같”다(「정오의 시간」). 여기 ‘당신’의 흔적에 ‘당신’을 새기는 ‘티티새’가 있다. “제 몸을 삼킨 말이 꽃으로 피어” 날 때까지(「말은 꽃이 되려고」), 아무도 듣지 못한 소리를 복원하는 “어리둥절한 새”가, 사랑에 눈과 귀가 멀어 벌레가 된 줄도 모르는 ‘공벌레’가, 스스로 활자가 되어 ‘당신’을 부르는 사각이, 사랑의 최종 진화인 시가 여기 있다.
―정우신 시인
•― 시인의 말
꿈에서 깬 듯 어리둥절한 새 한 마리가 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이 깃털을 부풀리고 있다.
•― 저자 소개
김소형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2021년 [애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너는 사각거리고]를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오후 2시의 칸타타 – 11
니은 – 12
티티새 – 14
초대받았어 – 16
그냥 – 18
직선을 보다 – 20
건너가는 동안 – 22
연두 – 24
귀가 자란다 – 26
새파란 눈 – 28
정오의 시간 – 30
환승 – 32
수화(手花) – 34
제2부
환(幻) – 37
겹눈을 가진 사람―김사인 시인에게 – 38
말은 꽃이 되려고 – 40
답장 – 42
엘리베이터 – 44
순순한 날 – 45
지도에는 없는 – 48
흥! – 50
가지 못한 마음 – 51
중얼중얼 – 52
내 발은 꽃씨처럼 – 54
적막 – 56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 58
머나먼 나무 – 60
제3부
점령군 – 65
어머니 – 66
몸의 주술 – 68
샹그릴라 – 70
모자 – 72
추문(鰌文) – 74
공벌레 – 76
은행나무 귀 – 78
독화살 – 80
그 아이 – 82
오한(惡寒) – 84
풍경의 바깥 – 86
가늘고 길고 대단한 – 88
심장에 박힌―304개의 별들을 기억하며 – 89
세월 – 90
제4부
한 방울 – 93
크레바스 – 94
월야지정(月夜之情) – 96
봄의 손가락 – 98
풀꽃 1 – 100
풀꽃 2 – 101
활에게 – 102
머리에 꽃을―오필리아로부터 – 104
법순과 푼수를 그리며 – 106
서수필 – 108
중독 – 110
틈 1 – 112
틈 2 – 114
얼굴을 쓰다듬으며 – 116
가피 – 118
해설 황정산 말과 사물에 대한 사유 – 120
•― 시집 속의 시 세 편
그냥
아무렇게나 걸치고
마실 나온 옷차림 같은 말
그 말에 눈물 나네
그냥은 무수한 날들의 손가락
그날들이 눈동자에
꽃자리 같은 지문을 찍어 놓아
나는 그냥 바라보고
그냥 숨 쉬고
그냥 걷네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지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주겠단 말도
들어 본 적 없지만
말리지도 않은 젖은 머리칼 같은
그냥
그 말에 눈물 나네
먹고사는 일 그냥 아닌 일 없어
아무리 대단한 업적이라도
그냥 앞에서는 말을 잃어버리네
사랑한다고 누가 말했던가
사물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고
사랑은 그물에 걸리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럼에도 거울 속에서 빛나는 것들
그럼에도 바라보게 되는 것들
그 수백의 반어(反語)를
그림자와 착각과 무지와 환영과
그럼에도 아름다운 것들을
단 한마디 말로 눈감아 버리는
거품 같은
처음 같은 말 ■
새파란 눈
그렇지 새파래야 하지
불꽃을 삼킨 채 고요히 타오르는
서늘한 기운이어야 하지
새파란 눈은 지금의 눈
눈앞으로 물이 쏟아지고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벌떡 일어나지
깍깍 새소리가 그제야 들려오지
열차처럼 달려가는 줄 알았어 지금이
정류장을 휙휙 지나 사람들을 지나
아침과 밤을 지나
가야만 할 곳이 있는 줄 알았어
밤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며 앞을 노려보았지
첨벙,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어
시간들이 추도 없이 물속으로 떨어졌네
미련 없이 돌아서는 사람처럼
반질반질 닦아 몸에 집어넣던 옷들이
아이스크림처럼 녹고 있어
나는 가벼워져서 하하 웃었네
눈이 새파래지기 시작했어
굽은 어깨와 목이 반듯해졌어
머리카락 한 올이 내게 말했네
우린 살아 있어
눈을 감으면 내 눈은 다시 암갈색이 되지
나는 허둥대며 다시 옷을 챙겨 입네
그러다 어느 순간 출렁,
밝아지는 거야 새파랗게
지금처럼 새파랗게 ■
머나먼 나무
당신은 머나먼 나무에 살아요 나무 꼭대긴지 나뭇가지 사인지 나무 밑인진 알 수 없지만 여기서 몇 광년쯤 떨어진 나무에 산다는 건 확실해요 가끔 돌 냄새를 품은 바람이 불어오거든요 잎사귀도 붙이고서
당신이 나무로 가 버렸을 때 나도 땅을 파고 들어앉고 싶었어요 내가 썩어 나무줄기로 올라가는 수액이 된다면 그 가지 어디쯤에는 나도 올라앉을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은 툰드라 사람들의 얼굴로 헤어졌죠 표정을 추위가 갉아 먹어 누구도 알아볼 수 없었어요 그들은 주문을 외웠어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만트라를 읊는 사람처럼
말하기 위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이젠 이해하는데 발밑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말을 해독할 필요도 없어졌어요 이젠 어디나 행성이에요
구멍에 떨어뜨린 씨앗이 하룻밤 새 자라 나무 그늘이 내 머리를 덮었습니다 당신의 행성에서는 나무들이 무엇을 먹고 자랍니까 당신은 노래하는 씨앗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까 단 하루만 사는 나무가 있는데 매일 밤 잎을 모두 떨궜다가 다음 날이면 새벽빛 속에 다시 우뚝하다고
당신은 나무의 길은 볼 수 없다고 했지만 내겐 그 길이 보입니다 행성은 나무의 축을 따라 돌아요 머나먼 당신이 몸을 기울여 후두둑, 나무로 자라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