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사무엘상3장10~21절
제목 : 꼭 필요한 것
사무엘이 12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은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부른 것으로 알고 세 번이나 그에게 갔었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영적으로 흐려 늦게 경험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것을 알고 그에게 다음에 부를때에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하라 하였습니다.
1.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전과 같이 부르심(10절)
오늘 본문은 여호와께서 전과 같이 사무엘을 부르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임하여는 여호와께서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서서”는 신인 동형적(神人同形的) 표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서서 계실 육체를 갖고 계시지 않은 영(營)이신데도 불구하고, 마치 사람과 같이 서 계신 것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본절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무엘 앞에 실제로 임재하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창 28:13 ; 출 34:5 ; 욥 4:16).
*창28:10~13절을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다가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졌습니다.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잘때에 꿈에 본즉 13절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절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아 사무엘아'와 같은 반복적인 부르심의 표현이 성경 여러 곳에서
신현(神顯)의 장면과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에서 또한 증명될 수 있습니다.
(창 22:11 ; 46:2 ; 출 3:4).
*창22:11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심(11~13절)
1)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겠다(11~12절)
“[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 - 여기서 '한일' (다바르)은 앞에서 상세하게 언급된바 엘리 가정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실제로 성취시키는 일을 가리킵니다(2:27-36).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을 들어 삼상2:27~36절에서에서 예언하신 대로 엘리의 집안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27~28절에서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을 말씀하시고,
29절에서 엘리의 가문이 지은 범죄 행위를 지적합니다.
1)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2)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
30절에서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시고,
31~34절에서 엘리의 가문이 멸절할 것을 예언합니다.(31~34절)
(1)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터에서 한날에 죽임 당한 것을 표징으로(4:11)
(2) 엘리의 후손들인(14:3, 8 ; 22:9) 놉지역의 제사장들이 사울 왕의 사주를 받은 에돔인 도엑에 의하여 대량 학살되고(22:11-23)
(3) 또한 엘리 집안의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솔로몬에 의하여 제사장직에서 파면됨으로써 (왕상 2:27, 35) 성취되었습니다.
35절에서는 새로운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킬 것을 예언합니다.
36절에서는 파멸한 엘리 집안 후손들의 모습을 예언합니다.
두 귀가 울리리라 - 이 말은 곧 '사건의 충격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 집안에 내리실 심판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그 소식을 접한 자가 공포와 전율로 인해 귀가 멍멍할 정도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Smith, Fay, Keil).
구체적으로 제사장 엘리 집안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1) 법궤가 블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실로 성소가 파괴된 사실(4:11,17;5:1), (2) 엘리의 두 아들이 전쟁터에서 한 날에죽은 사실(4:18),
(3) 엘리의 며느리가 해산하다가 죽은 사실(4:19-22)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이런 의미에서 '두 귀가 울리리라'( 테칠레나 쉐테 아즈나우)는 말은 성경 다른 곳에서 예루살렘의 함락과 파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을 가리킬 때 역시 사용되었습니다(왕하 21:12 ; 렘19:3).
2) 심판의 원인-직무유기죄와 방조죄(13절)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본절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엘리의 직무유기죄(職務遺棄罪)와
아비로서의 엘리의 방조죄(幇助罪)를 고소하고 있습니다.
즉 엘리는 자기의 두 아들이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무슨 죄를 범하는지 알면서도(2:23-수종드는 여인과 동침),
그들을 적극적으로 징계치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2:29-네 아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기고, 가장 좋은 것으로 살찌함).
저주를 자청하되 - '스스로를 타락시키되' 란 뜻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이 제사장의 심분으로서 성소에서 그처럼 타락한 행동을 일삼은 것은(2:13-16, 22)곧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70인역(LXX)을 비롯, 일부 영역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되'로 번역했습니다.
3)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14절)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 이하 선언되는 내용과 같은 하나님의 맹세는 구체적으로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2:27)의 엄중한
심판적 예언(2:27-36)은 하나님의 맹세와 결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 이 말은 엘리의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함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그 이유는
(1) 엘리집안의 죄악이 엄중한 경고 후에도 계속되었고,
(2) 그러한 죄악을 속하는 거룩한 제사마저도 그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2:12-17).
제물이나 예물로나 - 여기서 '제물(제바흐)은 피흘림이 있는 희생 제사를 가리키며, '예물(민하)은 소제와 같은 피흘림 없는 곳식제사를 가리킵니다(R.P. Smith).
한편 이 두 가지는 구약 시대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여호와께 속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3. 엘리에게 사실을 알림(15~18절)
“15]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16]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17]“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18]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 여기서 '문'(門)은 히브리 본문에는
'문들'(doors)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막에는 많은 문들이 있었고, 그 문들을 열고 닫는 일이 사무엘의 중요한 임무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문'(델레트)은 나무로 만들어진 '두짝 문'(a tow - leaved door)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다'는 말은 성막의 휘장들(출 26:36 ; 36:37)을 열어젖혔다는 뜻이 아니라, 성막에 부속된 여러 별관 건물들의 문들을 열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성막이 실로(Shlioh)에 오래 머무는 동안 성막 뜰 주변에는 제사 업무상 필요한 여러 부대(附帶)건물들이 고정적으로 지어졌던 것 같습니다(Keil Delitzsch, R, Payne Smith). 2절 주석 참조.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 사무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이상(異像)은 엘리 가문의 멸망과 직접적으로 맞물려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은 하나님께로부터 엘리 가문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고도 즉시 엘리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은 그 같은 비극적인 예언으로 인하여 대 스승 엘리 제사장이 심히 괴로워 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소년 사무엘의 사려깊은 신중함이 엿보입니다.
3: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 지난 밤 사무엘에게 어떠한 내용의 하나님의 계시가 임했는지 엘리가 무척 궁금해 하고 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내 아들 사무엘아 - 이것은 평소 엘리와 사무엘의 관계가 부자(父子)관계와 같이 밀접했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내 아들아' 라는 호칭은 애정과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난감한 마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호칭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6절).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이것은 엘리에 대한 사무엘의 존경심과 겸손한 마음, 그리고 순종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8, 9절)
3:17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개역 성경에는 잘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엘리는 보절에서 '다바르'('말씀하다')를 어근(語根)으로 하는 동사 및 명사를 도합 5회씩이나 사용함으로써, 사무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 말씀에 대하여 자신의 깊은 관심을 강력히 표명합니다.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 여기서 나오는'...하면 하나님이...하시기를 원하노라'와 같은 맹세적 표현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집니다(14:44 ; 20:13 ; 25:22 ; 룻 1:17 ; 삼하 3:9, 35 ; 19:13 ; 19:13 ; 왕상 2:23 ; 왕하 6:31).
그런데 본래 이와 같은 맹세적 표현은 중근동 지역에서 짐승을 잡아 죽이는 의식적(儀式的) 행위와 함께 이루어졌었다(Klein).
즉 이같은 맹세는, 맹세자가 원하는 행동을 상대방이 신실히 실행하지 않을 경우 죽임을 당한 짐승과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을 암시해 주는 맹세의 한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는 짐승을 죽이는 의식 행위가 생략되어 있지만,
위와 같은 당시대의 배경 하에서 본절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3: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사무엘은 엘리의 엄숙한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고,
또한 선지자적 소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에 엘리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한 사무엘의 메시지 전달은 다음 두 가지 목적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메시지 전달로 부터 실제 심판이 임하기까지 약10-15년의 기간이 있었다는 것은 다시한번 사무엘을 통해 엘리 집안을 각성시키고 회개시키기 위한 목적이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소년 사무엘에게 말씀을 주어 대제사장 엘리에게 메시지를 선언하도록 했다는 것은 향후 사무엘의 예언자적 기능을 강화시키고,
동시에 그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F.R. Fay.Smith).
이는 여호와시니 - 사무엘의 모든 말이 틀림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임을 엘리가 겸손히 인정하는 말입니다.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 이 말은 엘리가 하나님의 의지를 순히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즉 사무엘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집안의 멸망과 죽음에 관한 무서운 심판의 내용이었지만, 엘리는 강퍅하게 거부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모든 일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엘리는 이처럼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옷을 찢고 통회하며 재를 무릅쓰고 회개한 참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것으로 우리는 엘리의 신앙 면모를 얼핏 살펴볼 수 있는데,
즉 그는 개인적으로는 후덕(厚德)하고 어느정도 신앙적이었지만,
공적으로는 죄에 대처함에 있어 유약하고 미온적인 우유부단한 이물이었던 것 같습니다.(Keil, Smith).
4. 선지자로서 사무엘의 전생애 동안의 모습을 반영(19~21절)
19절“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본절의 내용은 사무엘의 선지자적 사역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사실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특별한 약속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2:21, 35).
따라서 본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는 사실(11-14절)과 함께, 사무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을 받은 선지자임을 증명해 주는 증거인 것입니다(신 18:22 ; 23 :14 ; 왕상 8:56 ; 왕하 10:10).
그리고 본절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前)의 모습만을 가리키는 않는다.
이것은 선지자로서 사무엘의 전생애 동안의 모습을 반영해 줍니다.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 이는 사무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예언의 말은 헛된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계시사,
그의 입에 직접 예언의 유효성은 참 선지자됨의 증표였습니다(신 18:22).
이런 의미에서 후일 지혜자는 말하기를,
회중의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다고 하였습니다(전 12:11).
3: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본절의 내용은 19절 내용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즉 선지자로서의 사무엘의 예언이 말한 대로 모두 성취되자 이스라엘 온 백성들은 사무엘을 의심할 나위 없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세우심을 입은 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에만'은 민 12:7에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의 경우와 관련되어 '충성됨'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는 그 직무상의 충성되고 신실함을 통해서, 하나께로 말미암아 세움 받은 그의 선지자 직의 정통성이 입증된다는 의미입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 '단'(dAN)은 이스라엘 북쪽 변경의 한 성읍이름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원래 지명은 '라이스'(삿 18:29)였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 단 비파의 사람들이 이주, 정착해 살면서 자신들의 조상 이름을 따라 이와 같은 지명을 붙였던 것입니다.
단 지파는 원래 여호수아로부터 약속의 땅 중 남쪽 부분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분배 받았었습니다(수 19:40-48).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의 원주민을 몰아내지 못함으로, 그 땅을 자신들의 것으로 완전히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삿 18:1).
그러던 중 정착지를 찾아다니다가 머무른 곳이 바로 이 단 지역이었던 것입니다(삿 18:27).
한편 '브엘세바'(beer-sheba)는 팔레스틴 최남단 곧 헤브론 서남쪽 55km 지점에 위치하였다(창 21:14 ; 26:23 ; 삿 20:1).
따라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란 말은 이스라엘 전 국토를 가리키는 관용적이 표현입니다(삿 201).
선지자 - (나비). 어원적으로는 '부름을 받은 자'란 뜻이다(Klein)
그런데 우리는 이같은 어원적인 의미와 더불어 이 단어의 문맥적인 의미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본장의 문맥은 선지자의 의미가
(1) 여호와께서 임하신 바 된자(10, 21절),
(2) 여호와의 계시를 받은 자(17, 21절)임을 시사한다.
3: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본절의 내용은 사무엘을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습니다.
실로 -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져 있던 곳으로,
사무엘이 머물던 것입니다(1:3 ; 2:11).
여호와의 말씀으로 - 이 말은 혹자들의 생각처럼 구체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중 제 2위의 출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호와께서 당신을 계시하시되, 당신의 말씀을 매개체로 사용하셨음을 뜻합니다(사 2:1)
대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인생의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지금 내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절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 아버지의 역할
2.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하심,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