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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봉목사의 연구실 스크랩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
정태봉 추천 0 조회 51 08.09.22 14: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 354~430)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남서쪽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로마의 관리로서 무신앙인이었으며, 어머니는 열렬한 기독교도였다. 그는 카르타고에서 공부하였으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였다.

     만년에 쓴 그의 <고백록>에는 청년시절을 방탕하게 보낸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마니교도들의 유물론적 존재론 및 아카데미 학파의 회의론적 인식론을 인정하는 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20대 초에 흔히 일컫는 두 가지의 회개를 하게 되었다. 우선 지적인 면의 회개로서, 이는 플라톤주의적인 문헌을 읽은 영향이었다. 이에 의하여 그는 이데아 내지 비물질적 실체의 실재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도덕적인 면의 회개로서, 이는 기독교의 영향이 쌓이고 또 그가 신약성경을 읽은 데에서 온 것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는 기독교의 신앙을 전도하고 옹호하는 데 헌신하게 되었다.

     그는 43세경에 사제로 임명되었고, 5년 후에는 카르타고에서 가까운 히포시의 주교가 되었다. 그리고 35년간이나 자기 교구의 일에 온갖 열성을 기울이고, 또 놀라울 만큼의 많은 저술을 내어 놓았으며, 그 대다수는 그가 이단이라고 생각한 것을 논박한 것이었다. 그는 히포시가 반달인들에 의해 포위 공격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 세상을 떠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람은 정신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직관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여러 가지 점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오류를 범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아가 의심할 때에 있어서 조차도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오류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존재한다."

     앞서 회의론자들에 의하면, 이데아는 그것을 품고 있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또 감각은 주관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회의론적 입장에 대항하여 자기의 인식론을 세웠다.

     그는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따라, 이데아는 우리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데아는 그것에 대한 우리의 직관으로써 파악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물질적 사물과는 달리 불변적이다. 그것은 신(神)으로부터 오는 '조명'을 받을 때에 직관 속에서 우리에게 파악된다. 한편, 감각은 신체의 변화가 마음 속에 일으키는 결과가 아니라, 마음이 신체에 있어서의 어떤 변화들을 주의해 보는 심적 활동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맹목적인 신앙에는 찬동하지 않았다. 알기 위해서는 믿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온건한 확신을 가지고 믿기 위해서는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해가 없이는 완전한 기독교 신앙을 가질 수가 없다.

 

 

1.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발전 과정

 

    1) 플라톤 사상이 나올 당시의 상황- 고대 귀족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되는 시기에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질서를 추구하기 위해서 나온 반동적 관념의 철학.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는 이와는 정 반대로 새로운 전통이, 새로운 고대가 시작되는 시기였음.

    2) 키케로의 절충적 실용적 시점을 계승- 창조적이라기보다 절충적 사상가이자 로마제국에 보다 도움이 될 사상을 찾아 내려 했던 키케로의 전통을 이어 받음.

    3) 마니교의 영향- 악과 선의 이원론적 구조, 죄와 구원의 문제.

    4) 회의주의 경향( 마니교를 떠난 이후 )- 계시론과 새로운 인식론(인간 내면에서 시작되는 인식 방식) 의 바탕이 됨.

    5) 또한 신플라톤 주의로 회의주의 극복- 혼이 단계적으로 고양되어 궁극적인 一者와  합일된다는 사상의 강조점을 뒤집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적인 것이 혼의 내면에서 현존한다고 주장. ( 특히 혼의 내부에 있는 신의 직접적 확실성에 도달해야 함을 강조함)

    6) 교회의 도움으로 또한 회의주의를 극복할 수 있었음.-교회의 권위로 그리스도교 메세지에 대한 신앙이 가능하였으므로.

    7) 그리스도교적 금욕-당시에는 자유분방한 性자연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으나 철학이나 사상 등은 그에 대해 무기력했음.

      cf. 그리스도인-가정, 성생활 긍정 // 신플라톤주의자-성적인 것의 부정. 금욕   추구      8) 아리스토텔레스의 직접적인 영향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

       1.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플로티누스적 이원론을 거부.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그리스도교 사상 표현에 적합하다고 .   

       2. 개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조는 무의미함.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공동체를 추구했으므로.

       3. 양 극단 사이의 중용을 추구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금        욕적 엑스타시를 추구하였음.

       4.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자

         아우구스티누스-순수 논리의 추상화에 관심이 없던 직관적 주의주의적 사상가           5. 아리스토텔레스- 귀납적 경험론자. 실재(시간과 공간 안의)에서 최고 추상성으로         올라감.

          아우구스티누스- 직관적 사상가( ex. 플라톤). 신적인 것에서 경험적 실재로 내려        옴.

 

2. 인식론

 

    혼은 신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장소라고 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에 의하면 곧 신이란 인간 내면에 현존하는 선험적인 것이다.

    인간이 갖는 두 가지 직접적인 명증, 즉 1. 인간 오성이 지니는 논리적 형식 2. 인간의 감각적 지각과 인상 은 그 자체로는 회의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는 실재적인 것이 아니고 다만 물음을 가능케 하는 구조( 1 ), 감각적 인상으로서의 실재적인 것( 2 )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재에 대한 회의의 극복 방식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확실성은 밖이 아닌 안에서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진리는 인간 속 깊은 곳, 즉 혼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혼만이 유일하고 실재적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세계는 혼에 있어서 하나의 현상이며, 모든  현상의 총체로서의 세계를 각각 혼 안에 간직하고 있다. 후에 데까르트로 이어지는 이 사상은 그러나 데까르트의 그것과는 차이점이 있다. 데까르트에 있어서는 나의 확실성이 수학적 명증성의 원리이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내적 명증성만이 신의 직접적 확실성이라고 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신은 신에 대한 회의에 선행하며 그것의 전제 그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자 함이다. )

    다음으로, 진리는 인간 혼 내면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고 본 그는 외적 물질적 세계는 진리 도달에 있어 전혀 무의미하거나 오히려 방해된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인식은 참여이자 그에 대한 사랑이므로 물질세계에 대한 인식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것은 신적인 인식에 도달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뿐 아니라 중세 전반에 걸쳐 자연과학이 대체적으로 침체되었던 원인이다. 자연과학은 그것이 삼위일체의 흔적을 보여 주는 정도에 있어서만 효용이 있는 학문이였다.

 

3. 신론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신은 일체의 범주를 초월한 것이다. 따라서 신에 대한 사랑도 어떤 대상을 향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다. (신은 주 객의 분별도 초월하였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사물을 올바르게 사랑한다는 것이 곧 그 안의 신적 존재 근거를 사랑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삼위일체에 관해서는 서구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즉 위격이나 인격의 구별에 대해서 신의 통일성을 강조하여 삼위일체의 신 그 자체를 인격으로서 파악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신은 통일적 인격이므로 밖을 향하는 신의 모든 행위는 언제나 삼위일체 전체의 행위이며, 受肉의 행위 역시 마찬가지이다.

     끝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무로부터의 세계 창조를 부정한다. 창조에 선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르게 보면 유한한 것은 언제나 허무의 위험 아래 놓임을 의미한다. 세계는 매순간 신의 의지 (사랑 )에 의해 창조되고 보존되어 진다. 창조와 보존이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순간도 세계는 신으로 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理神론적 신과 세계라는 두 실재를 고정화하는 것 역시 받아들여 질 수 없다.

 

4. 시간론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시간에 대한 획기적인 이해의 시작이다.

     시간은 공간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더불어 창조된 유한성의 형식이다. 창조 이전, 종말 이후에 있는 것은 끝없는 시간도 무시간성도 아니고 다만 영원성일 뿐이다. 이처럼 시간 역시 공간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것으로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음- 재생 - 죽음의 반복인 순환 사상을 거부한다. 이 같은 사상은 수천 년 전에  신이 창조하여 수천 년 후에 멸망할 이 세계의 <과정>에 바로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역사 전체에 의미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인간은 항상 세계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사상은 중세인들에게 실존의 의미를 자각시켜 준 사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5. 역사철학

     역사에 있어서는 신의 나라: 땅( 또는 악마 )의 나라로 구분하는 또 다른 이원론적 사고가 나타난다. 신의 나라에 교회가 현존하며 이 매개 요소로서 성직자의 계층구조 체계가 있다고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훗날 카톨릭이 교회를 스스로 신의 나라와 동일시 함으로써 자기를 절대화하는 데 좋은 모티브를 제공해 준다.  또 아우구스티누스는 천년왕국설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현시대에서 교회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바로 천년왕국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6. 펠라기우스 논쟁

     그리스적 합리주의적 신념의 대표자인 펠라기우스는 인간 본성의 본질적 요소를 자유로 보았다. 펠라기우스 사상을 간단히 살펴보면 1. 죽음은 자연적 사건이지 타락의 결과는 아니다 2. 원죄 개념의 부정-아담의 죄는 그 개인의 죄일 뿐이지 전 인류의 죄는 아니다. 3. 어린이는 타락 이전의 아담처럼 죄 없는 상태로 봄 4. 그리스도 이전에도 죄 없는 인간은 존재 했었다. 개인은 언재나 새롭게 시작된다- 신적인 것을 따르든가 그렇지 않든가는 재인의 자유에 따른 결단에 딸린 것이다 5. 그리스도는 기독교도들의 죄를 사하여 주고 금욕주의의 모범을 보인 존재이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결국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선과 악을 우리들 자신의 결단에 의존하는 문제로 본다는 데 그 핵심이 있다.

 

7. 죄론

     이에 맞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죄론을 전개한다.  우선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가 인간의 본질적 요소임에는 일단 동의한다. 그러나 자유의 성격에 대해서는 약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즉 인간의 자유란 선을 지향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은총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은 신이 아닌 유한 사물로 눈을 돌릴 여지가 많으며 여기서 죄가 생기는 것이다.  아담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자만-즉 신으로부터 돌아섬으로써 (이것이 죄의 원인이다) 죄를 짓게 되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하고 있다. 곧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죄는 자연적이 아닌 정신적인 죄이다.

     최고선을 외면한 결과인 죄는 곧 최고선의 상실이라는 형벌을 가져오며 이것은 인간이 신으로부터 멀어짐과 동시에 존재의 힘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원죄 사상과 관련하여 개인의 자유를 부정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죄는 인류의 숙명이며, 신의 특별한 은총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8. 은총론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신은 죄로 인하여 멸망하게 될 인류 중 일정 수의 인간을 선택하였다. 그리소 유한자이자 피조물인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없다. 다만 신의 예정에 의해 인간의 의지는 신에게로 향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은 모두 은총을 받아 죄를 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단순히 죄의 사함을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곧 최고선에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의 은총은 우리들에게 착한 욕구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우리를 돕는다.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 승리하였으나, 교회 안에서 전자 사상의 완전한 긍정 혹은 후자 사상의 완전한 부정이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에 있어서는 양자 각각 거부되기도 수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에 가서, 교회는 예정론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예정론에 따르면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양자를 매개하는 교회의 입지가 좁아지거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9. 교회론

    교회 구성원인 인간의 개체적 인격의 거룩함이 아닌 성례전의 객관적인 거룩성을 곧 교회의 거룩함으로 보는 사상은 키프리아누스에 의해 발전했는데 이것은 결국 교회의 절대적 권위에 이바지 하게 된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분열되어 있는 것의 신적 통일 즉 사랑은 교회 안에서만 있을 수 있으므로 구원 역시 교회 안에서만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구원을 중재하는 유일한 기관이 곧 교회라고 본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다시 한번 그 절대성을 확인 받는다.

 

10. 형이상학과 종교철학

 

     <고백록>(400?)과 <신국론>(426)에서 나타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형이상학적 사상은 분명히 플라톤을 연원으로 하는 철학적 전통 즉, 신플라톤주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만물이 신으로부터의 유출물(流出物)이라고 보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출설이 기독교 사상에 도입될 경우, 그것은 언제나 범신론적 경향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신과 세계를 존재성의 정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종류에 있어서도 다르다고 보았다.

     물론 플로티노스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도, 신은 세계 안에 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이 내재한다는 말은 신의 실체가 아니라, 그 권능이 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플로티노스에 있어 일자(一者)는 완전한 존재인 데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의 신은 전능한 의지이다. 그래서 플로티노스에 있어서는 적어도 세계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일자의 존재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본 데 대하여, 그는 세계를 그 생겨남에 있어서나 그 역사에 있어서 신의 전능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그의 유한한 의식 속에서 어느 범위의 시간을 통일시키고 있다. 즉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직관하고, 미래를 기대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식의 종합적 작용 속에 포함한다. 시간은 말하자면 우리의 주관적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신에게는 전 시간의 경과를 영원 불멸의 형언할 수 없는 한 시각 속에다 간직하고 있어, 결코 과거와 미래는 없다. 신은 시간을 초월해 있는 존재로서 하나의 포괄적인 활동으로써 전체의 시간적 과정을 파악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惡)의 본질을 언급하면서, 지금까지 악은 하나의 신플라톤주의적 개념으로서 존재의 결핍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신국론>에서도 그는 신플라톤주의를 따라 "그러므로 모든 자연은 그것이 존재하는만큼... 확실히 선하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인 악의 개념은 신플라톤주의적 전통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매력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는 이에 전적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에 의하면, 악은 단순히 존재의 결핍과는 달라야 한다. 그것은 곧 죄(罪)를 범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장한다. 죄는 인간의 체험 속에 있어서는 악보다 좀더 적극적인 개념이다. 죄는 도덕적 타락이며, 영혼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육체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신플라톤주의는 모든 죄를 육체의 본성에로 돌림으로써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원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보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스스로구원을 찾을 아무런 권리도 없다. 원래 인류의 조상인 아담(Adam)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었으나, 아담은 그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죄를 지은 까닭에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신의 은총(예컨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신의 은총이 누구에게 내릴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신의 절대적 의지에 달려있다. 그래서 구원은 신의 '예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나, 더 나아가 인간 중에서 참으로 신을 경애하며 거룩한 뜻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우리가 신의 존재는 증명할 수 있지만, 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은 신의 은총에 따른 계시로써만 가능하고, 우리의 이성으로써는 파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상대적 언어로써는 신을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이외에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삶의 최종의 목적을 천국에 두면서도 세상의 도덕적 생활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엄격한 도덕적 행위를 요구하였다. 덕(德)에 관해서는 플라톤의 사상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역사는 대립하는 두 가지의 힘 즉, 지상국과 천국 사이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싸움은 시간의 시초와 더불어 시작되었으며, 최후의 심판까지 계속될 것이다. <신국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나라는 현시대에는 얽혀 있으며, 장차 최후의 심판에서 분리될 때까지 서로 뒤섞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간의 자유와 죄 등의 문제들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그후 수세기에 걸쳐 열띠고 신랄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 당시에 있어서 그의 가장 뚜렸한 반대자는 펠라기우스(Pelagius, ?~420)였다.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인하고 인간의 자유가 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많은 반박과 옹호의 글들을 썼으며, 나중에 펠라기우스는 이단으로 판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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