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거리를 거닐며
글: 이 경희
조금 쌀쌀한 날씨지만 가을햇살이 촘촘히 부서지는 날 밖으로 나갔다.
팔랑팔랑 떨어지는 단풍잎 맞으며 산책하는 것은 아주 낭만적인 일이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가슴속을 파고든다.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보니 햇살에 단풍잎이, 은행잎이 금빛 찬란한 보석으로 바뀐다.
낙엽이 꽃으로, 햇살이 눈부신 보석으로 바뀌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가로수 따라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니 살짝 들뜬 마음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허리 굽혀 떨어져 나뒹구는 노란은행잎 한 장을 주워본다.
붉은 단풍잎, 노랑은행잎에 스치는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꺼내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한껏 높아진 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다니는 뭉게구름,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기분 좋게 불어오는 소슬바람,
바스락바스락,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우린다.
가을 들녘에 넉넉한 결실을 맺고 흐뭇한 마음으로 눈부시게 쏟아내는 황금빛 태양,
온 산야에 형형색색 만개한 가을단풍잎,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가을들꽃들,
그 속을 거닐며 차분하게 삶을 생각하고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인가!
도시생활에서 찌든 정신세계를 낙엽처럼 툴툴 털어버린다.
황폐해진 정신을 버림으로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사계와 같은 희로애락 속에서 살게 된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생긴다는 말이다.
또한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다. 세상일은 복이 될지 화가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즉 인간의 길흉화복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모든 내용을 “삶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도 있다”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절망 속에서 희망은 보이듯이 절망은 희망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온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가진 것이 적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은 삶인 것 같다. 늘 남과 비교하며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계절을 위하여 기꺼이 거름이 되어도 당당하면서도 화려한 자신만의 색채를 띠는 가을을 보니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가을은 묵묵히 나눔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언뜻 생각하면 가을은 쓸쓸하고 황량한 계절 같지만, 가을은 나약해지고 스산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지나간 삶과 다가올 삶에 사색할 시간을 주는 계절이다.
화창하고 화려한 날을 위해 가을은 겨울보다 한층 더 희생하고 고뇌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가진 것을 버리고 최소한의 것으로 견뎌내는 삶.
자신이 부족해도 남에게 조금씩 나눌 수 있는 삶. 다가오는 내일을 준비는 삶.
자연은 그런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늦가을에 거리를 거닐며 사색해보자. 거리에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을 사뿐히 밟고 걸으며 자칫, 현대인들의 바쁘고 힘든 도시생활에서 황폐해지고 거칠어질 수 있는 정신과 대화를 해보자. 사람, 명예, 욕망, 시간, 인생, 사랑, 이 모든 것을 한 박자씩만 늦추는 삶의 자세로 바꿔보자.